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의 아내-90화 (90/113)

90화.

11챕터

이현이 구한 집은 단독 주택으로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저절로 감탄이 일 정도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소담하게 가꿔진 정원, 작은 그네. 부담스럽지 않은 규모였지만 아기자기한 집은 해연이 마음속으로만 담아 왔던 집과 흡사했다. 언젠가 그에게 말했었던 그런 집…….

유영이에게 주는 거라더니 자신의 취향을 그대로 맞춰 놓았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를 만큼 해연은 바보가 아니었다. 해연은 이현의 안내를 따라 정원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가며 한숨을 삼켰다.

“우와…….”

유영은 경계하던 것도 잊고 집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인터넷에서나 보던 유명인들의 호화로운 집 같았다. 로또에 당첨돼도 살 수 없는 그런 집.

‘이게 내 거라고?’

스물스물 올라오는 물욕은 이현에 대한 호감도를 슬며시 올렸다. 유영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려라, 이유영. 벌써 넘어가면 안 돼. 돈이 다가 아니라고!’

하지만 슬그머니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얼굴하고 돈 빼곤 볼 게 없는 인간이라고 혹평했는데, 이런 집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줄 재력은 부족한 인성을 조금은 감안하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 이런 집에서 살 거란 생각은 한 번도 못해 봤단 말이야.’

그런데 이거 세금도 내주는 거겠지? 양도세, 재산세 등을 생각하자 급격히 등골이 서늘해졌다. 유영은 다시 돌아온 현실 감각에 없어 보인다는 걸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월급을 다 쏟아부어도 세금은커녕 유지비도 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기, 여기 유지비는…….”

“당연히 제가 낼 겁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세금, 도죠?”

“네.”

당연하다는 듯이 나오는 대답에 유영의 표정이 그제야 완전히 밝아졌다. 유영이 결국 이성을 놓고 집을 둘러보고 있을 때, 해연은 한숨을 삼켰다. 땅값이 높기로 유명한 서울에서도 특히 비싼 지역이었다. 아마도 굉장히 비쌀 게 분명했다.

당장 들어와서 살아도 된다는 말답게 정말 몸만 와서 지내면 될 정도로 다 갖춰 놓았다. 가전은 말할 것도 없고, 생활에 필요한 사소한 도구들까지 모조리 준비되어 있었다.

해연은 제 옆에서 말없이 서 있는 이현을 빤히 바라봤다. 이현은 그녀의 시선에 예쁘게 웃었다.

“얼만지는 안 물어볼게요.”

“……화낼 줄 알았는데.”

“그럴까 했는데 그러지 않기로 했어요. 당신이 유영이에게 위자료로 주는 거…….”

해연은 그제야 이현이 이런 것까지 계산해서 처음 자신이 거절했을 때 아무렇지 않게 물러섰다는 걸 깨달았다. 유영이 따로 나가서 얘기하자고 할 때 순순히 따라간 것도 이것 때문이겠지.

‘아니, 그전에.’

해연은 이현이 유영이 왔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남자는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해연의 약점인 유영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 이상한 능력을 사용한 게 아니란 점이 예전과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왜 나를 잡지 않았어요? 아니, 유영이가 밖에 있는 것만 알려 줬어도…….”

“당신이 도망칠 것 같아서요.”

우리가 나눈 시간을 모두 부정하고 후회하며 다시 날 버리고, 숨을 곳을 찾아 도망칠 것 같았다고, 이현이 담담한 목소리로 해연의 속을 꿰뚫었다.

“나는…….”

해연은 그렇지 않다고 변명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러려고 했다. 이 남자에게 모든 걸 다 줘 버릴 것 같아서. 이 남자와 함께 있으면 몸도, 마음도 제 마음대로 통제가 불가능해서.

“그래도 내게 말을 했어야죠.”

“미안해요. 난 해연이 꼭 안전한 곳에서 살길 바랐어요. 이유영 씨와 함께요.”

“…….”

“잘못했어요.”

거기까지 들으니 더 할 말이 없었다. 해연은 어깨를 풀썩 내렸다. 자신은 둘째 치고 유영이의 안전을 생각하면 그의 말대로 하는 게 현실적으로 맞았기 때문에. 해연은 애초에 그의 제안을 거절한 것 자체가 자신의 고집일 뿐이란 걸 인정했다. 게다가 유영이 저렇게 좋아하니 더 따질 마음도 없어졌다.

“……고마워요. 신경 써 줘서.”

해연이 자신뿐 아니라, 유영이까지 신경 써 준 것에 대해 솔직하게 고마움을 표하자 이현이 눈을 크게 떴다가 사르르 미소를 지었다.

“나야말로 받아 줘서 고마워요.”

그는 해연을 이끌고 간략하게 뭐가 어디에 있는지, 보안 장치의 비밀번호 같은 생활에 필요한 걸 설명했다. 해연은 가만히 그가 말하는 걸 듣다가 무심결에 떠오른 기억의 잔상에 픽, 웃음을 흘렸다. 이현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왜 그러냐고 의아해하자 해연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예전에 우리 극장에서요. 핸드폰 어플 하나 안 깔고, 무음으로 돌리는 것도 모르고, 극장 의자가 흔들린다고 긴장하던 사람 어디 갔나 해서요.”

“아…….”

해연이 가볍게 한 말에 이현의 표정이 움찔 굳었다. 그가 갑자기 긴장한 얼굴로 자신의 안색을 살피자 해연은 뒤늦게야 자신이 웃으며 말했던 그때가 사실 썩 즐겁지 않은 기억이란 걸 깨달았다.

“…….”

“…….”

어색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해연은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이제 그만하자. 이미 알고 있잖아. 어떻게 해도 이 남자를 떼어 낼 수 없다는걸. 그러니까, 나부터 변해야지. 해연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유영이가, 감시할 거래요.”

“네?”

“당신이 나한테 잘하는지, 좋은 사람인지. 자기가 인정할 때까지 넘어갈 생각도 하지 말라더라고요.”

“정말 잘해야겠네요.”

어색한 분위기를 깨트리려는 해연의 노력에 이현도 동조하듯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잘하세요.”

해연의 차분한 대답에 이현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해연은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괜히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심장이 괜히 술렁거렸다.

“지금 그 말은…….”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잘해요. 나도 지난 일은 잊으려고 노력할 테니까…….”

이현이 제게로 다가오자 해연이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서둘러 덧붙였다.

“유, 유영이가 허락하면요!”

“한 번만.”

“아, 안…….”

“제발요.”

“…….”

거듭된 애원에 해연은 당황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슬쩍 유영이가 있는지 눈치를 보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짧게…….”

“노력할게요.”

이현이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걸 왜 노력,”

“쉬이. 들켜요.”

이현이 해연의 입을 막고 바로 고개를 내렸다.

“으응…….”

입술을 맞대자마자 단단한 팔이 허리에 감기더니 바짝 당겨 안았다. 해연의 손이 그의 가슴 위를 더듬다 곧은 목에 감겼다. 점점 발이 위로 올라가 까치발이 되었다. 유영에게 들키면 안 된다고 해 놓고 입술을 맞대자마자 정작 해연이 잊어버렸다.

“우와, 미쳤어. 이거 엄청 비싼 브랜든데!”

하지만 호들갑스러운 유영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두 사람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

“…….”

짧은 키스는 여운보다 민망함을 남기고 멈췄다. 해연의 얼굴이 훅 달아올라 황급히 그의 목에 감았던 팔을 풀자 이현은 아쉬운 듯 그녀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춘 뒤 뒤로 물러섰다.

“쉬어요. 오늘 나 때문에 많이 피곤했을 텐데. 다른 건 내일 와서 알려 줄게요.”

“……가요.”

해연이 현관까지 배웅했다. 이현이 나가고도 한참 뒤에야 유영이 온 방을 뒤지고 돌아왔다. 다행히 해연의 볼에서 붉은 기가 가라앉아 유영의 의심을 사지 않았다.

“어? 그 사람은요? 갔어요?”

“으응. 갔어. 너는 여기 마음에 들어?”

“네에. 헤헤.”

유영이 상기된 얼굴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변명했다.

“아니, 뭐 내가 이런 거에 넘어갔다는 건 아니구우…….”

“그럼요. 우리 유영 님이 그럴 리가 없죠.”

“진짜라니까요?! 그냥, 이런 집에 살 수 있을 줄 몰라서, 딱 그 정도의 신기함?”

유영이 엄지와 검지로 아주 조금의 간격을 만들어 우기자 해연이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알지.”

“아닌데! 모르는 거 같은데!”

“오늘은 같은 방에서 잘까?”

“아니 왜 말을 돌리냐구요!”

“그럼 같이 자기 싫어? 따로 자?”

“……같이 자요.”

갑작스럽게 생긴 집은 아주 예쁘고 좋았지만, 너무 크고 낯설었다. 유영이 냉큼 해연에게 달라붙었다.

* * *

이현이 밖으로 나오자 삵이 된 윤시후를 안고 있던 윤일우가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인님, 시후는 계속 이렇게 두실 생각이십니까?”

“하는 거 봐서요. 왜요? 고작 윤시후 하나 때문에 또 날 배신할 생각인가요?”

“……!”

윤일우의 표정이 움찔 굳었다. 그는 서둘러 변명했다.

“배신이라니.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저는…….”

하지만 어떻게 변명하려고 머리를 쥐어짜 봐도 주인을 공격하는 잡종의 머리를 터트렸던 자신의 행동은 증거 인멸, 공범의 행위였다.

“가문을 보호하기 위해 증거를 없애야 했으니 어쩔 수 없었겠죠.”

“주인님…….”

“그러니까 이유영, 잘 보호하세요. 두 번 봐줄 생각은 없으니까.”

“…….”

이현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윤일우의 품에 안겨 있는 윤시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윤시후는 제게 무슨 일이 생긴 줄도 모른 채 태평하게 자고 있었다.

‘이런 꼴이 되고서도 참…….’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짐승이 되고서도 윤시후다웠다. 그래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윤일우는 조심스럽게 윤시후를 이현에게 넘겼다.

이현은 윤시후와 눈을 마주친 상태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을 타고 검은 안개가 윤시후의 머리 안으로 파고들었다.

“잘 지키렴.”

냐아―

잠에서 완전히 깬 윤시후가 목을 길게 울리며 대답하고 그의 품에서 뛰어내려 마당을 휘젓고 돌아다녔다. 완전히 집 지키는 개처럼 구는 윤시후를 보는 윤일우의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이내 눈을 크게 떴다. 한해연의 집을 중심으로 새까만 장막이 솟아올랐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완벽한 요새가 된 집은 마치 주인의 거처인 별채가 이곳으로 옮겨 온 듯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만월의 기간이라 살짝 어지러웠던 정신마저 또렷이 돌아왔다. 윤일우는 이렇게 많은 힘을 쓰고도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주인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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