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의 아내-25화 (25/113)

25화.

해연은 춥다는 생각도 못 하고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때 해연의 어깨로 포근한 담요가 덮였다. 그리고 뒤에서 이현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감기 걸려요.”

“저 보기보단 튼튼해요.”

해연은 신기할 정도로 잔병치레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남들이 다 걸리는 흔한 감기조차 해연을 피해 갔다.

“어릴 때 한번 크게 앓았는데 그 뒤로 아파 본 적이 없어요.”

“그래요”

“그래서 키우기가 편했대요. 병원 갈 일이 없었다고.”

“부모님이 그러셨어요”

“네.”

“착한 딸이네요, 해연 씨는.”

“…….”

좋은 딸이었을까. 먼저 가신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해연이 상념에 빠져 말이 없자 이현은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줬다. 분위가 가라앉는 것 같아 해연은 다시 정원을 바라봤다.

이현은 잠시 침묵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계속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이사를 하는 게 어때요”

“네”

생각지도 못한 말에 해연은 그를 돌아봤다. 이현은 진지했다.

“해연의 집은 너무 위험해요. 당신이 조금 더 안전한 곳에 살았으면 좋겠어요.”

“으음.”

이현의 기준에서는 자신의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다. 해연은 그런 이현의 마음을 이해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제집의 위치는 조금 위험한 편이었다. 빌라의 보안도 썩 좋지 않고.

“기왕이면 여기로 들어와요.”

“전 아직 이사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거든요”

짐짓 퉁명스레 말했지만, 이미 이사를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니 미리 조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집 문제는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언제까지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이사를 한다고 해도 돈 문제도 있고, 집도 알아봐야 해서 시간이 좀 걸려요.”

“여기로 들어오면 간단하잖아요.”

“자꾸 그러지 말아요. 제가 왜 여기로 들어와요”

여기로 들어올 생각은커녕 오히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해연의 방어에 이현이 칭얼거렸다.

“약혼자 집인데 뭐 어때요.”

웬 약혼자 그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서 해연은 순간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틈이 날 때마다 엉뚱한 소리로 훅 치고 들어오는 이현에게 말릴 뻔한 해연은 황당함에 웃음이 나왔다. 이러니 이현과 대화를 할 때 방심을 할 수가 없었다.

“왜 웃어요”

이현의 목소리가 뾰로통해졌다. 남자가 삐져서 퉁퉁거리는 것도 귀여워 보이니 문제였다. 해연은 웃음을 꾹 누르며 짐짓 무심한 투로 물었다.

“우리가 언제 약혼했어요”

“……결혼을 전제로 연애하기로 했잖아요.”

이현이 아까도 했던 말을 다시 끄집어냈다. 저 말이 아주 만능열쇠라도 되는 양 휘둘러 댄다.

“그게 무슨 약혼이에요”

“결혼을 약속했으니 약혼이죠.”

그게 뭐람. 해연은 결국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웃지 않기 위해 버틸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해연은 냉정하게 그의 말을 받아쳤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약혼 안 한 사람이 더 드물걸요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지 말아요. 나 진짜 부담스럽단 말이에요.”

“내가 부담스러워요”

이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해연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천천히 가자고 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이래요.”

“……냉정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안 추워요 이제 안으로 들어가요.”

“말 돌리지 말고요.”

“아, 춥다.”

해연이 부러 몸을 덜덜 떨면서 엄살을 부리며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침대 안으로 쏙 들어가 이불로 몸을 돌돌 말았다. 해연은 이불 안에서 얼굴만 내밀고는 팔짱을 끼고 저를 보고 있는 이현을 향해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빨리 들어와요. 이제 자야죠.”

“……그래요. 자야죠.”

이현이 니트를 휙 벗었다. 순식간에 드러난 탄탄한 상체에 해연의 몸이 움찔 굳었다. 한껏 귀여운 척하던 남자가 이제는 짐승 같은 얼굴을 하고 그녀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에게 잡히기 전에 침대에서 벗어나 도망치려 했지만, 몇 걸음 가기도 전에 몸이 휙 들어 올려졌다. 발버둥을 치며 내려달라고 하는데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결국 침대에 다시 눕혀졌다. 해연은 제 몸 위로 타고 오르는 이현을 질린 눈으로 바라봤다.

“아, 제발 그만해요!”

“자자면서요 당신이 먼저 도발했으니 책임져요.”

그녀의 허리 양옆에 무릎을 대고 선 이현이 야한 얼굴로 바지 버클을 열었다. 해연이 손으로 눈을 가려 버리자 그는 그녀의 손을 끌어 제 성기에 가져다 댔다.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의 감촉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이현은 그녀가 손을 풀지 못하도록 그 위에 제 손을 감싸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도록 했다.

“으음.”

“……!”

쾌감을 느끼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너무 야했다. 나른하게 시선을 살짝 내리깐 눈동자가 열기를 담고 그녀를 홀리고 있었다. 넘어가지 말자고, 지금까지도 충분히 방탕하게 살았다고 다잡으려고 해도 결국 그녀의 아래도 젖었다. 손에 잡히는 성기가 안으로 들어왔을 때 어떤 쾌락을 주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알아버린 쾌감은 차라리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강렬하고 중독적이었다.

성기에 닿은 해연의 손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현이 나른하게 웃었다.

“나 예뻐해 주는 거죠”

“…….”

“응”

“비겁해요.”

이 남자를 어떻게 거부할 수가 있을까. 정말 비겁해. 해연이 그를 향해 투덜거리자 이현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는 간지러운 행동은 강아지 같았다. 비슷한 생각을 한 건지 이현이 은근히 물었다.

“혹시 동물 키웠던 적 있어요”

“아니요. 한 번도 없어요. 왜요”

“새끼를 안는 게 익숙해 보여서요.”

그래서 언젠가 키웠던 경험이 있는 줄 알았다며 이현이 그 새까만 눈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어딘가 실망한 것 같기도 한 묘한 시선이었다.

“왜 그렇게 봐요 내가 동물 싫어할까 봐 그래요 키울 환경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좋아해요.”

“당신이 여린 짐승을 아끼는 건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아요.”

이현의 속삭임에 해연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나도 모르는 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글쎄요.”

어떻게 알까요 의뭉스러운 말과 함께 이현이 그녀의 바지를 훅 벗겼다. 그리고 곧게 뻗은 양다리를 벌려 단숨에 뻣뻣이 선 성기를 삽입했다.

“아흣! 아, 갑자기, 으응!”

“내가, 욕심이, 하아, 많나 봐요. 기다려야 하는데……, 자꾸 조급해져요.”

당신을 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그렇죠

격렬히 치받는 하체에 몸이 정신없이 흔들렸다. 찌걱이는 체액 소리와 제가 내는 교성, 그리고 남자의 신음 소리가 함께 귀를 어지럽혀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다시 말해 달라고 입을 여는데 그가 기다렸다는 듯 입술을 겹쳐왔다. 깊숙이 파고들어 혀를 얽는 탓에 숨이 뭉개졌다.

“아, 아아, 이현, 아, 잠깐, 흣.”

“예뻐요.”

교접된 하체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두꺼운 성기에 뭉개진 질 안이 뻐끔거리며 조였다 풀어졌다. 의도한 행동이 아니었는데, 이현이 야하게 웃으며 왜 이렇게 맛있게 빠냐고 질책했다.

“이렇게, 좋아하니까, 하아, 계속 박아 넣고 싶잖아요.”

여자의 신음이 머리를 어지럽히며 뜨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를 약하게 만들었다. 여자의 몸에 독을 넣고 있는 것은 자신인데, 도리어 제게 그 독이 스며드는 기분이 든다. 괜히 살렸나. 완전히 잡아먹었어야 했을까. 이딴 같잖은 짓거리를 하면서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여자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게. 완전히 제 뱃속에 집어넣고 함께 죽어 버렸더라면 더 완벽했을지도 모른다. 이현의 새까만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의 손이 해연의 목으로 향했다. 손가락 끝에 맺힌 새파란 빛이 매끈한 살과 닿기 직전,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없던 사이 미쳐 버린 자신과는 다르게 선명하고 맑은 갈색 눈동자가 신뢰를 가득 담고 그를 보고 있었다.

이렇게 경계가 약하니 근본 없는 개새끼에게 잡혀 이런 꼴을 당하는 거예요. 그렇게……, 몇 번이고 내게서 도망치고서도 왜 아직도 몰라요.

바보 같은 여자.

이현은 떨리는 입술을 다물었다. 여자의 눈에 담긴 신뢰가 도리어 그를 가시처럼 찔렀다. 달콤하고 가슴 떨리는.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 모습이 진실이 아니라는 냉혹한 현실을 일깨웠다.

분명 바뀌겠지. 저 달콤하고 애틋한 눈빛은 차디찬 증오와 혐오로 변해 그를 외면할 것이다. 그걸 또 견딜 수 있을까 지금. 가장 행복한 때에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때, 여자의 부드러운 팔이 그의 목에 감겼다. 이현은 여자가 끌어당기는 대로 힘없이 고개를 내렸다. 여자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그의 이마에 입술을 대고 괜찮다고 속삭였다. 그리고는 그의 등을 손으로 토닥인다. 죽을 뻔한 줄도 모르고. 대체 뭐가 괜찮다는 거야

이현이 기가 막혀 여자를 바라봤다.

“지금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 거죠”

“당연히 알죠. 섹, 으응!”

“그런데 왜 아이를 달래듯 내 어깨를 토닥여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를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꼭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이현이 멈췄던 허리를 다시 흔들었다. 거칠었던 아까와는 달리 속도가 현저히 느려져 있었다. 해연이 움찔거리며 그의 등을 쓰다듬던 손길을 멈추자 이현은 깊게 잠긴 목소리로 계속해 달라고 종용했다.

“계속해요. 멈추지 말아요.”

“아, 싫은 거, 아니었어요 흣.”

“놀라긴 했는데 기분 좋아요. 이상할 정도로.”

“유영이와 같은 말을, 아응! 읏, 아, 잠, 잠깐, 왜, 하응!”

물이 흐르듯 천천히 움직이던 이현이 해연의 입에서 나온 다른 사람의 이름에 성기를 끝까지 빼냈다 한 번에 박아 넣었다. 예민하게 달아오른 질 안이 불퉁한 성기에 쓸려 비명을 내질렀다. 더 이상 넣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밀착한 성기를 부드럽고 축축한 살이 꽉 달라붙어 덜덜 떤다. 강렬한 쾌감에 이현의 입에도 젖은 숨이 토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