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그 봄과 여름 사이(3)
엘리자베스는 우물우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 애가 시계탑에 꼭 가야 한다는데... 배도 없고... 그래서 언니가 준 회중시계를 사용했어요....”
‘혹시 언니가 화를 내면 어쩌지? 회중시계를 돌려 달라고 하면... 나랑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거나... 그런 건 싫은데.... 하지만 멋대로 회중시계를 써 버린 내가 나빴어.'
엘리자베스의 얼굴에는 걱정과 불안함, 그리고 미안함이 가득했다.
미미르는 엘리자베스와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토끼 같은 소년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차리고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그날이었구나!! 미안해, 일스, 연구에 집중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네.”
미미르가 손뼉을 짝 치며 받침대로 쓰고 있던 책 무더기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할아버지는 안에 계셔. 바로 안내해줄까?"
자리에서 일어난 소년은 옷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 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리지,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줄래? 금방 올게!”
미미르가 가볍게 허공을 손으로 휘젓자 무지개로 된 꽃과 나비가 엘리자베스의 눈앞으로 눈송이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참,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못 들었네.'
상관없으려나?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토끼처럼 하얀 소년의 손을 잡고 사라진 미미르의 등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금방 온다는 말과 달리 책 무더기에 기대어 낮잠까지 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미미르는 돌아오지 않았다.
무지개로 만든 꽃과 나비는 여전히 그녀의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이젠 조금 지겨워졌다.
엘리자베스는 기지개를 쭉 켜고 엉망이 된 머리를 가볍게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작저에서 지내던 자신에게 '너는 시계탑의 마녀와 친구가 되고 그 친구의 먼지투성이 카펫 위에서 뒹굴며 낮잠을 잘 거야'라고 말하면 과연 믿어 줄까?
키득키득 웃으며 엘리자베스는 옷에 달라붙은 먼지도 탁탁 털어 내고, 그녀가 써도 괜찮은 안전한 종이와 펜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지간한 어른보다 더 우아한 필체로 다음에 또 놀러 오겠다는 메모를 남긴 엘리자베스는 회중시계를 다시 사용했다.
슬슬 검술 수련이 끝난 레온하르트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검술 수련을 끝마친 레온하르트는 늘 엘리자베스와 함께 제법 푸짐한 간식을 먹곤 했다.
이 시간은 엘리자베스의 하루 중 조금 더 특별한 시간이기도 했다.
"베른 경!”
"레이디 엘리자베스, 어서 오십시오."
알베르트는 익숙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소녀를 반겨 주었다.
“레온은 어디 있나요?"
시계탑을 다시 들리느라 조금 늦은 탓인지 레온하르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기사인 알베르트에게 레온의 행방을 물었다.
알베르트는 엘리자베스에게 팔을 내밀었다.
그녀의 키에 맞추느라 조금 구부정한 자세였으나 매일 그녀를 에스코트하게 되면서 생긴 옷 주름은 알베르트에게 일종의 훈장과도 같았다.
“전하께선 지금 막 수련을 마치시고 옷을 갈아입고 계십니다. 오늘은 무얼하며 지내셨습니까?”
“잠시 시계탑에 다녀왔습니다. 참! 기사도에는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포함된다고 들었는데, 그럼 저도 기사인가요?"
알베르트는 눈만 깜빡였다. 기사들이 사용하는 창대보다 가느다란 손목을 가진 소녀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음... 어떤 도움을 주셨습니까?"
"시계탑으로 가야 하는데 배를 찾지 못해서 곤란해하는 사람을 도와줬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제법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의기양양하게 종알거렸다.
알베르트는 그런 그녀가 기특하고 또 귀엽게 느껴져 싱긋 미소를 지었다.
“좋은 일을 하셨군요. 레이디 엘리자베스는 이미 훌륭한 기사입니다.”
"어머, 정말인가요?"
엘리자베스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기사님들은 늘 단정한 모습에, 정중한 말투와 예의 바른 동작으로 자신을 어엿한 숙녀로 대해 주는 데다, 키도 크고, 하얀 제복도 잘 어울리고, 이미 결혼을 해 버렸고... 아니, 이게 아니라.
황궁에서 보아 온 기사들의 모습은 늘 엘리자베스에겐 동경의 대상이었다.
"리지?"
수련을 마치고 땀범벅이 된 몸을 젖은 수건으로나마 대충 닦고 새로 옷을 갈아입으려던 레온하르트는 알베르트의 안내를 받아 수련장 안까지 들어온 엘리자베스를 보자마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레온! 어머, 실례했습니다!"
그가 옷을 갈아입던 중인 것을 알아차린 엘리자베스는 한달음에 그에게 달려가려다 말고 밖으로 다시 뛰쳐나왔다.
“레이디 엘리자베스?"
“네, 네?"
눈앞에서 반쯤 벗고 - 혹은 입고 - 있던 레온하르트의 모습이 둥둥 떠다녔다.
땀에 흠뻑 젖은 머리칼,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늘 웃고 있느라 좀처럼 보기 힘든 냉정하게 가라앉은 제비꽃빛 시선, 아래로 살짝 처진 입매와 그림자를 따라 또렷한 선을 그리며 이마에서 턱까지 내려오는 옆얼굴까지.
잘 단련된 근육이 알맞게 자리를 잡기 시작한 그의 몸은 한눈에 보기엔 어린 티가 남아 있다 하기 힘들 만큼 듬직했지만 자세히 보면 아직 얇고 가느다란 선이 남아 있었다.
기사들의 말을 듣자 하니 정말로 소드 마스터가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레온하르트를 기다리며 소드 마스터가 된 그를 상상해 보았다.
어쩐지 동경의 대상마저 기사가 아닌 레온하르트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궁에서 먼저 기다리지 않고.”
"하지만 레온이 보고 싶었는걸.”
엘리자베스의 말에 레온하르트는 순간 대꾸할 말을 잃고 멍하게 그녀를 응시했다.
일기장을 통해 본 황후는 언제나 그를 보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절대 먼저 그를 찾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던 길에 잠시 스쳐 지나가거나 공식 행사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손을 맞잡는 사소한 행위에도 온종일 가슴 설레하는 어리석을 정도로 조용하고 수줍은 사람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먼저 자신을 보고 싶다고 말하고, 직접 찾아오기까지 한다.
“레온... 울어?”
"아아니야! 그냥...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빨리 돌아가자.”
내가 이렇게 감정 조절에 서툴렀던가?
레온하르트는 하여튼 사춘기 나이대 소년의 섬세하고 예민한 감정은 가다듬기 힘들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았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수고들 하게.”
알베르트는 손을 꼭 맞잡고 본궁으로 향하는 두 사람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어쩐지 올해 여름은 온갖 꽃이 유난히 예쁘게 피는 것 같더라니, 그 원인이 바로 저기 있었다.
* * *
오늘은 날이 따뜻하니 바깥에서 먹자는 레온하르트의 말 한마디에 가장 볕이 잘 드는 잔디밭 위로 붉은 체크무늬 피크닉 매트가 펼쳐졌다.
시녀들이 피크닉 바구니를 가져오길 기다리는 사이 레온하르트는 자리에 드러누워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그늘 아래로 따스한 온기를 품은 바람이 살랑살랑 느릿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웃는 얼굴로 지내는 일상이 어느새 자연스러워진 엘리자베스는 곁에 앉아 오늘 하루 무슨 일을 했는지 산새처럼 종알거리며 은방울꽃 향기가 나는 웃음을 터트리기에 바빴다.
이제 곧 주방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피크닉 바구니도 올 터였다.
천국이 있다면 지금 여기가 아닐까, 레온하르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자베스의 말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레온, 혹시 황궁에 손님이 오셨어?"
"손님?"
"응.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났거든. 레온이랑 키가 비슷하고, 이렇게 큰 책을 들고 있었고, 또....”
그 말에 레온하르트는 몸을 일으켰다. 짚이는 사람이 딱 하나 있었다.
“혹시... 토끼처럼 머리는 새하얗고 눈은 새빨간 남자애였어?"
"아는 사람이야?"
레온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저번 환영식 때 딱히 친구가 될 만한 아이들이 없던 것도 있고... 라기보단 친구 사귀기엔 조금 사건이 많았지. 그래서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서 직접 나와 네 친구가 될 또래 귀족 아이들을 선발해 궁으로 부르신댔어. 아마 그중 하나일 거야.”
시녀들이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둘 사이에 피크닉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왕골로 짠 바구니는 총 3단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각 층마다 어린아이의 소꿉놀이 세트처럼 조그마한 식기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정말 소꿉놀이를 위한 작은 식기였는데, 이젠 어엿한 어른들이 사용하는 식기가 바구니 속에 있었다.
정말로 자라긴 자랐구나 싶어 어쩐지 싱숭생숭한 기분에 레온하르트는 괜히 볼만 긁적였다.
푸른 바탕에 백금으로 당초 무늬를 그린 접시 위로 버터를 듬뿍 써서 구운 샌드위치와 김이 풀풀 나는 로스트비프, 하얀 크림 위로 딸기가 얹힌 케이크가 하나둘 자리하더니 피크닉 매트 위로 올라왔다.
흰 바탕에 속은 잔잔한 꽃무늬가 그려지고 테두리를 따라 금으로 장식한 찻잔에 밀크티 대신 잘 우려 낸 홍차를 채워 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시녀들은 다시 물러났다.
“그 머리 하얀 애 말이야.”
"응?"
샌드위치의 속 재료가 흘러내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한입 물고 있던 엘리자베스가 눈을 돌렸다.
레온하르트는 지금 이 말을 하는 게 옳은 걸까 잠시 고민하다, 어차피 알게될 거라면 미리 아는 편이 좋을 거라 결론을 내리고 말을 이었다.
“일리시스 엘디르얀 폰 페리안. 페리안 후작가의 후계자야.”
페리안 후작가라면 엘리자베스도 들어 본 적 있는 가문이었다.
"친하게 지내면 좋을 거야.”
엘리자베스는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느라 눈빛만으로 '왜?' 하고 질문했다.
레온하르트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 나는데 그때 그 애가 너를 어쩌고' 따위를 말하는 대신 한창 자아 성찰과 자신만의 철학에 빠진 질풍노도의 사춘기 소년이 할 법한 말로 답변했다.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며 벗이 잘못된 길을 가려 할 때 온몸을 내던져 막아 줄 이를 만날 기회는 인생에서 몇 번 없는 행운이지....”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들어 레온하르트는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잡고 알 수 없는 말을 종종 내뱉곤 했다.
“그런데 레온.”
“응?”
"당근 안 먹어?"
엘리자베스는 눈을 깜빡이며 레온하르트의 접시를 가리켰다.
햄버그스테이크가 있던 접시에 한쪽으로 곱게 모인 꽃과 토끼 모양으로 잘린 당근, 그리고 브로콜리만 남아 있었다.
"음식 남기면 나중에 죽어서 전부 섞어 먹어야 한다고 어머니가 그러셨는데...."
엘리자베스는 부러 말꼬리를 늘이며 레온하르트의 눈치를 살폈다.
"그... 그래? 그럼 지금부터 사탕이나 케이크를 남겨서 조금 더 맛있게 섞어 두는 편이 좋을까?”
“....설마 레온 당근 못 먹어?"
“못 먹기는! 누가 당근 따위를 못 먹는데? 안 먹는 거야!”
아차, 레온하르트는 제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못 먹는 것과 안 먹는 것 사이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가져간 순수하고 말간 눈으로 레온하르트와 시선을 마주했다.
“저는 황태자 전하가 무척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 그래?"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마워. 고마운데....
“그런 대단한 전하께서 당근을 안 먹는다니....”
“안 먹는 건 아니고, 먹으라면 먹을 수 있는데, 그러니까 리지, 내 말 좀 들어 봐...!"
"조금 실망스럽군요. 왜 그간 저보다 성장 속도가 더디셨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방긋 눈웃음을 지으며 레온하르트를 놀렸다.
그 모습에 레온하르트는 손에 쥐고 있던 나무 포크를 떨어트렸다.
멀리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시녀들이야 그런 그들이 마냥 사랑스럽고, 깜찍하고, 귀여워 기둥을 붙잡거나 서로 옆구리를 꼬집으며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었지만, 레온하르트에게 있어선 19년 인생 다시없을 위기 상황이었다.
“먹을 수 있어!”
“정말인가요?"
엘리자베스가 믿을 수 없다는 톤으로 말했다. 레온하르트는 보란 듯 새 포크로 꽃 모양 당근을 쿡 찍어 입 가까이 가져다 댔다.
“먹을... 수....”
그런데 생각과 달리 입이 열리질 않는다.
'이놈의 몸뚱어리가 미쳤나? 몸은 어린애라도 속에 있는 건 멀쩡한 성인이라고! 아무리 어린애 입맛에 당근이 맞지 않는다고 해도 성인이 당근을 먹지 못할 리 없는데!'
레온하르트는 뒷덜미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는 동안에도 엘리자베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와 시선을 맞추며 보란 듯이 냠냠냠, 토끼 모양으로 잘린 당근을 잘만 먹고 있었다.
“어휴, 안 되겠다. 황태자 전하, 잠깐 이리로 와 보시겠어요?"
“....리지 너 요즘 들어 되게 어른인 척 한다?”
레온하르트는 포크를 내려놓고 엘리자베스의 곁으로 조금 더 바싹 붙어 앉았다.
“자! 아- 해 보세요.”
엘리자베스는 레온하르트가 내려놓았던 포크를 집어 남아 있던 당근을 콕콕콕 전부 찍었다.
그리고 레온하르트에게 내밀었다.
레온하르트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이미 소화 과정까지 끝내 버린 당근을 그녀가 포크로 콕콕 찍어서 한 덩어리로 만들더니, '아- 하세 요' 같은 낯간지러운 소리와 함께 제 입으로 들이밀고 있었다.
'설마 꿈인가?'
그러나 코끝을 자극하는 햄버그 소스의 냄새는 이 상황이 절대 꿈이 아니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레온하르트는 단호한 표정의 엘리자베스와 저 멀리서 결국 주저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시녀 무리를 번갈아 보다 눈을 꾹 감고 입을 벌렸다.
"아이 착하다. 우리 황태자 전하 정말 잘 드시네~ 쑥쑥, 무럭무럭 자라시겠어요!"
"리지... 내가 너보다 두 살은 더 많거든?"
꿀꺽. 몇 번 씹지도 않고 억지로 넘긴 당근의 맛은 어린애를 넘어 청소년의 입맛에도 역시 맞지 않았다.
과일을 통째로 갈아 만든 주스로 입가심을 한 레온하르트는 황당하단 투로 엘리자베스를 노려봤다.
엘리자베스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까르륵 웃기만 할 뿐이었다.
'살다 보니 황후께서 먹여 주시는 당근도 먹어 보고....'
이렇게 상냥한 사람인데. 다정하고, 순수하고, 웃을 때면 한순간 주위에서 수선화가 무더기로 만개하듯 밝은 사람인데 왜 나는 그걸 몰랐던 거지?
레온하르트는 다시 자신을 자책했다. 엘리자베스는 레온하르트를 인형 대신 삼아 소꿉놀이를 하듯 당근에 이어 불에 살짝 그을린 브로콜리도 먹이려고 하고 있었다.
'내가 이걸 먹을 자격이 있을까?'
엘리자베스가 계속해서 웃을 수 있게 정말 어린아이인 양 순순히 입을 벌리고, 싫은 걸 억지로 먹는 척 몇 번 씹어삼키고, 표정을 찌푸리며 주스를 찾는 제 모습이 한순간 역겹게 느껴졌다.
"레온?"
레온하르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엘리자베스는 의아해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억지로 야채를 먹여서 화가 난 걸까?
“미... 미안해, 야채를 그렇게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억지로 먹여서 화났어...?"
“응? 아, 아니. 아니야. 내가 리지 너에게 화낼 일이 뭐가 있다고. 아! 평소엔 그렇게 싫던 야채였는데 리지가 먹여 주니 굉장히 맛있네!"
레온하르트는 어색하게 웃으며 애써 시무룩해진 엘리자베스의 시선을 피했다.
“참, 최근 황후마마께서 그러셨는데...."
“어마마마께서?"
황후께서 바다에 가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는 엘리자베스의 말에 레온하르트의 눈빛이 날카롭게 가늘어졌다.
바다? 갑자기 바다는 무슨 일로 가고 싶다 하신 거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레온하르트는 허겁지겁 남은 야채들을 억지로 입에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