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의 아내-19화 (19/113)

19화.

“오늘 못 온다면서요”

“보고 싶어서 빨리 끝내고 왔어요.”

그녀의 볼에 입술을 비비며 하는 말에 해연이 잠시 멈칫했다. 자신도 그가 보고 싶었다. 잠시 떨어져 있던 시간이 외롭게 느껴질 정도로. 혼자만 느낀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이 속을 울렁거리게 했다. 게다가 아는 사람이 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말에 어딘가 기분이 선득했던 터라 이현의 등장은 자신을 안심시켰다. 해연이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를 보기만 하자 이현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왜요 나 안 보고 싶었어요 돌아갈까요”

“아니요!”

이현은 정말 돌아갈 듯이 몸을 돌렸다. 해연이 깜짝 놀라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대로 거실 쪽으로 잡아당기자 이현이 못 이기는 척 질질 끌려왔다. 그러면서도 입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차가운 생김새와는 달리 제게 하는 행동은 귀엽기만 한 그를 해연은 소파에 앉히고 허리를 숙여 입을 맞췄다. 그제야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나도 보고 싶었어요.”

“……표정은 전혀 안 그렇던데요”

“내가 한 생각을 당신이 똑같이 말해서 놀랐거든요.”

“흐응.”

“정말이니까 입술 좀 집어넣어요.”

“뽀뽀해 주면 생각해 볼게요.”

아예 눈을 감더니 입술을 주욱 내민다. 해연이 비죽 흘러나오는 웃음을 꾹 누른 채 그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가까워질수록 이현의 속눈썹이 팔랑거렸다. 해연은 짓궂게 웃으며 입을 맞추는 대신 손으로 그의 입술을 꼬집었다.

이현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심술부리니까 벌이에요.”

“내가 언제 심술부렸어요”

“심술이거든요 아무튼 늦었으니까 빨리 씻고 나와요.”

“……씻으면”

“자야죠.”

“아하.”

“옷은 다 입고.”

“……거짓말”

“정말. 자, 빨리 씻고 나와요.”

해연은 그의 팔을 잡아당겨 일으켰다. 이현은 순순히 욕실 쪽으로 향하면서도 계속 그녀를 설득했다. 잠만 자겠다는 해연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 옷 없어요. 이거 입고 잘 수는 없잖아요.”

“어제 내 옷장에 한 움큼 집어넣고”

“좀 넘어가 주면 안 돼요”

“안 돼요. 오늘은 정말 얌전히 잠만 자는 거예요.”

“너무해요.”

“너무한 사람은 당신이거든요 발정기 짐승도 아니고 너무 과해요.”

“발정기 맞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씻고 나와요.”

해연은 미적거리는 이현의 등을 밀어 욕실에 집어넣고 문을 닫았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포기한 듯했다. 해연은 한숨을 쉬고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이현이 와서 다행이었다. 덕분에 심란했던 기분이 가라앉았다. 소파에 앉아 이현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저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뭐 한 것도 별로 없는데 피곤했다. 잠깐만. 잠깐만 눈 감고 있어야지. 이현이 샤워할 때까지만. 잠시 후 해연의 몸이 소파에 주룩 미끄러졌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나오는 이현의 시야에 소파에 기대 잠들어 있는 해연이 보였다. 그는 조금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얗고 말랑거리는 뺨이 무언가를 먹고 있는 것처럼 오물거렸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 볼을 꾹 누르며 속삭였다.

“벌써 자요”

“으응.”

“정말 잠만 자는 거였네요. 아쉬워라.”

그가 계속 말을 걸며 손으로 지분거리자 해연이 귀찮다는 듯 몸을 뒤척이더니 등을 돌려 버렸다. 이현은 그런 해연을 품에 안고 침대로 옮겼다. 좁은 소파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가 넓은 침대에 눕히니 편하게 몸을 편다. 이현은 해연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여자의 몸이 품에 쏙 들어왔다. 그게 마음에 들어 더 깊게 끌어안았다. 고른 숨소리가 그의 어깨에 퍼져나간다. 달콤한 여자의 체향에 이빨이 간질거렸다.

* * *

달콤한 냄새를 따라 눈을 뜬 해연은 창문을 열어 놓고 잤나 확인했지만, 창문은 단단히 잠긴 채였다. 밖에서 냄새가 흘러들어오는 게 아니라면 집에서 나는 거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박시한 티를 걸치고 냄새를 따라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 앞에 선 이현의 등이 보였다. 검은색의 슬랙스 하나만 걸친 남자의 상체가 그대로 보였다. 근육이 탄탄하게 짜인 날렵한 등에 해연의 손톱자국이 적나라했다. 워낙 하얀 피부이기 때문에 붉은 선이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제 몸에는 그보다 더 심한 그의 흔적이 남았음에도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이현은 저를 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등을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해연은 헛기침하며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

“일어났어요 자리에 앉아요.”

식탁에 차례대로 음식이 담긴 접시가 놓였다. 해연은 의자를 끌어 식탁에 앉아서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음식을 홀린 듯 바라봤다. 조금 배가 고픈 정도였는데, 음식을 보니 배가 아프기까지 했다.

“언제 왔어요”

“어제저녁에 왔잖아요. 직접 문 열어 주고 잊었어요”

“아, 맞다 그랬지…….”

그가 언급하는 순간 기억이 났다. 이현이 그녀의 앞에 앞접시와 포크를 내려놓으며 타박했다.

“잠만 잘 거라고 했지만 정말 그럴 줄은 몰랐어요. 샤워하고 나오니 잠들어 있더라고요.”

“……피곤했나 봐요.”

원망하는 듯한 눈빛에 해연이 어색하게 웃었다. 잠깐 소파에 앉아 기다린다는 게 그대로 잠든 모양이었다. 그녀는 헛기침하며 말을 돌렸다.

“직접 만든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사 왔어요.”

그래도 샐러드는 직접 만든 거라며 이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멋대로 잘린 망고와 샐러드용 야채, 파프리카, 오이, 견과류, 블루베리 위로 리코타 치즈가 먹음직스럽게 올려져 있었다. 소스는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 오일이었다. 작은 바구니에 담긴 바게트 빵도 고소해 보였다.

그리고 메인 접시에는 부드러워 보이는 핫케이크와 프렌치토스트가 소담하게 쌓여 있었다. 이현은 자신의 접시에 핫케이크 한 조각을 올려놓고 메이플 시럽을 뿌렸다. 그리고 포크로 찍어 해연의 입에 가져다 댔다.

“아, 해요.”

이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이현의 고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해연은 순순히 입을 벌려 음식을 받아먹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 도톰하게 부푼 하얀색 핫케이크는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아내릴 정도로 부드러웠다.

해연이 입을 오물거리며 음식을 씹고 삼키자 이현은 메이플 시럽이 묻은 그녀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훑었다. 해연은 식탁 위에 있는 티슈를 꺼내 그의 손을 닦으려 했지만, 이현이 더 빨랐다. 끈적한 제 손가락을 아무렇지 않게 입안에 넣어 빨았다. 그도 모자라 붉은 혀가 창백한 손가락을 따라 올라왔다.

“맛있네요.”

잘 사 온 것 같다며 이현이 눈을 휘며 웃었다.

해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현의 행동은 사소한 것까지 모두 성적인 냄새가 났다. 자신의 아래를 애무하고 젖은 손가락을 핥던 얼굴과 너무 똑같았다. 몸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해연은 허벅지를 오므리고 애써 태연한 얼굴을 하려 했지만, 발긋하게 달아오른 볼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현은 그런 해연의 볼을 손으로 톡톡 두드리며 웃었다.

“안 건드려요. 편하게 먹어요.”

“……믿어도 돼요”

“음. 당신이 자극만 하지 않는다면요.”

비록 당신이 속옷도 입지 않고 나와서 날 유혹하고 있지만, 참을게요. 이현이 손에 턱을 괴고 속살거렸다. 그의 시선이 바짝 모아진 해연의 무릎에 닿았다. 허벅지 중간까지 가리는 티셔츠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본인보다 그가 더 잘 알았다.

그의 시선이 바짝 긴장해 뻣뻣해진 해연의 상체로 올라갔다. 얇은 티셔츠는 봉긋한 가슴을 따라 솟아 있었다. 그리고 가장 정점에 단단해진 유두가 진한 색을 비추며 노골적인 티를 내고 있었다. 이현의 시선이 짙어지자 해연은 속옷이라도 입고 와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식사 끝났어요 그럼 안아도 된다는 뜻이죠”

“아니요!”

해연은 황급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직접 포크를 들고 여전히 따뜻한 김을 내는 토스트와 샐러드를 접시에 덜어 먹었다. 아주 천천히 꼭꼭 씹어 먹었다.

“맛있어요”

“…….”

해연은 의도적으로 그에게 시선을 두지도 않았고,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필사적인 모습이 귀여워 이현이 낮게 웃었다.

이현도 해연을 따라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메이플 시럽에 시선이 한참 닿았다. 혀가 간질간질해 까끌한 입천장을 따라 쓸었다. 그의 시선이 계속 시럽에 가 있자 해연은 그를 바라봤다.

“시럽, 줄까요”

“……네.”

해연은 손을 뻗어 시럽을 그에게 주다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시럽은 그에게 더 가까이에 있었다. 왜 보기만 했을까.

“먹을까 말까 고민한 거예요”

이현은 시럽을 받아 팬케이크에 흘러넘치도록 뿌리고는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봤다.

“네. 엄청 고민했는데, 당신이 싫어할까 봐 그만뒀어요.”

“……내가 왜, 싫어해요”

“내가 이 시럽을 뿌리고 싶은 건 팬케이크 따위가 아니거든요.”

그가 포크로 들어 올린 팬케이크 조각은 완전히 시럽으로 절어 있었다. 이현은 혀를 내밀어 팬케이크 표면에 묻은 시럽을 핥아 올렸다. 입안이 바싹 말랐다. 그가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해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현은 심술궂은 얼굴로 그녀를 향해 물었다.

“사실 당신 몸에 뿌려서 샅샅이 핥고 싶은데, 그래도 돼요”

“아니요!”

“그래요. 그럴 줄 알았어요.”

대체 이 남자가 뭐라는 거야. 해연이 격렬하게 반대하자 이현은 실망한 것처럼 부루퉁 입을 내밀더니 들고 있던 팬케이크 조각을 접시에 툭 내려놓았다.

“설마 삐진 건 아니죠”

“……아니에요.”

“그럼 그 툭 튀어나온 입술 좀 다시 집어넣어요.”

해연이 포크 끝으로 그의 입술을 살짝 밀자 이현이 짐짓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두 사람 모두 픽 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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