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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27)화 (27/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27화

얼마 후, 플로아가 맑은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내게 걸어왔다.

“즐거우십니까?”

쭈그려 앉아서 게 구멍을 파, 내 손바닥만 한 게를 잡고 있던 내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요! 보세요, 저, 게 엄청 잘 잡아요!”

나는 게 구멍이 있는 곳의 모래를 한 움큼 파서 그곳에 숨어 있던 게를 잡아냈다. 그리고 바둥거리는 게를 들어 올려 플로아에게 보여 주었다.

“대단하죠?”

“대단하십니다.”

나는 칭찬에 뿌듯해하며 게를 땅에 놓아주었다. 게는 땅에 닿자마자 후다닥 어디론가 도망쳤다.

“왜 놔주십니까?”

“잡은 게를 모을까 했는데요, 잡아먹을 것도 아닌지라 모으는 의미가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놓아주기로 했어요.”

나는 문득 무언가가 떠올라 손뼉을 한 번 쳤다.

“아! 맞다, 플로아. 가방에서 밀짚모자 좀 꺼내 주실래요? 햇빛 때문에 모자를 쓰고 싶은데 제가 손에 흙이 묻어서요.”

실실 웃으며 그에게 모래가 덕지덕지 묻은 손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아차렸다.

“어……? 플로아, 가방은요?”

그에게 맡겼던 짐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짐은 어딨어요?”

내가 힘겹게 무릎을 펴고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우리가 가져온 짐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 맡겨 놨어요?”

“아뇨.”

“그럼요?”

그럼 짐은 어디에 있는데? 거기에 전 재산 다 들어 있잖아.

내가 걱정스러운 낯으로 플로아를 올려다보니 그의 입매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곧 그의 입에서 충격적인 언어가 나왔다.

“잃어버렸습니다. 돈까지 전부.”

……네?

“장난치지 마요.”

“진짜입니다.”

“장난이면 가만 안 둘 거예요.”

“진짜……입니다.”

“…….”

나는 진짜라는 말에 충격을 받다가도 그가 플로아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자 했다.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플로티나의 수호신이다. 그런 그가 칠칠맞게 짐을 몽땅 잃어버린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짐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데엔 분명 다른 목적이 있을 거야.

그렇다면 그 다른 목적이란 건 무엇일까.

“플로아, 혹시요.”

나는 나쁜 의도는 없다는 것마냥 순수한 낯으로 물어보았다.

“관심 받고 싶어요?”

관종이세요? 라고 하려다가 약간 순화돼서 나온 말이었다.

“네, 관심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플로아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한순간의 표정 변화도 없이 답변했다.

……정말로 관심 받고 싶었나 보다.

우리의 대화는 남들이 듣기엔 퍽 이상할지 몰라도 그 누구보다 솔직했다.

“관심 주면 짐 찾아올 거예요?”

“얼마나 관심을 주시냐에 따라 다릅니다.”

“지금 이거 협박이에요?”

“저는 메이 님께 협박하지 않습니다.”

그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뻔뻔하게 굴었다.

이게 협박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내 짐을 인질로 삼고 있으면서.

나는 그를 찌릿 째려보았다.

“그래서, 얼마큼 관심 받고 싶으신데요?”

“나중에 저와 여행 간 걸 회상할 때, 제일 기억에 남는 게 아름다운 경치가 아니라 저와 함께 했던 여행이라는 거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이미 성공했어요. 짐을 전부 잃어버렸다는 말에 경치고 뭐고 순간 다 잊어버렸으니까요.”

“더 기억에 남았으면 합니다. 저와 놀아 주세요.”

……놀아 달라고? 나는 잠깐 동안 말을 잃었다.

“플로아. 플로아는 나이가 제 나이를 제곱한 것의 배보다 많지 않나요?”

“…….”

그는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나이에 관해선 얘기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면서 겨우 열 살짜리한테 놀아 달라고 하시면 어떡해요? 플로아가 놀아 주셔야 하는 거 아녜요?”

“그만큼 메이 님을 좋아해서 그럽니다.”

하! 도대체 언제부터 좋아했다고 그래?

“플로아는 짐을 잃어버렸다고 했을 때부터 이미 신뢰를 잃었어요.”

“이건 진심입니다. 좋아합니다. 평생 수호해 드리고 싶을 만큼요.”

내가 믿지 않는다는 투로 말하자 플로아는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하지만…… 도대체 그 진심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평생 지켜 주고 보호하고 싶다면서 내 짐을 일부러 잃어버리기까지 하다니. 그럴 마음이 없는 건지 아니면 플로아의 사고가 극단적인 건지…….

내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 있으니 플로아가 나를 덥석 안아 들었다.

“뭐 하시는 거예요?”

“물고기를 잡으려고 합니다.”

“네??”

물고기를 잡는다고요?

그는 나를 안아 든 채로 바다를 걷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공중 부양 덕에 바다 위를 걷는 거였다.

살다 살다 누구에게 안긴 채로 바다 위를 걷게 될 줄은 몰랐던 나는 혹여 바다에 빠지기라도 할까 봐 플로아를 꼭 끌어안았다.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바다에서 찰랑찰랑 시원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플로아는 주저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육지랑은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플로아, 육지랑 너무 멀어지는 거 아녜요? 좀 걱정돼요.”

“순간이동으로도 한 번에 돌아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순간이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수호신이나 마법사들만 할 수 있어서 페르시스도, 수호 기사들도 제 아무리 마력이 있다 한들 순간이동은 할 수 없었다.

빠르게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나는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잃어버렸다는 내 짐에 대해서도 걱정을 떨칠 수 있었다.

아마 플로아는 내 짐을 순간이동으로 안심할 수 있는 곳에 놓고 왔을 거다.

그나저나 아빠랑 스텔라는 같이 식사했겠지?

나는 내가 여행 간 사이 그들이 식사를 갖게끔 주선했었다.

어쩌면 이번 식사로 페르시스는 원작대로 스텔라에게 푹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스텔라는 바라던 대로 그에게 입양될지도 모르고.

빙의 전 원작에서 본 행복하게 웃는 페르시스와 스텔라의 모습을 상상할 즈음. 플로아가 바다 한복판에서 멈춰 섰다.

“이제 돌아갈 거예요?”

“돌아가다뇨. 물고기를 잡으려고 온 거잖습니까.”

“어떻게 잡을 건데요?”

“보시면 압니다.”

그 말과 동시에 플로아의 손에서 붉은 기운이 퍼져 나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3초 후, 열 마리의 물고기가 바다 밖으로 나왔다.

파닥파닥!

붉은색, 고동색, 파란색, 남색, 회색…… 갖가지 색의 물고기가 반경 1m쯤 되는 거리에 반원을 그리며 허공에 놓여졌다.

물방울을 이리저리 튕기며 발버둥 치는 물고기들은 붉은 기운에 꽉 잡혀 있어서 도망칠 수 없는 상태였다.

“우와…….”

물고기를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다고?

파란색 물고기는 무려 내 얼굴보다 커!

내가 입을 떡 벌리며 감탄하니 플로아가 내게 물었다.

“드시고 싶은 물고기가 있으신가요? 구워 드리겠습니다.”

“구워 준다고요?”

“네, 이런 식으로요.”

플로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잡은 물고기 중 가장 컸던 파란색 물고기가 일순 불에 타오르더니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졌다.

“대박!”

“드시고 싶은 게 없으면 다른 걸 잡아 드리겠습니다.”

“지금 구운 물고기가 먹고 싶긴 한데요…… 먹었다가 배탈 나는 건 아니겠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드셔도 문제없을 물고기로만 골랐으니까요.”

그래?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

나는 검지로 잘 구워진 파란색 물고기를 가리켰다.

“저거 먹을래요!”

플로아는 다시금 손가락을 튕겨 꼬챙이를 만들어 냈다.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 또한 수호신과 마법사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손을 움직여 자신이 직접 손대지 않고 생선에 꼬챙이를 끼웠다.

“여깄습니다.”

꼬챙이에 끼워진 생선이 내 앞으로 오자 나는 잡아들었다.

꿀꺽― 노릇노릇한 생선을 보니 절로 침이 삼켜졌다. 무척 맛있어 보였다.

“따뜻할 때 드시지요. 바람이 많이 불어서 빨리 식습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생선을 한 입 베어 무니 고소함과 담백함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기름을 사용하지 않고 구운 건지라 느끼하지 않았고 어쩐지 싱겁지도 않았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플로아를 바라보았다.

“맛있어요! 간을 안 했는데 어쩜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죠?”

“구울 때 간을 살짝 했습니다. 불에 가려져서 안 보였겠지만요. 맛있으시다니 다행입니다.”

나는 그에게서 눈을 떼고 생선을 발라 먹는 데에 집중했다. 플로아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다.

“천천히 드세요.”

그는 바다 위를 천천히 걸으며 다시 육지로 돌아갔다.

***

생선을 다 먹은 후, 우리는 해변을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갈매기한테 밥도 주며 힐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집으로 돌아갈 시간에 가까워졌다.

“벌써 해가 저무네요.”

대여섯 시가 되자 바다는 노을에 의해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당일치기여서 아쉬워요.”

이대로 집에 가기엔 많이 아쉬웠던지라 플로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플로아,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모래에 파묻히는 거 어때요?”

누워서 얼굴을 제외하고는 몽땅 모래 속에 잠기는 거죠!

플로아는 거절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졌는데 싫다고 하기 없기예요.”

“그럼요.”

내가 바로 주먹을 앞으로 꺼내자 플로아도 가위바위보를 할 자세를 취했다.

내가 외쳤다.

“가위, 바위, 보!”

보! 소리와 함께 우리 시야에 놓인 건 바위와 보자기. 바위가 플로아였고 보자기가 나였다.

이긴 걸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콩콩 뛰며 좋아했다. 그리고 바로 플로아에게 지시했다.

“플로아, 얼른 누우세요!”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모래사장 위에 누웠다. 나는 누운 그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그의 몸이 커다란 파라솔 세 개를 가져와야 겨우 거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릴 수 있을 정도로 길었기 때문이었다.

키가 큰 줄은 알았으나 누워 있는 걸 보니 평소보다 더 커 보였다.

몸을 다 덮으려면 모래를 한참 퍼야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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