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재회(4)
“...여름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초록빛에 가까울 정도로 파아란 순간을 아시나요?”
"본 적 있어.”
“그런 색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건 부모님껜 비밀입니다! 부모님은 제가 하얀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하얀색을 가장 좋아해야 합니다.”
“...이제부턴 아니야.”
"네?"
뭐가 아니라는 거지? 내가 황태자 전하의 약혼녀가 아니라는 것? 아니면 파란색을 좋아해선 안 된다는 말씀일까?
레온하르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딱딱한 말투가 대체 어딜 봐서 여덟 살 어린애가 쓸 말투라는 건지.
“영애께선 영애의 눈동자 색과 같은 푸른빛을 좋아하신다는데, 이 방에 그런 색이 조금 부족한 것 같군.”
단순한 의견일 뿐일세. 레온하르트는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그러나 엘리시움 공작은 그 말속에 숨겨진 뜻을 이해하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약혼식도 올리지 않은 이름뿐인 사위 주제에 감히 처가의 가풍에 대해 왈가왈부하다니...! 라고 분노하기엔 눈앞에 있는 어린 사위는 황태자였다.
“...고견 감사합니다.”
"영애께서 몸이 다 나으시면 다시 만나러 오겠네.”
엘리자베스는 침대에서 훌쩍 뛰어내리는 레온하르트의 옷자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손은 레온하르트의 옷자락을 스쳐 지나갔다.
대신 그녀의 손에 잡힌 것은 레온하르트의 손이었다.
“부디 다음에 올 땐 건강을 회복하시길 빕니다.”
엘리자베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난 약혼자의 손은 무척 크고, 따스하고, 마치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존재를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처럼 단단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어떠셨나요?"
유모의 질문을 시작으로 시녀들의 시선이 한데 몰렸다. 레온하르트는 유리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볼을 긁적였다.
“돌아가는 길에 구두 한 켤레만 사서 가지.”
시녀들의 꺄아, 하는 소리가 마차를 떠들썩하게 채웠다.
레온하르트는 그런 그녀들을 뒤로한 채 엘리자베스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우선 그녀를 공작저에서 빼내오는 일이 가장 급해 보였다.
그녀를 저 상태로 약혼식까지, 그리고 황태자비로서 정식으로 궁에 들어올 때까지 방치했다간 분명 똑같은 비극이 반복될 것이 뻔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저 공작저에서 그녀를 데려오고 싶지만....’
최소한 열 살은 넘어야 정식으로 약혼식을 올릴 수 있을 텐데.
서로의 나이를 계산해 보던 레온하르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사이 마차는 제국에서 제일가는 장인의 구두 공방에 도착해 있었다.
'무슨 여자들은 신발 종류가 이렇게 많아?'
공방에 도착한 레온하르트의 첫 감상이었다.
궁정 연회, 봄맞이 야유회, 무도회, 저녁 만찬용, 티 파티, 다시 무도회를 위한 댄스 연습용 신발, 여행용 부츠와 평상시에 신는 부츠까지.
테이블 위로 구두 상자가 탑처럼 쌓였다.
“어린 레이디들 사이에선 역시 굽 높은 신발이 인기 있지요. 조금이라도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다는 어린 레이디들의 요구에 맞춰 저희 공방에선 아무리 굽이 높아도 발이 불편하지 않도록....”
레온하르트는 점원의 말을 가로막으며 고개를 내저으며 직접 장인을 불렀다.
황태자께서 직접 공방을 방문하셨다는 말에 작업복조차 벗지 못하고 부리나케 달려왔더니 대뜸 첫 마디로.
'여덟 살 영애에게 어울리는 걸로 전부 가져와.’
라고 말한 도도한 태도의 소년은 지긋지긋하단 표정으로 상자 속 신발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높으신 분들을 상대하는 데는 도가 튼 장인이 가늘게 눈을 뜨며 다른 상자를 꺼내 왔다.
그러고 보니 황태자 전하도 올해 열 살이라던가? 장인은 그가 마음에 드신 영애라도 만난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슬쩍 웃었다.
황태자 또래 나이의 손주 녀석도 요즘 들어 유난히 여자아이들을 위한 구두를 눈여겨보거나 친구의 일인 양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에게 어떤 구두가 어울릴지 그에게 상담하던 차였다.
장인은 사내놈들이란 신분과 나이를 막론하고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가장 중요한 것을 질문했다.
“전하. 신발을 신으실 영애의 구두 사이즈는 혹시 알고 계십니까?"
“그야 당연히....”
당연히... 모른다.
레온하르트는 자신의 손바닥을 쭉 펴 보이며 대충 이 정도, 라고 설명하려다 어린아이의 손으로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했다.
“영애께서 저희 공방에 들리셨다면 그때 떠 놓은 본이 있을 겁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영애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엘리자베스 이졸데 폰 엘리시움.”
장인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제국에서 제일가는 공방인 만큼 엘리시움 공작 또한 그의 손님 중 하나였다.
그녀의 구두를 만들던 도제들은 하나 같이 대체 여덟 살 아이에게 이런 걸 어떻게 신고 걸으라는 거냐며 투덜거리고 혀를 찼다.
설마 그 부모에 이어 이젠 황태자 전하까지 그런 신발을 신기려는 건 아니겠지?
장인은 혹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서든 황태자를 말리겠다는 심정으로 그녀의 구두 본을 꺼내 주었다.
“....작아.”
“예?”
“우스울 정도로 작다고, 정말 그녀의 발 크기가 맞는 건가? 겨우 이런 발로 걸을 수는 있냐는 말이다.”
“...전하께서도 그리 별다를 것 없는 사이즈를 신고 계십니다만... 영애의 나이에 맞는 평균 정도의 크기입니다.”
레온하르트는 제 발을 내려다보고 얼굴을 붉혔다.
지금의 자신은 열 살 꼬맹이에 불과했다.
꼬맹이가 꼬맹이의 신발을 보고 작네 어쩌네 하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레온하르트는 헛기침을 하며 장인에게 몇 가지 조건을 주문했다.
“가벼워야 해. 굽은 아예 떼 버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높은 굽의 구두를 신으면... 예에?"
"그러니까 그 빌어먹을 망할 굽을 떼라는 말이다! 어린애가 걷고 뛸 수 있도록 편안한 재질로 만들어. 용의 가죽이든 뭐든 좋으니 제대로 이 땅을 걸을 수 있도록!"
전혀 예상치 못한 황태자의 반응에 장인은 눈만 껌뻑이다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굽이 없는 신발이라... 알겠습니다.”
"보석 장식 따윈 필요 없으니 무조건 가볍게 만들어. 그렇지, 차라리 자수 장식이 낫겠군.”
“자수 말입니까? 비단 바탕에 자수... 봄에 어울리는 사랑스러운 구두가 되겠군요. 원하시는 문양이나 문구는 있으십니까?"
자신을 내려다보며 히죽 웃는 장인을 쏘아보며 레온하르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신발을 만들 재료야 장인들이 알아서 할 테니 무조건 최고급을 고집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수, 자수라....
최고급 재료에 어울리는 가장 훌륭한 문구나 문양이 뭐가 있을까. 레온하르트는 작은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푸른 물망초를 수놓아 줘."
"물망초...? 허헌. 전하께서도 제법 낭만을 아시는군요.”
“그, 그런 건 아닐세! 그냥... 영애께서 푸른색을 좋아하신다 하였기에....”
“푸른 꽃이라면 다른 꽃도 있고, 원한다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푸른 장미도 새길 수 있을 텐데요?"
장인이 계속해서 히죽히죽 웃으며 레온하르트를 떠보았다.
레온하르트는 이 이상 말을 걸면 죽여 버리겠다는 눈으로 장인을 노려봤다.
어이쿠 무서워라, 장인은 과장되게 무섭다는 태도로 몸을 사렸다.
레온하르트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손등으로 식히며 인상을 찌푸렸다.
'푸른 꽃이라면 물망초밖에 생각나지 않아서 그랬을 뿐이다. 절대 나를 잊지 말라느니, 그런 뜻으로 말한 것도 아니고, 그냥 단지... 단순히 그녀가 푸른색을 좋아한다니까. 그래서 그랬을 뿐이야.'
레온하르트는 자신을 열심히 속으로 변명했다. 어쩐지 가게 안의 직원들을 포함해 모두가 자신을 놀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황궁으로 돌아온 레온하르트는 그 길로 책상으로 달려가 종이를 꺼내 들었다.
[인셍계획표]
'이런 젠장! 어린애 손으론 글씨조차 제대로 못 쓰는 건가?'
틀린 철자 위에 벅벅 선을 긋던 레온하르트는 새 종이를 꺼내 다시 [인 '생' 계 획 표]라고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다.
모든 감각이 아직 성인의 것 그대로인데 몸만 어린애의 것에서 오는 위화감은 아무래도 한동안 자신을 괴롭힐 것 같았다.
아무리 그가 젊은 나이에 황제가 되어 그럭저럭 훌륭하게 국정을 운영했다해도 어린 시절의 하루하루를 전부 기억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왜 벌어지는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돼.’
레온하르트는 잠시 고민하다 왼손으로 펜을 쥐고 뒤집힌 모양의 철자로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끼쳤던 큼직한 사건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X월 X일, 황후와 첫 만남.]
[X월 X일, 황후와 약혼식을 올리다.]
[X월 X일, 어마마마 사망.]
레온하르트의 펜이 잠시 멈췄다.
그의 반평생을 그림자 속으로 밀어 넣었던 사건 앞에서 그는 한참을 고뇌했다.
만약 이 비극을 막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자신은 물론 아바마마와 엘리자베스 또한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레온하르트는 입술을 꾹 깨물고 마저 기억 속 사건들을 적기 시작했다.
거울로 비춰 보지 않으면 뜻을 알 수 없는 낙서로 보이는 데다 어린애 특유의 서툰 글씨체 덕분에 더욱 완벽해진 암호문 몇 장이 완성됐다.
한참 동안 그것을 노려보던 레온하르트는 책상 서랍의 바닥을 슬쩍 들어내고 그 아래에 종이들을 숨겨 놓았다.
다음 날 황태자의 침소를 담당하던 메이드는 아직 획이 뻗쳐 있는 글씨체로 적히다 말고 그 위에 마구 선이 그어진 종이 뭉치를 발견했다.
“어머나?"
"이것 좀 봐. [인셍 계획표]라는데?"
“우리 황태자 전하께서 언제부터 이 런 귀여운 구석이 있으셨지?"
* * *
엘리시움 공작으로부터 초대장이 날아왔다. 레온하르트는 답장을 쓰는 대신 그 길로 공작저로 향했다.
여전히 어느 정도로 손에 힘을 줘야 할지 몰라 획이 삐끗하는 일이 잦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이젠 작은 손발이나 곱상한 귀공자의 얼굴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어른들이나 쓸 법한 어려운 단어나 말투에서 혹시 누군가 의심하진 않을까 걱정했으나 그것 또한 기우였다.
사람들은 황태자가 드디어 철이 들었다며 치켜세우기에 바빴다.
'어린 시절의 내가 조금 망나니처럼 굴긴 했지만 이건 너무하는군....'
다시 엘리시움 공작저로 가는 날, 몰라보게 의젓해지셨다는 유모의 칭찬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레온하르트는 생각했다.
그녀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에 레온하르트는 밤새 잠들지 못하고 넓은 침대를 뒤척였다.
준비한 선물 말고 또 뭔가 가져가는게 좋으려나? 가는 길에 파란 수국을 사 갈까? 아니면 인형을 사 갈까? 공작은 과연 내 충고를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걱정과 설렘에 결국 동이 트는 것을 본 뒤에야 겨우 잠이 들었던 참이었다.
덕분에 마차 안에서 유모의 품에 안겨 달게 한숨 자고 일어나자 공작저에 도착해 있었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공작저는 여전히 신전처럼 새하얗고 고고한 자태로 그를 맞이했다.
이번에는 공작 대신 공작가의 집사가 그를 마주했다.
레온하르트는 공작과 형식적인 인사말을 주고받곤 그 길로 엘리자베스의 방으로 향했다.
공작이나 공작 부인은 유모와 시녀들이나 상대하라지.
지금 자신이 집중해야 할 상대는 오직 엘리자베스 그녀뿐이었다.
“영애, 들어가도 되겠나?"
"드, 들어오세요!”
엘리자베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다녀가신 뒤 부모님은 온통 새하얗던 방에 푸른 물건을 하나둘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꿈 같은 일이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신발장에는 굽 낮은 신발이 하나둘 보란 듯 자리를 차지했고, 오늘 아침에는 믿을 수 없는 일마저 벌어졌다.
평소처럼 침대 기둥을 붙잡고 ‘흡!' 하며 메이드가 코르셋을 조이는 것을 각오하던 엘리자베스는 한참이 지나도 메이드가 코르셋을 조이지 않자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유리 인형처럼 차갑고 우아한 태도로 메이드가 충분히 코르셋을 조이는지 감시하던 어머니께서 메이드의 팔을 부채로 저지하고 계셨다.
“...황태자 전하께 어울리는 레이디가 되도록 하세요.”
이런 일은 처음 코르셋을 입은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 * *
문이 열리고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자신을 '걱정'해 주던 눈빛은 여전히 슬퍼 보일까? 엘리자베스는 무엇보다 그것이 가장 신경 쓰였다.
황태자는 품에 작은 상자를 안고 있었다. 다행히 눈빛을 보아하니 더 이상 그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달라진 방의 모습을 가볍게 한 바퀴 둘러본 그는 탁자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자신에게 손짓했다.
엘리자베스는 얌전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푹신푹신한 카펫이었지만 굽 높은 구두를 신은 발이 벌써부터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네 거야.”
그렇게 말하며 레온하르트는 상자를 열었다.
흰 바탕에 푸른 리본으로 묶여 있던 상자가 열리고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가 이어졌다.
엘리자베스는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한껏 까치발을 들었다. 그러나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자 울상을 지었다.
'나도 전하처럼 빨리 크고 싶다....'
본격적인 성장기가 찾아오기 전까진 꾸준히 또래보다 키가 작았던 레온하르트가 알았다면 쓴웃음을 지을 생각을 하며 엘리자베스는 얌전히 그가 상자에서 '내 것'이라고 말한 물건을 꺼내는 것을 기다렸다.
그가 꺼내 보인 것은 한 켤레의 구두였다. 하얀 실크 바탕에 수놓인 이름 모를 푸른 꽃이 무척 아름다웠다.
레온하르트는 이어서 구두를 뒤집어 보였다.
'어?'
“전하. 혹시 구두 장인이 실수를 한 걸까요? 이 구두에 굽이....”
“없지.”
무뚝뚝하게 한 마디 툭 내뱉으며 레온하르트는 엘리자베스를 의자에 앉혔다.
“잠시 실례하겠네.”
“꺅! 전, 전하!”
레온하르트는 주저 없이 엘리자베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높고 새된 비명에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하얀 실크 스타킹에 감싸인 발은 역시나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할 만큼 굽이 높은 구두가 신겨져 있었다.
“전하,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놓아 주셔요. 네? 전하. 전하!"
“쉿. 조용히... 얌전히 있으면 금방 끝날 거야. 응?”
젠장, 나는 지금 어린애의 몸으로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레온하르트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엘리자베스의 신발을 벗겨 냈다.
꼭 파렴치한이 된 기분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슬쩍 올려다본 엘리자베스는 완전히 울상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얌전히 있으라니 얌전히 있어야 하는데 몸의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주먹을 꼬옥 쥐고 어떻게든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었다.
레온하르트 황태자 전하께서 무거운 구두를 벗겨 내더니 당신의 무릎 위로 자신의 발을 올려놓았다.
엘리자베스는 오늘 신은 스타킹이 충분히 두꺼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굽 높은 구두는 발가락 끝으로 체중을 몰리게 했고, 그 덕분에 그녀의 새끼발가락은 완전히 뒤틀린 지 오래였다.
그런 보기 흉한 모습을 황태자 전하께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엘리자베스가 숨만 겨우 내쉬는 사이 레온하르트는 자신이 가져온 구두를 다시 신기고 직접 리본을 묶어 주었다.
반대쪽 발까지 구두를 신겨 준 레온하르트는 흡족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서 봐.”
엘리자베스는 의자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