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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14)화 (14/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14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주인공은 남달랐다. 괜히 주인공이 아니구나 싶었다.

처음에 메이의 몸에 빙의했을 때, 나는 온종일 거울을 보며 내 미모에 감탄했었다. 그러나 금세 질려 다시 거울을 보면 그냥 얼굴이니, 했는데.

이 아인 다르다. 딱 한 번만 봐도 잊히지 않고 매일 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곧 하인드는 스텔라를 소개해 주었다.

“아, 이쪽은 내 조카 스텔라. 스텔라, 인사하렴.”

스텔라는 우아하게 치맛자락을 살짝 잡아 들어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스텔라 나제트입니다. 스텔라라고 불러 주세요.”

자신을 나제트라 소개하는 걸 보아 스텔라는 아직 자신이 무호적자라는 걸 모르는 듯했다.

고개를 든 스텔라의 눈동자는 곧장 페르시스를 찾아갔다. 그를 보며 무언가 느끼기라도 한 듯 자안에 이채가, 입가엔 미소가 띠었다.

스텔라는 페르시스가 마음에 든 듯 보였다.

그럼 페르시스는?

나는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 올려 페르시스의 얼굴을 보려다가 흠칫했다.

그의 적안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왜 나를 그리 쳐다봐?

‘아아, 인사하라고?’

나는 스텔라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메이 플로티나라고 합니다. 잘 부탁해요, 영애.”

그러나 스텔라는 내겐 그다지 흥미가 없는 듯했다. 그녀는 오로지 페르시스에게만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페르시스와 스텔라를 번갈아 보았다.

예상외로 페르시스는 스텔라에게 별 감흥 없어 보였다.

첫 만남치곤 운명적인 만남이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직 때가 아닌 걸 수도 있겠지만.

스텔라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메이 공자님.”

스텔라는 덧없이 순백한 얼굴로 물었다.

“누굴 닮아 그리 예쁘신가요?”

나는 그 물음에 순간 흠칫했다.

누굴 닮아 예쁘냐고? 그야 비체를 닮았지만…….

내 처지를 돌이켜봤을 때 그다지 유쾌하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나는 대답 대신 칭찬으로 상황을 모면했다.

“영애께서 더 아름다우셔요.”

스텔라는 피식 웃더니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자, 인사도 마쳤으니 만찬을 즐기러 가 볼까?”

“좋아요, 숙부.”

스텔라는 들떴는지 제 자리에서 콩콩 뛰었고, 나는 어쩐지 불편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봐야 했다.

식당에서 스텔라는 맞은편 대각선 자리에 앉은 페르시스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반짝이 가루라도 뿌렸는지, 그 눈빛이 정말 반짝거렸다.

스텔라 바로 앞자리에 앉은 내가 보기엔 그랬다.

스텔라는 페르시스가 마음에 들었나 보네. 만약 페르시스가 스텔라에게 푹 빠져서 내년 봄이 아니라 오늘 입양하게 된다면…….

그럼 난 이제 스텔라를 언니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아니지, 나는 플로티나에 있는 동안 쭉 남자애일 테니까 누나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힐끔 내 시야에 들인 페르시스는 고민이 무색해질 만큼 스텔라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직은 푹 빠질 정도의 단계는 아닌 듯 보였다.

그는 그의 앞자리에 앉은 하인드에게 말을 걸었다.

“항상 네가 플로티나에 오기만 했지 초대한 건 아주 오랜만이군.”

“스텔라가 메이랑 친해지고 싶다고 해서 말야. 하나뿐인 조카 부탁이라 들어줬지.”

스텔라가 나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고?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스텔라를 쳐다보니 스텔라는 내게 눈웃음을 보여 준 후 다시 페르시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페르시스가 아니고?

“메이, 우리 스텔라랑 친하게 지내 줘.”

하인드의 부탁에 내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하려던 찰나.

챙그랑―

나는 실수로 포크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어떡해……!

나는 그대로 온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요란스럽게 포크를 떨어트리다니. 그것도 초대받은 곳에서. 더욱이 눈에 띄는 행동을 삼가야 할 곳에서.

분명 페르시스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다.

나는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날 언제든 내쫓을 수 있는 인물이다.

남들이 보기엔 겨우 포크 하나 떨어트린 걸지 몰라도 나에겐 고아원으로 쫓겨나는 이유가 될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내 귀로 흘러 들어왔다.

“칠칠치 못하군.”

다행히도 심기까진 건드리지 않은 듯했다. 나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어조에 안도하며 눈을 떴다.

하인드는 내게 상냥한 얼굴로 괜찮다고 해 주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뭐. 나도 가끔 떨어트려.”

아, 정말 좋은 사람. 하인드 나제트가 내 아빠여야 했는데, 흑흑.

나는 속으로 페르시스 욕을 왕창 하고선 내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이프가 날카롭지 않은 건지, 고기가 잘 썰리지 않았다.

나는 하녀가 내온 새 포크와 나이프를 쥔 손에도, 얼굴에도 힘을 주며 힘겹게 썰었다.

그때였다. 이를 본 페르시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프질 못 하는 것도 그 여자랑 똑같군.”

그런 말을 하더니 내 시야에 그의 팔이 나타났다.

그러고는 자신이 썰어 주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이 인간이 뭘 잘못 먹었나 싶었다.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친절해? 혹시 그가 먹은 스테이크에 머리가 어떻게 되는 약이 뿌려져 있던 게 아닐까?

어릴 적부터 친구라는 이유로 페르시스의 성격을 받아 줘야 했던 하인드가 범인이라면 범행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더는 그가 왜 내 스테이크를 썰어 주는지에 대해서 추리할 수 없었다.

내 앞에 앉은, 낯이 서늘하게 굳은 스텔라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에.

싸늘한 눈초리에 내 머릿속은 하얘졌다.

왜, 왜 표정이 안 좋은 거지……? 혹시 내가 의도치 않게 거슬리게 만든 걸까?

나는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까 수 초간 고민하다가 또다시 그녀를 칭찬하기로 결심했다.

내 스테이크를 다 썰어 주고선 마저 식사하는 페르시스에게 어색하게 말을 걸었다.

“그, 아버지, 스텔라 영애…… 정말로 귀엽지 않아요?”

솔직히 네가 봐도 사랑스럽지?

나는 그 마음 이해할 수 있다. 원작에선 서로 마주친 적도 없는 내가 봐도 스텔라는 사랑스러우니까.

페르시스는 내 말에 슬쩍 스텔라에게 눈길을 주었다. 스텔라는 때를 놓치지 않고 세상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비스듬히 올려다보며 양 볼에 바람을 살짝 넣은 채 우웅? 이라도 할 것만 같은 표정.

그야말로 귀여운 척. 남들이 하면 쟤가 맛이 갔나 싶겠지만 스텔라는 그 오그라드는 표정 또한 귀여웠다.

“…….”

페르시스는 그 모습을 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나는 내 멋대로 그의 반응을 해석했다. 귀여운데 귀엽다고 얘기해 주는 성격이 아니어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지?

그러나 스텔라는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지 낯빛이 처참히 어두워졌다. 스텔라는 그제야 페르시스에게 시선을 거두곤 깨작깨작 음식을 먹었다.

그녀는 무언가 깊이 고민하다가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숙부, 식사를 끝낸 후엔 공자님과 단둘이 후작저를 산책해도 될까요?”

“나는 상관없다만 메이에게 물어보렴. 메이, 돌아가기 전에 스텔라와 잠시 놀아 주겠니?”

생각보다 스텔라가 나랑 많이 친해지고 싶었나 보다. 하긴. 페르시스에게 입양되면 나랑도 가족이 되는 거니까.

나는 스텔라를 향해 싱긋 웃으며 밝게 대답했다.

“전 좋아요.”

식사를 마친 후, 식당에서 나와 스텔라와 단둘이 저택 복도를 걸었다.

왜인지 스텔라의 분위기가 아까보다 차분하고 조용해졌다. 갑자기 성숙해진 것처럼.

스텔라가 조용히 걷기만 하길래 내가 뭐라도 말을 걸려고 할 때였다.

“……너, 열 살이라며? 내가 한 살 더 많으니까 말 놓아도 되지? 너도 말 놔도 돼.”

목소리, 말투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아까와는 달라졌다.

“……응, 그래.”

스텔라는 걷다 말고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깜짝 놀라 뒤로 주춤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감상을 하고 있었다.

와, 정말 예쁘다. 역시 주인공은 주인공이야.

인형같이 긴 속눈썹. 자수정을 박아 넣은 듯한 눈동자. 백옥 같은 피부. 체리같이 붉고 도톰한 입술.

그녀의 입술이 떨어졌다.

“예쁠 거라 예상은 했는데 너 진짜 예쁘구나?”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예쁠 거라 예상했었다고?”

……왜? 아니. 어떻게?

보통 숙부의 친우의 아들을 예쁠 거라 예상하긴 어렵지 않은가. 잘생겼을 거라 예상했으면 몰라도.

“너희 부모님 두 분 다 미인이시니까.”

별 의미 없다는 듯이 말하니 내가 예민한 건가 싶었다.

“음…… 그런데.”

그런데 아니었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었다.

스텔라는 뒷짐을 지고선 몸을 이리저리 살랑살랑 흔들었다. 마치 짓궂은 장난을 치려는 듯이.

“아들로 살아가는 거 안 힘들어?”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설마 얘가 내 처지를 알고 있나?

나는 일단 모르는 척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스텔라의 눈이 가늘게 휘어지더니 몸을 흔들던 걸 멈추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자면서 아들로 살아가는 거 안 힘드냐고.”

“여자라니?”

애써 아닌 척.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이상하다는 것처럼. 그렇게 대응했으나.

“아닌 척하지 마. 난 네가 여자인 거 다 알고 있어.”

“!”

그런 척들이 무색하게도 스텔라는 알고 있었다.

‘하인드가 알려 줬나……? 아빠가 하인드밖에 모른다고 했는데…….’

나는 확신에 찬 스텔라를 보니 더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후작님께 들었나 보네. 후작님은 내가 여자인 거 아시거든.”

“아닌데? 책에서 봤어.”

책……?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책이라니? 설마,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 책?

그 책의 제목이 내 앞의 소녀의 입에서 나옴과 동시에.

“‘페르시스의 입양딸’에서.”

“!”

내 푸른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스텔라가 나와 같은,

“반응을 보니 역시 맞나 보네. 너도 빙의자구나?”

빙의자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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