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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10)화 (10/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10화

메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 아틸라는 수업이 끝난 후 페르시스에게 그녀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각하, 공자님께선 천재나 다름없습니다! 천재인데도 겸손하고 착하고 차분하기까지 하세요! 10년 동안 많은 영식들을 봐 왔지만, 공자님처럼 자기 주도 학습이 잘 되어 있는 분은 처음입니다!”

이번엔 기선제압을 하려던 건 아닌데 흥분해서 말이 빠르게 나왔다.

페르시스도, 그 뒤에 있던 요한도 얼떨떨해했다.

“……내 아들이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군, 부인.”

“마음에 든 것뿐이겠나요? 제 제자가 되어 주어 영광일 따름이랍니다!”

아틸라는 메이를 떠올리며 흐뭇해했다. 누군가를 이리도 칭찬하는 건 그녀의 아들인 요한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우리 어머니께 호감 사기 힘든데…… 아가씨 정말 대단하셔.’

물론 아가씨의 사랑스러움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 없지만.

제 앞에 뒤통수를 보이며 소파에 거만하게 앉아 있는 딱 한 사람.

‘주인님만 빼고.’

페르시스는 아틸라가 제 딸을 칭찬해 줘도 별 감흥 없어 보였다.

아틸라는 불현듯 무언가가 떠올라 손뼉을 한 번 쳤다.

“아, 참! 공자님에 관해 각하께 의견을 여쭈려고 합니다.”

“무엇이지?”

“예법에 관해서입니다.”

메이는 사정상 남성으로 살아가야 하기에 남성식 예법을 배우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한데 메이의 원래 성별은 여성이지 않은가. 아틸라는 메이에게 여성식 예법도 가르치고 싶었다.

“혹 나중에 다시 여성으로 살아가게 될 수도 있으니 여성식 예법도 가르치고 싶습니다.”

“…….”

페르시스는 바로 불허했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자신 또한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겐 딸이 필요 없으니 그 꼬맹이가 여자로 살아갈 일은 없을 터. 애초에 그 꼬맹이의 존재 의의도 아들로 살아가 가문을 물려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째서?

그럴 필요 없다, 그 한마디가 어려운 말이었던가?

“각하?”

아틸라의 부름에 일자로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이 그제야 떨어졌다.

“공자님께 여성식 예법도 가르쳐도 될까요?”

반듯한 입술 밖으로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음성은.

“……부인 마음대로 하도록.”

허락이었다.

페르시스는 생각과 달리 행동하는 자신에게 약이 오를 지경이었다.

자꾸만 그 아이에게, 그 여자 딸에게 기회를 주게 된다. 내게 득이 될 게 뭐가 있다고.

더 화가 나는 건, 지금 이 순간에도 불허하거나 번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공자님께 여성식 예법도 가르치겠습니다.”

“……부탁하지.”

젠장. 그는 차라리 자신이 플로아의 마법에 조종당하는 중이길 바랐다.

***

아틸라의 수업은 매일 이루어졌다. 예법 빼곤 내게 가르칠 게 그리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자유롭게 책을 읽히고 질의응답 하는 식으로 교육했다.

나는 수호신에 관한 책을 읽다가 아틸라에게 질문했다.

“부인, 수호신은 정말 존재하는 거예요? 책으로만 접해서 그런지 실존한다는 게 와닿지 않아요.”

이곳, 스타시아 제국엔 수호신이 존재한다.

제국의 3대 수호신이라 불리는 아이리스, 카시우스, 헤스티아가 대표적인 수호신이다.

물론 플로아도 수호신이긴 하다. 굳이 따지면 급이 다르긴 하지만.

아틸라는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실존한답니다. 직접 본 사람도 많습니다. 수호 기사라면 당연히 뵀을 거고요.”

제국 3대 수호신은 함께 제국을 수호할 ‘수호 기사단’이라는 기사단을 운영한다. 아이리스, 카시우스, 헤스티아 순으로 제1, 2, 3 기사단의 단장이다.

수호 기사단은 주로 마물을 잡아서 백성들의 삶을 이롭게 하도록 돕는다.

수호 기사에겐 수호신이 마력 일부를 공유해 주기에 수호 기사단은 많은 이들의 꿈이었다.

하나, 수호 기사 선출은 수년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데다가 매우 적게 뽑는다. 심지어는 선출 기준도 없다. 그저 수호신 마음에 들면 영입.

어찌 보면 수호 기사가 되는 게 로또 1등에 당첨되기보다 어려웠다.

“수호 기사를 꿈꾸는 건 미련한 짓이겠죠? 노력한다고 수호 기사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살면서 마력 한 번쯤은 써 보고 싶었다. 멋있기도 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자기 몸도 지킬 수 있고, 동료 기사들과 함께 마물을 잡을 때 엄청난 쾌감을 얻을 테니까.

“수호신의 마음에 들어야 수호 기사가 되는 거니까 운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확실한 건, 건강하고 성실한 사람이 수호신 마음에 들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하긴, 내가 단장이었어도 기사단엔 건강하고 성실한 사람을 들였을 거야.

나는 이해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공자님께선 굳이 기사단에 들어가실 필요 없잖아요.”

“어째서요?”

“그야, 플로아 님이 계시니까요.”

아, 플로아…….

플로아 또한 가문의 수호신으로서 플로티나가의 혈육들에게 자신의 마력 일부를 부여한다.

그게 가문의 힘.

플로아가 제국 3대 수호신보다 급이 낮다고 해서 그가 부여하는 마력의 위력이 더 작은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수용 가능한 마력 양이 달라서 수호 기사가 강할지, 플로티나의 혈육이 강할지는 재 봐야 아는 것이다.

“가문의 힘은 성인이 되기 전에 발현되죠. 여자는 열여섯 살, 남자는 열여덟 살 생일에 성인이 되니 공자님께선 열여섯 살 이전에 가문의 힘이 발현되시겠네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나는 씁쓸하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제가 아버지의 친딸이 맞다면요.”

“!”

그 말에 아틸라는 비로소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깨달았다는 듯이 표정을 황급히 바꿨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제가 감히 실언했습니다. 절대 그런 뜻으로…….”

“전 괜찮아요.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유디프 부인이 사과할 일이 아니다. 내가 페르시스의 친딸이 아니라면 사과해야 할 사람은 비체니까.

하지만 사과받을 일 없을 거다.

“아버지의 친딸이 맞을 테니까요.”

일단은, 그리 믿고 있으니까.

수업이 일찍 끝나 봄내음을 맡으며 화원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달그락달그락― 마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마차에서 낯익은 사내가 내렸다.

어? 또 왔네?

나는 하인드를 발견하곤 그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또 오셨네요, 후작님.”

하인드는 내 모습을 보자마자 눈을 화등잔만 하게 크게 떴다.

“메이, 너 머리가 왜……. 옷은 왜 남성복인…….”

깜짝 놀란 그의 얼굴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게 사실은요-”

***

메이에게 간략히 상황 설명을 들은 하인드는 곧장 페르시스의 집무실에 쳐들어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물었다.

“페르시스, 이게 사실이야? 메이가 아들이라니!”

“일단 앉아.”

하인드는 소파에 앉으러 가면서도 자신의 친우가 제정신인가 싶어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페르시스는 하녀를 불러 차를 내오게 했다.

그도 소파에 앉으니 하인드가 다시금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페르시스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메이가 아들이 되기까지의 일들을 전부 알려 주었다.

“그래서 남자애로 키우기로 했다고?”

“어.”

나날이 발전하는 놀라움에 하인드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여린 애가 무슨 남장이야.”

듣고 있던 요한이 속으로 옳소!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페르시스의 답은 뻔뻔했다.

“본인이 선택한 일이야. 나는 기회를 준 것뿐이고.”

“…….”

페르시스는 상대방을 할 말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하인드는 잠시 그의 뻔뻔함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정말로 메이를 남자로 키우려고?”

“아들이 필요하긴 했지.”

“……해 줄 말이 없다.”

하인드는 하녀가 내온 차를 느긋하게 음미하는 페르시스를 보며 헛웃음을 지어냈다.

페르시스가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여긴 왜 또 왔어.”

“아……. 스텔라 때문에.”

방금까지 열을 내던 하인드는 의기소침하게 시선을 떨구더니 입술만 뻐끔거렸다. 과연 자신이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가 망설인 말은, 페르시스의 음성으로 나왔다.

“그 아이를 양녀로 들이려고?”

스텔라의 친부모는 스텔라를 호적에 넣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무호적자 상태로 있을 수는 없는 법. 페르시스처럼 아이를 고아원에 보낼 생각도 없으니 결론은 하인드가 스텔라를 입양하는 것이었다.

“나제트에서 키우려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하인드가 자신 있게 스텔라를 입양하겠다고 선언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의 잃어버린 아들 때문이었다.

“나 같은 놈이 누굴 거두어도 되는 걸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피붙이를 잃어버린 놈이…….”

아들을 잃어버리고 아내는 자살했다. 그는 잃어버린 아들과 죽은 아내에 대한 책임을 자신 혼자 온전히 감당해야만 했다.

하인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툭, 건들면 눈물이 쏟아져 나올 기세였다.

페르시스는 덤덤하게 충고했다.

“네 형의 딸을 네가 책임질 필요는 없어. 친모도 안 키우는 마당에 네가 키워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지.”

“하지만 스텔라는 고아원이 아닌 나제트에 있고 싶어 할 거야. 고아원에 가고 싶은 아이가 어딨겠어.”

“그래서? 그럼 넌 그 아이를 네 친딸인 마냥 키울 자신 있어? 없어서 여태까지 고민한 거 아닌가?”

페르시스의 말을 들은 하인드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았다.

사실이다. 그가 정곡을 찔렀다.

가주가 된 후로 스텔라를 호적에 넣을 시간은 충분하다 못해 넘쳐났다. 그깟 입적, 서류 작성 하나면 끝나니까.

그런데 자신은 왜 그러지 못했는가.

아직은 그 아이를 딸로 들일 용기가 없어서.

아직도 밤마다 죽은 아내가 잃어버린 아들을 안고 밝게 웃는 꿈을 꾸니까.

자신은 감히 누군가를 들일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일단은 이대로 지내. 네가 진심으로 양자로 들이고 싶을 때 들여도 늦지 않아.”

하인드는 고개를 떨궈 양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그래.”

***

그 시각, 나제트 후작저의 스텔라 방.

누구도 그 방 주인이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을 거라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분홍빛의 넓고 호화로운 방이었다.

그 방엔 메이가 긴 머리였을 적에 머리를 땋고 자면 나올 법한 고운 웨이브 머리의 백금발 소녀가 있었다.

자수정을 박아 둔 듯한 맑고 반짝이는 그 소녀의 눈동자는 어느 노트를 향하고 있었다. 그 노트엔 이름이 하나 쓰여 있었다.

[페르시스 플로티나]

소녀가 하얀 깃털의 만년필을 잡아 들었다. 주저 없이 그 고귀한 이름 밑에 이름 하나를 더 적었다.

자신의 이름과 그의 성.

[스텔라 플로티나]

그것은, 원작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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