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의 아내-101화 (101/113)

101화.

이현의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도 싫었다. 그는 결코 제게 이런 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록 시작이 안 좋긴 했어도 그는 언제나 다정했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저런 괴물과 달리.

그때 뾰족한 이빨의 끝이 부드러운 피부를 꾹 누르며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헉!”

“하, 씨발. 존나 달아.”

미치겠네. 괴물이 그녀의 목을 깊게 흡입하며 쭉 빨아들였다. 탐욕스럽게 피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방을 울렸다. 해연의 몸이 흠칫 굳었다가 이내 힘이 쭉 빠졌다. 피가 너무 많이 빠져나갔는지 빈혈이 이는 것처럼 눈앞이 흐릿하고 어지러웠다.

찌익, 살갗이 마치 얇은 천을 찢는 것처럼 쉽게 찢어졌다.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을 무렵, 괴물은 욕설을 짓이기며 해연의 목에서 얼굴을 들어 올렸다.

“이러면 안 되지. 하마터면 다 먹을 뻔했어.”

“…….”

“왜 이렇게 맛있지? 너 대체 정체가 뭐야?”

그동안 인간을 주식으로 삼아 왔지만, 이렇게까지 다디달지는 않았다. 괴물은 입술에 묻은 핏방울을 혀로 샅샅이 핥으며 숨을 헐떡였다.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다시 살아나면서 생겨난 통제 못할 정도로 강한 힘이 차분히 정돈됐다. 고작 피만 조금 빨았을 뿐인데.

“이 예쁜 년.”

괴물은 성성이 발기한 하체를 해연의 아래에 들이밀었다. 해연은 어지러운 와중에도 선명히 느껴지는 소름 돋는 감촉에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아, 안 돼! 싫어!”

“그 새끼는 네 보지에 정액 냄새가 풀풀 흘러나올 정도로 싸게 해 줬으면서 난 안 돼? 씨발, 내가 뭐가 부족해서?”

“악!”

해연의 거부로 빈정이 상한 괴물이 손을 휘둘러 해연의 뺨을 내리쳤다. 제 딴에는 가볍게 친다고 친 거였지만, 해연의 뺨이 순식간에 검게 멍들었다. 그동안 해연을 아끼고 아껴 가며 품에 끼고 있던 괴물은 제가 만든 결과물에 순간 당황한 얼굴을 했다.

“아, 존나 약해 빠져 가지곤. 그러게 왜 반항해?”

“흐, 흐으. 으흑…….”

제 딴엔 사과를 담은 손을 해연이 쳐내자 괴물의 표정이 다시 험악해졌다. 그동안 안 죽이고 아껴 줬더니 감히. 성질대로라면 당장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한해연이 계속 살아 있어야 자신에게도 좋기 때문이었다. 벌겋게 물든 얼굴로 손을 들었다 내렸다 반복하던 괴물은 한해연을 얌전하게 만들 수 있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자꾸 이러면 이유영의 목숨도 없어. 알아들었어?”

“……!”

유영의 생명을 건 협박에 해연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래, 유영이가 있었다. 자신은 어떻게 되더라도 무조건 살려야 하는 유영이. 그렇게 생각하니 두려움이 한결 가시고 이성이 돌아왔다.

“유영이? 유영이는, 어딨어……?”

“네 처지나 걱정해야 할 때 아닌가?”

“유영이……. 설마, 주, 죽인 건 아니지?”

“내가 그년을 왜 죽여. 그년이 널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인질인데.”

괴물은 짐짓 다정한 목소리를 꾸며 내며 해연의 뺨을 손등으로 부드럽게 훑었다. 혐오감에 울컥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해연은 이성을 부여잡았다. 자신만 있다면 모를까 유영이도 함께 잡혀 온 이 위급한 상황에 정신을 놓을 수는 없었다.

“정말 살아 있는 거 맞아?”

“못 믿겠어?”

“내가 어떻게 믿지? 보여 줘.”

해연의 요구가 발칙하게 들렸는지 괴물이 어깨를 들썩이며 낄낄 웃었다.

“이거 진짜 미친년이네. 지금 네 상황을 모르겠어?”

“보여 달라고!”

괴물은 반항적으로 소리치는 해연을 향해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가 예쁘던 얼굴의 반을 채운 검은 멍을 보고 짜증 난 표정으로 다시 내렸다. 물론 조금 망가진다고 맛이 달라질 리야 없겠지만, 음식은 보기 좋아야 먹을 맛이 나기 때문이었다. 특히, 세상 그 어떤 인간보다 맛있는 음식은.

게다가 무섭다고 덜덜 떨고 있던 것도 괜찮았지만, 겁 없이 발칙하게 구는 것도 꽤 꼴렸다. 괴물은 당장이라도 쌀 것 같은 성기를 손으로 훑으며 해연의 가슴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괴물이 마치 당장이라도 겁탈할 것처럼 굴었지만, 해연은 동요하지 않고 눈을 똑바로 뜨고 괴물을 노려봤다. 유영이 살아 있다는 걸 알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상관없었다. 설혹, 강간을 당한다 하더라도.

해연이 원하는 반응을 보여 주지 않자 괴물은 살짝 흥이 떨어졌다는 듯 해연의 가슴에서 손을 뗐다.

“원하는 대로 해 주지.”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괴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문을 열고 유영이 들어왔다.

“유영아!”

“언니?”

유영은 멍한 얼굴로 자신을 부르는 해연을 바라봤다. 다행히 예전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험한 짓을 당하지 않은 것처럼 멀쩡한 모습에 해연은 참았던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안도감과 함께 유영이를 어떻게 여기서 탈출시켜야 할지 막막했다.

왜 이현이 오지 않는 걸까. 정말 이현이 자신을 괴물에게 넘긴 걸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모두 자신을 현혹시키기 위한 거짓말일 거다. 이현은 날 좋아하니까. 그 간절하고 애타던 눈은 거짓일 리가 없었다.

‘이현, 강이현, 당신 지금 어디 있어요?’

내가 무너지기 전에, 괴물의 거짓말에 넘어가기 전에, 빨리 와서 나와 유영이를 구해 줘.

하지만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부르면 언제든 나타났던 이현은 정작 가장 필요할 때 그녀를 외면했다.

* * *

해연의 작은 빌라 안을 가득 메웠던 검은 연기가 숨을 쉬는 것처럼 들썩거렸다. 그 안에서 이현의 몸은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위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빌라의 모든 세대를 매입해 아무도 살지 않고 있어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현의 몸에서 쏟아지고 있는 기운에 내장부터 녹아내렸으리라.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건물이 철거 직전으로 보일 만큼 부식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

얼굴만 남은 이현은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자신을 부르는 해연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그게 환청인지, 정말 해연의 목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한번 의식이 돌아오자 이현은 해연에게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절망과 함께 몸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에.

아무리 정신을 다잡으려 해도 상념은 계속 부정적으로 흘러갔다. 사실은 해연의 모든 생애가 자신으로 인해 망가졌던 게 아닐까. 어떻게 해도 계속 죽음을 향해 가던 것도 다 자신 때문일 거라고. 차라리 여자의 삶에서 사라져 주는 것이 그녀에게 더 나은 거라고…….

한 톨이라도, 적선이라도 좋으니 작은 애정을 받고 싶었다. 설혹, 그녀가 자신을 싫어하더라도 가지고 싶었다. 그 집념은 여자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과 합쳐져 이현을 그 긴 고통 속에서도 버티게 했다.

그런데 그게 다 헛된 거였다면.

자신이 없어야 여자가 제대로 살 수 있던 거였다면…….

사실은 여자에게 단 한 번도 제가 필요했던 적이 없었고, 사랑받았던 적도 없었고, 같이 있는 게 언제나 끔찍하게 싫고 혐오스러웠던 거였다면…….

‘내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

해연을 향한 갈망이 명분을 잃고 스러지니 이렇게 힘겨운 삶을 버티고 버틸 이유가 없어졌다. 여기서 눈을 감아 버리면 이 끝도 없던 괴로움도 끝날 것이다. 세상의 쓰레기를 받아 삼키며 괴로울 필요도 없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여자를 향한 갈망도 사라지리라.

그건 몹시 유혹적이었다. 지금까지 그에게 쌓인 힘은 그를 강하게도 했지만, 괴롭게도 했다. 이걸 버린다면, 그도 이 지옥 같은 업보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그의 육신 안에 쌓여 있던 힘이 지속적으로 그에게서 빠져나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를 대신해 세상의 쓰레기통이 될 누군가를 향해.

살짝 의식이 들었던 이현의 눈이 흐려지고 있을 때, 환청이라고 생각했던 해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현, 강이현, 당신 지금 어디 있어요?’

점점 선명해지는 해연의 목소리에 흐릿하게 풀어져 있던 눈동자에 번뜩 초점이 잡혔다.

“해연……?”

이현이 해연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옅어지고 있던 그의 근원이 다시 그의 몸으로 훅 스며들었다. 부패가 심각해 바닥에 뚝뚝 떨어졌던 살덩이도 붙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완전히 사라진 육체와 함께 그의 의식마저 사라질 뻔했다.

해연의 목소리는 그녀를 향한 강렬한 집념을 다시 소생시켰다. 그건 그를 다시 이 땅에 붙어 있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의 근원은 많이 소실된 상태였다. 망가진 육체를 다시 끌어모은 것만으로도 힘이 부쳤다.

‘빨리 와요. 당신이 필요해.’

“해연…….”

내가 필요하다고? 이현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고작 자신이 필요하다는 말 하나에 숨통이 트였다. 살아 있어도, 여자의 곁에 있어도 된다는 명분이 생겼다. 그건 이현을 구원하는 말이었다. 설혹, 이것이 자신이 만들어 낸 환청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당신 곁에 있고 싶어.”

바라는 건 오직 그거뿐. 끝도 없이 괴롭다 하더라도 해연의 곁에 있어야 했다. 그 소망 하나를 위해 지금까지 버텨 왔으니까.

이현은 너무 많은 시간을 해연과 떨어져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고작 하루뿐이었지만, 그 하루로 인해 그녀를 잃었던 적이 있었다. 절대로 그런 일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고 해연을 상처 입히기까지 했던 거였는데 고작 과거의 일로 상처를 입고 넋을 빼고 있었다.

멍청하게.

하지만 어디에 있더라도 맡을 수 있었던 해연의 냄새가 너무 옅었다. 이현은 고작 한 발 내딛는 것으로도 몸이 뒤틀리는 고통을 견디며 해연이 지금 지내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해연의 냄새가 맡아지지 않는다면 우선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은 그곳이었기에.

하지만 그곳에도 해연은 없었다. 이현이 다시 해연을 찾아 집을 나서려던 그때, 안주희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이현이 있을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 그가 한해연이 원래 살던 빌라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차마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건물을 타고 흐르는 검은 연기가 너무 위협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신축 빌라가 폐건물처럼 부식되고 있었다. 안주희는 저기에 들어가는 순간, 자신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밖에서만 서성이고 있었다. 주인이 빨리 나오길 바라며.

그리고 마침내 건물을 휘감았던 주인의 기운이 사그러든 순간, 주인 또한 사라졌다. 어디로 간 걸까. 혹시 이미 한해연을 찾아 본가로 간 건가 싶어 본가로 가 봤지만, 그곳에도 주인이 온 기색이 없었다. 만약 주인이 그곳에 갔더라면 이미 초토화가 됐을 테니까. 그래서 다시 이 집에 돌아왔는데, 마침 주인도 여기에 있었다.

“주인님! 왜 여기 계세요. 해연 님이 지금……!”

다급히 그를 부르던 안주희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주인에게서 이전과 같은 힘이 거의 느껴지지 않던 탓이었다. 꼭 자신이 덤벼들어도 이길 수 있을 것처럼 약하디약한 힘만 느껴졌다.

“……주인님?”

“해연이 어디에 있죠?”

“……주인님이, 맞나요? 왜 힘이…….”

“빨리 말해요. 어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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