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47화
메이는 파티장을 가득 채운 하객들을 요리조리 둘러보며 침을 삼켰다.
정신계 마법은 잘 유지되고 있는 거겠지?
사람 많은 곳에 온 건 처음이라 긴장한 메이는 손에 쥔 꽃다발만 보다가 플로아한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플로아, 정신계 마법이 잘 유지되고 있는 거 맞죠?”
아무도 성별을 의심하지 않게끔 걸어 둔 마법이 잘 유지되고 있냐는 소리였다.
“그럼요,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휴, 다행이네요.”
메이는 플로아와 함께 파티장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아이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리스는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사람을 비집고 빠르게 걸어왔다.
“아가!”
환한 목소리로 반기는 아이리스. 메이는 그 부름에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달려가 안겼다.
“아이리스 님!”
아이리스에게 안긴 메이의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지 입을 떡 벌렸다.
“세, 세상에……!”
“아이리스 님이……!”
아이리스가 사람을 안다니!
두 눈으로 직접 봐도 믿기 힘들다는 듯 웅성거렸다. 헤스티아면 모를까, 스킨십을 일절 하지 않는 아이리스가 누군가를 안는 일은 다들 생전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뭐, 뭐야……?”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놀라다 못해 충격까지 받은 건 나인 회원들이었다.
비르타는 아이리스에게 안긴 소년을 죽이기라도 할 듯 노려보았다.
“감히 아이리스님께 안기다니……!”
갈리 또한 주먹을 꽉 쥐며 질투와 분노를 표출했다.
“저런 파렴치한……!”
반면 클로빈은 아니꼬운 표정으로 일소했다.
“저 백금발 남자애가 메이 플로티나라고? 친분이 두텁다는 게 저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디아고는 아무런 반응 없이 소년을 유심히 지켜보기만 했다.
메이는 주목받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 평소에도 아름다운 아이리스가 오늘은 더욱 아름다워 그녀에게만 관심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입은 화이트 앤 실버 머메이드라인 드레스가 그녀를 빛나게 해 주었다.
“아이리스 님, 오늘 너무 아름다우셔요. 생신 축하드려요!”
“와 줘서 고마워. 플로아한테 들었겠지만 직접 초대하지 못해서 아쉽네. 이 지역이 네가 오기 위험한 지역이라서 고민이 많았거든.”
“플로아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아, 그리고 이건 선물이에요.”
메이는 그녀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아이리스 님께서 꽃을 좋아하셔서 꽃다발을 준비해 봤어요. 장미랑 안개꽃 둘 중에 고민하다가 장미는 작년에 드렸으니까 올해는 안개꽃으로 골랐어요.”
아이리스는 그 어떤 선물을 받을 때보다 더욱 환한 얼굴로 꽃다발을 건네받았다. 정확히 갈리에게서 드레스 100벌을 받았을 때보다, 비르타에게서 7개의 다이아몬드를 받았을 때보다 환한 얼굴이었다.
“어머, 뭘 이런 걸 다 준비했어. 고마워, 메이.”
아이리스는 메이의 볼에 가볍게 뽀뽀해 주었다. 뽀뽀를 받은 메이가 히히 웃으니 아이리스 또한 미소를 보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주위 사람들은 다시금 충격에 휩싸였다.
“아, 아이리스 님이 뽀뽀를……?”
“우, 우리 단장이 남자애한테 뽀뽀를 하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스킨십을 싫어하는 차가운 그녀가, 마물 사냥을 할 땐 망설임 없이 모가지부터 따는 무서운 그녀가 웬 남자애에게 뽀뽀를 했으니 말이다.
어떤 수호 기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검을 꺼내 들기까지 했다.
“저, 저자는 우리의 아름다우신 단장이 아니다! 단장의 모습으로 변신한 마물이다-!”
그만큼 뽀뽀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 기사의 귀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검을 도로 집어넣게 되었다.
“아아아-!”
그의 귀를 잡아당기는 건, 카시우스의 육신에서 흘러나온 금빛 기운이었다.
“단장이 아니긴 뭐가 아니야. 수호 기사씩이나 되어 놓고선 마물이랑 단장도 구별 못 해?”
“다, 당연히 구별합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농담한 겁니다, 아야야……!”
“하긴. 메이가 충격적으로 귀엽긴 하지.”
카시우스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놔줬다. 기사는 붉어진 귀를 두 손으로 매만지며 울상을 지었다.
“마물은 저 남자애인가……. 카시우스 님이 귀엽다고 말씀하시다니…….”
아이리스가 마물의 모가지를 따는 인물이라면 카시우스는 마물 몸통에 커다란 구멍을 내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입에서 귀엽다는 소리가 나오니 의심할 만했다.
“메이!”
카시우스는 큰 목소리로 메이를 불렀다. 메이의 시야에 들어온 그는 한껏 차려입은 상태였다.
‘파티여서 그런지 멋있게 입으셨네.’
“카시우스 님!”
카시우스가 양팔을 벌리자, 메이는 그에게 안기려다가 플로아에 의해 저지당했다. 플로아가 붉은 기운으로 메이를 그의 옆에 찰싹 붙여 놓았다.
카시우스는 허탈하게 미소했다.
“하여간, 과보호는. 나만 못 안게 하니 서운하네.”
“넌 남자잖아.”
플로아의 대답에 메이는 그의 손등을 꼬집었다.
“플로아……!”
그렇게 말하면 제가 여자인 것 같잖아요! 들키면 어떡해요!
“정신계 마법이 걸려 있으니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 줘요.”
누구는 여자인 걸 들키지 않으려고 항상 짧은 머리를 유지하고, 가슴 압박 붕대까지 하고 있는데 말야.
실제로 정신계 마법은 다른 마법과는 달리 온전히 유지하기 힘든 마법이라서 마법이 풀릴 것을 상시 대비해야 했다.
게다가 플로아는 고작 귀찮다는 이유로 정신계 마법을 푼 전적이 있어서 더욱 조심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그의 대답이 시원찮았으나 메이는 믿어 주기로 했다.
“초대한 사람들 거의 다 온 것 같아. 이제 발표하자.”
카시우스의 말을 들은 아이리스가 메이에게 눈웃음을 보였다.
“메이, 갔다 올게. 꽃다발 줘서 고마워.”
역시 중대 발표가 있구나!
“네, 다녀오세요.”
메이는 연회장 중앙, 원 모양의 무대에 오르는 아이리스와 카시우스를 바라보았다. 무대 위에 오른 그들은 그야말로 수호신 그 자체였다.
그들은 나란히 놓인 마이크 두 개 앞에서 섰다. 어느새 모두가 중앙 무대에 주목했고, 아이리스가 먼저 입을 뗐다.
“다들 알겠지만 나는 파티를 자주 열지 않는다. 늘 공식적으로 발표할 일이 있을 때만 주최했었지. 오늘도 마찬가지고. 이 자리를 빌려 두 가지 발표를 하려고 한다.”
아이리스가 검지와 중지를 펼쳐 보이며 두 가지라는 걸 강조했다. 이번엔 카시우스가 말을 받았다.
“하나는 다들 예상했겠지만 올해가 지나기 전, 수호 기사를 선출할 계획이다.”
수호 기사 선출은 이미 사교계에 돌던 소문이었으므로 하객들은 역시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객 모두가 카시우스를 올려다보며 귀를 기울였다. 카시우스는 피식 웃으며 아이리스에게 신호를 주었고, 아이리스가 그를 대신해 말을 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번 선출에 한해서, 미성년자도 선출할 계획이다.”
***
연회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미성년자라고?”
“아니, 어린애도 뽑겠다는 거야?”
“건장한 성인을 놔두고 어린애를 왜?”
카시우스와 아이리스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미성년자라고는 해도 성년 못지않게 힘쓸 수 있는 아이만 뽑을 것이다. 성년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재를 놓치는 일이 없게끔 하기 위함이고.”
“일단은 올해에 한하여 시행하는 것이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판단되면 다음 기사 선출에서도 미성년자를 선발할 가능성이 크다.”
중대 발표를 들은 사람들이 수군거릴 동안, 나는 심장의 뜀박질을 느꼈다.
미성년자를 뽑겠다니.
제드 블로체와 만났을 때 경험했던 콩닥거림과는 다르다. 이것은 기대감이었다.
미성년자를 뽑는다면 나도 올해 수호 기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쁨이 차올랐으나 그런 기대감을 갖기엔 아직 이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분명 아이리스 님은 내게 성인이 되면 기사단에 들이겠다고 했었으니까.
어쩌면 이번 선출 대상이 아니라 다음 선출일 수도 있다.
‘그래도 올해였으면 좋겠다…….’
한시라도 빨리 수호 기사단에 들어가고 싶다. 지난 5년을 수호 기사가 되겠다는 그 마음 하나로 버텨 왔다.
‘제발…….’
내가 간절히 기도하는 사이, 테라스 쪽에 있던 한 기사가 창밖에서 무언갈 발견했는지 식겁하며 중앙 무대로 달려왔다.
“아이리스 님, 밖에 거대 피그링이 있습니다!”
“피그링이 있다고?”
“갑자기 웬 피그링?”
하객들은 피그링을 보려고 테라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피그링?
수업 시간에 마물에 대해서 공부했기에 나도 피그링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피그링은 마물 종류 중 하나로, 생김새가 돼지 같고 꼬리가 있어야 할 곳에 링이 있어서 피그링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D급 마물이다.
살코기가 일반 돼지보다 연하고 부드러워서 인기가 많다. 상단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마물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피그링 서식지는 여기가 아닐 텐데?
아이리스는 바로 무대에서 내려와 테라스로 나갔다.
모두가 밖에 관심이 쏠렸을 때. 나는 어째서인지 파티장 입구를 봐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튼 순간,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발견할 수 있는, 미모가 눈에 띄는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 제드 블로체도 왔구나.
그 앞에서는 웬 남자가 굽신거리며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외향을 보아하니 원작에서도 굽신거리는 인간으로 등장했던 비르타 같았다.
“공자님, 오셨습니까.”
“아이리스 님은?”
“피그링이 나타났나 봅니다. 피그링을 보러 테라스에 가셨습니다.”
“피그링?”
되묻는 그는 눈으로 아이리스를 찾다가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네. 테라스에서 누가 목격한…… 블로체 공자님? 어딜 보시는…….”
“…….”
원작 남주인공, 제드 블로체.
그는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피하지 않았다. 얼결에 내가 먼저 피했다.
곧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법인가.”
뜬금없는 소리에 그의 앞에 서 있던 남자, 비르타가 어리둥절해했다.
“마법이요? 뭐가 말입니까?”
그는 비르타에게 대답해 주지 않고 디아고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비르타는 멋쩍게 무스에 엉겨 붙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