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마마, 정신이 드시옵니까?”
고통 속에서 깨어나 다시 고통 속에 잠드는 동안 세상은 정신없이 어두워지고, 또 밝아졌다. 주변이 밝아질 때면 텅 빈 배 속에 무엇이 들어찼는지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이대로 죽는 게 아닐까. 매일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연주는 남편의 얼굴이 그리웠다.
‘연랑, 어디 있나요?’
며칠째 돌아오지 않는 정엽을 생각하다 보면 하루도 빠짐없이 눈물이 샘솟았다. 산파들은 어디론가 아이를 데려간 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보여 주지 않고 있었고, 돌아와야 할 남편은 국경에서 소식이 없으니 눈물 마를 새가 없었다.
“어서 전하께 소식을 보내라. 우리 아이가 태어났다고. 아니, 내가 죽을 것 같다고…….”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 상궁을 붙들고 사정하던 연주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아이를 낳은 저보다 더 참담한 얼굴을 한 여자를 보노라면, 연주는 제 몸이 난도질당하는 것 같은 착각에 시달렸다.
죽음의 신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동정과 연민 가득한 시선을 받으며 연주는 하루라도 빨리 정엽이 돌아오길 빌었다.
“아실, 내 아이는 잘 있는 것이냐?”
“…….”
“그렇다고 말해 다오.”
“마마…….”
상궁은 차디찬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소리 없이 울었다. 세상 어느 누가 아이를 일곱 달 동안 품고 있던 임부에게 괴물이 태어났다고, 그런데 숨 한번 틔워 보지 못하고 죽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아…….”
응애- 응애- 응애-.
꿈속도 아닌데 어디선가 어린애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를 낳은 후 내내 자리를 보전하며 거동조차 못 하던 연주는, 그날부터 틈만 나면 미친 사람처럼 이불을 박차고 나가 아이를 찾으러 다녔다.
“연랑!”
그러기를 꼬박 열흘.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한다는 생각에 저택 곳곳을 헤매며 울부짖던 연주가 집으로 돌아온 정엽을 발견하고 휘청거리며 달려갔다. 놀란 듯 잠시 걸음을 멈춘 정엽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연주를 엉겁결에 받아 안아 주었다가, 금세 궁인들에게 넘기며 차갑게 명령했다.
“뭣들 하느냐. 왕비를 안으로 모시지 않고.”
행여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게 연주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궁인들은 정엽의 불호령에 부랴부랴 그녀를 부축해 침실로 데리고 갔다.
“나가라.”
“예, 전하.”
궁인들이 모두 물러나고 둘만 남은 침실. 지친 듯 침상에 걸터앉은 정엽을 향해 어기적대며 다가간 연주가 야윈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뚝뚝 떨궜다.
“아무도 내게 아이를 보여 주지 않아요.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아이를 어디로 데려간 거예요?”
“…….”
“어디 있느냐고 묻잖아요.”
“…….”
“우리 아이, 대체, 어디…….”
정엽의 손을 부여잡은 연주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말을 할수록 서러움이 복받쳐 결국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엽은 연주를 말없이 내려다보기만 할 뿐,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지도, 함께 울어 주지도 않았다.
“아이는 더 이상 찾지 마.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떠난 불효자식이니까. 아니, 그건 사람의 형상도 아니었으니 자식도 아니지.”
“……지금, 뭐라고 했어요?”
분명히 아이 울음소리를 들었는데. 내가 매일 그 소리를 찾아 돌아다녔는데 아이가 죽었다니. 게다가 사람의 형상도 아니었다니.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잖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젓던 연주가 멍한 눈으로 정엽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만 잊어. 처리는 다 끝났으니까.”
정엽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충분한 답을 얻지 못한 연주는 부서질 것 같은 몸을 일으켜 필사적으로 정엽에게 매달렸다.
“처리라뇨? 우리 아이를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묻었어.”
“네?”
“묻었다고, 땅속에.”
“어디, 어디에요?”
그 어리고 연약한 핏덩이를. 이 얼어붙은 땅에?
예상치 못한 대답에 충격을 받은 연주가 하얗게 질린 낯으로 되물었다. 정엽은 제 팔을 움켜쥔 연주를 뿌리치며 매몰차게 말했다.
“알려 주면. 가서 파내기라도 하게?”
“…….”
“정신 차려. 그런 괴물이 태어났다는 사실이 황궁에 알려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사내의 것도, 여인의 것도 아닌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죽어 있던 아기의 모습을 상기한 정엽이 치를 떨었다.
“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자식을 괴물이라고 부르다니. 잔혹한 언사에 놀란 연주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아내를 한심하게 내려다보던 정엽은 더는 못 들어 주겠다는 듯 홀연히 자리를 떴다.
쾅-! 매섭게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다시 연주 홀로 남았다.
아이가 없다니. 내 아이가 죽었다니. 망연자실해 텅 빈 눈동자에서 뒤늦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정엽은 한동안 연주를 찾지 않았다.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비의 비밀을 아는 자들을 모조리 색출해라.”
아이를 받은 산파부터 왕비의 해괴한 행동을 목격한 궁인까지. 연주의 해산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실이 있는 자들이 모두 짐을 싸 저택을 떠나기 시작했다.
사내아이도, 계집아이도 아닌 무엇. 변변치 못한 생명을 잉태한 것은 곧 하늘의 벌이나 마찬가지라. 특히나 황실에서 그런 불길한 존재가 태어났다는 것은 제국에 근심을 부르고, 왕과 황실의 체면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었다.
“남은 궁인이 몇이나 되느냐?”
“이제 열 명 남짓 남았사옵니다.”
“열 명이라…….”
그 많은 사람을 내보내고도 성에 차지 않은 것인가? 창 너머로 줄지어 저택을 떠나는 궁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연주가 한숨을 삼켰다.
정엽은 그를 미워하는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얻기 위해 평생 애써 온 사람이었다. 그러니 불길한 존재를 감추기 급급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좀처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자식인데…….”
“마마…….”
“어찌 자식을 썩은 과일 도려내듯 버릴 수 있단 말이냐.”
정엽을 비난하는 연주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아직 아이가 떠났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힘든데. 남편의 마음속에 변변치 못한 제 아이는 물론, 아내인 저마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아가…….”
하지만 연주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텅 빈 아랫배를 어루만질 때마다 되살아나는 상실의 고통에 눈물짓는 것. 주인 잃은 아기 옷과 신발을 끌어안은 채 아이와 함께 호흡하던 순간을 잊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것 외에는.
“마마, 너무 슬퍼 마시옵소서. 아기씨는 언제든 다시…….”
“정녕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럼요. 아직 두 분의 보령이 한창이시니 얼마든지 다시 잉태하실 수 있사옵니다.”
내게 필요한 건 태어나자마자 언 땅에 묻혔다는 그 아이뿐인데. 생길지 안 생길지조차 알 수 없는 미래의 아이가 아닌데.
‘이곳에는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구나.’
연주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슬퍼하면 슬퍼할수록 현실은 그녀를 매섭게 할퀴었다. 죽은 아이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아이는 다시 가지면 된다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위로를 들을 때마다 연주는 점점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가…….”
그렇게 울고, 울고. 또 울고.
연주가 매일 눈이 멀어 버릴 만큼 울다 지쳐 쓰러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정엽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병영의 군사들을 감독하고 백융(白戎)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목책을 살폈다.
단지 그뿐이라면 견딜 수 있었을까. 어쩌다 땀과 흙먼지에 찌든 몸으로 잠시 저택에 돌아올 때면, 정엽은 눈이 짓무르도록 울고 있는 연주를 침묵으로 비난하곤 했다.
이제 그만해. 그렇게 울면 지겹지도 않아?
연주는 남편이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아도 눈으로는 많은 얘길 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만약 그 시선이 칼이라면 그녀는 백 번, 천 번 살갗이 벗겨져 온몸이 피로 물들었으리라.
“마마, 제발 이것 좀 드셔 보시어요.”
“자꾸 이러시면 아기씨께서 더 슬퍼하실 거예요. 예?”
햇솜처럼 보드랍던 가슴은 넝마가 되고, 바다처럼 영롱하던 눈동자는 바위에 마모된 유리알처럼 퇴색된 지 오래다. 이런 몸으로 살겠다고 음식을 씹어 삼키면 무엇 하겠는가.
정엽의 벼린 시선과 질려 버렸다는 한숨이 쏟아질 때마다, 연주는 제 영혼 한구석이 마른 꽃잎처럼 바스락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정엽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시작된 열렬한 짝사랑이 그녀를 더는 불타오를 수 없는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물러가라.”
화를 낼 기력조차 없어 멀거니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정엽은 또다시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황성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어.”
“…….”
“반드시 제석 연회에 참석하라고 하시는군. 부황께서 그대에게 상을 내려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시려는 모양이야.”
상이라니. 아이를 지키지 못한 어미에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게다가 연주와 정엽은 지난겨울 황제의 노여움을 사 한수로 내쳐진 처지였다. 쫓겨난 처지에 상을 받는다니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체 폐하께 무슨 말씀을 올렸길래 제게 상을 내리신다는 거죠?”
이제는 남편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버거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던 연주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
“민가에선 그런 아이를 가리켜 반음양(半陰陽)이라고 한다던데.”
조곤조곤 흘러나오는 연주의 말마디에 사금파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러자 혼인 직후부터 줄곧 연주를 시중들어 온 상궁 아실이 대신 머리를 조아렸다.
“전하, 폐하께서 상을 내리신다니 기쁘기 한량없사오나 아직 왕비마마께서 몸을 푸신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사옵니다.”
“그래서?”
“산모와 아이는 삼칠일이 지나기 전에 절대 찬바람을 쐬면 아니 되는 법이옵니다. 게다가 지금은 한겨울이지 않사옵니까? 황성까지는 긴 여정이라 마마께서 견디지 못하실 것이옵니다.”
“그렇담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서둘러야지.”
“……예?”
날이 추워서 안 된다는데, 그래서 더 빨리 떠나야 한다니. 당황한 아실이 할 말을 잃고 왕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정엽은 무심한 얼굴로 대꾸할 뿐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야 따뜻한 곳에서 섣달그믐을 보낼 것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