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화
* * *
TA 건설 대표실.
둔탁하게 울리는 노크 소리에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세헌이 입을 열었다.
“들어와.”
그 소리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도윤을 향해 그가 작게 실소를 터트렸다.
“많이 좋아졌네. 노크하고 기다릴 줄도 알고.”
“…나 애완견 아니다.”
질색하는 얼굴로 도윤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안 떨려?”
“뭐가.”
“서하 씨, 곧 출산이잖아. 예정일이 이번 달 말이지?”
신혼 생활을 더 즐기고 싶던 세헌의 바람과는 무색하게 1년 만에 서하는 임신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서하를 닮은 아이가 나온다면 그마저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는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서하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던 그였지만 출산이 다가올수록 세헌은 점점 차분해졌다.
“응.”
덤덤한 얼굴로 세헌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야, 안 떨려? 천하의 우세헌이 긴장하는 모습 좀 보고 싶었는데.”
안 떨릴 리가. 조산기가 있어서 예정일보다 일찍 나올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하루하루가 불안한 세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온종일 서하의 옆에 붙어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기에 세헌은 밖에 있을 때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내가 떨면 서하가 더 불안해질 테니까.”
세헌의 작은 중얼거림에 도윤이 의외라는 듯 입을 열었다.
“오…. 우세헌.”
“시끄러워. 결재 서류 주고 나가.”
“칭찬해줘도 뭐라고 하지.”
도윤이 그를 향해 결재판을 내밀던 찰나 요란하게 벨소리가 울렸다.
책상 위에 올려진 휴대폰을 집어 든 세헌의 표정이 환해졌다. 서둘러 귓가로 휴대폰을 가져다 댄 그가 목소리를 냈다.
“응.”
-세헌… 씨.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서하의 목소리에 미소를 지은 것도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의 표정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무슨 일이야.”
-병원 가야 할 것 같아요.
그 소리에 세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양수가 터졌어요…. 지금 병원 가려고….
“갈게. 지금 당장. 10분, 10분이면 도착해.”
양수가 터졌다는 그녀의 말에 세헌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부르는 도윤의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두 다리는 저절로 움직였고 정신을 차려보니 차 안이었다.
“후.”
핸들을 잡은 손이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그가 엑셀 위에 올려둔 발에 힘을 주었다.
집 앞에 다다랐을 무렵 차창 앞 유리로 보이는 서하의 모습에 세헌이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운전석 문을 박차고 나왔다.
“서하야.”
“세헌 씨….”
“괜찮아.”
배가 잔뜩 부른 그녀를 다독이며 서둘러 차에 태운 그가 다시금 운전대를 잡았다. 이윽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서하는 바로 분만실로 향했다.
분만실로 이동하는 동안 세헌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산모님, 옷 갈아입고 누워 주세요!”
간호사의 말에 따라 서하가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눕기 무섭게 진통은 시작됐다. 간헐적으로 시작되던 진통은 점차 그 강도가 세졌고, 서하도 더욱 고통스러워했다.
“아으으윽….”
입술을 짓이겨가며 신음을 참아내는 그녀를 바라보는 세헌의 표정이 덩달아 일그러졌다.
몇 시간째, 서하가 진통으로 괴로워하고 있었지만, 세헌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서하의 손을 잡은 채 애타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밖에 없었다.
“서하야.”
“하으으윽….”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세헌은 무력감까지 느끼는 중이었다.
“…서하야.”
거칠게 호흡하는 서하의 얼굴 위로 산소호흡기가 씌워졌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세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산모님이 과호흡이 오신 것 같습니다. 호흡이 거칠고 아기 심박수도 떨어지고 있어요.”
“과호흡이면 위험한 거 아닙니까?”
굳은 얼굴로 묻는 세헌을 향해 의사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수술, 하시는 게 어떨까요.”
수술이라는 말에 그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수술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입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계속 이 상태로 가다가는 산모와 아이 둘 다 위험해질 수 있어요.”
“뭐든 좋습니다. 산모 생명에 지장만 없게 해주세요.”
서하만 괜찮아진다면 뭐든 상관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술 진행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의사의 말에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서하가 누워 있는 침대가 움직이자 그 뒤를 따르던 세헌을 향해 간호사가 말했다.
“보호자분은 잠시 수술실 밖에서 대기해 주세요.”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알려주세요.”
“네. 아이 나오면 불러드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앉아 계세요.”
간호사의 말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수술실 밖을 서성이던 세헌은 자신을 찾아온 도윤을 마주했다.
“서하 씨는? 수술 들어갔어?”
초조함이 서하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세헌의 옆에 도윤이 털썩 앉았다.
“회장님께는 내가 전달했어. 서하 씨 아버님께도 내가 연락드렸고.”
서하만 생각하느라 미처 가족들에게 연락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세헌은 도윤을 향해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걱정하지 마.”
“응.”
애써 덤덤하게 답했지만, 세헌은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답답한 듯 분 단위로 시계를 확인하던 순간 분만실 안에서 희미하게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 이거 아기 울음소리 맞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묻는 도윤을 보며 그가 홀린 듯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는 것 같은데.”
그때였다. 분만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서하 씨 보호자분?”
심각한 얼굴로 자신을 부르는 간호사를 보자 세헌은 뭔가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접니다. 산모는 괜찮습니까?”
세헌의 물음에 간호사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만…. 현재 산모님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자궁 출혈이 심해서 수혈하고 있으니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서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출혈이 심하다니. 누군가 자신의 심장을 쥐고 바닥까지 끌어 내리는 것 같았다.
“빠르게 읽어 보시고 밑에 서명 부탁드릴게요.”
간호사가 내민 종이를 받아든 세헌의 두 눈동자가 크게 진동했다. 자궁의 동맥을 막아 출혈을 막는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읽어내리던 세헌이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최악의 상황이면…. 산모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겁니까.”
“…최악의 상황이라면 그렇지만 그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으니 괜찮을 거예요.”
빠르게 동의서에 서명을 한 그가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산모만 괜찮으면 됩니다.”
아기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세헌은 오직 서하만 생각했다. 그녀가 없으면 모든 것은 다 무의미했으니까.
서명을 받아든 간호사가 다시금 분만실로 들어가자 그의 양손이 저절로 모였다.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간사하게도 세헌은 온갖 신들을 찾았다. 서하에게 아무 일도 없게 해달라고.
이렇게까지나 마음을 졸인 적이 있었던가.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일 초가 그에게는 마치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초조하게 분만실의 문만을 바라보던 세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분만실 문을 열고 나오더니 입을 열었다.
“진서하 씨, 보호자 분?”
“네.”
세헌이 바짝 메마른 입술을 축이며 의사의 말을 기다렸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출혈도 멈췄고요.”
그 말에 세헌은 옥죄던 가슴이 탁 뚫리는 것을 느꼈다.
“산모는 언제 나옵니까.”
“지금 회복실에서 쉬는 중입니다. 잠시 안정을 취한 뒤 병실로 옮겨질 겁니다.”
“감사합니다.”
의사가 다시 분만실로 들어가자 그가 안도의 숨을 터트렸다.
“하.”
다리 힘이 풀린 듯 분만실 앞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세헌을 보며 도윤이 말했다.
“이럴 때가 아니야. 병실 가서 서하 씨 기다려야지.”
이렇게까지나 동요하는 세헌의 모습을 본 건 도윤도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던 세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위태로울 정도로 불안해 보이는 그의 어깨를 도윤이 두어 번 토닥였다.
“우세헌.”
그제야 초점 없던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가서 기다려야지.”
정신을 차린 듯 세헌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