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이진아는 완전히 먹지 않아 반쯤 남겨진 인간의 잔해를 바라봤다. 이번엔 남자였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어느덧 시체를 보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런 자신이 끔찍했다. 괴물의 곁에 있다 보니 같이 괴물이 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다 먹지 그랬어…….”
“맛없어.”
입맛만 버렸다며 남자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저도 담배와 술, 마약까지 하면서 인간들이 요즘 이상한 걸 먹어서 고기가 맛없다고 투덜거렸다.
이럴 거면 사람을 먹지 말든가. 속에서 울컥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지만, 섣불리 화를 표출했다가 자신 역시 저 시체 꼴이 될 수 있음을 되새겼다.
“이번에는 또 어디서…….”
“글쎄. 정말 알고 싶어”
“…….”
“겁먹지 마. 넌 안 죽인다니까”
살려 두면 이렇게 쓸모가 많은데 죽일 리가 없잖아. 괴물의 말에 이진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겁에 질린 티를 내고 싶지 않아 덜덜 떨리는 손을 꽉 쥐었다.
“조심해. 요즘……, 실종 사건이 많다고 뉴스에 뜨고 있으니까.”
“흐응.”
괴물이 경찰에 잡히면 분명 대참사가 일어날 거다. 많은 사람이 죽을 테고, 뉴스가 뜨고, 여기까지 찾아와 자신마저 공범으로 잡아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피가 마르는 끔찍한 기분이었다. 그녀의 경고에 괴물이 낄낄 웃다가 순간 상체를 앞으로 쑥 내밀었다. 갑자기 가까워진 괴물의 얼굴에 이진아는 본능적으로 물러서려 했지만, 괴물은 그녀의 턱을 손으로 단단히 쥐고 고정했다.
“이게 무슨 냄새야”
“뭐, 뭐, 뭐가”
“왜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몽롱하게 풀어진 눈으로 침까지 흘렸다. 저를 향해 입맛을 다시고 있는 괴물의 얼굴은 끔찍하기까지 했다. 이진아의 목소리가 본능적인 공포로 덜덜 떨렸다.
“무, 무슨 짓이야 주, 주, 죽이지 않겠다며”
그녀의 얼굴부터 목, 가슴까지 냄새를 맡던 괴물이 손에서 멈췄다. 괴물은 긴장으로 굳어진 이진아의 손을 들어 올려 얼굴 가까이에 댔다. 괴물의 혀가 살갗을 핥았다. 손바닥에 닿는 까슬한 혀의 감촉에 소름이 끼쳤다. 가까스로 태연한 척 굴었던 조금 전과는 달리 이진아는 왈칵 겁에 질려 괴물을 쳐다봤다.
드디어 죽는 건가 정말 이렇게 허무하게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괴물이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덩달아 바닥에 고여 있던 피가 허공으로 튀어 이진아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멀쩡한 상태였다면 무슨 짓이냐며 진저리를 쳤겠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너 오늘 누구 만났어”
“…….”
“진아야. 내 말 안 들리니”
“나, 난 회사 다녀. 한두 사람 만나는 게 아니…….”
“네 손에서 가장 냄새가 짙은데, 만진 사람만 대 봐.”
“대체, 무슨 냄새…….”
“존나 맛있는 냄새. 미치겠네. 씨발, 누구냐고!”
“꺄아악!”
괴물이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움켜잡았다. 붉게 핏발 선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렸다. 당장 대답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는 듯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사, 사, 살려…… 으윽!”
“오빠가 좋게 말할 때 말 좀 듣자. 응”
“흐으……,”
“진아야, 누구 만났어 이 맛있는 냄새. 누구야 응”
죽기 싫었다. 누, 누구지. 내가 누굴 손으로 만졌지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던 이진아는 번뜩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한, 한해연! 아, 악수했어. 그 여자일 거야. 제발 손 좀…….”
“한해연. 여자구나 이름 예쁘네.”
목을 죄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이진아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죽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몸서리가 쳐졌다. 이게 기회였는데. 이때 죽었어야 했는데, 빌어먹을 본능이 괴물을 향해 삶을 구걸했다.
살았다는 희열과 절망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이진아를 향해 괴물이 달게 웃었다.
“주소, 알아”
“…….”
온몸에서 피가 빠지는 기분이 든다. 이진아는 그제야 자신이 괴물에게 사냥감을 직접 제공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 * *
잠시도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굴던 이현은 해연만 집에 데려다준 뒤 일이 생겼다며 어딘가로 가 버렸다. 자신을 끌어안았다가, 입을 맞추고, 또 그녀의 어깨에 이마를 문지르며 가기 싫다는 남자를 그녀가 먼저 밀어냈다. 농담처럼 각자의 집에 가자고 했던 해연은 정작 떨어지게 되자 묘하게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이나 함께 있었다고 혼자 있는 게 이렇게 어색한 건지. 게다가 이현이 제집에서 자고 간 건 단 하룻밤뿐이었다.
잠깐이었지만, 비를 맞았던 터라 바로 샤워를 하고 나온 해연은 머리에 수건을 둘둘 말고 노트북을 들고 와 무릎 위에 올렸다.
생각대로 테이림에서 메일이 와 있었다. 2차 면접에 대한 안내와 날짜, 필요한 서류가 설명되어 있었다. 해연은 준비해 뒀던 서류를 메일로 보낸 뒤, 다른 메일을 살폈다.
총 여섯 개의 회사에서 메일로 입사 제의를 보내왔다. 대부분은 저도 알고 있을 정도로 악평이 자자한 곳이었기에 바로 거절을 했지만, 두 군데는 조금 고민이 됐다. 조건만 따지면 테이림이 가장 괜찮았지만, 커리어로 따지면 다른 곳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단 면접을 보는 게 낫겠지. 테이림에서 적극적으로 나왔던 게 조금 걸리긴 해도 한번 들어가면 꽤 오래 있어야 할 텐데 이때 여기저기 둘러보고 가장 맞는 곳을 골라야 한다. 해연은 바로 답장을 보낸 뒤 노트북을 닫았다.
해연은 거실을 둘러봤다. 이현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는 꽉 찼던 거실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고작 오 평 남짓한 크기일 뿐인데. 그녀는 입술을 살짝 삐죽 내밀다 픽 웃었다. 이현이 투정 부릴 때의 버릇을 고스란히 제가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혹시나 그에게 전화가 오지 않을까 공연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도 이현으로 인해 생긴 버릇일 것이다. 헤어지기 전에 바빠서 오늘은 연락하지 못할 거라고 들었는데도 기다려졌다.
연애를 해 본 적은 처음이라 이 모두가 생소하고 신기했다.
해연은 머리에 두른 수건을 풀고 드라이기로 말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뒤적였다. 간간이 시간 때우기용으로 받았던 게임을 하기도 하고, 웹서핑을 하기도 했다. 사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이현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때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이현인가 싶어 몸을 벌떡 일으켰던 해연은 ‘이유영’이라고 적힌 화면에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러다 제 행동을 깨닫고 소파를 주먹으로 팡팡 쳤다.
“으, 정말 뭐 하는 거야…….”
아무리 연애가 좋아도 적당히 해야지. 해연은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전화를 받았다.
“응, 유영아.”
-언니! 면접은 잘 봤어요
“응. 면접은 잘 끝났어. 몇 군데 면접 더 보고 결정하려고. 너는 집이야”
-아, 집은 아니구요. 사실은…….
“왜 무슨 일 있어”
유영이 곤란하다는 듯이 말을 끌었다. 해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유영을 채근했다.
-사실 지금 장례식장이거든요. 그, 진상, 아니, 진규호 부팀장이 사고가 나서…….
어젯밤 음주운전으로 가드레일을 박고 강에 떨어졌다고 유영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해연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네. 그래서 야근하다가 직원들하고 다 같이 왔어요.
“…….”
-언니한테 알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아, 꼭 오라는 건 아니에요.
해연은 핸드폰을 귀에 댄 채 거실을 서성였다. 아무리 그래도 알았던 사람이 죽었다는데 가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야. 무슨 좋은 관계라고 가. 두 가지 마음이 정신없이 부딪혔다. 그러다 주저앉았다. 좋은 기억이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장례식장에는 피디와 팀장, 사장도 있을 거다. 그들을 다시 보고 싶진 않았다.
“유영아, 내가 계좌로 보내 줄 테니까 부조금 좀 대신 내줄래”
-네, 그럴게요.
“고마워.”
-아니에요. 솔직히 언니 입장에선 부조를 하는 것도 대단한 거죠. 죄송해요. 그냥 말하지 말걸, 괜히 언니 심란하게 한 거 같아요.
“……아니야, 말해 줘서 고마워.”
기분이 이상하긴 해도 이런 일은 차라리 아는 게 나았다. 당사자가 사고로 죽은 것도 모르고 나쁜 생각을 할 뻔했으니까.
-아, 언니 저 전화 끊어야 해요. 그럼 쉬세요.
“응. ……고생해.”
해연은 핸드폰을 소파 위에 던졌다. 속이 복잡했다. 고작 돈 얼마로 안 좋은 감정까지 털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머리를 식힐 겸, 옥상에 올라가 바람이나 쐬려고 외투를 걸쳤을 때였다.
똑똑―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
조금 전에 아는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해연은 본능적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누군가가 방문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녀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인터폰 비디오 버튼을 눌렀다. 까맣던 화면이 밝아지면서 살짝 흐릿하게 현관문 밖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현이었다.
안도의 숨을 내쉰 해연은 곧장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 벌컥 열린 문에, 다시 문을 두드리려 했었는지 한 손을 내밀고 있던 이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지 확인도 안 하고 문을 막 열어요”
“확인하고 연 거예요.”
“어떻게요”
“인터폰 있잖아요.”
해연이 웃으며 인터폰을 손으로 가리키자 이현의 고개도 따라갔다. 그가 묘한 얼굴로 인터폰을 보기만 하자 해연의 표정도 묘해졌다.
“왜 그래요. 인터폰 처음 본 사람처럼.”
“그러게요.”
“다음부터는 문 두드리지 말고 초인종 눌러요. 놀랐잖아요.”
“……그럴게요.”
그제야 인터폰에서 시선을 뗀 이현이 해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연은 그의 뒤로 손을 뻗어 현관문을 닫았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