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의 아내-57화 (57/113)

57화.

아이의 대우는 괜찮아졌다. 인간들은 아이를 제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신의 대리자라며, 자신들의 가장 진귀하고 좋은 것을 아이에게 바쳤다. 처음에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당황하던 아이도 어느덧 바뀐 상황에 익숙해졌다.

풍족한 식량에 아이의 몸에 살이 올랐다. 공허한 눈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더 이상 아이의 곁에 머물 수 없었다. 자신은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이 뭉쳐져 만들어진 존재였기에 여기서 더 지체하면 아이마저 더럽힐 게 분명했다. 지금까진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가야 할 때였다.

제 것과 멀어져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괜찮았다. 그저 세상 어딘가에 그를 위한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이의 습윤한 눈동자를 담은 후,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고통에 의식을 잃기 전, 늘 그랬듯이.

세계를 떠돌던 그는 아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러 왔다. 아이가 신의 가호를 받는다고 착각하게 만들었으니 이전보단 나은 삶을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아이는 여전히 불행해 보였다. 이제 성인이 되었음에도 남자와 결혼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이는 늘 혼자였고, 외로워 보였고, 여전히 말랐다. 처음 봤던 날처럼, 메마른 표정과 달리 옅은 물기가 담긴 눈동자는 그대로였다.

‘왜?’

그는 한동안 아이의 주변을 돌았다. 왜 아이가 계속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을의 가장 외딴 사당에서 지내는 아이에 대한 화제는 같은 지역에 사는 인간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렸기 때문에.

신이 내려왔던 이후, 마을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건 신이 아니라 악신인 것 같다며. 그러므로 아이는 악신의 화신이라고. 악신에게 화를 입을까 두려워 차마 아이를 건드릴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고운 눈으로 볼 수도 없다는 인간들의 악의에 찬 말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차라리 빨리 죽어 버려라!’

‘마을에 해만 끼치는 악한 것!’

그들의 입이 다물어지는 건 아이가 근처에 있을 때뿐이었다. 그들은 아이의 앞에서 말을 아꼈고, 아무도 아이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지 않았다. 아이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그가 ‘분노’라는 감정을 자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맹세코, 그는 저를 만들어 낸 세계를 향해 단 한 번도 분노한 적이 없었다. 그저 흐르는 대로 살아갈 뿐이었다. 그게 그가 존재하는 의미였기에.

하지만 제게 먹히기 위해 태어난 아이가 겪고 있는 부당한 현실은 그를 견디기 힘들게 했다. 고작 이딴 걸 먹고 살아왔다. 제 것이. 그를 위해 태어난 아이가…….

어렵게 떼어 놓고 온 제 것이었다. 이런 삶을 살라고 그런 게 아니었다. 그 순간 그의 분노를 따라 하늘이 움직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하늘에 새까만 구름이 끼고 천지가 흔들리는 굉음이 울렸다. 거대한 번개가 땅에 내려꽂히고 사나운 비가 쏟아졌다.

처음에는 드디어 비가 왔다고 기뻐하던 인간들은 밖에 나와 있다가 번개에 맞아 죽은 인간들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집 안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견고하지 못한 집은 은신처가 될 수 없었다. 번개는 그들의 집에도 내리꽂혔다. 폭우가 내리는데도 집은 불탔다.

아이를 향해 악의를 쏟아 내던 사람들의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분노가 조금은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가 내리는 비는 재앙과도 같았다. 그의 재앙에서 무사한 이는 오로지 아이가 살고 있는 낡은 사당뿐이었다. 그가 노골적으로 아이가 있는 곳만 보호하자 무지한 인간들도 그 뜻이 무엇인지 알았으리라.

그들이 아이가 머물고 있는 사당에 몰려와 절을 하고 용서해 달라고 빌자 그는 그제야 비를 그쳤다. 재앙이 끝났다.

인간들이 바치는 음식과 경외로 아이의 삶이 다시 평화로워졌다 판단하자 그는 다시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악의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다시 세계를 떠돌다 돌아온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이전보다 더 불행해 보이는 아이였다. 주름이 살짝 진, 나이 든 아이의 몸은 당장 꼬꾸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앙상해졌고, 예전엔 보지 못했던 상처도 보였다.

그들은 아이에게 더 잔인해졌고, 폭력적으로 변해 있었다. 아이가 집 밖으로 나오면 돌을 던졌다. 아이는 돌을 맞으면서도 먹을 걸 구하기 위해 산에 올라갔다. 그리고 산에서 풀 따위를 뜯어먹고 다시 내려왔다.

‘대체 왜? 경고가 부족했던 건가?’

이번엔 바로 손을 쓰는 대신 잠시 지켜보았다. 아주 잠시뿐이었지만, 그걸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인간들은 시간이 흐르자 그 재앙조차도 아이 탓으로 돌렸던 거다. 나약했기에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인간들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그의 단편적인 지식이 낳은 참사였다.

그래서 이번엔 아이의 곁을 직접 지켜 주자 생각했다.

‘그래, 조금만. 아주 조금만 함께 있어도 될 것이다.’

이미 나이가 훌쩍 든 아이의 남은 삶은 무척 짧을 테니까. 그의 몸에서 퍼져나온 독이 아이를 더럽히기 전에 아이의 수명이 먼저 끝나리라. 그는 산으로 가 들짐승의 새끼를 하나 잡아 삼켰다. 여자의 무심한 시선이 새끼를 보았을 때 유독 부드러워지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들개의 종류였으나 그가 삼켜 모습을 형상화하자 세상에 없는 이상한 것으로 바뀌었다. 누런 털은 온통 검어졌고, 체형도 바뀌었다.

그는 새끼를 삼킨 보람도 없이 거대해진 몸을 아주 작게 줄였다. 그리고 아이의 집 앞에서 어미를 잃은 새끼처럼 낑낑거리며 울었다. 우스운 행동이라는 걸 아는데 아이 앞에선 참 쉽게 흘러나왔다.

처음엔 왜 집 앞에 갓 젖을 뗀 듯한 어린 짐승이 있는지 몰라 어리둥절하던 아이는 낑낑거리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선뜻 손을 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외면하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갈 듯한 여자의 치맛자락을 입으로 덥썩 물었다. 아이는 제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그를 당혹스럽게 보다 결국 그를 품에 안았다.

‘……어미는 어디에 있고 혼자야?’

아이가 삶의 무게가 담긴 침잠한 얼굴로 물었다. 그는 아이의 품에 안긴 채 애처로운 소리만 냈다.

‘잠깐 비만 피하고 어미가 오면 가.’

정을 주지 않겠다는 무심한 목소리가 차가웠지만 아이는 그래도 그를 집 안으로 들였다. 아이는 제 이불을 바닥에 두고 그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혼자 분주히 움직여 이상한 풀 같은 것을 그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설마 먹으라는 건가? 이딴 걸? 그가 고개를 들어 아이를 바라보자 아이는 살점이 거의 보이지 않는 마른 얼굴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 이런 풀을 먹긴 좀 그런가……. 미안, 먹을 게 이것밖에 없어. 그래도 꼭꼭 씹으면 단물이 나와서 먹을 만해.’

사실 그는 이런 걸 먹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먹는 것 따위로 생명을 유지하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먹는다면 이 달콤하고 청아한 냄새가 나는 아이가…….

그는 아이의 얼굴에 두려움이 섞이는 걸 보고 번뜩 정신 차렸다. 자칫 먹을 뻔했다. 그는 아이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제 앞에 놓인 풀을 주워 삼켰다. 먹을 만하기는. 아무리 씹어도 단맛 따위 나지 않았다. 도리어 쓴 진물이 나와서 목구멍에 삼키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가 풀을 씹을 때마다 아이의 메마른 얼굴에 조금씩 웃음이 피어올라서 어쩔 수 없이 꾹 삼켰다.

‘먹을 만하지?’

‘…….’

아니. 그의 몸과 섞인 짐승은 육식 동물이었다. 이런 풀 따위가 맛있을 리가 없었다. 사냥을 가야겠다. 그는 한숨을 삼키며 남은 풀을 마저 씹었다.

비는 그쳤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이의 집에 머물렀다. 어미가 오면 가라고 했지만, 당연히 그의 어미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곤란한 얼굴을 했지만, 그를 내치진 않았다. 약간의 체념이 깃든 얼굴로 그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검둥아.’

아이는 털을 조심조심 쓰다듬으며 그를 불렀다. 검둥이? 생소한 호칭에 그는 눈을 깜박이며 아이를 바라봤다.

‘몸이 까마니까. 혹시 마음에 안 드니?’

그가 크르릉 위협적인 소리를 내자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리 아이가 지어 줬다 하더라도 검둥이는 아니었다. 그가 휙 고개를 돌려 버리자 아이는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옅게 웃었다.

‘그럼 현이?’

검둥이, 멍멍이, 깜이 등의 우스운 이름 뒤에 겨우 이름다운 이름이 나왔다. 현이 된 그는 마음에 든다는 표시로 아이의 얼굴을 혀로 길게 핥았다. 아이가 침 범벅이 된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현. 그의 이름이었다. 처음 받은 이름이었다. 그것도 제 것으로 태어난 아이가 준 이름인데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는 아이가 말한 수많은 이름을 퇴짜 놓았던 것은 머리에서 싹 지운 채 현이라는 이름에 만족스러워했다.

아이는 그에게 제 이불을 내준 뒤 그를 끌어안고 잠들었다. 온기를 찾듯 그의 털에 얼굴을 폭삭 묻고 더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가만히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이런 풀 따위를 먹고 살았으니 살이 오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지금껏 그가 봐 왔던 모든 것보다 어여뻤다. 사랑스러웠다.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든 세계가 증오스러운 것과 동시에 감사했다.

그의 긴 생애에서 처음 가진 제 것이었기에.

아이가 깊은 잠에 빠졌을 무렵, 그는 슬며시 아이의 품에서 빠져나와 산으로 향했다. 사냥은 쉬웠다. 그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토끼를 물고 다시 아이가 있는 천막으로 돌아왔다. 마음 같아선 큰 짐승을 사냥해 양껏 먹이고 싶었지만, 그 조그만 손으로 큰 짐승을 손질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작은 짐승을 선택했다.

천막의 입구 근처에 죽은 토끼를 놓은 뒤, 그는 언제 빠져나갔었냐는 듯 다시 아이의 곁에 털썩 누웠다.

아침이 되자 잠에서 깬 아이는 토끼를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아이는 죽은 토끼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

‘사냥할 줄 아는구나. 그럼 혼자 살아도…….’

‘……!’

차분한 눈이 마치 이대로 내보낼 것 같아 현은 아이의 다리를 빙빙 돌았다. 그리고 배를 까뒤집고 짐승들이 하듯 애교를 부렸다. 그에게 자존심이란 게 없었다. 그가 하는 짓을 빤히 보던 아이는 바람 빠진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작아. 다음엔 새끼는 사냥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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