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그런 해연을 가만히 보던 이현은 고개를 내려 자신의 팔목에 감긴 해연의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 냈다.
그때, 고집스럽게 정면만 보고 있던 해연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놀란 것처럼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뭐, 뭐, 하는 거예요. 설마…….”
설마 이대로 가 버리려는 거냐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정말 그럴까 봐 무서워서. 해연의 불안감을 고스란히 읽은 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해연의 손가락에 깍지를 꼈다.
“안 가요. 이제 절대로…….”
“읏…….”
“당신 옆에 있을 거예요.”
“흐윽…….”
결국 해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이현은 몸을 잘게 떨며 흐느끼는 해연을 품에 당겨 안았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었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신호탄이 된 것처럼 두 사람의 몸이 다시 떨어졌다. 환하게 켜진 센서 등이 두 사람을 비췄다.
“이 나쁜 놈.”
해연이 고집스레 말아 쥔 손으로 그의 가슴을 쳤다. 처음엔 나름대로 힘을 세게 줬지만, 끝으로 갈수록 힘이 거의 실리지 않았다.
“흐윽. 으. 이, 바보가, 흑, 왜 이제, 왔, 흐어어엉…….”
계속 참고 참아 왔던 울음이 원망을 뚫고 흘러나왔다. 드디어 그가 왔다는 안도감에 해연이 온몸을 떨며 울고 또 울었다. 무서웠다. 다시는 그를 보지 못할까 봐. 죽을 때까지 오지 않을까 봐.
이현은 깊은 한숨을 뱉었다. 마음이 아팠다. 해연의 눈물이, 원망이, 그럼에도 그를 꽉 잡고 놓지 않는 해연의 마음이 그를 아프게도 했고, 기쁘게도 했다.
물방울이 뒤엉킨 속눈썹 사이로 잔뜩 흐려진 눈동자가 그를 향하고 있었다. 흐느낌과 함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처럼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젖은 입술이 어여쁘다.
“이, 이제, 가지…….”
“못 가요. 이제 내가 안 되겠어요.”
설사, 당신이 가라고 해도 가지 않을 거다. 이제 해연의 몸에선 청혈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와 질기도록 이어져 있던 끈이 사라진 것이다. 해연이 이번 생을 끝내고 다시 태어난다 해도 그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이번 생이 끝일 수도 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해연과 마주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 불확실함이 그를 절박하게 했다. 인간의 생명은 너무 짧고 연약했으므로. 그런 주제에 지금까지 무슨 호기를 부렸는지 모르겠다. 놓아준다니.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이현은 떨리는 손으로 해연의 볼을 쓸었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이 그의 손을 넘어 가슴마저 축축하게 적셨다.
“그러니까, 날 잡은 걸 후회하면 안 돼요.”
내 거야, 당신은. 당신이 줬으니까 후회하지 말아요.
그의 목소리에 애원이 섞여 나왔다. 마치 그녀가 후회할 거라고 확신한다는 듯이. 해연은 그의 가슴팍 부근의 셔츠를 말아 쥐고 강하게 당겼다. 그의 입술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끌어당긴 뒤, 해연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술을 열었다.
“절대 놓지 않을 거니까 당신이야말로 후회하지 마.”
“……해연.”
“또 사라지면 그땐 정말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으응!”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현은 단숨에 해연의 입술을 삼켰다. 기다렸다는 듯이 두 혀가 얽혔다. 정신없이 서로의 혀를 탐하는 소리가 어둑한 현관을 울렸다. 고작 키스만으로도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올랐다.
침대로 갈 여유도 없었다. 이현의 손이 해연의 치마 안으로 들어와 스타킹과 함께 작은 속옷을 찢어 버렸다. 그리고 이미 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성기를 꺼내 해연의 안으로 곧장 찔러 넣었다.
“아아아!”
“흣.”
꽉 조이는 질 안에 갇힌 성기 끝에서 짙은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 상태로 이현은 해연의 등을 벽에 기대게 한 뒤 바들바들 떨리는 가는 다리를 제 허리에 감게 했다.
“흣, 아응, 앙, 하앗! 아! 아흣!”
“아, 해연…….”
“아, 잠깐, 응! 아, 너무 빨, 흑!”
“미안, 못, 참겠어요. 하아……. 조금만. 응?”
“으응!”
이현의 몸에 매달린 채로 해연의 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해연의 체중이 더해져 삽입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거칠었다. 게다가 굉장히 오랜만의 섹스였다. 해연의 안은 충분히 젖었지만, 아주 좁았고, 이현의 성기는 너무 크고 두꺼웠다.
성기가 안을 치고 들어올 때마다 해연은 아래가 얼얼한 통증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도리어 참을 수 없다며 성급하게 구는 이현의 행동이 좋았다. 절박한 얼굴로 자신을 안는 그가 좋았다.
해연은 몸이 정신없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그의 입술을 찾았다. 두 팔과 두 다리로 그의 몸을 칭칭 감고 바짝 힘을 줬다.
그 순간 질 안 깊숙이 파고든 성기가 부르르 떨리더니 뜨거운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해연이 날카로운 교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내 그 소리도 이현의 입안으로 먹혔다.
아래가 결합된 상태로 이현은 걸음을 옮겨 욕실로 향했다. 사정을 한 뒤에도 여전히 단단한 성기가 예민한 안을 끊임없이 자극하자 해연은 욕실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다시 한번 절정에 올랐다.
욕조 안에 들어가서도 두 사람의 행위는 멈추지 않았다. 따뜻한 물이 순식간에 차올라 뿌연 수중기가 맺혔다. 엉망이었다. 옷도 제대로 벗지 않은 채 짐승처럼 섹스에만 몰두했다. 서로의 가장 내밀한 곳이 결합되어 있다는 게 황홀해 다른 건 아무것도 상관없었다.
이현이 두 번째 사정을 하고 나서야 두 사람은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렸다. 이미 욕조 위로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고, 찢긴 옷가지가 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해연의 스타킹은 이미 입고 있는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상의와 브래지어가 가슴 위로 올라가 그에게 수도 없이 물리고 빨린 유두가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해연은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대체…….”
“예뻐요.”
너무. 그는 어이없어하는 해연의 볼에 입을 맞추곤 엉망이 된 옷을 하나하나 벗겼다. 구멍이 뚫리고 올이 다 풀린 스타킹만 빼고. 그 뒤에 이현이 자신의 옷을 벗어 던지자 해연은 그의 몸 위에 늘어진 채로 물었다.
“스타킹은 왜 안 벗겨요?”
“예뻐서요.”
“여전히 변태네요. 아!”
알몸에 엉망이 된 스타킹만 입고 있던 해연의 아래로 이현의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해연의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애액과 정액이 안을 헤집는 손가락에 아래로 흘러내렸다.
“내가 너무 많이 쌌네요.”
“꼭, 응, 이제 더 안 할, 것처럼, 앗! ……말하기는.”
해연은 손을 내려 그렇게 사정하고도 아직 단단한 이현의 성기를 쓸었다. 눈을 찡그리고 짧은 신음을 흘린 이현이 상체를 숙여 해연의 입술을 가볍게 빨았다.
“당신 안이 너무 좁아졌어요.”
너무 거칠게 굴어서 상처가 나지 않았을까 걱정된다며 이현은 손가락을 둥글게 굴려 다시 좁아지려는 내벽을 훑었다. 말은 걱정이었지만, 후희이자 다시 시작될 섹스의 전조였다.
해연은 이현이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다시 그를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할 말이 있었다. 그녀는 가쁜 숨을 삭이며 물에 젖어 흐트러진 그의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현이 네가 없었으니까…….”
“아.”
아주 먼 옛날.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때의 애칭을 듣자 다시 해연의 몸을 달구던 이현의 손길이 뚝 멈췄다. 이현이 경직된 얼굴로 손가락을 빼자 해연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싫어하지 않았어. 단 한 번도. 원망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
“…….”
“우리가 만났던 그 모든 순간 동안, 계속 사랑했어.”
사랑의 형태만 바뀌어 왔을 뿐이었다. 가족애서부터 이성을 향한 감정으로.
해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끝맺었다. 이현은 가만히 듣다 눈을 몇 번 깜박이고는 굳은 얼굴로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굳이, 그렇게 말 안 해 줘도 돼요. 어차피 그건 아주 예전 일이고, 난 지금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거짓말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해연은 굳이 그의 불신을 부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믿기 어려울 만했다. 그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제게 외면을 받기만 했으니 고작 한 번의 말로 믿을 수 없으리라.
해연은 두 손을 들어 경직된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믿지 않아도 괜찮아. 믿을 때까지 계속 말해 줄 테니까.”
그러니 어디도 가지 마. 차분하던 해연의 목소리가 결국 떨리고 울음이 맺혔다. 이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해연의 말을 믿고 싶었다. 정말로. 너무나도 믿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될까. 내게, 그런 자격이 있을까…….
이현이 머뭇거리며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해연은 계속 그를 보고 있었다. 두 눈에 가득 물기를 담고 예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살며시 입술을 맞댔다.
촉.
젖은 입술이 살짝 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간지러운 입맞춤은 달콤했다. 너무 달아서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로. 이현이 다시 웃자 해연은 더 열심히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내가 당신을 싫어했다면 그 모든 게 기억나고도 계속 기다렸을까요?”
“…….”
“응?”
대답을 재촉하면서도 해연의 입맞춤은 계속 이어졌다. 그가 말할 틈도 주지 않으면서 대답하라고 한다.
이현은 눈을 살짝 내려 뜨고 얌전히 그녀의 키스를 받고만 있었다. 간지럽고 달콤하고 애틋한 입맞춤이 좋아서 해연을 멈추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을 받고 있는 기분이었다.
행복, 했다. 너무나도.
이 작고 소박한 접촉이 주는 풍만한 감정이 가난하던 그의 심장을 채워 주고 있었다. 달콤한 단비가 오랜 가뭄으로 메말라 갈라진 황폐한 땅 위를 촉촉이 적셨다. 결코 생명이 살 수 없을 것 같던 죽은 대지에 푸르른 새싹이 돋아났다. 기적처럼.
해연의 입맞춤을 받는 이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차디차던 체온이 단숨에 훅 올랐다. 해연이 전해 주고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인해. 그토록 원했지만, 가질 수 없던 해연의 마음이었다.
해연의 입술이 떨어지면 그가 다시 그녀의 입술을 찾아 얼굴을 들이밀었다.
“조금 더.”
“응.”
해연은 어리광처럼 흘러나온 재촉을 거부하지 않고 툭 앞으로 튀어나온 그의 입술에 입술을 꾹 눌렀다. 이번엔 그의 머리가 뒤로 밀릴 정도로 세게 입을 맞추고 떨어지자 이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사랑해.”
촉.
“정말 사랑해요.”
촉.
장난스럽지만 사랑스러운 고백과 키스의 반복에 그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환하고 예쁘게. 해연도 웃었다.
그의 웃음이 차분히 가라앉았을 때, 해연은 조심히 물었다.
“그때 왜 떠났던 거예요?”
부드럽게 풀린 분위기에 너무 섣부르게 물은 게 아닐까 걱정이 됐지만, 해연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이현은 바짝 긴장한 얼굴을 한 해연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모두 말하고 나면 기껏 얻은 해연의 마음이 다시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에겐 확신이 더 필요했다. 무슨 말을 들어도 해연이 그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