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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49)화 (49/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49화

링은 반쯤 갈라져 있었다. 아직까지는 링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반쯤은 갈라진 상태였다.

탁―!

나는 힘껏 튀어 올라 검으로 링을 세게 내리쳐 깨부쉈다. 몇 초 후 크게 폭발이 일어났지만 이미 나는 멀리 떨어져서 대피한 후였다.

“우우으읅-!”

링이 부서지니 피그링은 좌우로 비틀거렸다. 이내 고막이 찢어질 듯 큰 신음을 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쿠웅―! 피그링이 어찌나 무거운지 땅에 떨어짐과 동시에 주변은 순간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기도 했다.

“하아- 하아-”

심박수가 미친 듯이 올라가며 숨이 차올랐다. 폭발할 것을 예상하고 뛰어들어서 긴장된 탓이었다.

“메이, 괜찮아?!”

아이리스는 나를 붙잡고선 다친 곳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폭발 텀을 이용해서 바로 대피해서 다친 곳은 없었다.

뒤따라온 카시우스는 나를 야단쳤다.

“링에 왜 다시 뛰어든 거야! 다치면 어쩔 뻔했어?!”

카시우스가 내게 야단치는 건 처음이라 조금 놀랐다. 물론 야단칠 만했다. 마력도 없는 애가 폭발 마법이 걸려 있는 링에 달려들었으니 얼마나 마음 졸였겠는가.

평소 같았으면 사과하며 반성했을 것을, 오늘만큼은 그런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 정도는 해야 수호 기사가 되죠…….”

그래야 플로티나를 떠날 수 있잖아요.

저, 정말 간절하거든요. 얼른 집을 떠나고 싶어서.

내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자 카시우스는 더 이상 나를 꾸짖지 않았다. 되레 미안해했다.

“화내서 미안해, 메이. 다칠까 봐 놀라서 그랬어.”

나도 그에게 사과했다.

“아녜요, 무모하게 뛰어든 제 잘못이에요. 죄송해요…….”

그때였다. 테라스에서, 혹은 창밖으로 내가 피그링을 쓰러트리는 걸 지켜보고 있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폭발 마법이 걸려 있는 피그링을 쓰러트리다니, 대단한데?”

“저런 용기는 어디서 나온 거지?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잖아.”

“그러게, 어린 나이에 대단해.”

모두가 박수를 치는 듯했으나 나인 회원들은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비르타와 갈리는 내가 박수받는 이 상황이 싫은 듯 인상도 잔뜩 구긴 채였다.

“계집애처럼 생긴 사생아 주제에…….”

“분명 몰래 가문의 힘을 썼을 거다. 마력 없이 폭발 마법을 상대했을 리가 없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박수갈채는 이어졌다.

플로아가 내게 물었다.

“어째서 다시 뛰어든 겁니까?”

“폭발에 텀이 있는 걸 확인해서 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다시는 그런 위험한 짓 하지 마세요. 메이 님은 다쳐선 안 됩니다.”

“안 다칠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플로아는 해맑게 대답하는 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못 말리십니다, 정말.”

***

피그링을 쓰러뜨린 메이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비르타는 그런 메이를 보면서 투덜댔다.

“기사단으로 선출되는 수는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미성년자도 선출하겠다고 하면 우리한테 불리한 거 아냐?”

나인 회원은 전부 성년으로, 전부 열여덟 살에서 스무 살 언저리는 되었다.

“그렇다. 매우 불리해지는 거다.”

갈리가 대답하자 비르타가 이맛살을 구겼다.

“보아하니 메이 플로티나 공자를 선출하려고 미성년자를 뽑겠다고 한 것 같은데, 이왕 미성년자를 뽑겠다고 한 거, 플로티나 공자 말고도 다른 미성년자를 살펴볼 수도 있어. 그러면 우리는…….”

“경쟁률이 올라가서 기사단에 못 들어갈 확률이 커지지.”

다시 갈리가 대답했다. 서로 자기가 더 잘났다며 으스대고 서로를 싫어해도 죽이 잘 맞는 콤비였다.

“이런 망할!!”

비르타는 분을 참지 못하고 애꿎은 바닥을 발로 쿵쿵 굴렀다. 그들 옆에 있던 클로빈은 짜증이 난다는 듯이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도대체 메이 플로티나를 얼마나 좋아하면 전례도 없던 미성년자를 기사단에 들이려고 하는 건지.”

그들에게 있어서 메이 플로티나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수호 기사는 수년에 한 번 소수 선출한다. 메이는 이미 그중 한 자리를 차지한 셈이고.

메이를 선출하기 위해 선출 범위를 늘려 경쟁률을 올려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디아고에게만큼은 별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그는 황실 사람인지라 곧 수호 기사가 될 예정이니까.

디아고의 녹색 눈동자가 메이를 향했다.

저 소년은 폭발이 일어난 걸 두 눈으로 목격했음에도, 크게 다칠 뻔했음에도 다시 뛰어들어 피그링을 쓰러트리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고는 자신을 걱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이 정도는 해야 수호 기사가 되죠.’

디아고는 옅게 웃음을 흘렸다.

“재밌군.”

호기심이 생겼다. 저 아이를 밟으면 어떤 모양으로 찌부러질까, 하는 호기심.

어쩐지 쉽게 밟히지 않을 것 같아서 흥미는 더 커졌다.

디아고는 샴페인잔을 웨이터에게 넘기곤 홀로 걸음을 옮겼다.

“황자님?”

“어디 가십니까, 황자님.”

자신을 부르는 비르타와 갈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메이 플로티나에게만 집중했다.

***

“……어?”

어느새 적갈색 머리의 사내가 내 앞에 당도했다. 그는 남주인공만큼이나 눈에 띄는 미모의 사내였다.

그리고 묘하게 사람을 모멸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그와 눈을 마주하다가 그의 눈빛이 맑지 않아서, 눈을 피해 시선을 살짝 내리니 한쪽으로 비스듬히 올라간 입매가 보였다.

그것마저도 사람을 업신여기고 얕잡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형태가 불쾌하고 두려웠다. 인사를 하거나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 자리를 피하려는 때.

“처음 만나는군, 공자.”

그가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도 모르게 몸이 경직되어 버렸다.

이 사내는 누구일까. 내게 무던한 어조로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사람엔 누가 있을까.

추리할 필요 없이 뇌리를 스치는 한 사람.

“난 디아고 스타시아다.”

망나니로 소문난 2황자. 클럽 나인의 회장. 인성을 잘 알고 있기에 엮이고 싶지 않았던 인물.

“손.”

오랜만에 느껴지는 위압감이었다. 그는 스스럼없이 내게 명령했다.

“잡아야지.”

몸이 굳은 내가 손을 잡지 못하고 쳐다만 보고 있자, 그가 거만하게 눈썹을 치켜올렸다.

“안 잡으면 내가 민망해지잖아.”

아이리스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면 2황자와 대화를 나누게 될 수도 있다는 건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하나, 막상 마주 서게 되니 그의 기에 눌려 몸이 굳어져 버렸다.

나는 굳어진 몸을 억지로 움직여 건넨 손을 잡았다. 그와 딱히 악수하고 싶지 않았음에도 나보다 신분이 높은 황자 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서 거절할 수 없었다.

“황자님을 뵙습니다. 메이 플로티나라고 합니다.”

“공자, 그대가 지금 몇 살이지?”

“열다섯입니다.”

“열다섯이라……. 성년이 되기까지 3년 정도 남았겠군.”

내가 남자인 줄 아는 사람은 3년 정도 남았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스타시아 제국에서 남자는 열여덟 살 생일부터, 여자는 열여섯 살 생일부터 성년이 되니까.

나는 여자이므로 성년까지 실상 3개월도 안 남았지만 남장 중이므로 약 3년 남았다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가문의 힘은 근 3년 내로 발현되겠네. 지금은 가문의 힘이 없어서 수호 기사에 목을 매는 것일 테고.”

“…….”

“아니면, 3년 내에도 가문의 힘은 발현되지 않는 건가?”

그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나는 능청스럽게 모르는 체했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군요. 제게 가문의 힘이 생기는 것과는 별개로 수호 기사가 되는 건 제 오랜 꿈입니다.”

그러자 디아고는 대놓고 비웃었다.

“그래? 전부터 플로티나가의 혈육들은 다섯 살 내외로 가문의 힘이 발현됐다고 들었는데, 공자는 아직까지도 발현되지 않아서 수호 기사를 꿈꾸게 된 건 아니고?”

초면에 무례하기 짝이 없었으나 나는 미소를 보이며 능청스럽게 굴었다.

“아뇨. 동료 기사들과 함께 마물 사냥을 하는 것이 제 꿈이었습니다. 가문의 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적당히 불쾌함을 드러내며 가문의 힘과는 상관없다는 걸 강조했다. 그러자 디아고도 비웃는 걸 멈췄다.

“그래, 그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나저나 피그링을 쓰러트릴 줄은 몰랐어. 덕분에 공자에게 관심이 생겼는데 이번 주말에 나인에 놀러 오지 않겠나? 나와 담소라도 나누도록 해.”

그의 당당한 권유가 어이없어서 순간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나인에 놀러 오라고? 담소를 나누자고?

내가 미쳤니? 거기서 무슨 봉변을 당할 줄 알고 가.

썩어 가는 속마음과는 다르게 정중하게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황자님. 저는 나인에 가입할 생각이 없습니다.”

빠른 거절에 디아고는 잠깐 정색했다가 호탕하게 웃었다.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의 표정 변화를 똑똑히 봤다.

“하하- 가입이라니, 공자. 너무 앞서나가는군. 난 그저 공자와 친해지고 싶었을 뿐이야. 가입을 강제로 권하진 않아.”

“정식으로 기사단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몸을 단련시키는 것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인에 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한 번 더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 정도의 완곡한 거절이면 다시 권유하기 힘들겠지?

싶었으나. 디아고는 막무가내였다.

“어차피 기사단에 들어가면 나와 만나게 되지 않나?”

“네?”

“난 황자라 기사단에 들어가는 건 확정이기 때문에 네가 수호 기사가 되면 나를 만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그렇습니다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와 잘 지내는 게 그대한테도 이로울 텐데? 난 거절에 크게 상처받는 타입인지라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 두거든.”

기가 막히는 소리다. 나더러 페르시스의 친자식이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던 그가 어딜 봐서 상처를 잘 받는 타입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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