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17화
그날 밤, 페르시스는 어째서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악몽을 꿨으면 꿨지, 잠이 오지 않는 건 그에겐 흔치 않은 일이었다.
오늘 하루, 어느 꼬맹이로 인해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 역시 흔치 않은 일이었다.
자꾸만 무언가 신경 쓰이는 것 또한 그에겐 매우 흔치 않은 일이었다.
무엇이 이리도 신경 쓰이는 걸까.
자신에게 그 꼬맹이는 필요치 않다. 쓰러지는 꼴을 봐 가면서까지 아들로 만들고 싶진 않으니까.
애초에 친딸이 아닐지 모를 꼬맹이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자신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꼬맹이를 고아원에 보내기로 한 결정엔 후회는 없다.
……분명 없을 터인데.
무엇이 이리도 언짢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겠다고 꼬박 밤을 지새웠다. 동이 터도 찾지 못했으나, 날이 밝자마자 자신의 침실로 찾아온 꼬맹이를 보고선 알 수 있었다.
제 앞에 선 꼬맹이는 밤새 울었는지 퉁퉁 부은 얼굴로 무거운 눈덩이를 힘겹게 들어 올리며 자신을 쳐다보았다.
꼬맹이의 입에서 고까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고아원에 갈게요.”
“…….”
“그동안 공작저에서 지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
“건강하세요, 공작 각하.”
“…….”
또 호칭이 바뀌었다. 잘도 아버지라 부르더니 이젠 공작 각하다. 마치 선을 긋는 것처럼.
“고아원에 가겠다고?”
“네. 밤새 많이 고민해 봤는데요. 역시 가야 할 것 같아요.”
“……어째서.”
“네?”
“어째서 그리 쉽게 포기하는 거지?”
어째서 자신은 이 꼬맹이에게 평소처럼 대하지 못하는 걸까.
꼬맹이의 퉁퉁 부은 낯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드러났다. ‘자기가 나가라 해 놓고는 왜 저래?’ 하는 눈빛.
그러나 자신은 꼬맹이가 한 번만 더 내쫓지 말라고 애원한다면 고아원에 보내지 않을 의향이 있었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이 집에서 지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리도 쉽게 포기하는 건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아들로 살겠다며 완벽한 후계자라도 될 것처럼 얘기하던 그 기고만장한 꼬맹이는 어디 갔지?”
“……조금 철이 들었어요.”
그 말 그대로 하룻밤 사이 메이는 조금 철들었다.
원작의 굴레를 피하고자 다른 이들은 안중에도 없었지만 이제는 주위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엘렌은 페르시스에게 들켰다간 큰 벌을 받을 걸 알면서도 자신을 정성스레 키웠다. 조안 또한 굳이 자신에게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곁을 지켜 주었으며, 플로아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후계자에게 정체를 숨기는 마법을 걸어 주고 검술 스승도 되어 주었다.
스텔라는 메이로 인해 아버지의 관심을 나눠 가져야 할 상황에 이를 수도 있게 되었으며, 페르시스는 억지로 키운 아이가 자신의 친자식이 아닌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아이가 그녀를 대신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
‘내가 고아원에 가야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아.’
사기꾼에게 입양되더라도, 노예로 이리저리 팔리더라도, 백작가 영애에게 맞아 죽더라도. 고아원에 가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각하께서 저를 키우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데 어찌 버티고 있겠어요. 고아원에 갈게요.”
고아원에 가서도 죽지 않을 방법은 있을 거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니까.
“대신 소원이 있어요.”
하지만 솟아날 구멍은 직접 미리 만들어 두는 게 좋겠지.
“저를 입양하려는 사람이 생기면 티보르 남작님을 통해서 서신을 보낼 테니 고아원에 찾아와 주세요. 나쁜 사람이 저를 입양하는 꿈을 꿔서 불안해서 그러니 부탁드려요.”
플로티나 공작의 명이면 티보르 남작이 그리해 줄 테니까. 그 말과 함께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찾아와서 저를 입양하려는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확인해 주세요. 나쁜 사람이면 두 번 다신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게 벌해 주세요. 그게 제 마지막 소원이에요.”
이를 들은 페르시스는 더욱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불안한 꿈을 꿨음에도 고아원에 가려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고아원에 가겠다는 걸 말리지는 않았다. 자신은 이미 꼬맹이가 필요 없다는 판단을 내린 후고, 꼬맹이도 이 집에서 더는 살게 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으니까.
“……그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각하.”
꼬맹이는 허리 숙여 공손히 감사를 전한 후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신은 꼬맹이의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니, 보이지 않은 지 한참이 지나도 가만히 있었다.
그저 가만히.
그렇게 꼬맹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집을 떠났다.
***
메이를 고아원에 보낸 이후, 페르시스는 평소와 다름없이 플로티나 공작으로서의 역할을 해냈다.
정확히 그 꼬맹이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 반나절 동안만.
그 이후 그는 요한이 보기에 어딘가 이상했다.
일을 보다가도 밖에 나가 기사들과 검술 대련을 하지 않나, 저녁 식사를 하다 말고 낮잠을 자겠다고 하지 않나. 낮잠을 자겠다고 해 놓곤 한숨도 자지 않는 것까지.
제 주인이 이리도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역시 주인님도 메이 님이 없어서 힘드신 걸까?’
하지만 페르시스는 자신이 왜 이런지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았다. 알아 봤자 괜히 기분만 불쾌해질 거란 걸 잘 알아서였다.
이제 그 꼬맹이는 자신과 아무런 사이도 아니다.
입양되면 저를 보러 와 달라는 부탁을 했으니 친히 들어주긴 할 것이지만, 딱 그뿐이다.
자신에겐 아무것도 아니니 고아원에 보낸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
하고 스스로를 세뇌했다.
그 세뇌가 자신을 갉아먹는 줄도 모르고.
한편, 그런 일이 일어난 줄도 모른 채, 스텔라는 호위기사 한 명과 시녀 한 명을 데리고 플로티나가로 향했다. 일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메이에게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그녀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스텔라, 메이가 네게 화를 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사과를 받아 주지 않은 건 잘못한 거야.’
천사 같은 하인드가 자신을 혼내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이었기에 자신이 잘못했음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확실히, 자신이 나쁘긴 했다.
페르시스가 메이에게만 관심을 주는 게 질투가 나서 막말도 하고 없는 일로 사과까지 하게 했으니까.
잘못한 건 쿨하게 인정하며 사과할 거다. 하지만 각하의 관심을 나눠 갖긴 싫다고도 똑똑히 일러둘 거다. 같이 살게 되더라도 자신의 입지를 위협하면 언제든 괴롭힐 거라는 협박도 할 거다.
스텔라는 메이에게 사과의 의미로 줄 보라색 히아신스 꽃다발을 들고선 플로티나가에 들어섰다.
처음 와 본 플로티나가는 상상 이상으로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저택을 보니 메이가 어떻게 10년간 페르시스 몰래 키워졌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내년이면 여기가 우리 집이 되는 거지?’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나제트 또한 돈이 많았지만 플로티나는 그보다 더 돈 걱정 없어 보였으니까.
저택 안에 들어서자 집사가 그녀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스텔라는 플로티나가 저택 내부를 구경하기 바빴다.
‘다 좋은데 분위기가 어둡네. 뭐랄까, 축축 처진다고 해야 하나?’
뭐, 발을 딛는 곳마다 환한 빛이 들어오는 듯 분위기를 사랑스럽게 밝힌다고 묘사되는 자신이 아직 이곳에 입양되기 전이어서 그럴지도 모르니 그러려니 했다.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주인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응접실에 도착한 스텔라는 집사를 떠나보낸 후 조용히 페르시스와 메이를 기다렸다. 응접실 안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침묵이 스텔라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쿨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겠다 할 땐 언제고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바보, 많이 화났겠지? 여기까지 왔는데 사과 안 받아 주면 어쩌지…….’
어쩌면 자신과 있었던 일을 벌써 페르시스에게 알렸을지도 모른다.
“아이씨, 난 그때 왜 그래서…….”
좀 참을걸. 어차피 주인공은 난데.
스텔라가 표정을 찡그리며 메이에게 못되게 굴었던 것에 후회할 때쯤, 페르시스가 응접실에 당도했다.
집사가 문을 열자 페르시스가 걸어 들어왔다. 나제트가에서 봤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스텔라는 소파에서 일어나 그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
그는 그녀의 인사를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스텔라는 자신이 인사를 씹혔다는 것에 살짝 충격을 받아 어리바리하게 서 있다가 따라서 앉았다.
그리고, 가까이서 본 페르시스의 얼굴에 한 번 더 충격을 받았다.
메이를 고아원에 보낸 후 사흘. 줄곧 잠을 설친 건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주눅들 만큼 무서운데 흰자가 붉게 충혈되고 짙은 다크서클이 자리 잡고 있으니 도저히 눈을 마주치지 못할 정도였다.
‘어, 어디 아프신가?’
심지어는 어딘가 기분이 무척 나빠 보였다.
‘날을 잘못 잡았나 봐……. 나중에 올걸.’
스텔라가 무서워서 품 안의 꽃다발을 꽉 끌어안는 사이, 그가 입을 뗐다.
“여긴 왜 왔지?”
“일전에 있었던 일로 메이 공자님께 사과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사과하는 법을 아는 줄은 몰랐군.”
“……네?”
스텔라는 당황한 나머지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그의 퉁명스러운 말투가 뼛속을 얼릴 정도로 차가웠다.
“아니면, 그것 역시 메이를 괴롭힐 계획 중 하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