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의 아내-43화 (43/113)

43화.

이진아에게 한해연의 죽음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를 노리고 있는 건 그 괴물이니까. 괴물이 그렇게 먹으려고 침을 흘리고 있는데 어떻게 연약한 여자가 피해갈 수 있을까. 이진아에게 괴물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또 가장 강한 존재였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길들었다.

성인 남자여도 괴물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성인이 되고서야 괴물이 이미 사냥하고 난 다음의 시체를 그녀에게 보여 줬지만, 어릴 때는 살아 있는 사람을 사냥해 온 뒤 공포 섞인 비명을 디저트 삼아 천천히 죽였다. 공포에 질린 비명은, 살려 달라는 절규는 끔찍했다. 방음이 안 되는 다른 방구석에 숨어 차라리 비명이 빨리 끝나길 바랐다. 그래야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빨리 죽어 버려!’

아직도 살아 있는 한해연을 두고 했던 생각처럼 똑같이…….

왜 아직 살아 있을까. 그리고 괴물은 왜 나타나지 않을까.

집에 가서 메일을 보낸다고 했지. 집. 혹시 그동안 집에 있지 않았던 걸까. 아팠다고 했으니까. 그래, 한해연이 그동안 집에 있지 않았다면 아직 살아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살아, 있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이런 끔찍한 생각을 해야 할까.

이진아는 팔을 교차해 제 몸을 감싸 안았다. 춥다.

“그렇죠. 기욱 님 말이 맞아요.”

그때 택시가 그들 앞에 섰다. 조금 전 강기욱이 부른 택시가 온 것이다.

“빨리 왔네요. 저는 이제 들어갈 테니 기욱 님도 가세요. 내일 봐요.”

볼 수 있다면. 이진아는 택시에 탄 뒤 멀거니 서 있는 강기욱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택시 기사가 행선지를 확인한 뒤 바로 출발했다. 움직이는 택시에 알코올에 취한 머리도 함께 울렁거렸다.

이진아는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점점 목을 옥죄어 오는 기분이었다. 구역질 나.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또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그다음에는 한해연과 친해져서 그녀를 괴물에게 옮겨야 하는 걸까? 그럼 그녀 역시 괴물에게 먹혔던 사람들처럼 시체 조각이 되어 제집에 널브러지고, 또 자신이 그 잔해처리를 하게 되는…….

“우욱.”

반쪽밖에 남지 않은 인간의 얼굴과 손가락, 내장 등이 모두 한해연의 것으로 바뀌자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잠깐, 잠깐만, 멈춰 주세요.”

“네? 출발한 지 얼마나 됐다고……, 아이고 여기서 토하지 말아요!”

택시 기사는 백미러로 이진아가 토하려는 걸 눈치채곤 근처에 있는 상가 빌딩에 차를 세웠다. 카드를 긁어 택시비를 결제한 후, 이진아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속은 위와 장을 비틀어 노란 액체만 토해 냈다. 이진아는 떨리는 손을 변기에 대고 몸을 지탱했다. 못해. 그걸 어떻게 해. 지금까지 어떻게든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괴물이 사냥해 온 사람들이 전부 저와 상관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몇 번이고 얼굴을 보고 말을 섞었던 사람이 그렇게 되고, 또 그걸 자신이 치운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돌 것 같다.

누가 나 좀 구해 줘.

제발 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줘.

다른 사람들은 평범하게 잘만 사는데 왜 나만 이래야 돼? 왜 나야? 왜 나만 이렇게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이진아는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다른 누군가에게 이 끔찍한 지옥을 떠넘길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이미 충분히 불행하고, 비참하니까…….

이 세상에서 자신만큼 불행한 사람이 있을까. 그토록 열심히 발버둥 쳐도 자신은 항상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있었다. 어떻게 해도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마치 세상이, 운명이, 자신의 자리는 이곳이 맞다고 지정해 준 것처럼.

차라리 죽고 싶은데, 그 이상으로 살고 싶었다. 밝은 곳에서. 이런 지옥이 아닌, 깨끗하고 평온한,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다.

아무 일도 없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을 살해의 위협을 받게 만든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때 괴물이 원했던 ‘맛있는 냄새’는 한해연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맛있는 냄새’라는 건 제게 전혀 맡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날 만났던 수많은 사람 중 누구의 것인지 알 턱이 없었다. 그런데 제 입에서 한해연의 이름이 불쑥 튀어 나갔다. 아직 같은 회사에 다니지도 않고 단 한 번 만났던 사람이니까. 본능적으로 제게서 가장 먼 사람을 댄 것이다.

살려면,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었어. 나는 그냥 연약한 인간일 뿐이고, 상대는 괴물이었다. 나는 그냥 피해자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차라리 한해연이 빨리 죽었으면 이렇게 괴로울 일도 없었을 텐데…….

부지불식간 흘러나온 속내에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미쳤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

“하.”

이진아는 머리를 푹 숙였다. 계속 이어졌던 두통이 더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너무 어지럽다. 누군가가 망치로 끊임없이 때리는 느낌이었다. 좌변기의 뚜껑을 잡고 몸을 지탱하던 이진아는 새빨간 피에 물든 제 손을 보고 흠칫 몸을 굳혔다. 하지만 다시 봤을 때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깨끗한 손이었다. 순간 막혔던 숨이 안도와 함께 가늘게 새어 나왔다.

방관자에서 조력자. 그다음은 살인자일까. 결국엔 제 손마저 진득한 피가 묻을지도 모른다. 아니, 피는 이미 묻었었지. 괴물이 남겨 놓은 잔해들을 치우면서 이미 제 손도 더러워졌다. 진작에.

이진아는 흉곽이 들릴 정도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뱉었다. 그걸 여러 번 반복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심장이 제멋대로 뛴다. 차라리 멈췄으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찾아 거리를 두리번거리던 이진아의 몸이 무언가를 보고 굳었다. 이진아는 입을 벌리고 넋이 나간 얼굴로 한 곳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도로 반대편에서 한해연과 어떤 남자가 서로를 끌어안고 다정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멀리서도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

숨이 덜컥 막혔다. 아무런 걱정도 없다는 듯이 티끌 하나 없이 밝은 얼굴로 웃는 모습이 너무도 선명해서. 너무나도 갖고 싶은 얼굴이어서. 이진아는 집요하게 한해연을 바라봤다. 옆에 있는 이유영이나 다른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한해연의 웃는 얼굴만 보였다.

그래. 어떻게 발버둥 쳐도 갖기 힘들었던 행복이 누군가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걸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거였는데. 노력한다고 가질 수 있었다면 진작 제게도 왔어야 했다.

그때 취객이 몸을 비틀거리며 그들과 가까이 스쳐 지나가자 남자가 한해연을 제 품으로 이끌어 보호했다. 별거 아닌 장면인데,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인데 그 모습이 계속 눈에 남았다.

“당신은 있구나…….”

보호해 줄 사람이. 의지가 되는 사람이. 난 없는데. 많은 것을 가진 당신에 비해 난 죽을 것 같이 가난하다.

신호등이 다시 붉은색으로 변할 때까지 이진아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슴이 시큰거린다. 안다. 이건 부당한 질투라는 것을. 한해연은 피해자였다.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괴물의 타겟이 됐다. 무고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럼 나는 무슨 죄야?”

나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괴물에게 가족들을 모두 잃고, 지금까지 괴로워해야 할까. 죄가 있긴 한 건가?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 괴물이 먹다 남긴 시체를 처리하는 역겨운 짓을 하는 게 아니라, 평범하게.

“…….”

춥다. 이진아는 팔을 교차해 제 몸을 감싸 안았다. 서걱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새벽의 거리는 텅 비어 있어 생각보다 더 빨리 집에 도착했다. 이진아는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현관문에 기대어 킥킥 웃었다. 제 꼴이 우습고 또 우습고…… 한심해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괴물이 제집을 인간의 시체와 피로 더럽혀도 무덤덤했던 것과는 달리 고작 술 조금 먹었다고 이러는 게 웃겼다.

“하…….”

웃음 끝에는 자괴감이 짙게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한해연이 연인과 함께 있는 게 뭐가 어떻다고. 고작 그거에 왜 충격을 받아? 꼴사나운 질투였다. 아는데. 아는데 왜 이렇게 질투가 나지? 당치도 않게 꼭 자신의 불행을 딛고 한해연이 행복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다고 한해연이 죽지 않을 수 있어? 괴물은 제 먹이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않았다. 남자의 힘이 세 봤자 인간이었다. 인간은 괴물을 당할 수 없다. 한해연이 연인과 함께 있다고 무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고작 그런 말도 안 되는 질투 따위보다도 곧 집에 간다는 한해연의 안위를 걱정하는 게 ‘인간’다운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나만 불행한 건 불공평하잖아.’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렇게 힘든데, 당신은 왜 혼자 행복할 수가 있어? 질투가 나서 미치겠다. 가능하다면, 할 수만 있다면 한해연과 자신을 바꾸고 싶었다. 행복하게 웃던 한해연의 얼굴을 갖고 싶었다.

이진아는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미친 것 같다. 아니, 미친 게 분명했다. 틀림없어. 그게 아니라면 이딴 생각을 할 리가 없을 테니까. 그 여자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하지만 미운 걸 어떡해…….”

꼭 한해연이 제가 가져야 할 행복까지 모두 독차지한 것처럼. 차마 괴물을 향해 내보이지 못했던 증오가 무고한 한해연에게 가고 있다는 걸, 이진아는 알면서도 모른 체했다. 그래야 살 것 같아서였다.

공포가 이성을 잠식한 것일까. 이진아는 이 모든 악몽은 한해연이 죽어야 빨리 끝난다고 생각했다. 괴물이 한해연을 먹어야, 그래야 괜찮아질 것이다.

그러니까, 제발 빨리 죽어 줘. 부탁이니까…….

이진아는 활짝 펼쳤던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떨림이 멈춰 가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해연은 집에 갔을까? 그렇다면 지금은 살아, 있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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