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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57)화 (57/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57화

주최자인 아이리스와 카시우스의 앞 글자를 따서 아카 대회. 수호 기사 선출 전에 일반인들이 실력을 뽐낼 기회를 주는 대회이다.

“출전하지 못하게 막으실 겁니까?”

“아니. 출전을 막진 않되,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도록 방해할 거다.”

“이야, 좋은 생각이십니다!”

“순위권에 못 들게 해서 망신당하게 해 줍시다. 나제트 영애께서 메이 플로티나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지게 말입니다.”

디아고는 어깨를 뒤로 틀어 소파 뒤에 달려 있던 설렁줄을 흔들었다. 하인 한 명이 메인룸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아카 대회 안내장을 가져와.”

“네, 황자님.”

하인이 명을 받고 나가자 비르타는 다시금 조잘댔다.

“그런데 플로티나 공자를 어떻게 방해하실 겁니까? 순순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만…….”

“나한테 다 계획이 있어.”

디아고는 오른쪽 입꼬리를 올리며 썩은 미소를 보였다.

제드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은 언제 어디서나 주목을 받아 왔다. 이 현실이 어느 작품 속이라면, 자신은 분명 그 작품에서 주인공일 거라 확신할 정도로.

누구든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그 관심들이 귀찮게 느껴지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의 등장으로 인해서 달라지고 말았다.

메이 플로티나. 이젠 그녀가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페르시스 공작에게 숨겨진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이 무려 수호신 두 명과 친분이 두텁다더라.

메이의 존재를 알고 나서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여태껏 주인공인 줄 알았던 자신이 실은 조연이었다는 걸 자각한 것 같아서.

그래서 디아고를 도왔다.

디아고가 누군가에게 흥미를 갖는 건, 그 누군가에게 있어서 좋지 않은 일임을 알면서도 그를 도왔다.

친해지고 싶다며, 진심이 눈곱만큼도 담겨 있지 않는 말로 쐐기를 박아 메이가 나인에 오게끔 유도했다.

디아고가 메이를 괴롭힐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메이 플로티나, 그녀는 자신에게 있어서 성가시고 탐탁지 않은 존재니까.

하지만 메이는 함정에 쉽게 빠지는 인물이 아니었고, 심지어 나인에 가입하겠다는 기고만장한 행동까지 보였다.

그런 메이가 자신에게 친해지고 싶다고 하다니.

이래서야 자신은 메이를 위한 완벽한 들러리 같지 아니한가.

자기만의 사색에 빠진 제드 옆에서, 클로빈과 갈리가 떠들어 댔다.

“꼭 플로티나 공자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둘 겁니다.”

“플로티나 공자가 낙담할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옵니다.”

디아고는 그런 회원들을 둘러보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 제드에게 명령했다.

“네가 보란 듯이 1등을 해. 메이 플로티나가 순위권 안에 들지 못하게 네가 간간이 방해하고.”

“네.”

나인에 있는 모두가 메이의 적이었다.

***

제드를 보낸 후 침실로 들어온 나는 가슴이 콩닥거려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문에 기대어 제드와 나눈 대화를 회상했다.

‘친해지자, 제드!’

‘그래, 메이.’

제드가 그래, 라고 해 줬어!

“난 몰라아아.”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귀가 붉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호감을 드러냈나.

하지만 내가 호감을 드러내지 않으면 상대는 내 마음을 알지 못한다.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야 친해지든 말든 하니 후회는 없다.

“잘했어, 메이.”

나는 양팔을 교차해 내 어깨를 토닥이며 스스로 칭찬했다.

“나인 회원이 되었으니 앞으로 제드를 볼 날이 많겠지? 대화도 많이 할 테고…… 그렇게 정말 가까운 사이가 되면…….”

여자인 걸 밝혀도 되지 않을까?

좋아하는 사람에게만큼은 내 진짜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그때쯤엔 내가 여자라고 해도 그러려니 해 줄 거야.

어쩌면……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도…….

나는 부끄러워서 한 번 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아, 참!”

그러다 문득 아카 대회가 열릴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달아 고개를 들어 올렸다.

“대회 안내장이 왔으려나? 보통 기사 선출 발표 후 일주일 내로 보내 주던데.”

나인에도 안내장을 보냈을 거다. 안내장은 디아고에게 있으려나?

나는 침실에서 나와 메인룸으로 향했다.

저번 아카 대회는 C급 마물인 블루 앨리게이터 포획하기였지? 이번엔 어떤 대회일까?

대회에 참가할 생각에 들떠 있을 때였다.

계단을 내려가니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누구지?’

적갈색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땋은 여자아이. 나인에 여자 회원은 없었다. 아니, 있다 해도 저렇게 어린 아이는 회원으로 받아 줄 리 없었다.

나인에 방문할 만한 여자아이라.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스타시아 제국의 유일한 황녀이자 디아고가 아끼는 동생, 이사벨라.

황녀님이신가?

“요새 나랑 안 놀아주고 나인에만 있구…… 나빴어, 작은오빠.”

그녀는 씩씩거리며 메인룸 쪽으로 걸어갔다.

이사벨라가 황녀임을 알아차린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황녀님. 페르시스 플로티나 공작의 아들, 메이 플로티나라고 합니다.”

이사벨라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씩씩거리는 건 이미 멈춘 뒤였다. 그런데 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왜 반응이 없지? 혹시 낯가리나?’

나는 다시 한번 말을 건넸다.

“2황자님을 찾아오신 거죠? 2황자님은 메인룸에 계실 거예요.”

내가 메인룸을 가리키며 손수 안내했으나 그녀는 메인룸 쪽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내게 꽂혀 있었다.

‘얼굴에 뭐 묻어 있나?’

내가 얼굴을 매만질 무렵. 이사벨라가 드디어 작은 입술을 열었다.

“미…….”

미……?

“미소년이다……!”

미소년?

그렇게 불리는 건 처음이라 어리둥절해 있다가 다시 얼굴을 매만졌다.

내가 그렇게 보이나……?

“하하…….”

미소년이라는 호칭이 마음에 들어서, 나는 실실 웃음이 나왔다.

이사벨라는 치맛자락을 살포시 잡아 올리며 인사했다. 그녀의 녹안이 또랑또랑 빛을 냈다.

“저는 제국의 황녀, 이사벨라 스타시아예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황녀님.”

“저야말로 만나서 반가워요, 공자님.”

우리는 서로에게 눈웃음을 보이곤 메인룸에 입장했다. 메인룸에 들어서니 나인 회원들 모두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우리 쪽을 쳐다보았다.

이사벨라를 본 디아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기라는 듯 양팔을 벌렸다.

“이사벨.”

“오빠!”

이사벨라는 달려가서 그의 품에 안겼다.

나인 회원들은 이 모습이 익숙한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황실가 남매는 우애 좋기로 유명했고, 그중에서도 디아고는 동생을 금이야 옥이야 아끼는 동생 바보로 유명했으니까.

“여긴 어쩐 일이야.”

이사벨라는 허리에 손을 얹고는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렸다.

“오빠가 나랑 안 놀아 주니까 내가 직접 찾아왔지.”

“잘 찾아왔어. 오늘은 같이 놀아 줄게.”

“그런데 오빠, 플로티나 공자님도 나인 회원이셔?”

이사벨라의 입에서 외간 남자의 이름이 나오자 디아고의 눈썹이 비뚤게 올라갔다.

“……플로티나 공자?”

이사벨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쪽을 가리켰다. 이내 디아고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땐 살기가 느껴졌다.

관심 끌게 하지 말라는 무언의 협박인가……. 동생을 얼마나 좋아하면 저래.

“공자님도 회원이셔?”

“……그런데 왜?”

“꺄하- 공자님도 나인 회원이라니!”

이사벨라가 대놓고 좋아하자 디아고의 안면이 얼어붙었다.

“……이사벨, 왜 좋아하는 거야?”

“그야, 나인 회원이면 자주 볼 수 있잖아!”

“그러니까 그게 왜 좋냐고.”

“공자님이 예쁘고 잘생기셨잖아-!”

“…….”

이사벨라의 말을 끝으로 메인룸 안엔 정적이 돌았다. 찬 공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이윽고, 딱딱하게 굳어 있던 디아고의 입이 열렸다.

“메이 플로티나. 그대가 미소년인 줄은 몰랐군.”

“뭐……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보는 눈이 다르니까요.”

“이사벨 눈엔 네 외모가 취향이다, 이건가?”

디아고는 낮게 으르렁거렸으나 나는 그가 무섭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뭐?”

그가 녹색 눈을 부라리며 험상궂게 이맛살을 구기는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손에 든 하인이 들어왔다.

“안내장 가져왔습니다.”

하인 덕에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내려놓고 나가.”

하인은 방 안의 분위기를 느꼈는지 테이블 위에 살포시 안내장을 내려놓곤 빠르게 메인룸 밖으로 나갔다.

나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자연스럽게 대회로 주제를 돌렸다.

“아카 대회 안내장인가 보네요.”

나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 안내장을 잡아 들곤 타이틀을 읽었다.

“제4회 아카 대회. 주제는 구슬 모으기네요.”

디아고는 여전히 싸늘한 얼굴로 내가 들고 있던 안내장을 뺏었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읽기 시작했다.

“……이번 아카 대회는 두 번의 경기로 이뤄지는군.”

대회의 세부 사항은 이러했다.

마력을 소유한 사람을 제외한 누구나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1라운드는 24시간 동안 이뤄지며, D급 마물인 뼈다구의 구슬을 가장 많이 모은 30명을 선발한다.

2라운드는 1라운드에서 선발한 30명이 진출하며, C급 마물인 해골 귀신의 구슬을 제일 먼저 가져온 3명을 선발한다.

그 3명에게 금, 은, 동의 메달과 상금을 수여한다.

“대회는 이번 주 토요일에 아카센터에서 진행하는군.”

디아고의 양옆에 있던 갈리와 비르타는 얼굴을 빼꼼 내밀어 안내장을 읽었다.

“2라운드에 진출하려면 1라운드에서 무조건 30위 안에 들어야겠군요.”

비르타의 말을 들은 나인 회원들은 서로 눈빛으로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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