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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43)화 (43/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43화

스텔라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는 듯 보였다.

곧 그녀의 입술이 떨어졌다.

“제 어머니시라고요? 제겐 어머니가 없는데요?”

“스텔라…….”

스텔라가 친모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당연했다. 친모의 만행을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여자는 청승맞게 손을 뻗어 스텔라의 손을 잡았다.

“스텔라, 엄마가 늦게 찾아와서 미안해. 찾아가고 싶어도 나제트에서 막는 바람에 얼굴도 비출 수가 없었어.”

그녀의 말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설령 진실이라 하더라도 나제트에서 그녀를 막는 이유가 뭐겠는가.

만나게 해서 좋을 게 없으니 막는 거겠지.

스텔라는 차갑게 손을 쳐 냈다.

“무슨 염치로 찾아오신 거예요? 돈이라도 떨어졌어요?”

“스텔라…….”

스텔라는 동정을 사려는 친모의 모습에 눈살을 구겼다.

그럴 만했다. 원작에서도 스텔라의 친모는 끝까지 딸을 호적에 넣지도 않고 방치하며 양육비로 사치품을 사기 바빴으니까.

제 딸이 경계하니 친모는 급기야 무릎까지 꿇었다.

“딸, 미안해. 어미가 다 잘못했어.”

친모의 돌발 행동에 나는 조금 놀란 반면, 스텔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뇨. 미안해하실 거 없어요. 애초에 찾아오길 바라지도 않았거든요.”

“너무 늦게 찾아와서 어미 얼굴 보기도 싫은 거 이해한다만…… 그래도 네가 너그럽게 용서해 주렴. 어미는 널 만나려고 노력했어.”

“왜 만나려고 했는데요? 없던 모성애가 갑자기 막 생기기라도 하던가요?”

“스텔라, 엄마가 잘못했어…….”

스텔라와 친모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다 보니, 나도 어처구니없어졌다.

남편과 이혼 후, 자신이 애를 키우는 조건으로 달마다 꼬박꼬박 양육비를 받았으면서 정작 그 돈을 양육에 쓰지 않고 사치품을 샀던 인간이다.

그뿐인가? 나중에 확인해 보니 애를 호적에 올려놓지도 않았다. 언제든 버릴 계획이 있었던 건지.

실제로, 보다 못한 남편이 애를 데려가기까지 했다.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 잘못했다고 빌다니. 속이 훤하다.

“최근에 사업 실패로 파산 직전이라죠? 설마 설마 했는데, 가문이 망하자마자 찾아올 줄을 몰랐네요. 참, 빠르기도 하셔라.”

이맘때쯤 친모의 가문이 망한다는 건 스텔라도 나도 원작을 봐서 알고 있었다.

원작에선 페르시스가 가차 없이 죽이지…….

스텔라가 하인드를 택해서 친모가 페르시스의 손에 죽을 일은 없어졌겠지만. 하인드는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 해도 페르시스와 달리 사람을 죽이진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스텔라가 하인드를 택함으로써 친모를 살려 준 셈이기도 했다.

친모는 계속해서 뻔뻔하게 나왔다.

“그 전에도 찾아왔었어. 돈 때문에 찾아온 게 아니야, 응? 널 보고 싶어서 찾아온 거야.”

“전 보고 싶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보고 싶지 않을 예정이니 찾아오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스텔라…….”

친모의 부름에도 스텔라는 가볍게 무시하곤 내 손을 잡았다.

“가자.”

“어? 어.”

자리를 벗어나자 친모는 벌떡 일어나 스텔라를 붙잡았다.

“스텔라, 엄마가 미안해. 잘못했어.”

스텔라는 저를 붙잡은 친모를 가증스럽게 쳐다보며 뿌리쳤다.

“내 몸에 손대지 마세요. 당신 같은 사람이 함부로 만져도 될 몸이 아니에요.”

“…….”

스텔라는 다시 걸었다. 호위 기사 두 명이 그녀를 보호하는 바람에 친모는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얼마 안 가 뒤편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피도 눈물도 없는 년!”

그 목소리에 나도 스텔라도 자리에 우뚝 발길을 멈췄다.

“……뭐?”

지금 저자가 자신에게 뭐라 지껄이는 것인가. 스텔라는 딱 그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덩달아 나도 같이 뒤를 돌아보니, 온갖 불쌍한 척을 해 대던 여자는 온데간데없고 광기로 물든 여자만 보였다.

여자는 인상을 쓰고선 꽥꽥 소리쳤다.

“어미가 자존심 다 내려놓고 무릎까지 꿇는데 끝까지 무시해?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니?”

여자는 본심을 드러냈다.

“파산 직전인 거 알면서 어떻게 돈 한 푼을 안 줘!!!”

“……역시 돈이 목적이었군요.”

스텔라는 안면을 차갑게 굳혔다.

“제가 사람이냐고요? 그러면 당신은? 호적에 넣지도 않았던 자식한테 돈을 요구하러 찾아온 당신은요?”

하지만 여자는 스텔라의 말을 이미 귓등으로도 듣고 있지 않았다.

“이러다 내가 쓰러지면 어떡하려고 이러니? 너, 엄마한테 사랑받길 원하잖아. 나 죽으면 엄마 사랑은 평생 못 받아!”

나는 여자의 망언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 없어서 나섰다.

“지금 누구 앞에서 큰소리를 치시는 겁니까.”

차갑고 위엄 있는 음성에 여자는 화내다 말고 흠칫거렸다.

“너는 누군데…….”

“상황 파악이 잘 안 되시나 봅니다. 제가 누군 줄 알고 ‘너’라고 지칭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스텔라가 옳거니! 이때다 싶어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여자에게 보란 듯이 나를 소개해 줬다.

“이분은 플로티나 공작 각하의 하나뿐인 아드님이자 플로티나의 차기 가주가 될 후계자, 메이 플로티나 공자님이십니다.”

우린 제법 쿵짝이 잘 맞았다. 심지어는 텔레파시도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네가 날 거창하게 소개하니까 웃기네.’

‘딱히 거짓말한 것도 아니잖아?’

‘네 말이 맞아. 잘했어, 스텔라.’

우리는 여유 있게 여자의 감정 변화를 관찰했다.

여자의 감정은 2단계로 변화했다. 얼떨떨함. 그 후 질겁.

“프, 프, 플로, 플로티나 공자……?”

“네, 제가 메이 플로티나입니다.”

순식간에 여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플로티나는 이 스타시아 제국에서 황실을 제외한 최고의 가문이다.

이는 귀족이 아닌 평민들도 아는 사실. 감히 플로티나의 일원을 우습게 볼 자는 없었다.

여자는 제 앞의 소년이 플로티나 공작의 아들이라는 말에 질겁하다가도 현실을 부정했다.

“말도 안 돼. 스텔라 따위가 플로티나 공자와 친분이 있는…….”

말이 된다. 스텔라의 현 아버지, 하인드 나제트와 플로티나 공작이 오랜 친우이니 친분이 생길 법도 했다.

그걸 깨달은 여자의 몸이 돌처럼 굳어질 무렵, 내가 경고했다.

“나제트 영애께 다신 찾아오지 마십시오. 찾아와서 영애를 괴롭힌다면 저 또한 가만히 있진 않을 겁니다.”

스텔라는 보란 듯이 내게 팔짱을 꼈다.

“제가 공자님과 사랑하는 사이라서요. 어쩌면 결혼할지도 모르는데…… 플로티나가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고 싶다면 찾아오시든가요.”

여자는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 찼으나 티를 내진 않았다.

“가자, 메이.”

“어? 어…….”

우리가 자리를 벗어나도 여자는 따라오지 않았다. 오히려 하얗게 질린 낯을 하며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나는 여자가 가자마자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랑하는 사이는 심하지 않니? 심지어 결혼이라니……. 저 여자가 소문내면 뒷수습 어떻게 하려고 그래?”

스텔라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오히려 가뿐한 표정을 지었다.

“너, 아직 사교계 진출 안 해서 모르는구나? 이미 우리 보통 사이 아니라고 소문났어.”

“왜?”

“왜라니? 네가 우리 집에 들락거리는 횟수를 생각해 봐. 다른 사람들은 네가 남자인 줄 아는 마당에 당연히 보통 사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교제 중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던데?”

“하…….”

골치 아픈 소문이 퍼졌군.

내가 한숨을 내쉬자 스텔라는 뾰로통해졌다.

“야! 한숨을 왜 쉬냐? 나랑 엮인 거 영광인 줄 알아. 나랑 엮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처럼 예쁜 애 봤어?”

“아니……. 못 봤지…….”

“그럼 영광으로 생각해!”

“알겠어…….”

스텔라는 그제야 만족했는지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언제 심각한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웃는 스텔라가 보기 좋아서 지그시 바라보는 그때였다.

툭―

어떤 남자가 스텔라의 어깨를 치고 갔다.

“뭐야?”

스텔라가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봤고, 나 또한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대로 몸이 얼어 버렸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검푸른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짙은 보라색 눈동자.

콩닥콩닥. 지금 이 순간이 소설의 어느 한 장면이었다면 그런 단어를 써서 내 심정을 표현했겠지.

나는 더할 나위 없는 미형의 남자에게 시선이 사로잡혀 버렸다.

심장이 뛴다. 그 당연한 사실이 이토록 새롭게 느껴질 정도로.

누굴까. 누구길래 외형만으로도 사람의 심박수를 엉망으로 만드는 것일까.

그는 취했는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죄송합니다, 영애.”

그가 목소리를 내자 절로 귀가 간지럽고 어깨가 떨렸다. 그 목소리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아뇨, 괜찮아요.”

괜찮다는 스텔라의 말이 떨어지자 남자는 다시 가던 길을 갔다.

스텔라는 남자의 뒷모습을 주시하며 입술을 열었다.

“여기서 마주치다니.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아는 사람이야?”

“모르겠어?”

스텔라는 내게 대뜸 모르겠냐고 물었다.

모르겠냐니? 그가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일 리 없다. 이리도 심장을 뛰게 하는 사람을 잊을 리가 없으니까.

“본 적 없나? 그래도 딱 봐도 티가 나지 않아?”

“……모르겠는데?”

“원작 남주잖아.”

소설 《페르시스의 입양딸》 속 남주인공.

“제드 블로체.”

“제드 블로체……?”

그는 블로체 공작의 외아들로, 수호 기사가 된 후 스텔라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결혼할 인물이다.

남주인공답게 빼어난 미모에 오직 주인공만 바라보는 순정파 직진남, 둘도 없을 절륜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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