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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33)화 (33/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33화

……왜 쳐다보지? 용건 다 끝나서 이만 가 보고 싶은데.

한편, 페르시스는 자신에게 선물을 안 주는 제 자식이 의아했다.

‘뭘 뜸 들이는 거지?’

의아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왜 저렇게 뚫어져라 쳐다봐?’

혹시 자기한테 줄 선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싶었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아빠 건 없어요.”

내 말을 끝으로 대략 10초간 정적이 흘렀다. 그 10초간 요한이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정적을 깬 건 페르시스였다.

“……내 건 없다니?”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어째서인지 요한은 계속해서 불안해했지만 나로선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유디프 경에게 주려고 온 거예요.”

“…….”

페르시스의 낯이 서늘하게 굳은 것도 모른 채, 나는 요한에게 해맑은 미소를 보였다.

요한은 자신을 향한 그 미소가 좋으면서도 무서웠다.

“맛있게 드세요, 유디프 경.”

“네, 감사합니다, 도련님…….”

내가 정말로 요한에게만 선물을 주고 가 버리자 요한은 어느 싸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제 주인에게서 나오는 살기였다.

“어째서…….”

페르시스가 입을 떼자 요한이 조마조마해하며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삼켜 버릴 것처럼 매섭게 주시하고 있었다.

“메이가 왜 선물을 너한테만 주는 거지? 네가 나보다 뭘 잘한 게 있다고.”

“그게 저도 잘…….”

“나 몰래 메이에게 접근해서 점수라도 땄나?”

으르렁거리는 사자를 앞둔 나약한 토끼. 그게 지금 요한의 모습이었다.

“그, 그럴 리가요……! 주인님을 호위하기도 바쁜데 메이 님께 접근할 시간이 어딨겠습니까……! 물론 마주칠 때마다 상냥하게 웃어 드리긴 했지만…….”

“뭐? 상냥하게 웃어?”

페르시스는 당장이라도 마력을 발휘해 요한을 공격하기라도 할 것처럼 정색했다.

“감히 내 아들한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것뿐입니다.”

페르시스는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으나 이내 한쪽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

“……그래?”

그 사악한 입꼬리를 목격한 요한은 한동안 자신이 제 주인에게 시달리게 될 거라 직감했다.

***

이틀 뒤 낮. 수업 전에 시간이 남았던 나는 엘렌과 조안과 내 방에서 수다를 떨었다.

내 앞에 앉아 있던 엘렌이 조안을 보며 말했다.

“조안이 왜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자주 하는지 아시나요?”

“이유가 있었어?”

“부끄러워요, 엘렌~”

손걸레로 창틀을 닦던 조안이 어쩐지 부끄러워했으나 나로선 알 수 없었다. 왜 부끄러워하는 거지?

이에 대한 답은 엘렌이 알려 줬다.

“그게요, 도련님이 머리가 길었을 때 자주 땋고 주무셨잖아요.”

“그치. 웨이브 머리를 좋아해서 다음 날 컬이 생기게 일부러 땋고 잤었지.”

지금은 머리카락이 짧아서 원하는 머리를 할 수 없지만.

“어느 날 조안이 머리 땋은 도련님을 보곤 반해서 머리를 땋고 다니게 된 거예요.”

“아, 정말?”

내가 조안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조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아가씨를 보고는 요정님이 아닐까 싶었어요. 정말 사랑스러우셨거든요. 물론, 지금도 엄청 사랑스러우시지만요!”

그러다 조안은 금세 우울해졌다. 조안은 느릿느릿 걸레질을 하다가 멈췄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사랑스럽다고 느끼는데…… 주인님도 분명 그렇게 느끼실 텐데 어째서…… 도련님을 아들로 키우시려는 걸까요…….”

“조안…….”

조안뿐만 아니라 엘렌도, 공작저의 많은 이들이 품은 의문이었다.

페르시스가 딸을 고아원에 내쫓았다가 다시 데려왔길래 그제야 딸의 소중함을 알았나 보다 싶었겠지.

그런데 자신의 친혈육이 맞다고 판정이 날 때까진 아들로 키우겠다니.

그들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다른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나도 페르시스가 아들에 고집하는 것이 의문이었으나 굳이 그의 저의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로선 그저 죽지 않고 안전한 곳에서 머물 수 있기만 하면 오케이였으니까.

게다가 다른 성별로 사는 게 귀찮고 때론 힘들어도 아직까진 할 만하니 말이다.

아들 행세 하기 싫다고 말한다고 해서 안 하게 해 줄 페르시스도 아니고.

“언젠가는 아들 행세 그만해도 된다고 하겠지.”

별로 기대는 없지만 나는 그리 말하며 조안을 안심시켰다.

“아직은 후계자를 만들고 싶은 욕심을 못 버려서 나를 아들로 키우시려는 걸 거야. 곧 그만해도 된다고 하겠지, 뭐.”

아닐 걸 알면서도 말을 잇는 스스로가 조금은 처량했다.

“주인님께서 한시라도 빨리 욕심을 버리셨으면 좋겠어요…….”

아가씨라고 부르고 싶어요.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건 아직도 어색해요.

방 안 분위기가 급작스럽게 우울해지던 때였다.

“도련님…….”

문밖에서 힘이 없다 못해 죽어 갈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엘렌이 일어나서 방문을 열었다. 문밖엔 핼쑥해진 요한이 있었다.

“유디프 경?”

“도련님…….”

요한은 나를 보자마자 눈을 글썽이더니 무릎을 꿇으며 빌었다.

“제발 저 좀 살려 주세요, 도련님. 주인님께서 저를 괴롭히셔요.”

“괴롭힌다고요?”

“네……. 이틀 전부터 갑자기 체력 증진을 해야 한다면서 연무장을 100바퀴 돌라고 하시질 않나, 불침번을 세우시질 않나, 좀 전에는 저를 마물이 튀어나오는 사냥터로 데려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냥터요? 유디프 경 마력 없잖아요. 마력 없는 사람이 마물 출현 지역에 가면 얼마나 위험한데요……!”

“주인님께서 제가 안 다치게끔 보호는 해 주시겠지만…… 데려가는 의도는 저를 괴롭히려는 게 틀림없습니다! ……도련님의 선물을 저만 받고 주인님은 못 받으셔서 이러시는 것 같아요.”

요한의 말을 들은 엘렌이 내게 물었다.

“도련님, 선물을 저희에게만 주시곤 주인님껜 안 드렸나요?”

“응. 주고 싶은 사람만 주다 보니 그만…….”

나는 귀밑을 긁으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러시면 안 돼요. 주인님이 혼자만 선물 못 받으셔서 얼마나 슬프겠어요.”

“하지만 그런 걸로 슬퍼할 사람은 아닌걸?”

“겉으론 티 안 낼지 모르겠지만 속으론 분명 슬퍼하실 거예요.”

“그런가……?”

“그럼요. 주인님께도 선물 드리세요.”

페르시스가 고작 자기만 선물 못 받은 걸로 슬퍼하다니.

상상이 가지 않지만,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면 나도 조금 섭섭할 것 같긴 해서 엘렌의 말에 순응했다.

“알겠어. 아빠한테도 초콜릿 선물할게.”

“잘 생각하셨어요.”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요한에게도 말했다.

“선물 줄 때 유디프 경 괴롭히지 말라는 얘기도 할게요. 수업 끝나고 초콜릿 만들면 밤이 돼서야 줄 것 같으니까 그때까지만 조금 참아 주세요.”

요한의 표정은 그제야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

똑똑―

모두가 잠자리로 향할 시각. 페르시스의 침실에 노크한 건 다름 아닌 나였다.

페르시스는 손수 방문을 열어 나를 맞이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방금 전 사냥터에서 돌아온 그는 아직 옷을 갈아입지 않아 셔츠 단추를 몇 개 푼 외출복 차림이었다.

“선물 드리려고 왔어요.”

나는 그에게 맑은 미소를 보이며 파란 리본 상자를 내밀었다. 요한에게 준 것보다 두 배는 큰 상자였다.

페르시스는 상자를 보고 살짝 흠칫한 듯했으나 바로 관심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선물 같은 거 바란 적 없다.”

“그냥 제가 드리고 싶은 건데요?”

“안 줘도 돼.”

“진짜 안 받으실 거예요?”

“…….”

그가 대답이 없자 나는 그의 손에 상자를 쥐여 줬다.

“아빠를 생각하며 혼자서 만든 수제 초콜릿이에요.”

“…….”

그는 제 손에 들린 상자를 지그시 보다가 다시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들어와.”

“……어딜요?”

“안으로.”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잡고 있던 문을 휙 놓고 안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엉겁결에 닫히는 문을 힘껏 밀치곤 안으로 들어갔다.

왜 방 안에 들이는 걸까. 난 그냥 요한 괴롭히지 말라고 한 뒤에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그는 소파에 앉고는 상자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앉아.”

나는 그와 마주 볼 수 있게 앞 소파에 앉았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단둘이 마주 보고 앉는 일이 없었기에 어색하기도 했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먼저 말을 걸었다.

“신메뉴를 만드느라 선물하는 게 늦었어요.”

“신메뉴?”

“드셔 보시면 알아요. 보통의 초콜릿과는 다를 거예요.”

내 말을 들은 페르시스는 리본을 풀어 상자를 열었다. 상자엔 25개의 초콜릿이 5개씩 5줄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알록달록하게 꾸미려다가 아빠 이미지랑은 심플한 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위에다 금만 살짝 뿌렸어요. 주방에 금가루가 있더라고요.”

“…….”

페르시스는 금가루가 뿌려진 초콜릿을 응시하더니 곧 하나 잡아들어 베어 물었다.

초콜릿을 먹다가 오독― 무언가 작은 알갱이 같은 게 씹히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어때요?”

나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던하게 맛을 평가했다.

“달고…… 짜군.”

“맞아요, 단짠 초콜릿이거든요!”

한국에서 살 때 자주 먹었던 솔트 초콜릿. 이곳, 스타시아 제국에선 흔하지 않길래 직접 만들어 봤다.

“주방장에게 들어 보니 아빠는 단거 별로 안 좋아하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선물은 이미 초콜릿으로 정해 버려서 이왕 초콜릿으로 정한 거, 단맛이 덜 느껴질 수 있도록 했어요.”

“소금으로?”

“네. 밀크초콜릿에다가 소금을 넣어 봤어요. 단맛과 짠맛이 궁합이 좋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이름이 단짠 초콜릿이에요!”

페르시스는 베어 문 초콜릿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단맛을 좋아하지 않으니 다른 맛을 더한다라.”

독특한 발상에 옅은 웃음이 나왔다.

“어린애다운 발상이군.”

“뇌가 젊다는 거죠? 기뻐요, 히히.”

나는 두 손을 깍지 낀 채로 페르시스가 마저 초콜릿을 입안에 넣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입맛엔 맞으세요?”

“……그럭저럭.”

그가 그럭저럭이라고 표현하긴 했으나 실은 그럭저럭 보단 맛있는 수준이었는지 초콜릿을 한 알 더 집어 먹었다.

이어서 두 알, 세 알…… 내 앞에서 천천히 음미하며 계속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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