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흥분으로 거친 숨을 흘리며 괴물이 칼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모든 것을 포기했던 해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콰앙―!
닫혀 있던 두꺼운 철문이 거친 굉음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검은 형체가 나타나 괴물의 목을 단숨에 물어뜯었다.
“크아아아악!”
해연에게로 기울어져 있던 괴물의 거대한 몸이 검은 짐승의 공격에 의해 뒤로 확 젖혀졌다. 괴물이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몸부림치자 날카로운 발톱이 단단한 피부를 파헤쳤다.
괴물이 괴로워하며 팔을 휘젓자 해연의 눈앞으로 날카로운 발톱과 날붙이가 종횡했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가 멀리 떨어지길 반복하자 심장이 정신없이 날뛰었다. 눈을 감아도 현실을 도피할 수 없었다. 뜨끈한 액체가 그녀의 몸에 사정없이 튀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벽에 무언가가 부딪혀 내는 커다란 소음과 괴물의 비명소리가 귀를 타고 들어왔다. 소리만 들으니 더 무서워서 해연은 결국 눈을 떴다. 눈앞에선 여전히 흉측한 괴물과 검은 짐승이 싸우고 있었다.
미칠 것 같았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입이 막혀 그럴 수도 없었다. 해연은 거의 흐느끼듯이 울었다. 이게 꿈이라면 이제 그만 좀 깨고 싶었다.
그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던 괴물이 팔을 휘저으며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힘의 차이가 현격했다. 해연의 피로 범벅이 된 날붙이를 휘두르는 팔을 짐승이 물어뜯었다. 날카로운 이빨에 의해 거의 뽑히다시피 떨어진 팔에 괴물의 어깨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제대로 된 반항 한번 못해 보고 팔을 뜯긴 괴물이 고성을 지르며 포효했다.
팔을 뜯어 버린 것도 모자라 짐승은 괴물의 목을 물어 그대로 반대편 벽으로 내던졌다. 단단한 시멘트벽에 부딪힌 괴물의 머리가 수박이 터진 것처럼 뇌수를 터트리며 산산조각이 났다.
머리를 잃은 괴물은 잠시 몸을 꿈틀거리다 바닥으로 쓰러졌다. 즉사. 괴물의 피가 온 방을 난자하며 뒤덮었다. 인간을 사냥하며 식인을 하던 괴물의 최후는 아주 짧은 시간에 끝이 났고, 처참하도록 비루했다.
크르르륵.
위협적인 소리에 괴물의 시체를 보던 해연의 시선이 화들짝 짐승에게로 옮겨졌다. 검은 짐승은 계속 해연을 보고 있었다.
짐승은 입과 털에 묻은 괴물의 피와 살점을 털어냈다. 더러운 것을 입에 담았다는 듯 기분 나쁜 기색이 역력했다. 한바탕 몸을 털어 낸 짐승이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순간 소름이 확 끼쳤다.
“흐으으읍! 흑! 흐읏! 으으……!”
정제되지 못한 거친 숨이 제멋대로 쏟아졌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살려 줘. 해연이 숨을 헐떡이며 빌고 빌었다.
짐승은 주둥이를 내밀어 그녀의 몸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킁킁 소리를 내며 냄새를 맡더니 혀를 내밀어 살갗을 핥았다. 까슬한 혀가 상처에 닿자 잠시 잊고 있던 통증이 되살아났다. 해연이 몸을 움츠리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자 짐승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고는 두툼한 발끝으로 해연의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무지한 아이가 잠자리의 날개를 툭툭 떼어 내는 것처럼 어떤 감정도 없는 흥미 위주의 행동이었다. 수없이 그어진 상처와 넘쳐흐르는 피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인간이 아닌 짐승이니 당연하겠지만, 해연으로서는 대놓고 잔혹한 행동을 하던 괴물보다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해연을 가지고 놀았던 괴물을 단숨에 죽일 만큼 강한 짐승이었다. 괴물이 죽음으로서 아주 작게나마 희망이 올라왔던 낯에 다시 공포가 서렸다. 너무 무서워서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무언가를 확인하듯 굴던 짐승의 주둥이가 마치 웃는 것처럼 길게 벌어졌다. 원하던 것을 찾아 만족한 듯이.
서서히 존재를 드러내는 날카로운 이빨에 해연의 낯이 까맣게 죽었다. 아, 안 돼. 안 돼. 제발……!
“으으으으으읍!”
괴물에 의해 엉망으로 낭자 된 다리를 짐승이 단숨에 물어 삼켰다. 새하얀 고통이 해연의 몸을 갈랐다. 와작와작. 살점과 함께 뼈가 조각나는 소리가 해연의 비명과 함께 방을 울렸다.
괴물에 의해 겪었던 고통은 지금에 비한다면 장난에 불과했다. 해연의 양다리는 짐승이 먹어 버려 허벅지 중반까지만 간신히 남은 상태였다. 두 번이나 다리가 잘리는 고통을 겪어 해연의 정신은 붕괴되었다. 너덜너덜한 것은 몸뿐이 아니었다. 도를 넘어선 통증으로 해연의 눈이 까무룩 넘어갔다. 짐승의 입이 그녀의 팔로 향했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난 상태였다. 해연은 과다출혈과 쇼크로 심장이 멎었다.
그렇게 최초의 죽음이 해연을 덮쳤다.
* * *
방 안을 환하게 비추는 빛이 해연의 얼굴에 도달했다. 그와 동시에 항상 같은 시간에 맞춰진 알람이 울렸다.
“으음.”
해연은 손을 더듬어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알람부터 끄고 잠시 침대에 몸을 비비적대던 해연이 상체를 일으켰다. 긴 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정신이 맑았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들어 일기예보를 봤다. 맑음. 어제는 그렇게 폭우가 쏟아졌는데 오늘은 이렇게 맑…….
“비가, 왔었다고”
그럴 리가. 어제는 분명 일찍 퇴근했다. 그리고 피곤해서 씻고 바로 잤는데 무슨 비가 와. 혹시 몰라 어제 자의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역시 맑았다. 그럼 그렇지.
월요일 7시 30분.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침대에서 나와 욕실로 가려던 해연의 발이 우뚝 멈췄다. 어제는 금요일 아니었나 주말 내내 잠을 잤다고 어제의 기억을 되새기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징―
그때 베개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진동했다. 뭔가 떠오르려던 것이 문자의 진동으로 안개처럼 사라졌다. 화면을 열어 보니 유영환 팀장에게서 온 메시지가 보였다.
[해연 씨, 회의 내일로 미룹시다. 오늘 저 연차 냅니다.]
순간 욱해서 욕이 나올 뻔했다. 오늘 무조건 회의를 해야 한다며 닦달한 탓에 한 달 내내 야근을 하게 해 놓고 정작 당일이 되니까 연차라고 팀장이 이러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유독 책임감 없게 느껴졌다.
뭐라고 하고 싶은데 팀장은 부족한 책임감을 쪼잔한 성격으로 메꿨다. 당장 뭐라고 불만을 말한다면 지금이야 시원할지 몰라도 더 큰 보복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게 무서운 것은 아니지만, 꽤 귀찮은 일이 될 것은 분명했다.
해연은 감정을 꾹 내리누르며 네, 라고 형식적인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화면을 끈 핸드폰을 침대 위로 툭 떨어트렸다.
이럴 때마다 이직하고 싶은 욕구가 물밀 듯 몰려왔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싫어서 주저앉아 있는 것이었다. 어딜 가나 진상은 꼭 있어서 지금 팀장 같은 사람이 없으리란 보장도 없으니 참고 참았는데, 의미 없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마치고 서둘러 화장을 했다. 집과 회사의 거리가 꽤 돼서 지금 나가야 안정적으로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던 해연은 뭔가 기분이 이상해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평소와 똑같은 자신의 집인데 어딘가 이질감이 들었다. 어디 하나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착각이겠지.’
괜한 생각일 것이다.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켰다. 가슴이 위로 올라갔다가 천천히 내려왔다. 해연은 그대로 등을 돌려 현관 밖으로 나섰다.
* * *
팀장이 없으니 그 밑에서 호가호위하는 여우 새끼가 날뛰었다. 팀원들에게 신임이 두터운 해연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남자였다. 나이만 많지, 능력은 부족해서 권력 있는 사람에게 기생해서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 하는 짓이 유치해서 상대하는 것조차 가치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침만 해도 그랬다. 한 달을 야근해 가며 어렵게 일정을 맞춘 작업물을 컨펌할 자격도 없는 진규호가 와서 보자고 하더니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 가며 해연을 잡았다. 오늘 꼭 회의해야 한다고 무리한 일정을 잡으며 채근하던 팀장이 정작 휴가를 내 버린 탓에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았던 해연은 핀트가 나가기 직전이었다.
함께 점심을 먹던 유영이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아, 진짜 진규호 미친 거 아니에요”
“무시해.”
“어떻게 무시가 돼요 언니는 그게 가능해요”
“걔가 제일 물고 늘어지는 게 나잖아.”
“그러니까요! 진짜 진상 새끼. 걔는 왜 안 잘리는 건지 모르겠어요. 일도 못 하는데!”
“유영아, 목소리 낮춰. 그리고 팀장이 꽂은 거라 잘릴 리가 없어.”
“그 팀장도 문제죠. 유영환 개새끼. 그렇게 급하다고 재촉해 놓고 오늘 왜 안 나왔대요!”
“이유영. 말 함부로 하지 마. 개가 무슨 죄야.”
“아씨, 이 상황에 왜 웃기고 그래요.”
“맞잖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 정도는 지키자. 유영환에게 개를 대지 마. 개가 불쌍하니까.”
진지한 해연의 말에 유영이 끅끅대며 웃음을 삼켰다. 말 함부로 하지 말라며 정색할 때는 이 언니가 왜 이러나 했는데 결국 한해연 식대로 욕하는 거였다.
농담으로 마무리하긴 했어도 해연이라고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억지로 담담한 표정을 하고 음식을 먹고 있지만, 모래알을 씹는 것 같다. 결국 해연도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고 찬물을 벌컥 들이켰다. 이유영은 그런 해연을 향해 목소리를 낮춰 말을 걸었다. 첩보영화라도 찍는 것처럼 주변을 살피기까지 하는 게 웃기고 귀여워 답답한 와중에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언니, 저 진지하게 묻는 건데요. 이직할 생각 없어요”
“……왜”
뜻밖의 말에 해연은 들고 있던 물컵을 천천히 내려놓고 물었다. 해연의 표정이 차분히 가라앉자 유영은 한결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는 분이 언니 이직 생각 있는지 물어서요. 거기 프로젝트 엄청 크고 회사에서 지원 빵빵한가 봐요.”
“어딘데”
“테이림이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