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의 아내-63화 (63/113)

63화.

그의 피는 인간의 피와 다르다. 이 여자의 곁에 머물고 싶어서 온갖 짐승과 인간을 흡수해 만든 그의 육체를 메우는 끈이자 근원이었다. 근원이 망가지면 억지로 만든 육체마저 허물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현은 제 근원을 여자의 몸에 쏟아 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무슨 짓이라도 해야 했다. 다시 이 여자가 죽으면 육체를 지니고 있을 이유조차 사라지기 때문에 그는 망설이지 않고 제 근원을 여자에게 부었다.

다행히 아직 여자의 몸 안에 남은 그의 피가 그가 부은 근원과 결합했다. 그것은 해연의 심장과 배에 자리를 잡았다.

배.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창조의 근원. 저곳에 해연과 그의 기운이 동시에 섞인 씨앗을 심어 버린다면 청혈도 어쩌지 못할 것 같았다.

‘당신을 붙잡을 방법이 아직 남아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현은 해연의 배를 집요하게 보며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은 안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에겐 생식 능력이 없으므로. 그럼에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원래 없던 육체적 욕구가 해연을 만난 이후 끊임없이 돋아났기 때문이었다.

가당치도 않게.

더러운 오물 덩어리로 만든 육체에 그런 축복이 있을 리가 없는데도. 그럼에도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손을 놓고 포기하는 것보단 나았다.

‘시간이 없어.’

제게 남은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언제 해연이 그를 밀어내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이 마지막 시도는 더 미룰 수 없었다.

이현은 해연의 등을 부드럽게 쓸고는 욕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하고 싶어요.”

낮고 은밀한 목소리는 등이 곤두설 정도로 관능적이었지만, 해연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처음이었다. 이현과의 섹스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오늘은 조금……. 다음에 하면 안 될까요?”

“……그래요?”

이현이 느리게 대답했다. 갸름한 속눈썹이 아래로 내려갔다. 길고 다붓한 검은 깃 아래로 짙은 그림자가 깔렸다. 아랫입술마저 이로 깨무는 것을 보자 해연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꼭 몹쓸 짓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작 섹스를 거절했을 뿐인데.

‘그래도 하고 싶지 않아.’

지금은. 지금 그와 섹스를 하면 분명 후회할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해연은 다시 이현의 뒤에 보이는 그림자를 힐끔 바라봤다. 아까보다 형체가 선명히 보였다. 조금만 더 있으면 완전히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해연은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내일, 내일 해요.”

“싫어요?”

“……그건, 아닌데. 왠지 오늘은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럼 안고 있기만 할게요.”

해연이 더듬더듬 변명하자 그가 애원하듯 말했다. 매달리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듯한 눈에 해연은 이것까지 거부할 수가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방향을 보는 자세로 누운 채 해연은 그의 가슴에 등을 바짝 대고 안겼다. 허벅지 부근에 발기한 성기가 느껴졌지만, 이현은 그녀의 아랫배에 손을 감았을 뿐 다시 성애를 보채거나 하진 않았다.

손이 조금만 내려가면 가장 은밀한 부위였기에 몸이 본능적으로 긴장했지만, 이현은 다른 곳은 만지지 않고 배만 쓰다듬었다. 배에 닿은 손길도 담백했다. 그런데 그가 살짝 손을 움직일 때마다 배 속 어딘가 묶여 있던 게 풀리는 듯한 시원한 감각이 들기도 했고, 뜨겁기도 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비릿하고 음탕한 냄새가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냄새는 점점 더 짙고 무겁게 그녀를 감쌌다. 점점 정신이 혼곤해졌다.

‘흣…….’

해연은 살짝 뜨거워진 볼을 손으로 살짝 문질렀다. 그의 손이 닿은 아랫배부터 뭉근한 열기가 오르고 있었다. 바로 조금 전에 섹스를 보채는 이현에게 내일 하자고 거절했으면서 고작 배에 닿은 손에 몸이 제멋대로 달아올랐다.

‘안 돼.’

불안감과 성적인 긴장감으로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이러다 휩쓸려 버릴 것 같았다. 해연은 엉덩이를 살짝 앞으로 당기고 다리를 오므렸다. 그에게 자신의 반응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때 이현이 그녀의 목덜미를 살짝 깨물었다.

“아!”

“잠시만, 안고 있기만 할 테니까…….”

지익―

바지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바짝 맞닿은 그의 하체가 미묘하게 흔들리자 해연은 그가 뭘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수음. 이현은 그녀를 안고 홀로 수음하고 있었다. 해연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숨을 죽였다. 목덜미에 닿는 남자의 숨이 미묘하게 거칠어진 것이 느껴졌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좋아요, 당신 냄새.”

“…….”

해연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남자의 신음과 찌걱거리는 음탕한 소음이 그녀를 어지럽혔다. 그때 살짝 올라간 치마 안쪽으로 남자의 성기가 살짝 닿았다.

“앗.”

“아, 미안해요. 그런데 조금만 도와주면 안 돼요? 허벅지만. 응?”

“…….”

“제발. 다른 곳은 건드리지 않을게요.”

이현이 소름이 오소소 돋은 목덜미를 입술로 비비며 애원했다. 해연은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것 같은 신음을 꾹 눌러 참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저, 정말 허벅지만…….”

“응, 안 해요. 당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그는 단단하게 팽창한 성기를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밀어 넣었다.

선액이 묻은 성기가 예민한 허벅지에 닿자 해연은 손가락을 이로 깨물었다. 그가 천천히 하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껍고 긴 살덩어리가 허벅지 살을 밀었다가 다시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시 안으로 파고들었다. 살짝 휘어진 성기는 조금만 잘못하면 그녀의 음부에 닿을 것만 같았다. 닿을 듯 말 듯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성기는 그녀의 긴장이 무색하도록 오로지 허벅지만 문지르고 있었다.

‘아, 아아…….’

제멋대로 흥분한 속살이 저 혼자 움찔거렸다. 빨리 이 갈증을 채워 줄 남자가 들어오길 바라며.

‘하아…….’

몸이 뜨거워서 숨결마저 열기가 섞여 나왔다. 해연이 몸을 움찔움찔 떨자, 이현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거짓말.”

이현이 웃으며 해연의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해연의 얼굴이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알면서. 다 눈치챘으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약속을 지키듯 오로지 그녀의 허벅지만 이용해 자위하고 있었다. 음부 바로 아래쪽의 허벅지 사이가 그가 흘린 선액으로 축축해졌다. 끈적한 액체가 그의 추삽질이 매끄럽도록 돕고 있었고, 다리 사이는 성기가 움직일 때마다 마치 화상을 입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 안 되는데 하고 싶어졌다.

‘왜 하면 안 되지?’

해연은 자신이 왜 그와의 섹스를 거절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졌다. 항상 아무렇지도 않게 수없이 했던 걸 거부한 자신이 이상했다. 그는 조금 과할지언정 제게 쾌락만을 주었는데…….

그렇게 생각하자 이미 안달하고 있던 몸이 더욱 달아올랐다. 해연은 허벅지를 더욱 조여 성기를 압박했다. 욕구에 진 육체가 본능적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허벅지가 아니라 더 위로. 그가 들어올 때마다 촉촉하게 젖는 곳으로 향해 주길 바랐다. 몸 안쪽이 뜨겁고, 간지러웠다. 켜켜이 쌓인 육체의 갈증은 해갈을 원했다. 속옷은 이미 음부에서 쏟아진 애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다.

“하고 싶어요?”

“…….”

해연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은은하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말 대신 고개를 돌려 남자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맞닿은 입술이 열리고 혀가 얽혔다. 남자는 열정적으로 혀를 움직였다.

해연의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애가 탈 정도로 허벅지에만 머물던 성기가 그녀의 음부에 닿았다. 속옷을 입은 채로 통통하게 부푼 아래가 성기에 문질러지자 해연이 몸을 크게 떨었다.

“하읏!”

“젖었네요. 계속 이렇게 물을 흘리면서 내가 여길 만져 줬으면 했어요?”

“으응, 아…….”

귀두 끝이 클리토리스를 꾹 눌렀다. 해연은 경련하듯 몸을 떨었다. 절정이었다. 자위를 한 건 이현이었는데 그보다 더 빨리 절정에 도달한 사람은 해연이었다. 짧고 강렬한 쾌감에 그녀가 헐떡헐떡 숨을 가쁘게 토하며 몸을 경련하다가 축 늘어트리자 그의 손가락이 속옷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그녀의 체온과는 달라 살짝 서늘한 손가락이 아직도 움찔거리고 있는 내벽 안으로 들어오자 흐물흐물 풀렸던 해연의 몸이 와락 긴장했다. 이현은 해연의 귓바퀴를 혀로 뭉근히 핥았다.

“쉬이, 기분 좋게 해 줄게요. 응?”

곧고 긴 손가락이 그녀가 느끼는 안쪽을 꾹꾹 누르며 움직이자, 서늘한 체온에 오므라들었던 내벽이 벌렁거리며 그의 손가락에 찰싹 달라붙었다.

“응, 으응, 아, 하읏! 잠, 앗! 아앙!”

“다리, 조금만 더 벌려 봐요.”

더 기분 좋게 해 주겠다는 유혹에 바짝 모으고 있던 해연의 다리가 힘없이 벌어졌다. 이현이 그녀의 귓가에 착하다고 속삭였다. 엄지로는 클리토리스를 살살 굴렸다가 꾹 누르고 중지는 음부 안에 박고 있었다. 물이 튀기는 추잡한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해연은 다리를 벌린 채 그가 아래를 자극할 때마다 엉덩이를 들었다 내렸다.

안 하겠다고 거부할 땐 언제고 몸이 그의 손 하나에 미쳐 날뛰고 있었다. 다리를 활짝 벌리고 움츠러든 발가락이 매끄러운 시트를 꽉 물었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허리가 발발 떨렸다.

“아아아아!”

해연은 또다시 오르가슴에 올랐다. 아까보다 더 강렬하고 긴 절정에 넋을 빼고 있던 해연의 시야에 그가 만족한 얼굴을 하고 그녀가 흘린 애액으로 흠뻑 젖은 손가락을 핥고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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