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화. 늑대
앞으로 나아갈수록 시체가 점점 많아졌다. 불과 얼마 전 이곳에서 격렬한 전투가 일어났음이 분명해졌다.
위무행이 횃불을 건네받고 흔적을 따라 전진하려는데, 친위가 그를 막아섰다.
“장군, 이 앞은 귀견수(鬼見愁)입니다.”
귀견수는 아주 험하고 가파른 산비탈을 뜻했다. 산민들도 함부로 다니지 못하는 곳이었다.
위무행은 횃불을 들고 산비탈 꼭대기에 섰다가 붉은 장미가 그려진 가죽 신발을 발견했다.
서가복의 차림새를 신경 쓴 적은 없지만, 누가 봐도 여인의 신발이었다.
“밧줄을 가져와라.”
“장군―”
“어서!”
위무행은 밧줄을 건네받은 뒤 한쪽은 제 허리춤에 묶고, 반대쪽은 친위에게 건넸다.
“장군,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해라. 너희들 중 나보다 뛰어난 자가 있느냐? 밧줄이나 잘 잡고 있거라.”
위무행은 밧줄을 맨 채 아래로 내려갔고, 그 과정에서 몇 번이나 위험과 맞닥뜨렸지만 겨우 피해냈다. 하지만 수십 장을 내려가자 밧줄의 길이가 다해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었고 아래에 닿기엔 아직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위무행은 이를 악물고 밧줄을 푼 뒤, 죽을 고비를 넘겨서야 겨우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서 아가씨, 서가복 아가씨―”
우렁찬 목소리가 산골을 울렸지만, 그의 목소리에 대답하는 건 소름끼치는 늑대 울음소리 뿐이었다.
‘늑대가 무리를 모으는 소리 같은데, 사냥감을 찾은 건가?’
어떤 가능성이 떠오르자, 위무행은 늑대 울음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깊은 밤이었지만, 이미 어둠에 적응한 위무행의 눈엔 수십 마리의 늑대가 나무 한 그루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게 보였다.
위무행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자, 나뭇가지 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서 아가씨?”
위무행은 늑대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외치며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 아요…….”
늑대들은 곧바로 나무 위의 사람을 내버려두고 위무행을 둘러싸 공격하기 시작했다.
칼날이 반짝였고, 늑대의 울부짖음이 산골에 울려 퍼졌다. 그의 주변에 늑대의 시체가 차례로 쌓여갔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리가 마침내 위무행의 팔을 무는 데 성공했다.
위무행이 낮은 신음을 내었다.
“괘, 괜찮으세요?”
“조용히!”
위무행이 소리치며 늑대의 머리를 베어냈다.
모든 늑대를 무찌른 뒤, 위무행은 완전히 진이 빠져 나무에 기대 숨을 헐떡였다.
호흡이 조금 진정되자, 위무행이 차갑게 말했다.
“서 아가씨, 제가 안아서 내려드려야 합니까?”
한참 뒤, 서가복의 연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어찌 감히요―”
위무행은 기가 차서 웃었다.
“서 아가씨께 ‘감히’ 못 하는 일도 있었군요! 몰래 군영을 이탈하다니, 아주 용감하신 줄로 알았습니다만?”
“다른 건 몰라도 늑대는 너무 무서워서―”
서가복이 흐느끼기 시작하자, 위무행은 멈칫했다. 여인이 울면 어찌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위무행은 참고 또 참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만 우십시오. 늑대는 다 죽였으니, 얼른 내려와서 제 상처를 싸매주지 않으면 저도 늑대와 같은 처지가 될 겁니다!”
이내 울음소리가 멈추었고 대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가복은 늑대 시체에서 빙 돌아와 위무행 곁으로 다가왔고, 그의 팔에 새겨진 깊은 상처를 보고 낮은 비명을 지르더니 급히 옷자락을 찢었다.
“무슨 짓입니까?”
위무행이 고개를 휙 돌렸다.
‘미인계라도 쓰면 내가 봐줄 줄 알고? 어림도 없지!’
“안쪽 옷이 그나마 깨끗하니, 상처를 싸매드리려고요.”
서가복은 제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평소처럼 거칠지 않았고 고분고분히 굴었다.
위무행은 더는 아무 말 않고 서가복이 상처를 싸매도록 두었다.
“데려오신 사람들은요?”
서가복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입술을 꽉 깨물고 말했다.
“모두…… 죽었습니다. 북제군이 저를 생포하려 해서 산비탈에서 뛰어내렸고요.”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천운이었군요!”
위무행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 친위들은 모두 고르고 골라 선발된 훌륭한 병사들이었다. 그런데 이 아가씨가 제멋대로 벌인 일 때문에 여기서 모두 죽게 된 것이다.
“제 잘못이에요. 정말 모두 제 잘못입니다.”
서가복은 완전히 무너져 통곡하기 시작했다.
위무행은 입을 꾹 다문 채 그 모습을 한참 쳐다보다가, 서가복이 울음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입을 열었다.
“더 울어보시지요. 또 늑대를 몰아오면 저도 더 이상 손쓸 수 없습니다.”
울음소리가 바로 멎자, 위무행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리도 늑대를 무서워하실 줄이야.”
‘늑대가 무섭지 않은 동물은 아니지만, 이 아가씨의 성정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서가복은 침묵했다.
“날이 밝으면 길을 찾아 나서지요.”
위무행이 담담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나무에 기대었고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늘의 별도 사라졌고, 산골짜기의 벌레와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 깊은 밤이었다. 짙은 피비린내만이 두 사람을 둘러쌌다.
서가복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위무행은 골치 아프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더니 겉옷을 벗어 던져주었다.
사내 특유의 냄새와 온기가 느껴지는 겉옷을 몸에 두르자, 서가복은 순간 긴장을 풀었다.
“저는 늑대를 무서워합니다. 아주 아주 무서워하지요. 늑대를 보기만 하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입니다.”
위무행이 눈을 슬쩍 들어 서가복을 쳐다봤다.
“제 아버지는 원래 능남에서 관직을 맡고 계셨고, 저는 어려서부터 그곳에서 지냈지요. 그래서 능남의 다른 아가씨들처럼 용감하고 대담합니다. 13살 때, 저는 어떤 사내를 좋아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 사내는 너무 가난했고, 잘생긴 외모 외에는 저희 부모님 눈에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사내와 도망쳤지요. 그리고 도망치던 그 날은, 오늘 밤처럼 하늘에 별도 보이지 않는 밤이었어요.”
위무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서가복은 회상에 잠긴 채 말을 이었다.
“우리는 달리고 또 달리며, 산을 몇 개나 넘었어요. 그러다 늑대 무리를 만났고, 함께 나무 위로 올라가 숨었지요. 그런데 늑대가 발톱으로 나무를 긁기 시작한 겁니다.”
서가복이 잠시 침묵하자, 위무행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래서요?”
“그랬더니―”
서가복이 갑자기 웃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저를 나무에서 밀어버렸지요.”
위무행이 똑바로 일어나 앉아 서가복을 조용히 쳐다봤다.
‘겨우 13살의 아가씨가 좋아하는 사람과 도망쳤는데, 그 사람이 자기를 늑대 먹이로 주려 했다니. 아주 잔인하구나. 나 같은 사내도 감히 상상치 못할 만큼.’
“제가 어리석고, 사내 보는 눈이 없다고 생각하고 계시지요?”
위무행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게 어린 아가씨가 어찌 좋은 사람을 구별할 수 있었겠는가?’
“그 뒤는 간단하지요. 저는 몸에 지닌 비수로 필사적으로 늑대를 한 마리씩 죽였고, 마지막 한 마리를 남기고 다시 나무에 올랐습니다.”
서가복은 위무행을 쳐다봤다. 하늘의 별보다도 더 반짝이는 눈이었다.
“나무에 오른 뒤, 그 사내를 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늑대가 그자를 물어뜯는 걸 직접 보았지요. 그런데, 그때부터 늑대가 무서워졌습니다.”
‘이후 나를 찾아온 부모님껜 그자가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늑대의 먹이가 되었다고 말했지만……. 그건 13살의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어. 그 이후, 사내는 늑대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했지. 가지고 노는 건 되지만, 은애할 순 없다고.’
“그렇군요. 이제 됐습니다. 날이 밝았으니 이만 나가지요.”
위무행이 서가복의 어깨를 토닥였다가 얼른 손을 거두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길을 찾을 때까지 얼마나 걸어야 할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서가복의 마음은 든든했다.
서가복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제가 알기로는 늑대도 장점이 아주 많다던데, 사실인가요?”
위무행이 서가복을 마주 보더니, 한참 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 * *
위국공부는 최근 며칠 동안 들뜬 분위기였다. 위국공이 곧 돌아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단 노부인은 수도 교외에 사람을 보내 위국공을 기다리게 했고, 위국공 부인 도 씨도 아픈 몸을 겨우 버텨가며 매일 소식을 묻곤 했다.
어느 날, 어떤 사동이 빠르게 달려와 보고했다.
“국공야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이미 수도에 입성하셨다 합니다.”
위국공부는 곧바로 떠들썩해졌다. 위국공이 돌아오자, 윗사람부터 아랫사람까지 모두 대문의 계단 위에 서서 맞이했다.
“아버지, 어머니, 오래 기다리셨지요. 다녀왔습니다.”
3년 만에 돌아온 위국공은 한쪽 무릎을 꿇고 부모에게 절을 올렸다.
단 노부인은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다가가 위국공을 일으켜 세웠다.
“부상을 입었다지 않았느냐. 어서 들어가서 얘기하자꾸나.”
노위국공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구나.”
위국공은 애틋한 가족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 씨를 쳐다봤다.
도 씨는 이미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고생했소, 부인.”
“국공야―”
위국공은 도 씨를 달래듯 웃어 보이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한지가 안 보이는군?”
이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각자 달라졌다.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자꾸나.”
단 노부인은 차분히 정적을 깨트렸다.
* * *
응접실 안, 위국공이 상을 내리치며 일어났다.
“어찌 그런 일이 있었단 말입니까?”
멀리 북쪽에 있었던 위국공은 집안으로부터 받은 서신을 통해 아들의 몸이 좋지 않아, 세자 자리는 조카인 한평이 물려받았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다. 당시 기분은 조금 나빴지만 빠르게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지켜보았지만, 조카인 한평은 아들인 한지보다 훨씬 진중한 성품을 가진 아이였다. 위국공부의 입장에서 봐도 한평이 장래에 위국공 자리를 계승하는 건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일에 그런 황당한 사건이 관련되어 있었다니!’
“한지는 지금 어디에 있소?”
위국공이 엄하게 물었다.
“처소에 있습니다. 국공야, 다 제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입니다―”
“아들의 불효는 아비의 탓이니, 내 잘못이오. 한지를 만나보러 가겠소.”
위국공은 바로 한지의 거처로 향해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러자 한지가 손에 술병을 쥔 채 비틀거리며 방에서 나왔다.
위국공은 아주 노여워하며 성큼성큼 다가가 한지의 뺨을 내리쳤다.
“이 못난 녀석, 직접 보기 전엔 도저히 믿을 수도 없었거늘, 정말 주정뱅이가 되었구나!”
한지가 힘겹게 눈을 떴다.
“아…… 아버지?”
그리고 딸꾹질을 하자, 위국공은 짙은 술 냄새를 맡았다.
위국공은 몹시 화가 나 술병을 빼앗아 벽에 던져버렸고, 한지를 마당의 물독으로 끌고 가 머리를 처박아버렸다.
뼛속까지 느껴지는 차가운 물에 한지는 술이 번쩍 깼고 사레에 들려 이리저리 발버둥 쳤다.
위국공은 매정하게도 그 모습을 한참 쳐다보다가 그제야 손을 놓아주었다. 한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못난 놈. 넌 위국공의 아들이다. 이리 창피한 모습을 보여서 되겠느냐?”
한지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 저는 이제 끝났습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금이야 옥이야 여기며 맞은 아내가, 일찍이 다른 사내와 내통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내는 다른 사내를 제 방에 숨기고 매일 뒹굴었지요. 그리고 저는 위국공부의 장자이자 적손임에도 세자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보다 더 창피한 일이 있겠습니까? 이제 저는 끝났단 말입니다!”
위국공은 조용히 듣다가 쭈그려 앉아서 한지와 마주 봤다.
“그 일로 네가 큰 상처를 받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리 망가질 이유가 되진 않아. 지야, 이렇게 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비로서 창피한 일이다!”
위국공이 손을 뻗어 한지의 어깨를 토닥였다.
“겨우 스무 살 넘은 사내 아니냐. 인생은 아직 길다. 네가 잃은 것만 생각하지 말고, 네가 가지고 있는 걸 생각해야지. 잘 생각해 보거라. 계속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나도 널 아들로 여길 수 없을 것 같구나.”
위국공은 말을 마치고 성큼성큼 떠나갔고, 한지는 한참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의 물기를 닦은 후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과원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