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 * *
창으로 쏟아지는 달빛이 어두컴컴한 방 안을 은은하게 밝혔다. 그 달빛을 맞으며 세헌은 심각한 얼굴로 고뇌하고 있었다.
프러포즈. 백화점에서 집에 올 때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그의 머릿속에는 프러포즈라는 한 단어만 가득 차 있었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손등 위로 턱을 괬다.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세헌에게는 더욱 어려웠다. 어떻게 하면 서하가 좋아할지를 먼저 생각해 봤지만 좀처럼 쉽게 답은 나오질 않았다.
그동안 봐왔던 영화에서 나온 프러포즈라던가 남들이 다하는 프러포즈는 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서하만을 위한 프러포즈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반지를 산 뒤로부터 며칠 동안 밤새워 고민을 해봐도 답이 쉽게 나오질 않았다.
“프러포즈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오죽했으면 도윤에게 도움을 청할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자신이 더 신나서 날뛸 도윤을 생각하자 세헌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내가 직접 생각하는 게 좋겠지.”
답답한 마음에 술이 당겼다. 답답한 속을 달래기 위해 와인병과 잔을 챙겨온 그는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이렇게까지나 프러포즈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서하는 알지 못할 것이었다.
“후.”
세헌은 최대한 자신답게 서하에게 프러포즈하고 싶었다. 그 어떤 수식어나 꾸밈도 필요 없이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녀라면 그것을 더 좋아할 테고.
“그래.”
그의 입술이 포물선을 그렸다. 긴긴 고뇌 끝에 드디어 답을 찾았다는 것처럼.
“타이밍만 맞추면 돼.”
때마침 샤워를 마친 서하가 욕실 밖으로 나오자 앉아 있던 세헌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물이 너무 따뜻해서 잠들 뻔한 거 있죠.”
살짝 상기된 얼굴로 서하가 웃어 보였다. 촉촉하게 물기 어린 그녀의 모습을 보자 그의 눈동자가 열기에 휩싸였다.
당장이라도 그녀가 입은 가운을 벗겨버리고는 새하얀 살결에 얼굴을 묻고 싶었다. 자신과 똑같은 바디워시 향과 그녀의 살 내음이 섞인 향은 미치도록 달았으니까.
“세헌 씨?”
자신을 부르는 서하의 목소리에 그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욕망과 정욕이 뒤섞인 제 음험한 속내는 그녀가 알면 안 됐다. 세헌이 조금 전 자신이 가져온 와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와인 마실 건데.”
“아, 나도 마실래요.”
그녀가 마실 줄 알았다는 듯 테이블 위에는 와인 잔이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세헌이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빼내고는 잔에 부었다. 짙은 포도 내음이 물씬 풍기자 서하가 홀린 듯 그를 향해 걸어갔다.
“향이… 너무 좋네요.”
그가 서하를 향해 잔을 내밀었다.
“마셔 봐.”
그 말에 잔을 받아든 그녀가 조심스럽게 와인 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통통하게 여문 서하의 연분홍색 입술이 와인에 닿아 붉은빛으로 변하자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던 세헌의 눈동자가 들끓었다.
꿀꺽. 그녀의 입술 사이로 살짝 보이는 혀가 세헌을 미치게 했다. 입술보다 조금 더 진한 분홍색 혀는 이내 그녀의 아랫입술을 슬쩍 핥고는 쏙 들어가 버렸다.
당장이라도 그 혀를 베어 물고 괴롭히고 싶었다.
서하의 입술을 따라 목선을 훑던 세헌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그녀에게 다가갔다. 낚아채듯 서하의 손에서 와인 잔을 빼앗은 그가 잔에 남아있는 와인을 벌컥 들이마셨다.
“아…….”
“왜.”
“더 마시고 싶은데…….”
“더 줄게.”
그가 자신의 잔을 들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그다음 벌어질 일을 아는 것처럼 그녀가 세헌을 향해 바짝 다가섰다.
세헌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로 향했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은 곳으로 붉은색 와인이 흘러내렸다.
와인과 함께 두 사람의 혀가 진득하게 얽혔다. 쌉싸름한 맛은 어느새 달콤하게 바뀌어 버린 지 오래였다.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서하를 빤히 내려다보던 그가 손을 내려 그녀의 입가에 흘러내린 와인 자국을 천천히 쓸어 올렸다. 그러고는 손에 묻은 와인을 혀로 할짝대며 말했다.
“왜 이렇게 달까.”
그 말을 끝으로 세헌이 고개를 숙이자 그녀의 코끝에 그의 체향과 함께 와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와인 말고, 진서하 말이야.”
“아…….”
서로의 코끝이 닿을락 말락 하는 거리, 눈을 내리깐 그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오늘은 잠들지 마.”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할 게 많으니까.”
느릿하게 내려앉는 눈꺼풀과 함께 그의 입술이 벌어졌다.
부드럽고도 뜨거운 혀끝이 서하의 입술을 갈랐다. 입 안으로 침범한 혀는 그녀의 숨을 빼앗아 버렸다.
“하으…….”
다시금 서하의 입술을 머금은 그가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침대 위에 눕혀진 서하의 위로 달빛이 쏟아졌다. 나른한 그의 시선이 서하의 새하얀 나신을 천천히 훑었다.
사랑이 담긴 행위는 그가 서하의 온몸 구석구석을 소중한 듯 입을 맞추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그녀는 세헌이 주는 아찔한 감각의 달뜬 숨을 내뱉어야 했다.
그의 기다란 손가락이 서하의 가슴께부터 배까지 느릿하게 쓸자 새하얀 살결이 작게 떨렸다.
“이렇게 새하야니까…….”
세헌이 그녀의 귓가에 나직하게 속삭였다. 숙여 속삭였다.
“온몸 가득 자국을 만들어주고 싶잖아.”
그 짓궂은 속삭임에 서하의 몸이 바짝 긴장했다. 긴장감에 바짝 선 솜털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던 세헌이 그녀의 입술을 베어 물었다.
숨을 쉬기 위해 벌린 입술 사이를 놓치지 않고 들어온 혀가 깊숙하게 제 존재를 각인시켰다. 탐닉하듯 입 안을 휘젓고는 송아의 혀를 감아올리는 그의 움직임에 따라 절로 그녀의 몸이 움찔거렸다.
달뜬 숨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서하는 그저 세헌이 주는 숨을 헐떡이며 받아 마실 뿐이었다. 길고 강렬했던 키스가 끝나고, 서하는 몽롱해진 정신으로 그의 목에 손을 감았다.
“하아…….”
타액에 젖어 반들거리는 입술로 제 이름을 부르는 서하를 보자 그의 하복부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다리 사이로 단단한 세헌의 허벅지가 자리를 잡았다.
세헌이 손으로 그녀의 봉긋한 둔덕을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부드럽게 손에 찬 여린 살이 그의 정신을 더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가 입술을 내렸다. 그러자 고요한 적막 속에서 살갗을 탐닉하는 민망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음을 내지 않으려고 해도 전해지는 아득한 쾌감에 그녀의 입에서는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아.”
허벅지를 움켜쥐는 그의 손에서 열감이 느껴졌다.
“진서하.”
눅눅하고도 거친 그의 목소리에 서하의 하복부가 바짝 달아올랐다.
“잠깐…. 하읏.”
“왜 이렇게 예뻐.”
아무도 침범하지 않았던 곳에 닿은 그의 혀가 미끈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절정에 달아올랐다.
“하.”
축 늘어진 서하를 내려다보며 그가 젖은 입가를 혀로 쓸었다.
“이 정도로 늘어지면 안 되는데.”
찌익. 네모반듯한 콘돔 포장지가 뜯기는 소리와 함께 세헌의 손에 잡힌 그녀의 한쪽 다리가 허공으로 들려졌다. 이불이 비벼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벌어진 틈 사이로 그가 밀려들어 왔다.
“하으읏!”
그와 맞닿은 곳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서하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괜찮아, 괜찮아.”
그녀를 다독이듯 속삭이면서도 세헌의 허리는 멈추지 않은 채 움직이고 있었다.
젖은 살갗이 부딪히며 나는 외설적인 마찰음이 그의 움직임에 가속도를 높였다.
“아흐윽…….”
아래에서 느껴지는 저릿하고도 야릇한 쾌락에 서하는 본능적으로 그의 허리에 두 다리를 감았다.
더는 말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격렬한 그의 움직임이 주는 쾌락에 빠져 허덕거릴 뿐이었다.
한참을 빠르게 움직이던 그의 허리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드디어 끝난 걸까, 서하가 숨을 몰아쉬는 것도 잠시 다시금 그의 허리가 움직였다.
“잠, 잠깐 …. 하읏.”
서하의 애원에도 세헌은 몇 번이나 그녀의 틈을 파고들었다.
물밀듯 밀려오는 새로운 감각은 원초적인 본능을 일깨웠다. 오직 쾌락만을 갈구하며 두 사람이 얽히고 얽혔다.
몇 시간 동안 계속된 행위가 겨우 끝나자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서하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던 그가 말했다.
“진서하.”
야릇한 그 목소리에 그녀가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그러자 젖은 머리카락을 느릿하게 쓸어넘기던 그가 야릇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 멀었어.”
그러고는 제 하복부를 묵직하게 찌르는 느낌에 서하가 몸을 움츠렸지만 이내 몸을 부딪쳐오는 세헌 때문에 그녀는 정신을 놓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