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46화
정말로 이성적이었으면 여자애를 입양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자애는 가문에 아무런 쓸모도 없으니까. 심지어 대부분 다섯 살 내외로 발현됐던 가문의 힘이 당시 열 살이었던 그 아이에겐 없지 않았었나.
애초에 여자애를 남장시켜서 키운다는 것부터 이성적인 결단이 될 수 없었다.
그 아이의 밝은 기운이 좋아서, 따뜻함이 느껴져서, 귀여워서, 비체를 닮아서. 그런 이유로 그 아이에게 강하게 끌려 키우고자 한 것이었다.
다만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틀에 갇혀 무모하게 아들로 키웠을 뿐.
그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이성적인 적이 없었다.
이를 깨달았음에도 그는 깨닫지 못한 게 남아 있었다.
어찌하여 어긋난 기분이 드는가.
이에 대한 답은 사실 간단했다. 자식과의 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아서.
밤잠 줄여 사냥하는 이 바쁜 시기에도 굳이 시간을 내어 메이를 만나는 건 관계회복을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없었다. 애당초 바쁘면 일을 줄이면 그만이었으니까.
페르시스는 메이와의 관계에 있어서 겨우 한 발짝 내디딘 것으로 자신의 도리를 다한 줄로만 아는 거였다.
멀어져 버린 메이와 가까워지려면 열 발짝은 족히 가야 한다는 걸 몰라서 자신과 메이가 평범한 부녀의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딸을 향해 겨우 한 발짝 내딛고는, 딸이 아홉 걸음 돌아와, 제 뜻대로 해 주길 바라는 것이었다.
***
페르시스를 만나고 돌아가는 복도에서 플로아를 만났다. 엘렌은 일이 생겨서 다른 곳에 간 후였다.
“플로아, 왜 여기 있어요?”
복도에서 플로아를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애초에 플로아는 저택 안으로 잘 들어오지 않았다.
“메이 님을 만나고자 왔습니다. 오늘 아이리스의 생일 거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죠. 지지난번 주에 놀러 오셨을 때 미리 축하드리긴 했어도 생일 당일에 못 해서 아쉬워요.”
그러자 플로아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같이 가시겠습니까?”
“어딜요?”
“아이리스의 생일파티에.”
“생일파티요?”
“네, 생일파티.”
아이리스가 생일파티를 주최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녀가 파티를 여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런 그녀가 파티를 열었다는 건…….
“뭔가 중대한 발표라도 하시려나 보네요.”
제국 3대 수호신의 생일파티엔 언제나 많은 이들이 참석했다. 사람들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장소는 중대 발표를 하기 좋은 장소다.
내 말에 플로아가 나긋하게 미소를 지었다.
“예리하시군요.”
“그런데 제가 파티에 가도 되는 거예요? 전 따로 초대 못 받아서요…….”
“아이리스가 초대하지 않은 이유는 생일파티 장소가 마물이 출현하는 곳이라서 그렇습니다.”
“거기가 어딘데요?”
“아이리스의 성이요.”
“아…….”
스타시아 제국은 마물이 출현하는 장소와 출현하지 않는 장소가 구분되어 있다.
내가 있는 플로티나 공작가, 나제트 후작가, 제드 블로체와 만났던 패션거리 등등 일반인이 갈 수 있는 곳은 마물이 출현하지 않는 지역으로, 스타시아 제국 면적의 80% 가까이 차지한다.
마물이 출현하는 곳은 수호 기사단이나 마법사, 페르시스처럼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만 출입 가능한 지역이다.
마물 출현 지역에는 제국 3대 수호신의 성이 하나씩 있었다.
“게다가 메이 님이 아직 사교계 데뷔 전이라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초대하기 망설여졌을 테고요.”
“그러면 더더욱 가면 안 되는 거 아녜요?”
“가도 괜찮습니다. 제가 있으니 마물 걱정은 할 필요 없고, 사교계 데뷔 전이라고 파티에 참석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흐음, 가도 괜찮을까……. 아이리스 님의 생신 파티면 엮이기 싫은 나인 회원들도 참석할 텐데.
내가 고민하자 플로아는 결정타를 날렸다.
“아이리스의 부탁을 받은 겁니다. 메이 님이 괜찮다 하면 데려와 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정말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고심하다가 결국 초대 못 했다고 하면서요.”
내가 갈 만한 상황이 아니라 초대하고 싶어도 선뜻 초대하지 못한 거구나.
“좋아요, 갈래요.”
나인과 만나는 건 싫지만 그들 때문에 아이리스 님을 안 만날 순 없지!
“그럼 오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네.”
나는 들뜬 상태로 나갈 채비를 하러 갔다.
***
그날 저녁. 아이리스의 성, 1층 연회장에서 그녀의 생일파티가 이뤄졌다.
흰 대리석이 깔린 연회장은 샹들리에에 달린 크리스탈로 반짝거리며 호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파티 손님은 대부분 수호 기사였다. 아이리스가 이끄는 제1기사단이 주를 이뤘고 카시우스가 이끄는 제2기사단도 다수 보였다.
그러나 헤스티아가 이끄는 제3기사단 측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수호 기사가 아니어도 파티에 참석할 수 있었기에, 메이의 예상대로 나인 회원들도 파티장에 있었다.
나인 회원들은 아이리스에게 뇌물 바치듯 선물을 건넸다.
“아름다우신 아이리스 님께 어울리실 만한 드레스 100벌을 제작해 봤습니다. 저희 가문이 드레스에 굉장히 조예가 깊어 마음에 드실 겁니다.”
“저는 7가지 색상의 희귀한 다이아몬드를 준비해 봤습니다. 색이 있는 다이아몬드는 희귀한 만큼 가치가 높죠. 아이리스 님께 잘 어울리는 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레스를 선물한 쪽은 갈리 막심. 그의 말마따나 드레스에 조예 깊은 막심 남작가에서 준비한 드레스는 화려하니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남작가의 둘째 아들인 그는 뼈대가 두드러지는 공룡상 얼굴에, 안경을 써서 고지식해 보였다.
다이아몬드를 선물한 쪽은 비르타 베루스. 베루스 남작가의 첫째이며 작은 키와 비열해 보이는 이목구비가 특징인 외형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무스를 과하게 발랐는데, 그래서 늘 머리는 떡이 되어 있었다.
이 두 명은 나인 회원들 중 가장 속물이었다.
굳이 선물해 주지 않아도 이미 다 가진 아이리스는 선물에 딱히 흥미가 없었으나 그래도 고맙게 받았다.
“고마워, 잘 쓸게.”
이를 들은 둘은 마치 자신들의 선출이 보장된 것마냥 기뻐했다.
자신이 준 선물을 수호신이 고맙게 받았으니 수호 기사 선출 때 자신들에게 가산점이 붙을 거라고 착각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선물 따위로 가산점을 더하는 속된 인물이 아니었다.
이를 모르는 어리석은 갈리와 비르타는 잘도 자신했다.
“이번엔 날 선출하실 게 분명하다. 드레스를 선물했으니 입을 때마다 내가 생각이 나겠지. 구석에 처박아 두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잊힐 보석과는 다르게.”
갈리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하자 비르타가 코웃음을 치며 올려다봤다.
“드레스도 구석에 처박아 두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잊히거든? 드레스보단 희귀한 보석이 더 의미 있지. 너보단 날 더 선출하고 싶으실 거야.”
참으로 대단한 착각들이었다.
이들은 아이리스에게 선물 전달 후, 황자에게 돌아갔다.
적갈색 머리칼에 녹안을 가진 사내. 한량처럼 건방진 자세. 그러나 황실가의 고고함이 보이는 2황자, 디아고 스타시아에게로.
망나니로 소문난 그는 조용히 무알코올 샴페인을 들이켰다. 다가온 갈리가 굽신거리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파티에서, 올해 기사 선출을 하겠다는 발표를 할 것 같습니다.”
“그것뿐?”
디아고는 그 외에 무언가 더 있을 거라 생각하는지 고개를 삐딱하게 틀었다.
“그게 아니면 플로티나가의 사생아와 관련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사생아?”
“네, 메이 플로티나라는 이름으로 공작에게 아들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메이 플로티나. 그 이름에 디아고의 녹안에 이채가 서렸다가 사라졌다.
“그 애가 제국 수호신과 무슨 관련이 있지?”
“최근에 정보상에게서 어렵게 구한 정보에 의하면, 메이 플로티나가 아이리스 님과 카시우스 님과 친분이 두텁다고 합니다.”
갈리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비르타가 까무러칠 듯 놀랬다.
“뭐어-?! 친분이 두텁다고?! 어떻게? 나인 회원들도 친분을 못 쌓았는데!”
갈리는 귀한 정보를 겨우 너 따위한테 알려 주기 싫었다는 표정으로 보란 듯이 중지로 안경을 고쳐 올렸다.
한편 비르타의 큰 목소리에, 근처에 있던 나인 회원 한 명이 다가왔다.
“무슨 일 났어?”
그는 클로빈 펜소로, 펜소 백작가의 장남이었다. 그에게는 여동생이 한 명이 있었는데 펜소가의 남매는 인성이 나쁘기로 유명했다.
클로빈보다 신분이 낮은 갈리와 비르타는 그에게 깍듯이 존대했다.
“메이 플로티나가 아이리스 님과 카시우스 님과 친분이 두텁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메이 플로티나? 플로티나가 사람이 수호신들과 친분이 왜 있어?”
플로티나가는 가문의 수호신이 따로 있기에 제국 수호신들과는 친분을 쌓을 이유가 없었다.
비르타는 그 정보에 대번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어이없지 않습니까? 플로티나가의 혈육이면 가문의 힘을 쓸 텐데 왜 굳이 기사단 쪽도 넘보는 건지.”
비르타는 메이가 제국 수호신들과 친분을 쌓는 이유가 오직 수호 기사단에 들어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디아고는 아무 말 없이 샴페인을 들이키다가 연회장 입구에서 누군가를 발견했다.
처음 보는 백금발의 소년. 나이가 어려 보이는 게, 수호 기사인 것 같진 않았다.
수호 기사도, 나인 소속도 아닌 자가 당당하게 들어왔다는 점에서 디아고는 눈치챘다.
“저자가 메이 플로티나인가?”
디아고의 말에 갈리와 비르타의 시선이 닿고, 클로빈의 시선이 닿는 곳엔.
“와, 파티장 엄청 크네요.”
꽃다발을 들고 플로아와 함께 입장한 메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