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53화
“2황자님이……?”
디아고가 찾아왔다는 말에 의아해하며 집사와 함께 응접실로 가니 정말로 그가 와 있었다.
“왜 찾아오신 거죠?”
그러나 디아고가 내게 내뱉은 말은 뜻 모를 말이었다.
“왜 훔쳐 갔지?”
다짜고짜 왜 훔쳐 갔냐니.
“무엇을 말입니까?”
“모를 거라 생각했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돈이 없어서 그걸 팔 생각으로 가져간 건 아닐 테고, 내게 소중한 거라고 해서 가져갔나? 나를 골탕 먹일 생각으로?”
이자는 도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건가. 왜 나를 도둑으로 몰아가고 있지?
“소중한 거면…… 비늘 말입니까?”
“모른 척하지 마. 그걸 가져갈 사람은 너밖에 없어.”
“전 아닙니다! 제가 그걸 왜 가져가겠습니까?”
황당하고 억울해서 언성이 높아졌으나 디아고는 내가 범인이라고 확신하는지 계속해서 나를 몰아갔다.
“오늘까지 내게 가져오지 않으면 플로티나 공작과 이 일에 대해 상의하도록 하지.”
페르시스랑 얘기하겠다고……? 안 그래도 그 사람 지금 엄청 바쁜데?
“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에요……!”
“나인에 있을 테니 나인으로 가져와.”
내가 가져간 게 아니라고 해도 그는 끝까지 나를 도둑으로 몰았다.
디아고는 열심히 반박하는 나를 두고 응접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이대로 보낼 수 없어서 얼른 뒤따라가 팔을 붙잡았다.
그는 미간을 구기며 내 손을 세게 내쳤다.
“어딜 만지는 거지? 남의 물건에 손댄 그 더러운 손으로.”
“저는 진짜 아닙니다. 비늘엔 관심조차 없었어요.”
“나더러 그걸 어떻게 믿으라는지 모르겠군. 지금껏 단 한 번도 사라진 적 없던 비늘이 하필 너를 초대한 후 없어졌는데.”
“아닌 걸 아니라고 어떻게 증명한답니까……!”
울분을 토해도 디아고는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오늘까지 내게 가져와.”
“황자님……!”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아냐……. 난 진짜 아니란 말이야…….”
도둑으로 몰린 건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극도로 불안해졌으나 이성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절대로 범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비늘을 가져간 걸까? 오늘은 고용인이 없었으니 용의자는 나인 회원뿐…….
아니지. 진짜로 사라진 건 맞나? 디아고가 나를 모함에 빠트리려는 걸 수도 있다. 나인 회원들이 날 싫어했던 것처럼 디아고도 나를 싫어한다면 이런 모함쯤이야 할 수도 있는 사람이지.
나는 디아고에게 달려가서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두 눈썹을 치켜올리며, 자신의 앞을 막아서 어쩔 셈이냐는 낯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저도 나인에 가겠습니다.”
***
나인엔 회원들이 전부 있었다. 모두 술이 깬 상태였고, 액자엔 당연하다는 듯이 비늘은커녕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공자님, 비늘이 갖고 싶었어도 그렇지, 가져가시면 어떡합니까?”
“플로티나의 차기 가주께서 도벽이라니. 실망입니다.”
비르타와 갈리가 내 옆에서 실망한 티를 팍팍 냈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영식들도 내가 훔친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하죠. 나인 회원 중엔 비늘을 탐내는 사람이 없고, 오늘은 고용인들도 없으니 남는 건 공자님뿐이잖습니까.”
“하지만 난 정말로 가져가지 않았어. 우리 줄곧 같이 있었잖아. 여기 응접실에 있을 땐 황자님과, 메인룸에선 모두와 같이 있었잖아. 그런데 어떻게 가져갈 수 있겠어?”
“집에 돌아가겠다면서 먼저 메인룸을 나가셨죠. 그때 가져가셨겠죠.”
“아냐, 난 곧장 집에 갔어.”
“그걸 누가 증명하죠?”
“제드가 봤어. 제드가 날 배웅해 줬었거든. 그치, 제드?”
“…….”
내 알리바이를 입증해 달라는 애절한 눈빛으로 제드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나는 급한 마음에 그의 팔을 붙들며 재촉했다.
“낮에 대화를 나누고 내가 곧장 건물 밖으로 나가는 걸 봤잖아.”
“…….”
“제드, 그렇다고 해 줘. 술 때문에 기억이 안 나?”
이를 지켜보던 클로빈이 큰 목소리로 디아고에게 일러바쳤다.
“황자님, 이거 유도심문 아닙니까? 당시 술에 취해 있던 사람한테서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부터가 수상합니다.”
“맞습니다! 유도심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빌면 황자님께서 아량을 베풀어 용서해 주실 겁니다. 그만 부정하시고 사과하십시오, 공자님.”
클로빈, 비르타, 갈리가 합세하니 말로는 그들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그때, 제드가 말문을 열었다.
“기억나. 내가 공자를 배웅했었어. 공자가 건물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 다시 메인룸으로 돌아왔었지.”
“맞아. 기억나는구나!”
제드의 말에 내 표정이 점차 밝아지다가도.
“그런데 그게 공자의 알리바이를 입증해 주진 못해.”
“……어째서?”
“나간 후에 다시 들어왔을 수도 있으니까.”
“뭐……?”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내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리는 사이, 클로빈은 대놓고 비웃었다.
“풉-”
나는 절망했으나 진정하고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지금 상황을 냉정한 시각으로 보자면 그의 말마따나 내겐 알리바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제드가 배웅한 후, 내가 나인에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서운해.
내가 집에 가는 척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비늘을 훔쳤을 가능성을 열어 둔다는 것 자체가. 내 어깨도 빌린 사람이 그런 가능성을 열어둔다니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섭섭하고 속상한 눈으로 제드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도둑으로 몰린 억울함보다 선을 긋는 그의 행동에 슬픔을 느낄 때였다.
“오늘 안에 가져오지 않는다면 플로티나에 비늘 값을 청구하겠다.”
디아고의 경고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 뭐라고?
“청구하겠다고요?”
“비늘의 가치에 맞게 책정해서 청구할 거야. 상상도 못 할 거액일 테니 기대해.”
“…….”
그의 말을 들은 나는 얼굴을 차갑게 굳혔다.
“……누가 가져가서 사라진 게 아니라, 황자님의 모함이었군요.”
“!”
갈리와 비르타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디아고는 삐딱하게 한쪽 눈썹만 치켜들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없다는 거예요.”
소중한 걸 잃어버린 사람이, 범인이라 확신하는 사람한테.
“제가 비늘을 훔쳐 갔다고 확신하면서도 비늘이 아닌 돈을 요구하고 있잖아요. 소중한 걸 도둑맞았다면, 보통은 열 배의 값을 준다고 해도 거절하고 가져간 물건을 내놓으라고 하거든요.”
“…….”
“소중한 거니까, 돈이 문제가 아닌 거죠.”
반면, 디아고는 자신에게 비늘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처럼, 외려 나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쓰는 것처럼 쉽게도 돈을 언급했다.
나인 회원들은 아까처럼 끼어들려다가 내 주장에 반박할 수 없었는지 입만 벙긋거렸다.
디아고는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서 비늘을 꺼내 보였다.
“그래, 맞아. 내가 갖고 있어.”
“역시…….”
예상대로 비늘은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곧 그의 입가에 비소가 맺혔다.
“그런데 이건 가짜야.”
그는 비늘을 바닥에 떨어트리고는 짓밟아 뭉갰다.
“공자와 놀아 보려고 준비한 장난감이지.”
“……글리우곤의 비늘이라는 것도 거짓말이었군요.”
“당연하지.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 봐. 혈투 중에 상대의 비늘을 가져올 시간이 어딨겠어?”
“황자님께서 겨우 이런 거로 거짓말을 할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소중한 것이라 칭하기까지 했는데 말입니다.”
“물론 형이 글리우곤과 싸웠다는 건 진짜야. 왜냐면 우리 형이 그때 오른팔을 잃었거든.”
“…….”
“하인드 나제트 후작이 그날 형을 구했어.”
황태자가 글리우곤과의 혈투에서 오른팔을 잃었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나는 세부적인 일은 알지 못했다.
자칫하면 황태자가 글리우곤한테 목숨마저 잃을 뻔한 상황에서 하인드가 급소를 공격해 그를 구해 줬다는 것.
원작에서도 나와 있지 않고, 유디프 부인도 알려 주지 않아서 몰랐던 이야기다.
내가 몰랐다는 표정을 짓자 디아고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말했다.
“이 정도는 정보상에게서 얼마든 살 수 있는 정보 아닌가? 공자는 정보력이 뒤떨어지는가 보군.”
“저를 비방하실 게 아니라, 제게 사과하셔야 하지 않나요?”
“내가 왜?”
왜라니? 디아고의 뻔뻔한 태도에 어안이 벙벙했다.
나를 존재하지도 않는 범인으로 몰았으니까 당연히 사과해야지!
그러나 그는 내게 사과할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는 듯했다.
“공자, 사과할 거였으면 애초에 이런 귀찮은 짓은 시작도 안 했어.”
하! 기가 차서 헛웃음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황자님의 발언들, 전부 저에 대한 모욕이고, 그것은 곧 플로티나에 대한 모욕입니다. 알고는 계신 겁니까? 황자님뿐 아니라 영식들도 마찬가지야.”
나는 나인 회원들을 괘씸하다는 눈으로 번갈아 보았다.
“황자님만 믿고 내게 이러는 거,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나?”
회원들 대신, 디아고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모욕이면 어쩔 거지? 공작에게 이르기라도 하게?”
“뭐라고요?”
디아고는 끝까지 뻔뻔했고, 내 얼굴은 구겨진 지 오래였다. 그가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었다.
“못하잖아, 너.”
“……?”
그게 무슨 뜻일까. 페르시스에게 이르는 걸 못 한다니?
“공자, 우리는 네가 허울뿐인 사람이란 걸 알고 있어.”
허울뿐인 사람……?
설마…… 내가 여자라는 걸 알고 있다는 걸까? 아들 행세 중이란 걸 알고 있는 거야?
불안감에 떨었으나,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너, 플로티나 공작의 친자식 아니잖아. 그저 후계자가 필요해서 데려온 입양아잖아.”
“…….”
“진짜 플로티나도 아닌 주제에 뭘 할 수 있겠어.”
공작 입맛에 맞게 살아가야 하잖아? 우수한 후계자가 되기 위해선 완만한 인간관계는 필수 아닌가?
“그런 네가 뭘 할 수 있겠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