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전화해 볼까…….’
이진아는 무의식중에 꺼낸 핸드폰을 바라보다 흠칫 몸을 떨었다. 안 돼. 못해. 무서워서 차마 확인을 할 수가 없다. 손에 들린 핸드폰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꼭 자신의 손에 한해연의 생명의 무게가 올라온 것처럼 소름 끼친다. 아무리 한해연이 죽길 바란다고 해도 그걸 확인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한해연의 죽음은 반드시 자신과 무관해야 했으니까.
황급히 핸드폰 화면을 껐다가 문득 든 생각에 다시 화면을 켜고 주소록을 뒤졌다. 이유영. 한해연과 굉장히 친밀한 사이라던 이유영에게라도 전화를 해 보자.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이진아는 주소록의 화면을 아래로 내리다 이유영의 이름을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마치 천둥이 울리는 것처럼 크게 울렸다. 심장도 그에 따라 미친 듯이 박동했다. 억지로 숨을 가다듬으며 끊을까, 말까 고민했다. 연락해서 어쩔 건데? 이유영이 뭘 알아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때, 이유영의 목소리가 울렸다.
-네, 이유영입니다!
이제 와 끊을 수 없다. 차라리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데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이진아는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꽉 줬다.
“……안녕하세요, 유영 님. 저 이진아예요.”
-앗, 피디님. 무슨 일이세요?
“잘 지내셨어요? 이제 곧 입사일이 다가와서 확인차 연락드렸어요.”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것은 따로 있는데 이진아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유영의 안부를 묻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멋대로 지어낸 말이 어색함도 없이 술술 흘러나왔다. 한해연에게 왜 살아 있냐는 추궁 대신 만나서 정말 안심했다고 한 거짓말처럼.
이진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너무 쓰레기 같았다.
-엇. 무슨 확인이요? 혹시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니요. 전혀 그런 거 아니에요. 가끔 입사 확정을 하시고 다른 회사로 가시는 분들이 종종 계셔서요.”
-에이, 저는 절대 안 그래요.
억지로 농담처럼 웃음기를 담았더니 이유영이 한결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말이 떨리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다.
“그러실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러셨구나. 헤헤. 뭔가 기분 좋네요.
“저기…….”
-네?
“해연 님은 혹시 무슨 일 있으신가요?”
-네? 해연 언니요? 해연 언니는 왜요?
“1차 면접 합격하신 후에 연락이 없으셔서요.”
-어? 저랑 아까 만났는데……. 아, 맞다! 안 그래도 아까 식당에서 피디님 만났다고 들었는데, 언니도 메일을 분명 보냈는데 전송이 안 됐다고 걱정하면서 바로 보낼 거라고 했어요! 저기, 그런데 피디님께도 언니가 말했다고 했었는데…….
“……!”
아까 만났다고? 하지만 한해연은 남자와 같이 있었는데……. 괜히 이유영에게 전화했다. 한해연과 만난 걸 알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이진아는 서둘러 말을 급조했다.
“저도 듣긴 했는데, 인사팀에서 자꾸 보채서요. 그래서 되도록 빨리 받았으면 하는데 아직 집에 안 가셨는지 메일이…….”
이상하게 들리진 않았겠지? 이진아는 말끝을 흐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힘겨운 통화를 빨리 끊고 싶어졌다. 혹시라도 급하게 말을 수습하다가 이유영이 이상한 낌새라도 느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는지 이유영은 의심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 많이 급한 일인가 봐요. 그럼 제가 한번 연락해 볼까요?
“……그래 주실래요?”
-네! 제가 사정이 생겨서 해연 언니 집에 머물고 있거든요. 아마 다른 곳에 있어서 메일을 빨리 못 보내는 걸 수도 있어요.
“……!”
왜, 왜 당신이 거기에 있어.
갑자기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피해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제발 거기서 나가라고 하고 싶은데 명분이 없었다. 상상도 하지 않았던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마치, 마치, 무고한 죽음을 바랐던 것에 대한 죗값이라는 듯이.
얄팍한 양심이 그녀를 찔렀다.
‘많은 사람이 죽길 바란 게 아니야. 나는 그저, 그저…….’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열심히 변명하던 이진아는 훅, 숨을 들이켰다. 뭐가 다른 건데? 타인의 행복을 질투하고, 그도 부족해 그 사람이 빨리 죽기를 바라 놓고 한 명이 더 위험해졌다고 이러는 자신이 끔찍하고 우스웠다.
처참한 자각으로 이진아가 입을 꾹 다물자 유영은 조심스럽게 통화의 끝을 알렸다.
-그럼 이만 끊을게요. 들어가세요!
“네에. 네. 유영 님도…… 쉬세요.”
-네!
귓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이 축 내려간 팔을 따라 바닥에 떨어졌다. 그 순간 뒤에서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과 핸드폰을 동시에 움켜잡았다. 이진아의 몸이 와락 굳었다.
“왜? 한해연의 생사가 그렇게 궁금했어?”
뜨거운 체온과 함께 어깨로 괴물의 얼굴이 툭 튀어나왔다. 괴물에 의해 볼이 눌리고 있음에도 아무런 반응도 할 수가 없었다. 심장이 멈춘 것 같다.
인간의 체온보다 월등히 높은 괴물의 손이 차갑게 얼어붙은 이진아의 목을 천천히 쓸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마른 목선을 닿을 듯 말 듯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자칫하면 그 손톱에 목이 그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진아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괴물이 그런 이진아의 볼을 혀로 핥았다. 마치 먹이가 맛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간을 보는 것처럼.
“방금 한해연 이야기가 나오던데 누구야?”
“……그냥, 회, 회사 동료…….”
“흐응.”
덜덜 떠는 이진아의 대답에 괴물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 음습한 웃음에 소름이 돋았다.
“재미없게 이러지 말자. 오빠가 지금 기분이 좆같으니까.”
“저, 정말이야. 그냥…… 한해연의 예전 회사 동료라, 이야기가 좀 나온 것뿐…….”
“아, 회사 동료. 그거 좋지.”
“…….”
뭐가 좋다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괴물의 말 하나하나가 다 불길해서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그때 가볍게 목을 쓸던 손이 목을 움켜잡았다.
“큭!”
“그렇게 긴장하지 말라니까. 오빠는 너 안 잡아먹어. 우리 진아처럼 쓸모가 많은 동생을 죽이기엔 아깝지.”
짐짓 다정하게 말을 했지만, 괴물은 가냘픈 이진아의 목을 한 번 더 움켜잡았다가 놓으며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켰다. 숨이 막혔던 경험은 공포를 동반했다. 아주 짧았던 순간일 뿐인데 아직도 목이 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바짝 달라붙어 있던 괴물의 체온이 툭 떨어졌다. 여전히 굳어 있는 이진아를 두고 괴물이 자신의 집처럼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냉장고로 향했다. 그러고는 맥주 한 캔을 꺼내 벌컥 들이마셨다. 이진아의 눈이 바짝 굳어 괴물의 행적을 따라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다음에 죽는 사람은 자신이 될 것 같아서. 단숨에 맥주 한 캔을 비우고 다른 캔을 따던 괴물이 저를 보고 있는 이진아의 눈과 마주치자 씩 웃었다.
“왜? 너도 맥주 줘?”
“……아니. 나, 난, 됐어.”
“싱겁긴.”
한 손에는 맥주와 다른 손에는 담배 한 개비를 들고 괴물이 소파에 걸터앉았다. 강박적으로 깨끗하게 청소했던 공간이 텁텁한 담배 연기로 물들었다. 그나마 인간의 피 냄새가 아니어서 고맙다고 해야 할까. 괴물의 관심이 정말 저에게서 멀어진 것 같아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이진아는 바로 공기 순환 장치를 켰다. 뿌옇게 쌓이던 연기가 천장에 달린 환풍구를 통해 점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가쁜 숨을 가다듬었다.
“한, 해연. 아, 아직 살아 있…….”
“살아 있지. 아직 간을 보고 있으니까. 그렇게 맛있는 사냥감을 쉽게 죽이긴 아깝잖아.”
괴물이 한쪽 입술만 끌어당겨 웃었다. 여유롭게 말한 것 치고는 짜증과 초조함, 분노가 담긴 웃음이었다. 이진아는 그런 괴물의 눈치를 열심히 살폈다.
“워, 원래는 안 그러잖아. 맛있는 건 빨리 먹는 서, 성격이면서 왜 이번만은……, 아직 살려 둔, 거야?”
계속 궁금했던 말. 하지만 용기가 없어 물을 수 없던 말을 저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다.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던 괴물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눈동자에 살기가 돌았다. 이진아는 무서울 줄 모르는 제 입을 탓하며 움찔 어깨를 움츠렸다.
“오늘따라 진아가 궁금한 게 많네?”
오빠가 오늘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했는데 말이야. 괴물이 빈 캔을 우그러트리며 비죽 웃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나자 이진아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완전히 겁에 질린 모습에 괴물이 아직 불이 붙어 있는 긴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고 픽 웃었다. 원목 마루가 담뱃불에 까맣게 그을려 매캐한 연기를 뿜었다. 이진아는 그 모습을 힐끔 보다 괴물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너도 제법이다? 사람 죽는 게 이젠 아무렇지도 않나 봐?”
“그,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씨발년아. 빨리 죽이라고 징징거려 놓고.”
아니야. 아니다. 나는 정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열심히 변명하던 이진아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괴물이 오기 전, 이유영에게 전화하기 전에 정말 그렇게 생각했던 게 떠올랐던 탓이다. 언제 죽을까 매일 초조해하느니 한해연이 빨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내가 편하기 위해서 사람이 죽기를 빌었다. 혼자만 행복한 한해연이 질투 나고 또 질투 나서…….
정곡이 찔린 사람처럼 이진아의 안색이 새까맣게 죽었다. 괴물의 말이 두렵고 아팠다. 이진아는 도망치듯 괴물에게서 떨어져 방에 들어갔다. 습관적으로 문을 잠갔지만, 괴물이 들어오고자 한다면 이까짓 잠금장치 따윈 의미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문 자체를 부숴 버릴 테니까.
알면서도 굳이 잠그는 이유는 그래야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었다. 이진아는 손으로 귀를 가려 문을 타고 넘어오는 괴물의 웃음소리를 막았다. 아니야. 난 그냥 피해자야. 피해자야.
나는 어쩔 수 없었어.
매일 세뇌하듯 하던 말이 오늘따라 얄팍하게 떠돌았다. 이진아는 귀를 막은 채로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