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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아내-107화 (107/113)

107화.

13챕터

이현이 떠난 뒤, 한참을 그 자리에 홀로 서 있던 해연은 자신의 집 옆에 있는 이현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 이곳에 있을까 해서.

“아…….”

처음 들어가 본 이현의 집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구도, 식재료도, 아무것도 없었다. 해연이 살 집은 그토록 정성껏 꾸며 놓고 정작 자신이 살 곳은 아무것도 없이 방치한 채 지내고 있었다.

이제 막 지어진 집처럼 텅 빈 집에 들어선 해연은 이게 꼭 이현 같다고 느꼈다.

그토록 제게 매달리고 사랑을 구걸하던 그의 진정한 모습…….

왜 한 번도 이현의 집에 와 볼 생각을 안 했던 걸까. 이렇게 가까운데. 그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며 그를 돌아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가 이런 곳에서 지낸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해연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조금 더 마음을 표현했더라면 그는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힘든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그 역시 지쳐 가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돌아보지 않는 자신에게…….

그에게 너무 무관심했다. 왜 그랬을까.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이렇게 후회되지 않았을 텐데.

후회되는 게 너무 많았다. 너무 늦은 후회였다. 그는 이미 떠나 버렸는데 해연은 이제야 사랑을 시작하고 있었다.

가슴이 꽉 막힌 듯이 슬프고 아팠다. 해연을 더 아프게 하는 건 이런 기분을 그는 더 오랜 시간 느꼈을 것이란 거였다. 홀로만 간직해야 하는 외톨이 같은 사랑을.

“흐어어엉!”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해연은 이현의 집이 울리도록 큰 울음을 터트렸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제게 그 사랑을 돌려줄 기회조차 없다는 게. 이제 그를 볼 수 없다는 게 괴로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이현은 그토록 사랑해 달라고 매달린 제게서 단 한 톨의 사랑조차 받아 보지 못한 채 이별을 선택했다. 모두 자신이 너무 늦어서였다.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 그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표현했더라면 이렇게까지 괴롭지 않았을 텐데.

이현의 외로움은 끝없이 그를 방치해 왔던 오만한 제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흐윽, 어어엉, 아, 아아아!”

해연은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쳤다. 아팠다. 가슴이 아파서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렇게 후회하며 운다 해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올 리가 없었다.

그가 없는,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서글픈 외로운 집에서 해연은 울고 또 울었다. 몸 안에 있는 모든 수분이 눈물로 모두 말라 버릴 때까지…….

* * *

몇 날 며칠을 회한과 후회로 괴로워하던 해연은 억지로 기운을 되찾았다. 분명 언젠가는 그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생각해야지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해연은 언젠가 그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조금씩 조금씩 이현의 집을 꾸며 나갔다. 그의 텅 빈 마음을 채우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성급하지 않게.

업체를 부르지도 않고, 도와준다는 유영의 말도 거절한 채 오롯이 해연 혼자 해 나갔다.

가구는 원목으로 골랐고, 커튼이나 러그, 이불도 모두 따뜻하고 포근한 색으로 맞췄다. 어느 것 하나 무채색으로 하지 않았다.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인테리어였지만, 해연은 그게 좋았다. 집을 가꾸는 동안은 그가 없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기 때문에.

그의 모든 건 비와 함께였다. 만남도, 이별도. 그래서 해연에게 비는 이현의 상징이 됐다.

비가 오는 날만 되면 해연은 혹시 이현이 온 게 아닌가 하는 기대를 했고, 비가 그치면 실망하길 반복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자 비가 오는 날이 더 이상 반갑지 않아졌다. 수도 없이 기대하고 실망하는 게 싫었기 때문에.

오늘도 비가 왔다. 해연은 그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또 기대하는 자신이 싫어 창문을 모두 닫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빗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마개까지 한 채.

잠이 오지 않아 계속 뒤척이던 해연이 어느 순간 잠이 들었을 때, 이불 밖으로 살짝 삐져나온 그녀의 발가락에 창백한 손이 닿았다. 이현이었다.

“왜 계속 기다려요.”

그러지 말지. 자신을 기다리는 해연이 신경 쓰여 떠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해연이 잠들었을 때만 이렇게 잠깐 왔다 가곤 했다.

아니, 그건 변명에 불과했다. 그가 해연이 보고 싶어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 낸 것뿐이었다. 사실은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는 게 좋았다. 그러면 안 되는데 자신을 잊지 않아 줘서 행복했다.

이현은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발끝에 얼굴을 묻었다. 따뜻한 체온. 피부 아래에서 고동치는 혈관의 움직임은 모두 해연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해연이 세상에서 사라졌던 순간은 아주 짧았다. 그럼에도 그때의 충격이 너무 컸다. 그래서 또 해연이 자신으로 인해 안 좋은 일을 겪지 않도록 떠났다. 멀리서라도, 아주 가끔만이라도 해연이 살아 있는 걸 볼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욕심은 너무 컸다.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다. 닿고 싶고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고 따뜻한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해연의 모든 것을 자신으로 물들여 온전히 갖고 싶었다.

“이현…….”

“……!”

잠결에 흘러나온 자신의 이름에 이현이 번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해연의 꼭 감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현의 눈이 잘게 경련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이현은 해연의 몸 위로 올라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따뜻한 눈물을 혀로 핥았다. 이성이 완전히 사라진 이현의 행동에 해연의 눈꺼풀이 떨리더니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

“…….”

말없이 그를 보고만 있던 해연은 다시 눈을 깜박였다. 그럼에도 계속 그가 보였다. 해연은 떨리는 입술을 길게 늘이며 슬프게 웃었다.

“꿈이구나. 또…….”

“해연…….”

“안아 줘요.”

꿈이라도 좋으니까. 해연이 두 팔을 들어 올려 그의 목에 감았다. 그리고 머리를 들어 그의 차가운 입술에 입을 맞췄다. 해연의 혀가 그의 입술을 두드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현의 입술이 열렸다. 그 뒤로는 해연의 부추김이 필요 없었다. 이현이 탐욕스럽게 그녀의 혀를 얽고 빨고 핥았다.

“아, 아흣, 으응!”

“하아…….”

두 사람이 내뱉는 탄성과 입술이 맞붙었다 떨어지고 혀가 얽히는 소리만 어둑한 방 안을 온통 채웠다. 입술을 맞댄 상태에서 두 사람은 경쟁하듯 서로의 몸을 만졌다. 그러다 방해가 되는 옷을 모두 벗어 던졌다.

그 짧은 떨어짐조차 싫어 해연과 이현은 다급히 서로를 찾았다. 세상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것처럼.

해연은 다리를 벌려 그의 허리에 휘감았다. 그리고 그의 성기에 음부를 비볐다. 해연의 아래는 이미 축축이 젖어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어서.”

“흣.”

다급하고 애타는 부추김에 이현이 바로 허리를 밀어 올렸다. 좁은 안을 잔뜩 벌리고 들어오는 두꺼운 성기에 해연의 목이 뒤로 넘어갔다.

“아, 아, 아아아!”

“으읏…….”

오랜만의 결합에 두 사람 모두 단숨에 절정에 올랐다. 좁고 촉촉한 살에 완전히 감싸인 성기가 꿈틀거리며 뜨거운 정액을 쏟아 냈다. 그 순간에도 이현은 끊임없이 허리를 추켜올렸다. 턱턱 밀고 들어오는 성기에 단단하게 부푼 동그란 가슴이 거칠게 흔들렸다.

해연은 이현의 어깨를 꽉 잡고 손톱을 박았다. 쾌감을 느낄 때마다 힘이 풀리는 손에 더욱 힘을 줬다.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손을 떼면 그가 사라질 것 같아서. 이 꿈이 되도록 길게 이어지길 바라서.

해연의 손톱이 살갗을 날카롭게 긁어 상처를 내고 있었지만, 이현은 그런 해연을 말리기는커녕 달갑다는 듯이 상체를 아래로 내려 그녀가 만지기 편한 자세를 취했다. 그 와중에도 하체는 여전히 해연의 아래를 탐하고 있었다.

질액과 정액으로 범벅이 된 안은 매끄러워서 그가 더 거칠게 움직여도 해연이 다치지 않게 했다. 이현이 정신없이 그녀의 얼굴 전체에 입을 맞추며 핥자 해연이 짧은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다시 눈물이 됐다.

“사랑해. 읏, 사랑, 한다고 강이현.”

“…….”

“그러니까 돌아와. 너무 기다리게 하지, 으응!”

그 순간 이현이 해연의 입술을 덮쳤다. 계속 들으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명령에 굴복하고 싶어질까 봐.

* * *

아침이 되었을 때는 해연 혼자였다. 정신없이 나눴던 정사는 아직도 그가 느껴질 정도로 선명했지만, 어느 곳에도 그가 있었던 증거가 없었다. 몇 번이나 절정에 오르고 그가 사정했음에도 정액은커녕 시트에 젖은 흔적조차 없었다.

이불을 들추고 그가 수도 없이 입 맞추고 빨았던 몸을 확인해 봤지만, 깨끗했다. 어디에도 이현의 흔적이 없었다.

“아…….”

해연은 주저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파묻었다.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꿈이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결국 꿈이었다. 그를 만졌던 감촉이 그토록 선명했는데…….

그가 없다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실망스러웠다. 끔찍하게 싫었다.

“강이현 이 개새끼야! 왜 항상 제멋대로야? 한 번만이라도 내 말대로 해 줄 수 있잖아!”

다가올 때도 헤어질 때도 자신의 의견은 하나도 듣지 않았다.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그녀를 가졌다가 버렸다. 그가 너무 원망스럽고, 밉고, 또 여전히 사랑했다.

“사랑한다고…….”

그동안 참고 참아 쌓여 왔던 그리움이 터지듯 폭발했다. 보고 싶었다. 너무. 너무…….

그로부터 일 년이 더 지났을 때, 해연은 늘 그의 집에서만 지내며 그를 기다리는 생활도 그만하기로 했다. 그를 기다리는 걸 포기한 건 아니었다. 다만, 이런 식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걸 알기에 정신을 팔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가장 좋은 건 하루의 절반 이상을 소모할 수 있는 회사에 다니는 것이었다. 사실 이현이 남기고 간 돈만으로도 평생 일을 안 하고 살아도 남을 정도였지만, 해연은 그 돈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게 이별의 증거 같아서. 그를 잊는 대가를 받은 것 같아서.

회사에 들어가겠다는 결정에 가장 반색한 것은 유영이었다. 따로 살고는 있지만, 매일 찾아와 그녀를 살피던 유영은 계속 안으로 침몰하기만 하는 해연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진짜요?”

“응. 이제 슬슬 일해야지. 오래 쉬었잖아.”

“잘 생각했어요. 어유, 착하다, 우리 언니.”

유영이 해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자 해연이 여리게 웃었다. 자신과 달리 유영은 금세 그 일을 흘려보냈다. 정말 괜찮은 거냐고 물어도 유영은 꼭 꿈을 꿨던 거 같아서 별로 아무렇지 않다고 스스로도 신기해했다.

다행이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 제게 그날을 잊게 해 준다고 하면 자신은 분명 거절할 것이다. 이현을 잊고 싶지 않았다. 이 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그가 원망스러웠지만, 그럼에도 그를 기억해야 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설사 죽는 순간까지 그와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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