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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51)화 (51/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51화

“…….”

“대답 못 하는 거 보니까 맞나 보네. 그래서 자리를 주선해 보겠다고 한 거야?”

어떻게든 포기해 보려고?

나는 끝까지 숨길 기력이 없어서 고개를 떨구곤 솔직하게 말했다.

“응……. 미안해…….”

분명 기분 나쁘겠지. 남의 남자를 넘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나 스텔라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푸흡-”

순간 잘못 들은 건 줄 알았다.

푸흡, 이라고? 이 진지하고도 삭막한 상황에서 스텔라가 웃음을 터트린다고? 뭐, 뭐가 웃긴 거지?

내 동공은 지진 난 듯 흔들리며 스텔라를 찾아갔다. 그녀는 뭐가 웃긴 건지 킥킥대며 웃고 있었다.

“왜…… 웃어?”

“겨우 그거 때문에 진지해진 거야?”

“어……?”

겨우 그거 때문이라니? 지금 삼각관계가 될 판인데…….

“미안하긴 뭘 미안하냐? 내가 걔랑 연애 중인 것도 아니잖아.“

“그래도 나중에 사랑하게 될 사이인걸?”

“그건 원작에서나 그렇지. 원작과 현실은 다르단 걸 겪어 봐서 잘 알지 않나?”

원작과 현실이 다르단 건 내 존재 하나만으로도 설명이 된다. 원작 내용과 현실이 일치했더라면 나는 진작 죽었어야 하니까.

“하지만 너, 원작대로 살고 싶다고 했잖아.”

“야, 그게 언제 적 얘긴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니? 그리고 제드 블로체는 내 취향 아니야. 안 좋아해.”

어쩌면 제드 블로체도 날 좋아할 일 없을걸? 나는 원작 스텔라와 다른 사람이니까.

“!”

원작 캐릭터와는 다른 사람.

그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스텔라의 말이 맞다. 내 앞의 스텔라와 원작 스텔라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며, 그녀가 제드를 좋아할 거란 건 단순히 내 추측일 뿐이다.

좋아할 수도 있지만 안 좋아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정말로 제드 블로체를 안 좋아해? 남주인공만큼 잘생긴 사람도 없잖아.”

“넌 잘생겼다고 다 좋아하니?”

“아니지.”

“나도 그래. 제드 블로체는 내 취향이 아니야.”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사람한텐 정이 안 가더라.

“그러니까 나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좋아하라고.”

마음껏 좋아하라는 말이 왜 이렇게 쑥스러울까. 나는 괜히 가렵지도 않은 뒷목을 문질렀다.

스텔라는 호기심 가득, 흥미진진한 눈빛을 보냈다.

“그래서,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거야?”

나랑 쇼핑한 날? 아니다, 오늘 아이리스 님의 생신 파티에 갔었으면 거기서도 봤을 테니 오늘부터?

나는 퍽 수줍게 말했다.

“쇼핑한 날…….”

“어머, 어머.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그렇게 우리 둘은 또 한동안 짝사랑 얘기로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

며칠 뒤, 나인에 가기로 한 주말이 되었다. 디아고가 보내 준 황실 마차는 수도에 어느 저잣거리 뒤편, 2층짜리 건물 앞에서 정차했다.

마차에서 내리니 내 키만 한 담에 둘러싸인 건물이 보였다.

“여기가 나인이구나…….”

건물 전체가 나인인가?

열린 대문 사이로 건물을 살펴보던 중, 마부가 내게 2황자를 만나러 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시면 중앙 계단이 보일 겁니다. 그 계단을 올라가서 2층에 바로 보이는 방이 황자님의 응접실입니다. 황자님께서 그곳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외우기라도 한 듯 달달달 알려 주는 마부가 의아할 때쯤, 그가 말을 속사포처럼 이어 갔다.

“주말엔 나인에 고용인이 없어서 공자님께서 혼자 찾아 들어가셔야 합니다.”

“아……. 그렇군.”

주말엔 고용인이 없다니. 2황자 성격상 배려 차원으로 고용인들을 주말에 쉬게 한 건 아닐 터.

주말마다 나쁜 짓거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고용인들이 그걸 보고 듣고선 사교계에 퍼트리면 골치 아파지니까.

내 추리가 얼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발이 좀처럼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 작정하고 날 괴롭힐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나는 허리춤에 있는 장검을 흘끗 쳐다보았다.

“나한텐 검이 있으니까 괜찮겠지.”

뭣하면 나도 검 뽑아 버리지, 뭐.

그나저나…… 제드 블로체도 왔겠지? 나와 친해지고 싶다고 했으니까.

2황자에서 제드로 생각이 전환되니 발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가다듬고는 나인에 입성할 준비를 마쳤다.

자, 들어가자!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의외의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생각보다 평범하네?

어둡고, 시끌벅적하고, 술과 담배 냄새로 찌든 곳이라 예상했으나, 건물 안은 평범한 저택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안뜰을 가로질러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자마자 2황자의 응접실이 보였다.

여기에 2황자가 있다는 거지?

손을 들어 올려 문에 노크하자 안쪽에서 2황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간 응접실엔 2황자 한 명뿐이었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다리를 꼬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인에 온 걸 환영해, 공자.”

“황자님을 뵙습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어. 어서 앉아.”

그는 꽤 친절했다. 그 태도가 의심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나인에 고용인이 없어서 놀랐겠군.”

“조금 놀랐습니다. 설마 기사도 없을 줄은…….”

“나인은 주말에만 모이는지라 주말엔 회원이 아니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룰을 만들었거든. 공자처럼 내가 직접 초대한 손님이 아닌 이상은.”

“그렇군요…….”

굳이 이런 얘길 꺼내는 저의를 알 수 없었다.

나인에서 남들이 보고 들으면 안 될 짓을 한다고 자백하는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나쁜 짓을 하진 않아.”

디아고는 내 생각을 읽었다는 어투로 말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고용인들에 의해서 밖으로 새어 나간다고 생각해 봐. 별 얘기 안 했더라도 기분은 나쁘잖아.”

“……맞습니다.”

나는 디아고가 이 얘기를 하는 저의에 대해서 추리해 봤다.

아, 혹시 내가 몰래 기사나 시종을 데려왔을까 봐 이러는 건가?

“저는 혼자 왔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까지야.”

디아고는 원하는 답을 들었는지 그제야 입매를 살짝 말아 올렸다.

디아고는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벽엔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저게 뭔 줄 아나?”

액자 안엔 사진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웬 무지갯빛 비늘 하나가 있었다.

“비늘……입니까?”

“글리우곤의 비늘이야.”

“글리우곤이면…….”

“수호 기사들도 무서워하는 S급 마물이지.”

마물은 5단계로 급이 나누어진다. 제일 낮은 급은 D. D급 마물은 크기에 따라서 마력이 없는 일반인도 무찌를 수 있다.

그 위는 C. C급 마물부터는 쓰러트리려면 마력이 필수다. 마력을 보유했다면 웬만해선 모두 잡을 수 있다.

B급은 보유한 마력이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서 포획 여부가 달라진다. 수호 기사단 전체 다 혼자서 C급을 혼자서 쓰러트릴 수 있다고 치면, B급은 70%다.

A급은 가장 강한 마물로, 혼자서 무찌를 수 있는 수호 기사는 전체의 30% 정도다.

마지막, S급 마물은 A급 마물과 위력이 비슷하지만 특별 능력을 쓸 수 있어서 포획하기가 A급보다 어렵다. 원체 개체 수가 적고, 자주 출몰하지 않기 때문에 희귀성이 있다.

글리우곤은 그 S급 마물이므로 발견하기도 어렵고 쓰러트리기도 어렵다.

그런 글리우곤의 비늘이라니…….

액자에 넣어 전시할 만했다.

“10년 전, 형이 글리우곤과 혈투 후에 가져온 거야.”

“황태자 전하 말입니까?”

“그렇지. 내게 형은 한 명뿐이니까.”

황제에겐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있었다. 디아고는 둘째이며 그가 언급한 형이 황태자로 첫째, 황녀가 막내이다.

“저 비늘은 내게 뜻이 깊어. 아주 소중한 것이지.”

글리우곤의 비늘은 황태자의 위력을 보여 주는 것과 다름없으니 형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뜻이 깊을 만했다.

“내가 너무 지루한 얘기만 했나?”

음, 조금?

“걱정 마. 재밌는 건 따로 있으니까.”

디아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인 회원들을 소개해 주지. 따라와.”

그는 나를 나인의 메인룸으로 데려갔다. 메인룸은 디아고의 응접실 바로 밑, 1층 제일 큰 방이었다.

“여기가 나인의 메인룸이야.”

그가 고동색 양 문을 열자 담배 냄새와 술 냄새가 그득하게 풍겨왔다.

“콜록, 콜록-”

나는 그 퀴퀴한 냄새에 두어 번 기침하며 디아고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와…… 여기 완전…….”

카지노잖아?

짙은 청록색 암막 커튼으로 창문을 가려 밖에서 빛이 들어오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어두운 조명만이 비추고 있는 이곳.

중앙에 반달 모양의 검붉은 색 소파와 원형 테이블이, 좌우로는 다트 기구와 포커 테이블 등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나인 회원들이 디아고를 맞이했다. 다가온 갈리와 비르타가 고개 숙여 깍듯이 대우했다.

“황자님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디아고는 나를 그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여기는 메이 플로티나 공자. 인사해.”

갈리와 비르타는 고개를 들며 나를 쳐다보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달갑지 않은 듯했다.

“갈리 막심이라고 합니다.”

“비르타 베루스입니다.”

디아고한테는 깍듯이 대했으면서 나한테는 고개만 까딱이는 둥 놀라울 정도로 건성건성 인사했다.

“처음 만나는군, 막심 영식, 베루스 영식.”

“…….”

“…….”

내가 인사를 건네니, 갈리는 갑자기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서 확인하고, 베루스는 무스로 떡진 머리를 새끼손가락으로 정리하는 둥 예의 없게 굴었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별로다, 이거지?

나도 그들에게 잘 대해 줄 필요가 없어 보였다.

디아고는 그다음으로 클로빈과 제드를 소개했다.

“이쪽은 클로빈 펜소와 제드 블로체.”

클로빈은 대놓고 나를 노려보며 악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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