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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357화 (356/375)

357화. 한 쌍의 뱀 팔찌

정철은 두 사람과 함께 반 시진 가량 차를 마시며 잡담을 나눈 뒤 밖으로 나왔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작은 발소리와 함께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자 전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정철이 뒤돌아보자, 황후의 심복 궁녀 청아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오?”

정철은 20여 년 동안 황후 곁에 남아준 늙은 궁녀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청아는 잠시 망설이더니, 소매에서 흰 손수건을 꺼내 정철이 보는 앞에서 천천히 풀었다. 안에는 팔찌가 하나 들어있었다.

그것은 정철이 들고 있는 뱀 모양 팔찌와 똑같이 생긴 팔찌였다.

정철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점점 재밌어지는군. 부황께선 나머지 한쪽은 부서졌다고 했는데, 모후의 심복 궁녀 청아에게 있었다니. 그럼 내게 있는 팔찌는 분명 부황께서 화 씨에게 준 팔찌가 틀림없다.’

“그 팔찌는 어디서 난 것이지?”

청아가 화난 얼굴로 말했다.

“모양이 이렇게 특별하지 않았다면 진작 잊어버렸을 겁니다. 벌써 10여 년이 지난 일이니까요. 그땐 한여름이었는데, 정원의 귀한 꽃과 풀들은 이미 다 말라비틀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들장미가 하나 피어나기에, 소인이 그 장미에 물을 주다가 옆에 떨어져 있던 이 팔찌를 발견한 겁니다. 분명 어느 못된 놈이 일부러 이런 무서운 모양의 팔찌를 던지고 간 게 분명합니다!”

정철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문득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한여름이었고 아주 시원한 팔찌라 했으니, 부황께선 이걸 모후께 선물하고 싶으셨던 것이겠지. 하지만 명분이 없으니 사람을 보내 몰래 전달하려다…… 이렇게 된 거군.’

정철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자, 청아가 송구한 듯 말했다.

“소인이 실례했습니다. 어쨌든 이 팔찌가 꺼림칙해서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방에 두었었습니다. 오늘 전하께서 똑같은 팔찌를 꺼내시는 걸 보고는 꺼내서 마마께 보여드렸더니, 마마께서는 중요한 일일 수 있으니 전하께 보내드리라 하셨습니다.”

정철이 팔찌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본궁 대신 모후께 감사 인사를 전해주시게. 이 팔찌는…… 부황께서 모후께 드린 것일 테니.”

허허 웃은 정철은 멍하니 있는 청아를 남겨두고 뒤돌아 떠났다.

정철은 동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황궁의 비밀 감옥으로 향했다.

오전이었지만, 화창한 다른 곳과는 달리 싸늘하고 오싹한 공간이었다.

정철은 곧장 등안에게로 향했다.

화 귀비 사건에서 등안은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창경제가 자비를 베풀어서가 아닌, 의심이 다 풀리기도 전에 화 귀비를 너무 쉽게 죽인 것이 후회되어 그 답답한 마음을 풀 곳이 없어서였다. 등안은 화 귀비 곁을 가장 오래 모셨던 내시였기에, 창경제는 일단 그의 목숨만은 살려두었던 것이다.

“전하.”

등안은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다. 정철이 다가오자 침착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눈빛은 흐릿하고 멍한 상태였다.

정철은 등안에게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등안은 화 귀비를 따르며 수많은 죄를 저질렀지만, 등안이 아니었다면 정철은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정철이 팔찌를 꺼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등 공공, 이 팔찌를 보았겠지?”

이미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등안에게는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었기에 팔찌를 잠시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황상께서 예전에 화 씨에게 주신 팔찌입니다. 남란국의 공물이라 들었습니다.”

“그럼, 이 팔찌가 어쩌다 궁 밖으로 흘러나간 건지 알고 있나?”

등안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화 씨가 이 팔찌를 경왕세자비에게 선물하셨습니다.”

흠칫 놀란 정철은 팔찌 한 쌍을 가지고 곧장 동궁으로 돌아갔다.

정미가 다가와 정철의 옆에 앉았다.

“오라버니, 뭐 좀 알아냈어?”

정철이 반문했다.

“미미, 경왕세자비와 이모님의 관계는 어땠어?”

“경왕세자비?”

정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오라버니, 마침 경왕세자비 얘기를 하려고 했었어. 오늘 어머니께서 사람을 보내셨는데, 경왕세자비께서 동지 연회 이후에 몸이 안 좋아져서 태의를 몇이나 불렀는데도 호전되지 않고 있대. 증상을 보니 귀신에 홀린 것 같다는데, 경왕부에서는 어머니께 내가 왕부로 가 세자비를 한번 봐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대.”

정미는 이제 존귀한 신분의 태자비였기에, 원칙대로라면 출궁하여 진료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경왕세자비는 단 노부인의 수양딸이자, 명분상으론 정미의 이모였기에, 이 정도는 허용될 수 있는 범위였다.

‘귀신에 홀렸다고?’

정철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중얼거렸다.

“점점 재밌어지네. 미미, 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는걸?”

정미가 웃으며 말했다.

“세자비와 이모님의 관계라면, 당연히 아주 좋았지. 소꿉친구였는걸. 세자비가 혼인하고 아들을 낳은 뒤에도 자주 이모님과 함께 놀러 다녔다고 들었어.”

“그럼, 이모님의 운명을 바꾼 그 외출 때도 세자비가 있었단 말이지?”

정미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어머니를 뵈었을 때 이모에 대한 정보를 많이 들었는데, 당시 함께 놀러 나간 규수들은 일고여덟 명쯤 되고, 세자비도 그중 하나였대. 사고가 났을 때 이모는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강도와 싸우다가 납치당했고, 겁탈까지 당해 평판이 무너져 그 벗들은 다신 이모와 왕래하지 않았대. 세자비만이 전과 다름없이 이모와 지내고, 그 일로 몹시 자책했다고…… 심지어 외조모님 앞에서 몇 번이고 통곡했다고 해. 그런데 이건 왜 물어?”

정철이 정미 앞에 팔찌 한 쌍을 꺼내놓았다.

똑같이 생긴 두 팔찌를 보자, 마치 서로의 반려를 찾아 한 쌍을 이룬 뱀이 다정하게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미는 눈을 크게 뜨고 차가운 팔찌를 손끝으로 어루만지다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정철을 쳐다봤다.

정철이 웃으며 물었다.

“맞혀봐, 둘 중 어떤 게 화서가 준 팔찌로 보여?”

정미가 두 팔찌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하나를 가리켰다.

“이거지?”

그러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화서는 어려서부터 허약했으니까, 대부분 방에서 지냈을 거야. 이모님이 남긴 유품을 자주 꺼내서 놀았을 거고. 똑같이 생긴 팔찌지만, 이 팔찌는 나머지 한쪽보다 반짝거리니까 화서가 준 게 맞을 거야. 그렇지?”

정철이 칭찬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한쪽은 어디서 얻었어?”

정미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또 똑같은 팔찌가 나타나다니, 오라버니가 꽤 많은 걸 알아냈나 봐.’

정철은 알아낸 정보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정미의 표정이 살짝 멍해지더니 무의식적으로 팔찌를 밀어냈다.

“그럼 내가 경왕세자비의 진료를 보는 김에, 이 팔찌를 가지고 가서 보여주라는 뜻이야?”

“응. 다른 한쪽은 분명 계속 모후 쪽에 있었을 테니까. 이모님이 가지고 있던 팔찌는 분명 화 씨가 경왕세자비에게 준 게 맞을 거야. 경왕세자비와 이모님의 관계를 고려하면, 분명 팔찌가 왜 이모님께 넘어간 건지 알고 있을 테고.”

“하지만 경왕세자비가 이모님께 팔찌를 준 거라면, 이모님은 왜 이걸 부황께 전하려 하셨을까?”

정철은 정미를 빤히 쳐다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러니 일단 경왕세자비의 태도를 떠보는 거지.”

정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 * *

다음 날, 정미는 태후의 허락을 받은 뒤 이른 아침부터 위국공부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한 씨와 함께 경왕부로 향했다.

정미는 으리으리한 경왕부의 옆문으로 조용히 들어간 후, 곧장 안뜰로 향했다.

경왕비는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경왕부의 안사람들을 관리하는 사람은 바로 세자비 증 씨였다. 그리고 증 씨가 병상에 눕자, 정미를 증 씨의 거처로 안내한 사람은 남 군주와 증 씨의 심복 하인 류 유모였다.

“세자비는 좀 어떠시니?”

정미가 용남에게 물었다.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용남은 정미에게 태자비의 예를 갖추면서도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며칠 동안 별로 좋지 않으셔요. 어제부터 정신까지 맑지 않으시고, 종종 이상한 말을 하세요.”

“무슨 말?”

용남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못 알아듣겠어요.”

정미가 용남의 팔을 토닥였다.

“걱정 마. 내가 한번 볼게.”

“큰이모님, 정미, 왔구나.”

경왕세자비의 거처 입구에서 기다리던 용흔이 한 씨에게 인사를 올린 뒤, 정미의 얼굴을 훑어봤다.

용흔의 턱엔 수염 자국이 퍼렇게 올라오고 있었고, 조금 초췌해 보이긴 했지만 이젠 완전히 청년의 모습이었다.

한 씨는 용흔의 초췌한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파 왔다.

“너무 걱정 말거라. 우리 정미가 분명 세자비를 치료해줄 테니.”

“어머니―”

정미가 한 씨를 흘끗 쳐다보고는 용흔에게 말했다.

“일단 보고 나서 얘기하지요.”

“응, 들어가자.”

병풍을 돌아 들어가자, 침상 위에 옆으로 누워있는 경왕세자비 증 씨가 보였다.

용흔이 말했다.

“어머니께서 휘장을 내려놓지 말라 하셨어.”

기척이 들려오자, 침상 위에 있던 증 씨가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초점 없는 눈으로 입구를 쳐다보며 겁에 질리더니 뒤로 숨어들었다.

“오지 마, 오지 마!”

한 씨와 정미가 서로를 쳐다봤다.

용남이 흐느꼈다.

“큰이모님, 보세요. 어머니가 갑자기 이렇게 되시더니, 점점 병세가 심해지고 있어요.”

한 씨의 마음속 증 씨는 늘 온화하고 진중한 사람이었기에, 지금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이냐?”

정미도 마침 이 질문을 하려 했기에 한 씨와 함께 용남을 쳐다봤다.

“동지 연회에서 돌아온 후부터요.”

증 씨가 점점 격분하자, 정미와 사람들은 밖으로 나왔다.

“동지 연회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용남이 용흔을 쳐다보자, 용흔이 고개를 저었다.

“그날은 계속 용남이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어.”

모두가 용남을 쳐다보자,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막연한 표정을 지었다.

한 씨가 용남의 어깨를 껴안았다.

“걱정하지 말고,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거라. 그래야 치료가 가능하지 않겠니.”

용남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날은 생각보다 일찍 황궁에 도착해서 어머니께서 저를 데리고 태후께 인사를 드리러 가셨어요. 그리고 연회에 참석하러 동락전으로 향했고요. 뭔가 특별한 점이라면, 장춘궁을 지나칠 때 어머니께서 으스스하시다며 피풍을 꽉 여미고 저를 급히 데리고 가셨어요.”

자녕궁과 장춘궁 같은 궁전은 모두 좋은 위치에 지어져 있었고, 자녕궁에서 동락전으로 가려면 이미 냉궁이 된 장춘궁을 반드시 거쳐야 했다.

용남의 말에 정미는 흠칫했다.

‘또 장춘궁이야? 완수가 동지 연회 전날 밤 장춘궁에서 죽고, 이후 경왕세자비가 장춘궁을 지나고 나서 상태가 이상해지다니. 설마…… 정말 화 귀비의 짓이란 말이야? 황궁에 귀신이 돈다는 소문은 아직 외부에 퍼져나가지 않았으니, 용남이 그 소문을 의식하고 한 말은 아닐 터.’

“마침 내가 스승님께 서금과에 대해 배우고 있어. 주로 귀신에 씐 사람을 치료하는데, 세자비를 내가 자세히 살펴보고 정말 귀신에 홀린 거라면 맞는 약을 처방해줄게. 그리고 정신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안정을 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니, 조용히 있을 수 있게 해줘.”

“알겠어. 아무도 여기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명령을 내리마.”

용흔이 말하자, 정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황궁 밖에 오래 머물 수 없으니 바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방 안의 사람들을 모두 내보낸 뒤, 정미만이 안으로 들어가자 증 씨의 심복 하인 류 유모가 말렸다.

“세손―”

용흔은 류 유모를 매섭게 노려봤고, 이에 류 유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밖에서 정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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