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의 아내-99화 (99/113)

99화.

왼쪽엔 이진아가, 오른쪽엔 유영이가 앉고 해연이 가운데에 앉았다. 유영은 이진아가 별로 불편하지 않은 기색이었다. 유영이 중간에 앉은 해연의 앞에 몸을 내밀며 이진아에게 말을 걸었다.

“피디님 팝콘 드실래요?”

“아니요, 저는 영화 볼 때 아무것도 안 먹어요. 저 신경 쓰지 마세요.”

“저 혼자 먹기 민망해서 한 번 여쭤봤어요.”

“…….”

불편한 건 해연뿐이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 이진아에게 격의 없이 구는 유영의 행동도, 제게 친한 척 말을 거는 이진아의 행동도 전과 너무 달라 이상했다.

묘한 기류에 해연 혼자만 긴장하고 있을 때, 단 세 명이 있는 극장 안에 불이 완전히 꺼지고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만 밝아졌다. 열심히 팝콘을 먹고 간간이 콜라를 마시며 영화만 보고 있었다.

도무지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자신만 쳐다보고 있는 집요한 시선 때문에. 저를 보고 있는 이진아를 무시한 채 계속 정면만 보고 있던 해연은 힐끔 옆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이진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짙은 웃음을 지었다.

이진아는 손을 뻗어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 둔 해연의 손을 잡았다.

“……!”

해연이 손을 뒤로 뺐지만, 이진아는 손을 놓아주기는커녕, 도리어 그녀의 손을 제게 끌어당겼다. 해연의 몸이 순간 이진아 쪽으로 휙 쏠렸다.

이진아는 제 품에 들어온 해연을 끌어안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해연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막무가내였다.

“역시 좋은 냄새.”

“대체 왜, 왜 이러세요?”

“왜라뇨. 먹잇감이 이렇게 방해물도 달지 않고 손에 굴러들어 왔는데 누가 그냥 보내 주겠어요.”

멍청이도 아니고. 이진아의 입술이 길게 주욱 찢어져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

점점 길어지는 송곳니는 이진아가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해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진아는 그런 해연의 볼을 부드럽게 쓸었다. 하지만 삐죽 튀어나온 손톱이 볼을 긁어 얕은 상처를 내렸다.

이진아는 그 피를 손가락으로 훑은 뒤 맛을 봤다. 그녀의 얼굴이 황홀하게 풀어졌다. 역시 예상대로 끝내주는 맛이었다. 한 번에 잡아먹고 끝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원래는 바로 잡아먹을 생각이었는데, 이젠 그러고 싶지 않아. 왜 그런지 알아?”

“…….”

“왜 대답 안 해? 내가 물었잖아.”

다정한 척 부드러운 얼굴을 하던 이진아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두려워야 마땅한 순간임에도 해연은 놀라울 정도로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겪은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죽어도 봤고, 이현에게 다리를 먹히기도 했다. 그 모두를 경험하고 나니 최악이라고 해 봤자 죽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하지만 유영이는 안 된다. 그래서 해연은 유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유영이는 안 돼. 그러니까…….”

“언니 제가 왜요?”

“……!”

이진아를 향해 아주 작게 속삭인 말에 유영이 대신 대답했다. 해연의 남은 손 하나를 세게 움켜잡으며. 해연의 몸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설마 내가 우연히 여기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순진하네.”

“맞아요, 제가 불렀어요. 피디님이 그러라고 시키셨거든요. 그런데 아까 언니가 안 가겠다고 해서 어떡하나 당황했잖아요, 저.”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해연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유영이가 왜? 해연은 천진한 얼굴을 하고 있는 유영을 봤다가 다시 이진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대체 유영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지금 그걸 궁금해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 사리 분별이 안 돼?”

“…….”

“그럼 이제 슬슬 나가 볼까? 아, 혼자 도망치면 이유영은 죽어. 알지?”

이진아의 협박은 너무 일상적인 어투여서 더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역겨웠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이진아가 몸을 일으키자 유영도 해연의 손을 잡은 채 일어섰다.

“어서 일어나요, 언니.”

“……유영아, 너…….”

“언니가 이러고 있으면 제가 죽어요. 언니 때문에.”

“……!”

유영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발랄한 목소리로 무서운 말을 했다. 해연은 울컥 솟아나는 울음을 꾹 눌러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유영이 아예 팔짱을 끼며 해연이 도망갈 수 없도록 압박했다. 이진아는 손을 놓은 채 두 사람을 웃으며 볼 뿐이었다.

* * *

극장의 지하 주차장은 어딘가 어둡고 음습했다. 주차된 차도 얼마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이현, 강이현, 당신 어딨어요?’

해연은 속으로 이현의 이름을 부르며 주변을 힐끔힐끔 바라봤지만, 그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유영에게 붙여 놨다고 했었던 경호원도 마찬가지였다. 희망이 없는 거였다. 그가 있었더라면, 진작에 나타나 구해 줬을 테니까.

앞장서서 걷고 있던 이진아가 몸을 슬쩍 뒤로 돌려 해연을 향해 어깨를 들썩였다.

“설마 누가 구해 주길 바라는 거야? 너 지금 혼자라고 내가 말했잖아.”

“…….”

“이유영을 따라다니던 놈은 내가 먹었고, 널 따라다니던 놈은 어디 갔는지 안 보이네?”

“……!”

“그러니까, 허튼 수작 부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얌전히 따라와. 나도 귀찮은 짓 하고 싶지 않거든.”

해연은 자신의 팔짱을 더욱 강하게 끼는 유영을 어두운 얼굴로 바라봤다. 허튼 수작이라니. 유영을 두고 도망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단 하루. 잠깐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외출은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바보 같아.

이현과 연락이 안 됐을 때, 어떻게 해서라도 유영이를 잡고 집에 있었어야 했다. 그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후회는 너무 늦었고,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내가 순순히 따라가면 유영이는 놓아줘.”

“하는 거 봐서.”

“제발 부탁이니까…….”

“하는 거 봐서라고 했잖아.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자꾸 귀찮게 굴어?”

이진아의 눈이 순간 사납게 빛났다. 해연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유영이 그녀의 몸을 잡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언니 자꾸 왜 이래요? 가만히 좀 있어요.”

“아…….”

“그래요, 유영 님도 그렇게 말하잖아요.”

이진아는 해연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미칠 지경이었다. 유영이라도 제정신이었다면, 아니 떼어 놓고 갈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끔찍하지 않았을 텐데. 해연은 이진아가 가리킨 차에 유영과 함께 올라탔다. 그 순간에도 유영은 해연의 팔을 놓지 않았다.

“유영아,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뭐가 미안해요?”

지금 상황이 얼마나 끔찍한 줄 모르는 것처럼 의아해하는 물음에 해연은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유영을 껴안으며 울었다.

“그냥 다. 다 미안해…….”

다 괜찮아졌다고 마음을 놓았던 것도, 유영을 진작 떼어 놓지 않았던 것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한 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평온한 일상에 방관하고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전부 다 미안했다. 유영이 이렇게 된 것도 자신의 책임이었다. 어떤 이유를 붙여도 모두 변명에 불과했다.

‘다 내 탓이야.’

* * *

“내려.”

“여길, 왜, 당신이…….”

이진아가 운전한 차가 멈춰 선 곳은 해연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이현의 집. 심지어 그가 해연의 정신을 마음대로 조종해 가둬 뒀었던 별채라고 했던 그곳.

“왜 놈이 널 따라오지 않고 혼자 뒀다고 생각해? 강이현, 그놈이 널 나한테 넘긴 거야.”

“그럴, 리가 없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현은 자신의 곁에 있었다. 그래, 거짓말이다. 유영을 이상하게 만든 것처럼 제게 거짓말을 하며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거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현을 의심하고 있던 작은 조각이 점점 커지며 해연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거짓말하지 마!”

“하하, 그래, 계속 그렇게 믿고 있어. 믿든 말든 난 상관없으니까.”

이진아가 해연의 머리채를 잡고 제 얼굴 앞으로 끌어당겼다.

“읏!”

“그 새끼는 널 제멋대로 나돌아다니게 놔뒀지만, 난 아냐.”

이진아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더니 모르는 남자의 얼굴로 바뀌었다. 그 기괴한 모습에 해연은 순간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간신히 억눌렀다. 해연이 공포에 질려서 덜덜 떨자 괴물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넌 이제 내 거라고.”

괴물의 소굴에 들어온 걸 환영해. 그 말과 함께 ‘본가’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나와 괴물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허리를 숙였다. 이현을 주인이라고 부르던 그들이.

“말도, 안 돼…….”

모두 거짓말이다. 그때, 사람들의 사이로 나타난 고양이 한 마리가 괴물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이현이, 그녀의 집을 지키는 개라며 말했던, 그 고양이였다.

비틀거리며 흔들리는 해연의 몸을 멍하니 옆에 서 있던 유영이 잡았다. 유영은 넋을 놓은 해연을 향해 속삭였다.

“그러게 왜 강이현 그 새끼를 믿었어요? 언니 때문에 제가 이게 뭐예요.”

“아…….”

날카로운 쐐기처럼 내리꽂는 유영의 말에 아랫배에서 따끔한 통증과 함께 해연의 다리를 타고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순간 간신히 붙들고 있던 해연의 의식이 뚝 끊겼다.

해연의 다리를 타고 검은 피가 흘러내리는 순간, 해연의 냄새에 호시탐탐 그녀를 주시하던 일족들이 흠칫 몸을 뒤로 물렸다. 바닥까지 떨어진 피는 저들끼리 모여 부글거리더니 검은 안개로 변해 해연의 발목에 감겼다. 해연의 몸에 쌓여 있던 이현의 가장 정순한 근원이 해연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었다.

괴물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다리를 굽혀 해연의 발목에 감긴 이현의 근원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아주 살짝 닿았을 뿐인데 괴물의 손가락이 검은색으로 물들더니 빠른 속도로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드러났지만, 괴물은 개의치 않고 그 검은 연기를 손아귀에 움켜잡았다. 그리고 단숨에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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