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32화
2주 후, 스텔라가 나제트가에 정식으로 입적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스텔라는 내게 빙의 전의 이야기를 들려준 바로 그날 하인드에게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말은 하인드가 그녀의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속뜻과 그의 처지를 알기에 강요할 수 없는 스텔라의 처지를 드러냈다.
그로 인해 하인드는 지난 2주간 번민과 고뇌의 시간을 거쳤다고.
원작에서처럼, 이미 금쪽같은 자식을 잃어버렸기에 누군가의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했다.
금쪽같은 자식이 아닌 다른 아이를 친자식처럼 대해 줄 용기도 내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겠지.
그렇지만 스텔라를 계속 무호적자 상태로 둘 수도 없는 노릇.
끝내 그는 스텔라를 자신의 딸로 들이기로 결심한 거다.
스텔라가 입적된 후 나제트가를 찾아갔을 땐, 스텔라의 낯빛이 좋아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하인드의 딸이 된 것에 관하여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이제 스텔라 나제트야. 누가 뭐래도 나제트가의 하나뿐인 영애지.”
원작대로 살았다면 스텔라 플로티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플로티나가엔 미련이 조금도 남아 있어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개차반 플로티나 공작의 자식이 되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고 했다.
“축하해.”
“다 우리 아빠 덕이지, 뭐. 아빠가 거절하면 어쩌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다행히도 무사히 아빠의 딸이 되었지만.”
스텔라가 기분이 좋아 보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빠한테 감사한 마음을 전할 선물로 초콜릿을 만들 건데 너도 같이 만들래?”
“초콜릿?”
“응. 우리 아빠가 초콜릿 좋아하거든. 직접 꾸며서 주려고. 너도 같이 만들어서 주고 싶은 사람한테 줘.”
“그럴까? 주고 싶은 사람이 있긴 한데.”
엘렌이랑 조안, 유디프 부인…… 그리고 유디프 경에게도 줘야겠다!
초콜릿을 주고 싶은 사람은 딱 그 4명뿐.
안타깝게도 수호신인 플로아와 아버지인 페르시스는 해당되지 않았다. 플로아는 저번에 짐을 다 잃어버렸다며 거짓말했기에 제외고, 페르시스는 그냥 주고 싶지 않아서 제외였다.
“그럼 같이 초콜릿 만들자. 준비해 놓을 테니까 금요일 날 우리 집에 와.”
“좋아!”
***
그날은 유난히 눈이 일찍 떠졌다. 스텔라와 같이 초콜릿을 만들 생각하니 신나서였다.
초콜릿을 얼마 만에 만들어 보는 걸까.
중학교 때 만들어 보고는 줄 사람이 없어서 안 만들어 봤으니 꽤 오래됐다.
일찍 일어난 나는 일찍부터 나갈 채비를 했다.
나제트가에 도착했을 땐 11시쯤이었다. 우리는 주방이 아닌 응접실에서 초콜릿을 만들기로 했다.
스텔라는 초콜릿을 만들 재료를 미리 준비해 둔 뒤였다.
밀크 초콜릿부터 시작해서 다크 초콜릿, 화이트초콜릿, 색소를 첨가한 분홍색 초콜릿, 그 외에 초콜릿을 꾸밀 데코 재료까지. 아주 넉넉해 보였다.
“와, 많이 준비했네?”
“넉넉하게 준비해 두라고 했어. 많이 만들어서 많이 가져가도 돼.”
“아싸, 정말 많이 가져간다?”
“그러든지.”
우리는 본격적으로 초콜릿 만들기에 돌입했다.
불을 사용하는 건 위험하기에 초콜릿은 하녀들이 녹여 주었고, 우리는 하녀들이 녹여 온 초콜릿을 정사각형 몰드에 붓는 작업을 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몰드는 한 변이 3cm인 정육면체 몰드였다. 나는 밀크 초콜릿을, 스텔라는 화이트초콜릿을 몰드에 부었다.
“이전 세계에선 몰드 종류 엄청 많았는데, 그치?”
“리본 모양도 잊고, 꽃 모양도 있고, 동물 모양도 있고…… 별의별 게 많았지.”
“아쉽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곳에도 몰드가 있다는 게 어디야.”
“맞아, 이거 구하기 힘들었어.”
몰드에 녹인 초콜릿을 다 붓자 스텔라는 하녀를 불러서 몰드를 전달했다.
하녀는 건네받은 몰드를 냉동고에 얼렸다.
“1시간이면 초콜릿이 다 얼 거야. 1시간 후에 꺼내서 데코하면 돼.”
“와, 1시간밖에 안 걸려? 이곳의 냉동고랑 이전 세계에서의 냉동고랑 다를 게 없네.”
스타시아 제국에도 21세기 대한민국처럼 냉동 기계가 있었다. 바로 냉동고. 냉동고는 D급 마물인 아이차가로 만든 기계다.
아이차가는 녹지 않는 얼음과도 같아서, 기계로 만들지 않고 그냥 사용하기도 한다.
그걸 기계로 만들어서 음식을 보관하기 좋게 만든 것이 냉동고이고. 아이차가 몇 마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냉동 속도가 달라진다.
우리는 초콜릿이 얼 동안 수다를 떨었다.
“넌 초콜릿 만들어서 누구한테 줄 거야?”
“엘렌이랑 조안. 그리고 유디프 부인이랑 유디프 경. 이 네 명에게 주려고. 엘렌은 날 키워 준 시녀고 조안은 친한 하녀야. 유디프 부인은 가정교사고 유디프 경은 아빠의 호위기사.”
“수호신이랑 각하껜 안 드릴 생각인가 보네? 하긴, 나라도 안 줬을 것 같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당연히 안 주지. 내가 왜 주냐. 특히 아빠한테 줄 바엔 내가 다 먹고 배탈 나는 게 나아. 플로아는 조금 고민되지만.”
“왜? 여행 가서 친해졌어?”
“가서 별거는 안 했는데 그래도 재밌었거든.”
기차 여행을 생각하니 플로아에게 초콜릿을 주는 방향으로 마음이 점점 기울었다.
“플로아는 그냥 줄까?”
“마음대로 해. 초콜릿은 많아.”
“그럼 여행 재밌었으니까 줘야겠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1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하녀는 단단히 언 초콜릿을 접시에 담아 들고 왔다.
“초콜릿 가져왔습니다.”
“테이블에 놓고 가.”
“네, 아가씨.”
하녀가 접시를 테이블에 놓고 가자 우리는 본격적으로 데코를 시작했다.
나는 밀크 초콜릿을, 스텔라는 화이트초콜릿 한 알을 들고선 각자 초콜릿을 꾸몄다.
스텔라는 데코펜 대용으로 녹인 분홍 초콜릿이 담긴 짤주머니를 선택했다. 그 짤주머니로 무언갈 그리더니 내게 보여 주었다.
“어때?”
스텔라가 보여 준 화이트초콜릿엔 분홍색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어? 나도 하트인데, 통했네.”
내 초콜릿엔 알록달록한 스프링클이 하트 모양으로 붙어 있었다.
스텔라는 그 초콜릿을 보고선 의문을 품었다.
“넌 하트 누구 주려고? 딱히 하트 붙일 사람 없지 않아? 나야 아빠 준다지만.”
“무슨 소리. 엘렌이랑 조안한텐 하트만 그려서 줄 거야.”
“많이 좋아하는구나?”
“엄청. 고아원에 갔을 때도 제일 보고 싶었던 사람이 엘렌이랑 조안이었어.”
고아원 얘기가 나오니 스텔라는 그 당시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했다. 스텔라는 데코를 멈추곤 입술을 뗐다.
“……이젠 괜찮냐?”
“뭐가?”
“고아원에 갔던 일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길래.”
“아…….”
나는 데코에 집중한 채로 대답했다.
“괜찮지. 이래 봬도 속은 어른이잖아.”
정말 괜찮다는 듯이 말해서 퍽 어른스러워 보였으나 그것도 잠시.
“흐으…… 엣취!”
내 기침으로 인해 스프링클이 쏟아지자 스텔라가 짜증을 냈다.
“야! 기침은 팔 안쪽에 대고 해야지.”
“미안, 갑자기 나와서…… 히히…….”
내가 멋쩍게 미소를 보이자 스텔라는 나를 쏘아보았다.
“이, 이건 내가 다 먹을게.”
“정말이지……. 으휴. 내가 참아야지, 원.”
스텔라는 자신이 착하니까 참기로 했다며 내 앞의 초콜릿들을 내게 밀어 주었다. 그녀는 마저 초콜릿에 짤주머니로 그림을 그렸다. 스프링클을 쏟은 것에 대한 짜증은 금방 가신 듯했다.
“나랑 친구 하니까 즐겁지?”
“뭐래.”
“난 너랑 친구 하니까 즐거워.”
훅 들어온 말에 스텔라는 눈을 껌뻑거리다가 다시 초콜릿 데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혹시 누가 괴롭히면 말해. 같이 욕해 줄 테니까. 욕 하나는 찰지게 할 자신 있어.”
“그럴 것 같았어.”
“그럴 것 같았다고? 죽을래?”
내가 반응이 재밌어서 웃어 대자 스텔라는 찌릿 째려보았지만, 어느새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
데코한 초콜릿을 상자에 넣어 포장한 나는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엘렌과 조안에게 선물했다.
“엘렌, 조안, 선물이야.”
“선물이요?”
“와, 이거 뭐예요?”
조안이 눈을 크게 뜨며 파란 리본으로 묶인 상자를 보았다.
“직접 만든 초콜릿이야. 내가 하나하나 다 데코했어.”
“수제 초콜릿을 제가 받아도 되는 건가요?”
“물론이지. 엘렌과 조안을 위해서 만들었는걸?”
“우와, 감사해요, 도련님!”
“잘 먹을게요, 도련님.”
기뻐하는 조안과 엘렌을 보니 뿌듯해졌다.
나는 수업이 끝난 후 유디프 부인에게도 상자를 건넸다.
“받으세요, 부인.”
“어머, 저 주시는 건가요?”
“네. 수제 초콜릿이에요.”
“고맙습니다, 공자님. 감사히 먹겠습니다.”
“네, 맛있게 드세요!”
유디프 부인 다음으로는 플로아였다.
플로아에겐 오다 주웠다는 식으로 건넸다.
“딱히 플로아가 예뻐서 주는 건 아녜요.”
하지만 플로아는 내가 자길 예뻐한다고 착각하는지 무척 기뻐했다.
“썩지 않는 마법을 걸어 둬서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초콜릿 하나에 무슨 마법까지 걸어요?”
“메이 님께서 처음 주신 선물이잖습니까.”
“초콜릿은 또 만들어서 줄 수 있으니까 그냥 드세요.”
“고맙습니다, 메이 님.”
마지막으로 초콜릿을 줄 상대는 요한이었다.
나는 요한을 만나기 위해 페르시스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예상대로 집무실 앞엔 요한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유디프 경!”
내가 부르자 요한은 나를 발견하곤 입꼬리를 기쁘게 올렸다.
“도련님!”
나는 그의 앞에 서서 초콜릿 상자를 건넸다.
“이거, 선물이에요.”
“저한테 주시는 겁니까?”
“네, 초콜릿인데요, 제가 손수 만들었어요.”
“감사합니다, 도련님.”
요한이 내게서 초콜릿 상자를 가져갈 때였다. 집무실 문이 열리더니 페르시스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가 상자에 눈길을 줬다.
“그게 뭐지?”
“아, 이건요…….”
나는 요한에게 줄 선물이라고 답하려 했으나.
“내 건가 보군.”
자기 멋대로 착각한 페르시스가 상자를 가져가 버렸다.
“어? 어? 그거 아빠 거 아녜요.”
“……그렇다면?”
“그거 유디프 경 거예요. 제가 유디프 경에게 주려고 손수 만든 초콜릿이란 말예요.”
“손수 만든 초콜릿?”
페르시스는 손수 만든 초콜릿을 왜 네가 받냐는 듯 요한을 불쾌하게 쳐다봤다.
요한은 그 이유를 알 리 없으니 난처한 듯 보였다. 페르시스는 상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요한에게 넘겼다.
그리고 그는 날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