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36화
나는 입을 틀어막은 손을 내리곤 고개를 마구 끄덕거렸다. 100m 뒤에서 봐도 격한 긍정이었다.
“할래요! 수호 기사 할래요! 무조건 할래요! 성인 말고 지금 들어갈래요!”
흥분해서 하겠다는 답변만 네 번이나 했다. 그게 웃음 포인트였는지 내 앞옆의 두 남자가 피식 웃었다.
마주 보고 있는 아이리스는 이미 입가에 미소가 맺힌 상태였다.
하지만.
“수호 기사단엔 성인만 들어갈 수 있어. 열여섯 살이 되는 생일만 지나면 바로 기사단에 가입시켜 줄게.”
지금 내 나이는 고작 열 살. 안타깝게도 지금은 미성년자이기에 기사단에 들어갈 수 없었다.
6년이나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니. 착잡했지만 앙탈을 부린다고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깨만 추욱 늘어트려졌다.
그리고 나만큼은 아니어도 아쉬워하는 인물이 또 한 명 있었다. 바로 카시우스였다.
“한발 늦었네. 나도 우리 기사단에 들이려고 메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중이었거든.”
“네가 먼저 제의했어도 아가는 제1기사단에 오고 싶어 했을걸? 너보단 나를 더 좋아하니까.”
“나도 기차에서 샌드위치를 줬어야 했는데.”
“인생은 타이밍이야.”
그러자 카시우스가 어깨를 펴며 호기롭게 말했다.
“그래? 그럼 아직 시간이 6년이나 남았으니 제2기사단에 오도록 영업해야겠네.”
“뭐?”
아이리스가 기가 찬 얼굴로 카시우스를 노려보았으나 그는 모르쇠 하며 나를 향해 싱긋 웃었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올게.”
그러자 아이리스가 나를 끌어안았다.
“누구 마음대로? 우리 아가한테 접근할 생각 하지 마.”
“아직 네 기사단에 들어간 것도 아니잖아. 나한테도 기회가 있어.”
“너, 나랑 전쟁 일으키고 싶니?”
나는 아이리스의 품에 안겨 그들의 대화를 듣는 게 즐거웠다. 정말로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둥, 기사들을 바로 소집하겠다는 둥 꽤나 위험한 발언들이 오갔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겨우 나 하나 영입하겠다고 전쟁을 일으키진 않을 테니까.
얼마 후, 카시우스와 말다툼을 끝낸 아이리스가 나를 향해 나긋한 목소리를 내었다.
“얼른 크렴, 아가. 커서 제1기사단에 들어와야지.”
나는 싱긋거리며 대답했다.
“열심히 먹고 열심히 자서 얼른 쑥쑥 클게요!”
***
카시우스와 아이리스가 돌아간 후, 나는 내 방으로 달려갔다. 엘렌과 조안과 기쁨을 나눌 생각을 하니 들떠 있었다.
내 방엔 커튼대에서 커튼을 빼내고 있는 엘렌과 조안이 있었다. 커튼을 빨 때가 됐구나 싶었다.
“엘렌, 조안!”
“다녀오셨어요?”
“도련님 오셨어요? 앗!”
의자에 올라가 커튼을 빼내고 있던 조안이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떨어진 커튼대에 머리를 맞고 말았다.
조안은 표정을 찡그리고선 머리를 매만졌다.
“조안, 괜찮아?”
“괜찮아요. 머리가 단단해서 이 정도는 참을 만하답니다!”
“그래도 조심해. 조안이 아픈 거 싫어.”
조안은 실실 웃으며 커튼대를 올려놓곤 빼낸 커튼을 들고 의자에서 내려왔다.
“네네, 아프지 않을게요! 그런데 도련님, 기분이 좋아 보이셔요.”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엘렌 또한 커튼을 들고 의자에서 내려왔다. 나는 그들에게 큰 목소리로 자랑했다.
“아이리스 님께서 나를 영입하겠다고 약속하셨어!”
“아이리스 님이면…… 설마 수호신님이요?”
엘렌이 되묻자 나는 자리에서 콩콩 뛰며 대답했다.
“응응! 내가 성인이 되면 제1기사단에 영입하시겠대!”
“정말요?”
“응!”
나는 그들에게 기차에서 아이리스와 카시우스를 만난 것부터 시작하여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전부 들려주었다. 엘렌과 조안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윽고 그들은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와아- 도련님, 축하드려요! 제가 모시는 분이 수호 기사가 되실 분이라니…… 믿기지가 않아요!”
“존경스러워요!”
나는 그 격한 축하에 쑥스러워져 뒷목을 매만졌다.
“아직은 수호 기사가 아닌데, 뭐. 기사가 되려면 멀었는걸.”
“그래도요! 수호 기사가 되는 건 길을 가다가 벼락을 맞을 확률만큼 적다고요!”
“그건…… 그렇지.”
정확히 한 해에 몇 명 정도 벼락을 맞는진 모르겠지만…….
조안은 문득 누군가가 떠올라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참, 도련님, 지금 여기 계실 때가 아니에요!”
“응?”
“주인님께 알려 드려야죠!”
“당연히 아빠한테도 알려 줄 거야.”
예전 같았으면 칭찬에 인색한 그한테 굳이 알려 줄 필요가 있겠냐며 받아쳤겠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아직도 제가 싫어요?’
‘아니. 싫지 않아.’
엊그제 그는 내게 날 싫어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제 나를 싫어하지 않으니 마땅히 잘한 일이 있으면 칭찬해 주겠지.
어젯밤 넘어진 나를 두고 간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무려 제국 수호신에게 수호 기사단 가입 제의를 받은 거니까 주인님께서 아시면 크게 기뻐하실 거예요!”
수호 기사가 되는 건 흔치 않고 명예로운 일.
조안은 부모라면 자식이 수호 기사 제의를 받은 걸 응당 기뻐할 거라고 했다. 어쩌면 자랑하고 싶어서 동네에 현수막을 걸어놓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 또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빠가 기뻐할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 주인님께 가 보세요.”
“알겠어, 알겠어.”
보채지 않아도 페르시스를 만나러 갈 거였지만 조안에게 등을 떠밀려 얼결에 그의 집무실로 향하게 되었다.
그에게 칭찬받을 생각을 하니 들뜨기 시작했다.
기사 제의를 받은 걸 알면 분명 놀라겠지? 어쩌면 거짓말이 아니냐고 의심할지도 몰라! 수호 기사 선출 시기도 아닐뿐더러 난 아직 미성년자니까.
의심하면 당당하게 플로아를 부르는 거야! 플로아는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사실이 맞다고 알려 주겠지.
그러면 아빠가 깜짝 놀라려나? 아니면 잠시 정적을 유지하다가 그래, 하곤 돌려보내려나?
‘칭찬해 줬으면 좋겠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페르시스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다. 아이리스의 마음을 얻어낸 게 대단하다고.
자식을 칭찬하는 다정한 아빠의 모습으로.
그러나 페르시스에게 칭찬을 듣기는커녕 얼굴을 볼 수도 없었다.
그의 집무실 앞에서 보초를 서던 요한은 난처한 얼굴로 페르시스의 의사를 대신 전했다.
“어쩌죠, 도련님. 주인님께선 지금 바쁘셔서 만나 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딱 3분이면 되는데 그만큼도 못 내준대요?”
“업무를 보실 때 방해받는 걸 싫어하시는 분이라……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요한의 정수리를 보며 시무룩해했다.
“유디프 경 잘못이 아닌데 왜 사과를 해요. 뭐…… 바쁘다면 어쩔 수 없죠.”
그가 버는 돈으로 먹고사는 신세이니 그에게 맞춰 주는 수밖에.
“조금 이따가 다시 올게요.”
돌아가려는 찰나. 요한의 말이 나를 붙잡았다.
“그, 도련님……!”
“네?”
“지금 한창 수호 기사단에서 마물 사냥을 하는 시기라 플로티나와 거래 중인 상단에 마물 수급 건에 관해 한동안 계속 바쁘실 거예요. 그래서…….”
요한은 내가 속상해하는 게 눈에 보여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는 듯했다.
“한동안은 저랑 대화도 할 시간이 없다는 거죠?”
“……그럴 것 같습니다. 혹, 주인님께 전해 드릴 말씀이 있으면 제게 알려 주세요. 대신 전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급히 알려야 할 일도 아니고…… 직접 전해 주고 싶거든요. 그럼 가 볼게요.”
“죄송합니다, 도련님.”
그 후 나는 하루에 한 번씩 페르시스에게 찾아갔다. 그때마다 나는 요한의 정수리를 봐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어제도, 그제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렇게 말했던 거 알아요? 저는 이렇게 말했었죠.”
요한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서…… 오늘은 왜 못 만나는데요? 이쯤 되면 바빠서 못 만나는 게 아니라 일부러 나를 안 만나 주는 것 같은데…….”
매일 찾아왔지만 열흘이 되도록 그를 만나지 못했다. 바빠서 못 만난다기엔 열흘 동안 3분의 여유도 없었을까 싶어 점점 기분이 안 좋아졌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요한을 뒤로하고 나는 왔던 길을 돌아갔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정전됐던 날에 넘어진 나를 그냥 버려두고 갔던 것에 대해서도 묻지 못했다.
그가 내게 시간을 내주지 않아서.
바빠서 자식을 방치할 거면 왜 데려온 걸까. 자식은 매순간 부모한테 사랑받으며 길러져야 하는 존재인데…….
나는 걷다 말고 복도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췄다.
페르시스가 아빠 역할을 잘 해내길 기대했었다. 내가 싫지 않다기에, 나를 손수 재워 주기까지 하기에 앞으론 아빠 역할을 잘 해낼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전과 다를 게 없다. 내게 상냥하게 군 것은 그저 희망고문일 뿐이었다.
애초에 기대해선 안 됐었다.
페르시스는 딸을 사랑하지 않고, 쓸모없다고 생각하여 아들로 키우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란 걸 알지 않은가.
그리고 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지만 않는다면, 노예로 팔려 다니지만 않는다면 뭐든 좋을 것처럼 굴었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니 이젠 배불리 먹고 편안히 잘 수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이상을 바라는 거다. 그것도, 절대로 기대해선 안 되는 상대한테.
겨우 조금 잘 대해 준 것에 들떠서.
“바보…….”
그런 나 자신이 밉고 초라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