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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아내-11화 (11/113)

11화.

“잘못했습니다…….”

어제 불시에 들이닥쳐 이상한 말을 하던 소년이 입술을 삐죽이며 해연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같이 온 안주희라고 소개했던 여자가 소년의 등을 쳤다.

“똑바로 안 하니”

“이씨! 이 정도면 됐……,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소년은 해연의 옆에 있는 이현의 눈치를 보더니 다시 한번 사과했다. 이번엔 사과의 말이 퍽 길었다. 성질을 다 죽이지 못했는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해연은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했다. 성인도 되지 못한 아이를 오래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소년이 약혼자라고 말했던 여자가 더 안절부절못해서,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으니 됐다 싶었다.

“사과해 줘서 고마워. 이제 됐으니까 얼굴 들어.”

“……칫.”

“윤시후!”

“…….”

“그만하세요. 괜찮아요.”

소년의 진심까지는 필요 없었다. 어리기도 했고, 어차피 이현과 언제까지 이런 관계를 유지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의 집안사람들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처음 저지른 불장난 같은 관계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불륜 같은 것이 아니기만 하면 됐다.

그때 이현의 손가락이 제 손가락을 파고들어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해연의 온 신경이 손가락으로 몰렸다. 천천히 교합되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해연은 저도 모르게 작은 한숨을 흘렸다.

“이제 오해 풀렸어요”

“……네.”

“나 그렇게 쓰레기 아니에요.”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거짓말쟁이. 하지만 믿어 줄게요.”

남자는 천천히 몸을 낮춰 해연에게 시선을 맞췄다.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검은 눈동자가 해연을 직시했다.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오싹 소름이 끼치는 감각에 놀라 본능적으로 손을 떼려는 해연을 남자가 단단하게 잡고 깍지를 꼈다. 손가락 사이를 천천히 움직이며 자극하는 남자의 행동에 미묘한 감각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타닥타닥. 바짝 마른 장작에 불씨가 새겨지는 것 같다. 해연의 몸이 가늘게 경련했다. 남자의 나른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주 제대로 발정기를 맞았네. 다른 사람이 있든 말든 상관없다 이거지”

그 작은 소리도 예민하게 잡아낸 소년이 이죽거렸다. 해연은 깜짝 놀라 깍지를 낀 손에 힘을 잔뜩 줬다. 이곳에 이현과 단 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시후야, 제발 좀!”

“누나는 왜 자꾸 나한테만 뭐라고 해”

“너 이리 나와! 죄송합니다.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여자가 소년의 입을 막고 끌고 나갔다. 해연은 어제도 보았던 장면이라고 생각하며 원래 저런 성격이구나, 안도했다.

그 와중에도 깍지를 낀 손은 여전했다. 가만히 겹쳐진 힐끔 손을 내려다보자 이현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귓가를 타고 울리는 저음에 해연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던 이현은 시선을 돌려 여자와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해연을 향해 웃어 주던 것과는 달리 그들을 향한 그의 표정은 무심하기만 했다.

저를 향한 시선과 전혀 다르다는 것에 왜 가슴이 뛰는 걸까. 어색하고 묘한 기분에 해연이 뜨끈한 볼을 손으로 문지르는데, 그가 몸을 바짝 붙였다.

남자의 손가락이 해연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야릇하게 쓸었다. 심상치 않은 기세였다. 해연이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 했지만, 남자가 더 빨랐다. 그는 해연이 꽁꽁 싸매고 있는 시트를 단숨에 벗겨 내고 그녀의 위를 점령했다.

* * *

이현의 침실과 연결된 욕실은 일반적인 가정집에 있는 욕실이라고 치부하기 민망할 정도였다. 제 방과 거실을 합치면 이 정도 크기가 되려나 싶을 정도로 넓은 크기에 욕조 역시 굉장히 컸다. 이현과 함께 욕조에 들어가 있었음에도 몇 명은 더 수용이 가능한 크기였다.

틈이 날 때마다 그에게 시달린 몸은 따뜻한 물에 의해 노곤하게 풀어졌다.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고 있는 남자의 손이 물에 젖은 해연의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살을 맞댄다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상대에게 보여 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장 깊은 무언가를 공유하는 친밀감과 유대감은 몸을 겹칠수록 더욱 깊어져 갔다. 남자의 접촉은 여전히 짜릿한 긴장감을 동반했지만,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달콤함도 있었다.

뽀얗게 드러난 가는 목덜미에 입술이 닿았다. 몸에 힘을 풀고 그의 가슴에 등을 기대고 있던 해연은 제 가슴 한쪽을 움켜쥐려는 응큼한 손을 찰싹 때렸다. 허리춤에 닿는 성기가 조금씩 힘을 받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파요.”

“제가 더 아파요.”

그에 의해 계속 벌어진 허벅지와 골반이 아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아픈 곳은 그 짐승 같은 성기를 계속 받아들인 음부였다. 사실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처음이었다던 이현은 그동안 쌓아온 성욕이 폭발하기라도 한 듯 해연의 온몸을 물고 빨았다.

이제 거울을 볼 필요도 없었다. 고개만 내리면 울긋불긋한 자국들로 인해 원래의 피부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현은 해연의 몸에 남긴 자국이 옅어지기도 전에 다시 불긋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집요하게 굴었다.

처음에는 제 몸을 보는 게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그런 감정도 사라졌다. 사실은 포기한 것에 가까웠다.

“누가 보면 전염병에 걸린 줄 알겠어요.”

“그럼 아무도 당신에게 접근하지 않겠네요.”

반성 좀 하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는데 이현은 오히려 더 뻔뻔하게 반응해 해연을 당황하게 했다.

“당신이 너무 달콤해서 그래요.”

단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이상하다며 이현이 해연의 목과 어깨를 이빨로 잘근잘근 깨물었다. 어린 짐승 같은 천진함을 가장했지만, 이런 행동 뒤에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는 고작 이틀만으로도 충분히 경험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또다시 그에게 휘둘릴 터였다.

“힘들어요.”

“……많이 힘들어요”

“엄청요.”

진심을 듬뿍 담은 말에 그제야 이현은 알았다며 포기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해연의 목과 어깨에 끊임없이 입을 맞췄다. 혹시라도 다시 덮치는 게 아닐까 싶어 긴장했지만, 이현은 해연의 몸을 씻기는 것에만 집중했다.

씻고 나오니 개량 한복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침실에 들어와 흐트러진 방을 정돈하고 있었다. 해연은 여전히 방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보며 머뭇거리다 이현이 이끄는 대로 침대에 앉았다.

잠시 후 고운 한복을 입은 여자가 작은 상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현과 해연이 앉아 있는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상을 올려두었다. 상은 크기가 작고 다리가 짧아 쟁반 대용으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식전 죽입니다.”

“감사합니다. 폐를 끼쳐서…….”

“그렇게 고개 숙일 필요 없어요.”

황급히 감사 인사를 하는 혜연의 고개를 이현이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 이현에 의해 고개를 들어 올린 해연은 여자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까 소년과 함께 봤었던 안주희라는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당혹스러워하는 해연을 두고 여자는 공손히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였다.

“앞으로 해연 님의 시중을 맡을 안주희라고 합니다.”

“그, 이건 조금…….”

경우가 아닌 것 같은데. 해연은 입술을 달싹이며 여자를 봤다가 이현을 바라봤다. 그는 이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이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는 도리어 여자를 향해 물었다.

“해연을 시중드는 게 불편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님께서 처음 모시고 온 분이신걸요. 제가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들었죠 그냥 편하게 있어요.”

“…….”

“그럼 다 드시면 불러 주세요.”

해연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어 여자를 내쫓는 이현을 바라봤다. 편하게 있으라니.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꼭 조선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요즘도 이런 집안이 있구나…….

“먹어요. 어제 내가 많이 괴롭혀서 배고플 텐데.”

이현이 고소한 들깨죽이 든 수저를 내밀었다. 수저를 받아야 하나, 그대로 입을 벌려 받아먹어야 하나 고민을 하던 해연은 입술을 톡톡 치는 수저의 감촉에 자연스럽게 입을 벌렸다. 적당히 따뜻한 액체가 해연의 입안으로 들어왔다. 천천히 빠져나가는 수저를 망연히 바라보며 해연은 죽을 제대로 맛보지도 못하고 목구멍으로 밀어 삼켰다.

“제, 제가 떠먹을게요.”

“싫어요.”

“네”

“첫날밤을 함께 보낸 여자의 시중은 남자가 드는 거라고 들었어요.”

요즘 세상에 무슨 첫날밤이고, 무슨 시중이란 말인가. 하지만 뭐라고 반박하기도 전에 다시 죽이 든 수저가 입술에 닿았다. 그녀가 목을 뒤로 빼고 고개를 젓자 이현은 고개를 갸웃 기울이다 제 입으로 죽을 밀어 넣었다.

“괜찮은데. 혹시 입맛에 안 맞아요”

“아, 아뇨. 그게 아니라…….”

그냥 불편했다. 이현을 만나고 나서 해연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들만 하고 있었다. 해연이 시선을 비스듬히 돌리자 이현이 죽그릇을 옆으로 치웠다.

“본가에 여자를 데려온 것이 처음이라 다들 궁금해하고 있어요.”

“우리는 아직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이현이 코웃음을 쳤다.

“보자마자 바로 섹스를 해 놓고”

“…….”

해연은 입을 다물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심란한 표정을 짓는 여자의 얼굴을 본 남자는 느긋이 말했다.

“난 당신 말고 다른 여자에게 서 본 적도 없어요.”

귓가를 핥는 난잡한 말에 해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 처음을 가져가 놓고 너무 냉정한 거 아니에요”

“나도 처음이거든요”

“알아요.”

“……네”

순간 일방적으로 몰리는 기분에 항의하다 기분이 이상해졌다. 안다고 그녀는 제가 경험이 있다고 생각하던 이현의 오해를 풀지 못했다. 풀 시간도 주지 않고 그가 덮쳤기 때문이다. 그녀가 경험이 있다고 제멋대로 오해해서 그렇게 날뛰어 놓고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이 처음이라고 확신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럼 그때 왜 그랬던 건데요”

기가 막혀서 물으니 이현은 그녀의 손가락을 잡아끌어 제 입술에 가져다 댔다. 부드러운 입술이 손가락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지더니 다시 닿았다. 간지러운 소리에 해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생각만으로도 싫어서요. 당신은 내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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