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이른 저녁에 잠들어 날이 밝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유영이는 뭐라도 먹어 배를 채워야 한다고 해연을 식탁으로 끌었다.
따뜻하게 데운 죽을 두 그릇 퍼서 가져온 유영은 다 죽어가는 얼굴로 죽을 멍하니 바라보는 해연을 보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먹어요, 언니. 안 들어가도 먹어. 그래야 힘이 나죠.”
“……미안해, 유영아. 걱정, 시켜서…….”
“나는 그냥, 언니가 무사히 온 것만으로 괜찮은데……. 무슨 일 있었는지 아직 물어보면 안 되죠?”
“……응.”
그 끔찍한 일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게 싫기도 했지만, 자신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유영에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으니까. 픽션으로 만들어진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유영은 넋이 나간 해연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요, 그럼 묻지 않을게요. 대신 그 죽은 다 비워요. 그럼 그동안 걱정시켰던 거 다 잊어 줄게요.”
“고마워. 그리고 미…….”
“미안하다는 소리 또 하기만 해 봐요.”
유영이 짐짓 화난 얼굴을 하고 해연의 손에 수저를 쥐어 줬다.
“나 힘들 때 언니도 도와줬잖아요. 우리 그럴 만한 사이라고 말한 사람 언니예요. 그러니까, 당연한 일 가지고 자꾸 그렇게 미안하다는 말 하면 나 진짜 섭섭해요. 꼭 남 같단 말이야.”
꽉 잠긴 목소리에 해연은 멍하니 유영을 바라봤다가 따뜻한 김이 올라오고 있는 죽을 한 수저 떠 입에 담았다. 목이 너무 부어서 잘 넘겨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꾹 삼켰다. 해연이 먹는 걸 본 뒤에야 유영도 제 몫의 죽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너무 억지로 먹진 말고요. 탈 나니까 먹을 수 있을 정도만 먹어요.”
“응.”
사실은 지금도 억지로 먹는 거였지만, 해연은 내색하지 않고 꾸역꾸역 유영이 만든 죽을 다 비웠다.
하지만 억지로 눌러 담은 죽이 결국 탈이 났다. 해연은 먹을 것을 고스란히 토했다. 한참을 화장실에서 토하다가 겨우 나온 해연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유영이 해연의 볼을 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게 내가 탈 난다고 먹을 수 있을 정도만 먹으라고 했잖아요. 아 어떡해, 진짜. 언니 우리 병원 가요. 응급실 가서…….”
“아니야, 뭘 이런 걸로 병원을 가. 그냥, 속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그런 건데. 괜찮아, 조금만 지나면 좋아질 거야.”
“수액이라도 맞아야 버티죠.”
해연은 택시 부르겠다고 수선을 떠는 유영이의 손을 잡았다.
“나 진짜 밖에 못 나가겠어서 그래. 무, 무서워서…….”
고작 병원에 가겠다는 말 정도로 사시나무 떨리듯 벌벌 떠는 해연을 유영이 망연히 바라봤다.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질투가 날 정도로 심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참고 참았던 유영이의 화가 폭발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밖에 나가는 것도 무서워? 말해요, 누구야? 내가 죽여 버릴 거야, 그 새끼. 언니 이렇게 만든 그 씨발 새끼!”
“……유, 유영아 제발, 그만…….”
버럭버럭 성질을 내던 유영이 해연의 얼굴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해연이 정말 당장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창백하게 질려서, 너무 떨어서 더는 화를 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유영은 이젠 울지도 못하는 해연을 대신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속이 상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 * *
유영은 출근 준비를 하고도 계속 미적거렸다.
“언니, 나 빨리 올 테니까 혼자 잠시만 있어요. 응? 진짜 빨리 올게요.”
“알았어. 나 괜찮으니까 빨리 회사 가.”
“어휴 괜찮다는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죠. 오늘 회의만 아니었어도 휴가 냈는데…….”
“빨리 가. 늦었어. 지각하겠다.”
해연은 그녀가 못 미더운 듯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유영을 채근했다. 몇 번이고 뒤돌아보던 유영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출근했다.
혼자 남은 해연은 거실 책상 위에 올려진 노트북을 켰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3월 7일.
한 해가 훌쩍 넘고도 삼 개월이나 지났다. 해연은 소파 위에 무릎을 모아 팔로 감쌌다. 유영이가 너무 걱정해서 의연한 척했지만, 혼자 있으니 다시 무서워졌다. 침대에서 이불을 가져와 감싸도 몸이 덜덜 떨렸다.
‘이제 정말 끝인가…….’
정말 이제 안전한 건가?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가? 한참 가지고 놀아서 이제 질린 건가? 다신 안 찾아오겠지?
수없이 많은 물음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제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괴물은 발버둥 치는 자신을 꽉 끌어안고 놓아 주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놓아줄 것 같지 않았다. 괴물은 꼭 버림받은 아이처럼 애처로운 눈을 하고…….
‘애처롭다고? 그 괴물이?’
“하지만 이현은…….”
저도 모르게 괴물의 이름을 부른 해연은 두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았다. 제가 부른 소리를 듣고 괴물이 찾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해연은 떨리는 눈으로 현관을 힐끔 봤다가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는 거실 창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
그 괴물을 애처롭게 생각하다니. 해연은 잠시뿐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괴물이 증오스러웠다. 괴물에 의해 정신 나간 것처럼 울고 웃었던 기억이 수치스러웠다.
자꾸만 괴물의 눈이 떠올랐다. 소중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한 손길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던 다정한 목소리도, 그걸 기쁘게 받아들이던 자신의 멍청한 행동도, 전부…….
‘좋아해요.’
제가 내뱉었던 말이 떠오르자 해연이 머리를 주먹으로 미친 듯이 쳤다. 사라져. 사라져!
“사라지라고―!”
그 괴물 새끼에게 농락당했던 끔찍한 기억 따위!
“허억, 헉, 허억…….”
해연은 머리가 산발이 되어 숨을 헐떡였다.
“거짓말이야…….”
괴물은 단지 자신을 가지고 논 것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제 몸을 그렇게 먹었을 리가 없다. 다정한 척하는 가식 뒤로 제 몸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그도 모자라 또다시 제 다리를 먹고, 붙이고, 마치 장난감처럼…….
해연은 기운이 모두 빠져 몸을 축 늘어트렸다. 몸을 감쌌던 이불은 어느새 소파 밑으로 처박힌 상태였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던 해연은 더듬더듬 제 배를 만졌다.
괴물과 짐승처럼 교미했던 마지막 기억이 생각나자 머리가 쭈뼛 섰다. 괴물의 끔찍한 짓은 아직 끝난 게 아닐지도 모른다.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병원에 가서 사후 피임약을 처방받았지만, 그게 유효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날로부터 얼마나 지나서 깨어났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괴물의 씨가 인간의 피임약으로 떨어질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임신? 그 괴물의, 짐승의 새끼가 내 배에 있다고?’
해연은 울컥 올라오는 신물에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를 붙잡고 토악질을 했지만, 쓰디쓴 위액만 식도를 태우며 넘어왔다. 그러다 이 구역질조차 임신의 징후일까 봐 겁이 났다. 해연은 다시 올라오는 신물을 다시 꿀꺽 삼켰다. 강한 산성에 식도가 쪼그라드는 것처럼 아팠지만, 해연은 몇 번이고 다시 삼키고 또 삼켰다.
‘만약 내 배에서 괴물이 나온다면 어떡하지……?’
무언가를 찾듯 이곳저곳을 바라보던 해연의 눈이 한곳에 멈췄다. 욕실의 수납장이 열려 있었다. 그 안에 커터 칼이 있었다. 직업이 디자이너인 탓에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공구들보다 아주 날카로운. 해연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동안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던 날은 많았다. 부모님이 일찍 부고한 날도, 보호해 줄 사람 없이 혼자 남은 어린 여자애의 앞에 수많은 위협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그럼에도 해연은 꿋꿋이 살아가는 걸 선택했다. 그렇게 버텨 왔는데……. 이렇게 쉽게 삶을 포기하기엔 버텨 온 시간이 너무 아까운데…….
해연은 가만히 제 손목과 배를 바라봤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다른 건 생각나지 않았다.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날 다른 방법이.
손이 떨리는 걸까. 아니면 몸이 떨리는 걸까. 고작 손만 뻗으면 닿을, 아주 가까이에 있는 수납장까지의 거리가 굉장히 멀게 느껴졌다. 해연은 주먹을 세게 꽉 쥐었다가 숨을 삼키고 다시 손을 뻗었다.
턱.
순간, 뒤에서 뻗어 나온 창백할 정도로 하얀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
해연의 몸이 얼어붙었다.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확 들었다. 심장이 선뜩하게 뛰었다. 해연은 괴물에게 잡힌 손목부터 온몸이 차갑게 식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해연은 고개를 숙인 채로 살짝 고개를 돌려 현관을 바라봤다. 현관문은 여전히 몇 개의 잠금장치가 채워진 채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게 아니었다.
그럼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지? 아니, 설마 계속 같은 공간에 있었던 건가?
해연이 두려움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자 괴물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지 말아요. 제발, 부탁이니까…….”
머리 위에서 들리는 괴물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부드럽고 다정했고, 간절한 것처럼 떨리는 것도 같았다. 괴물 주제에.
해연은 거울에 비치는 괴물을 굳은 얼굴로 바라봤다. 제정신으로 괴물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괴물의 얼굴은 몹시 아름다웠다. 해연이 까맣게 죽은 눈으로 그의 얼굴을 살피자 괴물이 입술을 움직여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아주 짧았다. 그가 웃는 순간 해연이 발작하듯 몸을 떨었기 때문이었다.
괴물은 완전히 표정을 지운 채 천천히 해연의 손을 아래로 내렸다. 아주 손쉽게. 해연이 아무리 팔에 힘을 주고 버텨도 소용없었다. 해연은 자신의 몸이 아직도 괴물의 통제하에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괴물에게 당해내지 못하는 약한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괴물은 그녀의 팔을 완전히 아래로 내린 뒤에야 손을 놔주었다. 그러더니 주제도 모르고 뻔뻔한 말을 한다.
“당신의 몸을 아프게 하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