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의 아내-24화 (24/113)

24화.

해연이 문가에 서서 움직이지 않자 이현이 물었다.

“무슨 생각해요”

“아니요. 그냥……. 그런데 정말 괜찮아요”

해연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낯선 외부인의 목소리에 예민해져 있을 어미 개를 배려한 행동에 이현이 웃으며 그녀를 이끌었다.

“괜찮으니까 가요.”

그녀의 걱정이 무색하게 이현은 거침없이 해산실 안으로 들어갔다. 방 중앙에 있는 침대 옆에는 중년 부부가 서 있었다. 그들은 이현을 보고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해연은 아마도 저 중년 부부가 어미 개의 실질적인 주인이 아닐까, 추측했다.

해연은 중년 부부에게 눈인사를 하고 이현 옆에 섰다. 사람 몇 명이 굴러도 될 법한 넓은 침대에서 어미 개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어미 개는 해연의 뒤에 서 있는 이현을 보고 다시 이불 위에 머리를 기댔다. 그 뒤로는 해연의 존재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저를 좋아할 거라던 이현의 말은 틀렸지만, 꺼려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해연은 그제야 편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야무지게 젖을 빠는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무슨 종이에요 이렇게 멋진 개는 본 적이 없어요.”

꼬물거리는 강아지도 귀여웠지만, 다 큰 성견 또한 굉장히 잘생겼다. 해연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눈을 감고 있던 어미 개가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키우고 싶어요”

“……이현 님”

“주인님, 그게 무슨…….”

이현의 말에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당황했다. 허둥대며 이현을 말리는 모습에 해연은 눈치껏 고개를 저으며 키울 수 없다고 대답했다.

“왜요 예쁘지 않아요”

“……집이 좁아서 이런 대형견을 키울 수가 없어요.”

키울 수도 없고, 키우지도 못한다. 워낙 멋있는 개라 혹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연은 자신의 조건으로는 개를 키울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집이 좁기도 했고 회사 때문에 집을 비우는 시간도 너무 많았다. 야근이라도 하게 되면 산책도 제대로 못 시킬 테니 좋은 주인이 되어 주지 못할 게 분명했다. 살아 있는 생명을 그저 예쁘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일 수는 없었다.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하면 되죠.”

해연의 거절에 안도했던 중년부부의 표정이 다시 안 좋아졌다. 해연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려 달라는 사람들의 말 없는 애원을 보며 더 당황했다. 자신은 그저 무슨 종인지 물어봤을 뿐인데 큰 잘못이라도 한 기분이었다.

“아뇨. 집만 문제가 아닌걸요. 저는 못 키워요.”

“아니면 해연이 여기에 들어오는 건 어때요 어차피 사소한 건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 줄 테고, 해연은 귀여워만 해 주면 돼요.”

말썽도 안 부리고 얌전한 개라는 첨언이 붙었다. 이현이 말을 한마디 할 때마다 사색이 되던 사람들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이현 님 설마…….”

중년의 남성이 더듬거리며 말을 걸었지만, 이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자꾸만 해연이 개를 키워야 하는 당위성을 만드는 것에 집중할 뿐이었다.

“까만색 털을 가지고 있고, 언제나 당신을 지켜줄 거예요.”

“아니요, 정말 안 된…….”

뭔가 이상함을 느낀 해연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표정도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과 비슷해졌다.

“낮에도, 밤에도 당신을 만족시켜 줄 거고.”

“…….”

“당신이 부르기만 하면 개처럼 달려올 테니까. 응”

이현이 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니까 그 개가…….”

당신 해연이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자 이현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모자라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과 얼굴에 입술을 비볐다. 개가 주인을 향해 애교를 부리듯이. 해연이 기가 막혀 헛웃음을 흘리자 이현이 “멍.” 하고 짖었다.

웃기고 귀여운데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 참혹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해연을 경계하던 어미 개가 젖을 먹고 배가 통통하게 부른 제 새끼를 해연 쪽으로 툭 밀었다. 무슨 뜻인지 몰라 가만히 보고 있는데 어미 개는 주둥이로 한 번 더 밀어 제 새끼를 해연에게 더 가까이 가게 했다.

“얘가 이런 애가 아닌데, 손님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안아 보세요.”

“……정말 안아도 돼요”

나이가 지긋하게 든 여성이 해연을 부추겼다. 강아지는 너무 작고 약해 보여서 잘못 만졌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았다. 해연이 머뭇거리며 손을 꼼지락거리는데 뒤에서 이현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약아 빠져선…….”

“네”

“아니에요. 안아 봐요. 만져 보고 싶어 했잖아요.”

이현은 직접 강아지를 들어 해연의 품에 안겨 주었다. 안아도 될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품속의 강아지는 너무 귀여웠다. 빵빵하게 부푼 배는 분홍빛이었다. 자면서도 젖을 빠는 꿈을 꾸는 건지 입이 계속 오물거렸다. 두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존재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이런 귀엽고 작은 아이가 다 크면 저렇게 멋진 개가 되는 것일까.

사람에 비해 수명이 적은 동물이니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크겠지. 신기했다. 단 한 번도 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었다. 회사 주차장에 숨어든 고양이를 돌본 건 말 그대로 돌봤을 뿐이지, 책임지고 키운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얼마 가지 않았다. 경비원이 고양이를 내쫓아 버려 그 뒤로는 찾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낯익은 기분이 드는 걸까. 제 품에 안긴 이 작은 생명체의 온기를 언젠가 느껴본 적이 있었던 것처럼.

해연은 제 품으로 파고드는 강아지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래, 언젠가… 이렇게 작은 아이를 품어 키웠던 적이 있다. 언제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해연이 계속 강아지를 보고 있자 이현이 속삭였다.

“귀여워요”

“……네.”

조금 전까지 절대로 키울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던 것이 무색하게 해연은 강아지를 키워 볼까,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들었다. 물론 생각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럼 키…….”

“자꾸 이러면 불편해요.”

“누가 뭐라고 했어요 나는 그냥.”

“그냥”

“키스해 달라고요.”

이현은 정말 키스해 달라고 입술을 내밀었다. 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하트 모양으로 모아진 통통한 입술을 손으로 밀었다. 이현이 칫, 삐친 소리를 냈지만, 이제는 능숙하게 무시할 수 있었다.

해연은 강아지를 다시 어미에게 돌려주려고 품에서 떼어 냈다. 하지만 강아지가 발톱을 세워 그녀의 상의를 덥썩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갓 태어난 강아지의 힘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강제로 떼어 내려고 한다면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약한 아이를 상대로 그럴 수는 없었다. 해연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이현을 보며 도움을 요청하자 그가 가볍게 강아지를 들어 어미의 품으로 옮겼다.

눈도 못 뜬 강아지는 조금 전까지 저를 안고 있던 해연을 찾아 주변을 돌며 낑낑거렸다. 어미가 발로 저를 끌어당겨도 다시 빠져나왔다. 눈을 뜨지도, 서지도 못하는 주제에 낑낑거리며 해연을 찾았다. 어미 개는 제 새끼의 이상한 행동을 가만히 보다 고개를 들어 해연을 쳐다봤다.

“왜 날 보는 걸까요”

“새끼가 계속 해연을 찾으니까요.”

이현이 그것 보라고, 당신을 좋아하지 않냐며 낮게 웃으면서 말했다. 해연은 강아지가 계속 꼬물거리며 주변을 도는 게 자신을 찾아서라는 게 신기하면서 기분 좋았다. 다시 안아 보고 싶지만, 갓 태어난 새끼에게 사람 손이 너무 타도 좋지 않을 게 분명했다. 저를 보는 어미 개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이제 안 만질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한 뒤 살짝 물러서자 어미 개는 고개를 내려 제 새끼를 바라봤다.

한참을 돌아도 제가 원하는 걸 찾지 못한 강아지는 젖 냄새가 나는 어미에게로 꼬물꼬물 기어갔다. 품에 안기자마자 힘차게 젖을 빠는 새끼가 버거운지 어미는 지친 얼굴로 눈을 감았다. 새끼를 낳았다고 해서 신기해서 왔지만, 더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제 가요.”

“키스는요”

“방에 가서요.”

말썽 안 부리고 얌전한 개라고 어필하더니 이현은 참 고집이 셌다. 해연이 사람들 눈치를 보며 그에게만 들릴 정도의 소리로 속삭이자 계속 버티던 이현이 그제야 그녀를 뒤따라갔다. 꼭 개가 주인 꽁무니를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그 모습조차도 가문의 사람들에겐 몹시 낯선 행동이었다.

산실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산모의 부모 외엔 금지되어 있었다. 어기는 일족이 있다면 즉결처분. 예전에 갓 태어난 아이를 잡아먹어 힘을 키우려는 무도한 일족들이 있어 만든 규율이었다. 그걸 만든 이가 주인이다. 그런데 정작 주인이 엄중히 보호해야 할 산실에 인간 여자를 데리고 왔다.

그것이 뜻하는 바가 명확해서, 주인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에도 차마 웃을 수 없었다.

이 가벼운 행동으로 주인이 인간 여자 따위를 저와 동일한 위치에 있다고 공공연히 선포한 셈이기 때문이었다.

* * *

이현은 밤이 늦었다는 핑계를 들어 해연을 자신의 침실로 끌었다. 해연도 눈이 내리는 밤에 굳이 집에 가자고 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사실 가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갈 수 있었다. 길이 위험하다는 이현의 핑계에 쉽게 넘어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냥, 오늘만. 다음부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이곳에 오지 않을 거니까 이 특별한 정경을 눈에 더 담아 가고 싶었던 거였다.

해연은 이현의 침실 창 너머로 보이는 정원을 보며 새삼 감탄했다. 눈이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어두워진 넓은 정원 곳곳에 달린 작은 조명들이 하얀 눈을 더 신비로워 보이게 했다. 정원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좋았지만, 한 발 떨어져 보는 것도 명화의 한 장면 같았다. 오래된 동양화가 실물로 툭 튀어나와 있는 것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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