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어리광이 너무 많아졌어요.”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작게 한숨을 쉬고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드디어 그가 제 앞에 도착해 무릎을 굽혀 자신을 끌어당기자 해연은 언제 힘이 없었냐는 듯 와락 매달렸다.
해연의 손톱이 등을 파고들어 날카로운 상처를 내고 있음에도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해연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잘 견뎠어요. 착해요.”
“흑, 흐윽…….”
“딱 한 번만. 이제 마지막이니까 이번만 견뎌 줘요.”
그럼 더 아플 일은 없을 테니까. 그 말이 도화선이 된 것처럼 그들 주변으로 검은 안개가 일렁거렸다. 남자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안개가 모두 한해연의 몸에 달라붙었다. 해연의 몸이 들썩거릴 때마다 남자는 내뱉고 있던 것을 살짝 줄였다가 안정을 찾으면 다시 거세게 쏟아 냈다.
“시, 싫, 이거, 무서…….”
“쉬이. 무서운 거 아니에요. 괜찮아. 괜찮으니까 몸에 힘 풀어요.”
해연을 안심시키던 남자의 몸이 검은 안개와 함께 짐승의 형태로 바뀌었다. 인간에서 짐승으로 바뀌는 과정을 전부 보게 된 해연의 동공이 공포로 크게 확장됐다.
거, 거짓말. 분명 그였다. 이현이었는데, 왜…….
그 순간 해연의 다리가 안개와 함께 뭉개졌다. 안개에 검게 물든 살점이 물에 희석된 점토처럼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짐승에게 먹혔을 때처럼.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에 해연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 아, 아아아!”
아파, 너무 아파! 해연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지만, 짐승은 제 몸뚱이를 내려 그녀의 상체를 누르곤 가볍게 제압했다. 짐승은 창백하게 질린 해연을 보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상체를 누른 상태에서 천천히 고개를 내려 혀를 내밀고 허벅지의 반만 남은 해연의 다리를 핥았다.
커다란 혀가 움직일 때마다 몸이 움찔움찔 튀었다. 까슬한 혀에 밀려 붉어졌던 피부가 다시 원래의 색을 찾아갔다. 온몸이 타들어 갈 것 같던 열기 역시 점차 사그라들었다. 해연이 머뭇거리며 시선을 내리자 언제 다리가 사라졌냐는 듯이 멀쩡히 붙어 있었다. 새하얀 피부에는 짐승의 타액과 붉은색의 금만 남았다.
열심히 다리를 핥던 짐승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었다. 검은색 눈이 마주치자 신기하게도 심장이 안정되어 갔다. 하지만 벌어진 허벅지 사이로 짐승의 머리가 들어갔을 때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다행히 물컹한 혀는 허벅지 안쪽을 핥기만 할 뿐이었다. 해연의 다리를 긴 주둥이를 이용해 위로 들어 올린 뒤 뒤쪽까지 꼼꼼히 핥은 짐승이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와락 겁에 질렸던 해연의 심리를 눈치챈 것처럼 짐승이 꼭 인간처럼 피식 웃었다. 익숙한 웃음인데 또 굉장히 낯설어 해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짐승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허벅지부터 핥아 올라온 혀가 가슴에 닿았다. 커다란 혀가 두려움과 긴장으로 바짝 선 유두까지 샅샅이 핥아 올렸다. 바짝 달아오른 감각이 수치스러워 창백하던 해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으으…….”
그르릉. 해연이 그만하라고 몸부림을 칠 때마다 짐승의 목이 울렸다. 차라리 보지 말자고 눈을 감았다가 후회했다. 제 가슴을 핥는 까슬한 혀의 감촉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상했다. 짐승의 혀가 그녀의 몸을 핥을수록 몸이 가벼워졌다. 무겁게 가라앉았던 몸이 나아지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짐승이 제 몸의 예민한 부위를 핥고 있다는 수치심이 점차 걷혔다. 믿을 수 없게도, 짐승은 지금 자신을 치료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지만, 해연의 반응을 즐기기 위해 계속 핥던 짐승은 안정을 찾은 해연의 얼굴을 보고 흥이 식은 눈으로 혀를 떼어 냈다. 짐승의 몸이 점차 인간의 형상으로 변해 갔다. 해연의 눈이 완전히 인간으로 변한 짐승. 아니, 남자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그가 나타났다. 이건 대체 무엇을 뜻하는 걸까?
“그렇게 보면 좀 부끄러운데요.”
바닥을 기는 낮은 목소리. 해연은 남자의 얼굴부터 천천히 내려오던 시선이 단단히 발기한 성기에 닿기 무섭게 흘러나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바짝 가까워진 얼굴. 자칫하면 닿을 것처럼 가까워 해연의 눈이 어물쩍 다시 남자에게로 돌아갔다.
“더 먹고 싶어.”
“……!”
남자의 차갑고 매끄러운 손이 해연의 허벅지 사이를 천천히 쓸었다. 부드러운 음모 사이로 남자의 손가락이 닿자 해연이 몸부림쳤다. 남자는 볼록 튀어나온 여자의 것을 툭 건드리고 손을 떼어 냈다. 남자는 여자를 만졌던 손을 혀로 핥았다. 음탕하고 수치스러운 장면이었다.
“달아요.”
“흐읏!”
남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일을 저지르고도 남는다. 지금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조금 전까지는 분명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던 남자를 해연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현실감이 없었다. 자신을 잡아먹을 거라고 생각했던 짐승이 저를 치료했고, 붉게 벌어졌던 상처가 완전히 나았다. 그리고 짐승이 인간이 으로 변했다. 그런데 그 인간의 모습이 바로 이현이었다.
“부족해요.”
“으으응! 아! 하앗!”
남자의 하얀 손이 다리를 넓게 벌리고 가장 내밀한 곳을 헤집고 들어오자 해연은 가냘픈 울음만 토해 내며 몸을 떨었다.
‘꿈이야. 이것까지 모두 악몽이야. 아직 그는 오지 않았어.’
과부하가 걸린 뇌가 제 마음대로 현실을 부정했다. 그래야 버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게 현실이라면, 저를 해쳤던 짐승이 이현이라는 뜻이니까. 그러니, 꿈이 맞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이 상황은 충격적이었다.
“흐으, 으. 으으…….”
해연이 하염없이 울자 남자는 혀를 내차며 그녀의 안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투명한 애액이 남자의 손을 따라 붉게 물든 음부를 타고 흘러내렸다. 도톰하게 부푼 내벽이 음란하게 움찔거리는 모습이 남자의 시선을 끌었지만, 해연이 너무 울어서 계속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남자는 손을 들어 여자의 젖은 눈을 감겼다.
“이번엔 조금 충격이 과했나 보네요.”
항상 하던 짓인데.
“다 끝났으니까 더 아플 일은 없어요. 아무도 당신을 해치지 않을 테니 이제 안전하다는 것만 기억해요.”
해연은 어미를 찾는 어린 짐승처럼 작은 흐느낌을 흘리며 물었다.
“꾸, 꿈이라고…….”
“맞아요. 모두 꿈이에요. 그러니까 당신이 지금 본 것까지 전부 잊어요.”
다정한 목소리에 해연이 안도한 것처럼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경련하고 있었다. 이현은 해연의 눈을 가린 채 입을 맞췄다. 충격으로 굳어 움직이지 않는 혀를 소중하게 빨고 핥아 낸 남자는 다시 잊으라고 속삭였다.
“이제 자도 돼요. 그럼 모두 원래대로 돌아올 테니까. 응?”
“…….”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해연의 몸에서 힘이 훅 풀렸다. 그녀가 완전히 의식을 잃자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깊게 잠든 상태에서 눈물을 흘리는 여자의 눈가를 손으로 닦았다. 그리고 젖은 손을 혀로 핥았다. 인간의 눈물은 염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 여자의 체액은 이상할 정도로 단맛만 났다.
나른한 한숨과 함께 상체를 살짝 들어 올리자 섬세한 근육을 따라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남자는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여자의 육체를 다시 재조립하는 건 그에게도 꽤 힘든 작업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이 여자만큼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여자가 가지고 있는 가장 나쁜 악몽을 끄집어내 현실을 숨겼다. 꿈이라고, 현실이 아니라고 세뇌하는 것은 여자의 정신이 조금이라도 덜 타격받기 위함이었다. 이미 붙여 놓은 다리를 다시 잘라 내고 새로운 육체를 붙이는 건 엄청난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현실이 아니라고 만들어 놔야 그나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해연이 그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세뇌를 시키기 위해 이유영이라는 인간을 끌어들인 것처럼.
몸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의식을 그의 마음대로 조정하려면 어느 정도 현실을 끌고 와야 했다. 현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어야 세뇌가 겹겹이 층을 쌓아 빠져나갈 수 있는 일말의 틈을 메울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강압적인 방법만 쓰면 여자는 금방 백치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건 이현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미안해요, 아프게 해서.”
당신을 살리려면 어쩔 수 없었어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의 육체가 무너져 내릴 테니까.
남자는 제가 여자의 육체를 불완전하게 만들어 놓고 어쩔 수 없었다며 위선적인 사과를 했다. 그에겐 여자를 해쳤던 것까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자의 육체에 제 기운을 완전히 심으려면 이런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기에.
아직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이대로 일 년을 버티면 완전히 그와 동화가 될 것이다. 그럼 이 유리 같은 몸은 완전해진다. 아주 천천히, 하나하나 공들여 그의 것으로 채워 넣어야지. 세상에서 가장 정결한 존재가 저와 같이 더러워질 때까지.
이제 더 받아들이지 못하겠는지 여자의 피부로 스며들고 있던 검은 안개가 주변을 서성이며 배회하고 있었다. 남자는 혀를 내차며 다시 기운을 거둬들였다. 여자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연기가 다시 남자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게 물들었던 방 역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해연이 있었던 검고 축축한 방이 아닌,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침실이었다.
남자는 정신을 잃은 해연을 침대에 눕힌 후, 아직 제 기운이 움직이고 있는 여자의 피부를 혀로 핥았다. 혈관이 그의 혀를 따라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목덜미와 가슴, 배와 다리까지 샅샅이 훑어 내린 남자의 혀가 작은 발가락을 휘감았다.
여자의 몸을 모두 핥고서야 남자는 한숨을 내뱉으며 여자의 움푹한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탁자 위에서 불빛이 깜박거리고 있는 버튼을 눌렀다.
“말하세요.”
이현의 허락이 떨어지자 수화기 너머의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텄다.
-이유영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한해연 님과 세 달간 연락이 되지 않아 안 좋은 상상을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요?”
고작 그런 걸 보고하기 위해 연락했냐는 듯한 무심한 물음에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실종신고는 실효가 없도록 해 놓긴 했지만, 이대로 계속 두면 일을 크게 벌일 것 같습니다. 일이 복잡해지기 전에 처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