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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6)화 (6/127)

공작가 아들로 키워진 딸입니다

6화

내가 쫓겨날 상황에 닥쳤다는 건 시종들의 입과 입을 타고 삽시간에 공작저 전체에 퍼졌다.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시종들은 잘됐다는 듯 비웃고 말았고, 나를 좋아하던 시종들은 매우 슬퍼했다.

개중엔 내가 숨을 못 쉴 정도로 꽉 끌어안고선 오열하는 하녀도 있었다.

“조, 조안, 나, 숨, 숨 막혀…….”

“흐어엉- 주인님 나빠요…… 어떻게 우리 아가씨를…… 흐어엉.”

지금 나를 꽉 끌어안고 있는 하녀는 조안. 조안은 엘렌 다음으로 친한 하녀로, 주근깨가 매력적인 소녀다.

나는 숨이 막혀서 놓으라고 조안의 등을 탁탁 쳤다. 그랬더니 조안은 오히려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흐윽, 토닥토닥해 주지 마세요. 그러면 더 슬프단 말이에요, 으허헝-!”

아니, 토닥토닥이 아니라 탁탁이라고! 탁탁!

내가 북을 치듯 조안의 등을 마구 쳐 대니 지켜보고 있던 엘렌이 나를 조안에게서 꺼내 주었다.

“허억, 허억…….”

나는 숨을 몰아쉬며 안도했다. 하마터면 예정에도 없던 질식사할 뻔했다.

나는 엘렌에게 고마움의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아가씨…….”

나를 애처롭게 보고 있던 엘렌이 갑자기 나를 숨 막히리만큼 꽉 끌어안는 게 아니겠는가!

“흐읍!”

“아가씨, 제가 지켜 줄 힘이 없어서…… 미안해요, 흐윽.”

“제, 제발…… 놔…….”

“아가씨…… 흑흑.”

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엘렌에게서 빠져나왔다.

“허어억…… 허어억.”

나는 숨을 가쁘게 쉬며 혹시나 저들이 날 또 껴안을까 봐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올라 머리맡에서 경계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엘렌과 조안이 좀비마냥 양팔을 앞으로 쫙 뻗고선 나에게 달려들었다.

“아가씨……!”

“우리 메이 아가씨…….”

“!”

나는 겁먹은 얼굴로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시, 싫어……! 하지 마!”

정말이지, 공포 영화가 따로 없다. 알고 보니 난 좀비물에 빙의된 게 아닐까?

“아가씨, 이리 와요……. 제가 안아 줄게요.”

“아가씨…… 흐윽.”

젠장할! 끈질기게도 포기를 안 한다!

나는 그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쳐 다녔다.

그렇게 무려 2시간 동안이나 시달리다가 드디어 혼자 있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조용한 도서실로 향했다.

도서실 입구엔 어느 서글서글한 인상의 호위기사가 서 있었다.

그를 본 순간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이 집에 기사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은 페르시스밖에 없다.

“하아…….”

나는 이마를 짚고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하필 지금 도서실에 있는 거야.

내가 그러고 있을 때, 그 호위기사가 기사식 인사법으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내게 인사를 건네 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메이 아가씨. 저는 가주님의 호위기사 요한 유디프라고 합니다.”

요한은 나를 알고 있었다. 페르시스의 호위이니 당연히 알고 있을 만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유디프 경.”

요한이 내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참 사람 좋게 생긴 얼굴이다. 좋은 첫인상으로 투표를 한다면 1등 할 듯했다.

나는 요한의 호감형 얼굴을 감상하다가 도서실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저 안에 페르시스가 있는 거지?

“저, 도서실에 들어가도 되나요?”

요한은 망설임 없이 곧바로 길을 비켜 주었다.

“물론이죠.”

“……안에 아빠가 있지 않아요?”

“네. 안에 계십니다.”

있는데 들어가도 된다고?

눈을 가늘게 뜨며 요한을 미심쩍게 쳐다보았으나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생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나는 돌아갈까 하다가, 슬퍼하는 엘렌과 조안을 피해 홀로 생각을 정리하기에 여기보다 좋은 곳이 없어서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들어가도 된다고 했으니 그래도 되는 거겠지, 뭐.

“그럼 들어갈게요.”

“즐거운 독서 시간 보내세요, 아가씨.”

나는 페르시스와 마주칠 생각에 긴장되어 마른침을 삼키곤 도서실에 들어갔다.

도서실은 책장이 수십 개가 들어갈 정도로 넓고 책도 많았다.

큰 창문을 열어 매일 환기시키며 지정된 시각에 청소를 한다더니, 먼지도 찾아볼 수가 없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재밌는 책도 많고.

그래서 도서실이 내 최애 장소지.

나는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따라 도서실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엔 기다란 소파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페르시스가 그 위에 누워 있었다.

내 발걸음 소리도 못 듣는 걸 보니 낮잠을 자나 보다.

나는 그를 향해 눈으로 왕창 욕했다.

저 나쁜…… 누군 원작대로 죽을까 봐 무서워서 발악 중인데 혼자 편히도 잔다, 편히도 자.

나만 이러고 있는 게 억울해서 이마를 주먹으로 콩! 쥐어박아 줄 생각으로 가까이 갔다.

물론 생각만이지 진짜로 때릴 생각은 없었다.

무서운데 어떻게 때리겠어…….

가까이 가서 보니 페르시스는 미간을 구길 대로 구긴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악몽을 꾸는 듯했다.

나는 그의 악몽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비체가 자신을 버리는 꿈. 원작에서 그는 같은 꿈을 잊을 만할 때마다 꾼다고 했다.

이 악몽은 나중에 스텔라를 입양한 후에 더는 꾸지 않게 되지.

스텔라가 마법 같은 걸 사용하는 건 아니고, 페르시스가 스텔라에게 집중하면서 비체를 완전히 잊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악몽도 꾸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뭐,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벌 받는 거다, 메렁.

내가 꼴좋다는 듯이 혀를 낼름 내미는 그때였다.

페르시스가 내 팔을 덥석 붙잡았다.

“!”

순간 놀라서 소리를 꽥 지를 뻔했다.

내, 내, 내 팔을 왜 잡는 거지? 설마 내가 메롱 한 거 보고 화났나……?

사실 안 자고 있었고, 나 때문에 화났을까 봐 두려워져 땀이 줄줄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뿐. 팔을 잡는 것뿐. 여전히 눈은 감겨 있었고, 미간은 구겨져 있었다.

어라? 자나 본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자 나는 슬그머니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가지 마.”

“……?”

“곁에 있어.”

그가 놓아주지 않아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는 계속 이대로 있을 순 없어서 그를 깨우기로 했다.

“각하.”

“…….”

부름에 깨어나지 않자, 그를 흔들면서 다시 불렀다.

“각하.”

“…….”

그래도 그는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 크게 불러야 하나?

나는 숨을 한 번 가다듬곤 밖에 있는 요한이 깜짝 놀랄 정도로 크게 불렀다.

“아빠!!”

그제야 페르시스는 눈을 번쩍 떴다. 악몽에서 막 깨어난지라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하아- 하아-”

곧 그는 네가 왜 여기에 있냐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붙잡힌 팔을 보여 주었다.

“갑자기 잡아서 놀랐어요. 놓아주세요.”

페르시스의 시선이 내 팔 쪽으로 내려갔다.

잡고 있는 줄 몰랐는지 그는 눈동자를 옅게 떨다가 천천히 놓아주었다.

얼마나 꽉 잡았는지 내 하얀 팔에 그의 손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그가 상체를 일으키곤 말문을 열었다.

“……여긴 왜 들어왔지?”

“원래 책 읽으러 자주 와요.”

지금은 책 읽으러 온 게 아니라 피신 온 거지만.

그는 다시 내 팔에 시선을 주었다.

“언제부터 잡고 있었지?”

“한 1분 전부터요.”

“잡자마자 깨운 건 아닌가 보군.”

“30초 정도 놀라서 굳어 있었어요.”

“…….”

하지만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30초든 30분이든 잡고 있던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닌 듯했다.

그는 무언가 묻고 싶은 게 있는지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참 만에 목소리를 냈다.

“……내가 잠꼬대를 하진 않던가.”

그는 고결한 자신의 입에서 그런 물음이 나왔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이 자는 사이에 우스운 꼴을 보이진 않았는지 알아야만 했다.

나는 사실 그대로 대답해 주었다.

“가지 마, 곁에 있어, 라고 하긴 했어요.”

“…….”

그리고 정곡을 찔렀다.

“우리 엄마 꿈이죠? 엄마가 그리운 거죠?”

“아니야.”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인하였으나 원작을 읽은 나로선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아니라니까.”

“저도 엄마가 보고 싶은걸요?”

원작에서 비체는 제국에서 제일가는 미인으로 묘사되곤 했었다.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실물로 보고 싶을 정도로.

“……난 아니라고.”

그의 어조에 슬슬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했음에도 나는 꿋꿋했다.

“맞든 아니든 악몽은 내년쯤 되면 서서히 안 꾸게 될 거예요.”

내년에 페르시스는 스텔라를 입양해서 비체를 잊게 되니까.

“그걸 네가 어떻게 확신하지?”

원작을 읽어서라는 소리는 절대 할 수 없기에 대충 핑계를 댔다.

“감이랄까……? 제가 감이 좀 좋거든요.”

“…….”

그가 더 할 얘기는 없는 듯 보여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곤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내가 등을 보이며 두어 걸음 나아가는 찰나.

“……포기해.”

그의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곤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돌아 다시 본 그는 어쩐지 무심하면서도 체념한 듯 보였다.

“네가 무엇을 증명하든 넌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없어. 그러니까 포기하고 고아원에 가.”

내 눈살은 그가 말을 미처 다 끝내기도 전에 찌푸려졌다.

무슨 얘기 하나 했더니만, 또 고아원에 가라는 소리야?

그는 알고 있을까? 내가 고아원에 가면 사기꾼에게 입양될 수도 있다는 걸. 노예로 팔려 다닐 수도 있다는 걸. 귀족 영애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애석하게도 그는 알 리가 없다. 그래서 고아원에 가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턱턱 올리는 그가 얄미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집에 있어야 해.’

나는 울컥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물어보았다.

“제가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으면 키웠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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