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352화 (351/375)

352화. 위독

“오라버니…….”

정미가 멈칫하더니, 말을 바꾸었다.

“청겸, 몇 시야?”

“직접 봐.”

밝은 햇살이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정미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가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쓰러졌다.

“왜 그래?”

정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절구에 찧인 듯한 통증을 느끼며, 화가 나 정철을 살짝 걷어차며 꾸짖었다.

“알면서 물어!”

매끄럽고 새하얀 발은 조각한 듯 아름다웠지만, 성인 여자의 손바닥만큼 작았다. 정철은 그 발을 쥐었다가 살며시 그 발을 주무르더니 억지로 발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미미, 환안과 화미를 불러올게.”

정철은 차마 휘장 안의 정미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급히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환안과 화미가 안으로 들어와 정미의 환복을 도왔다.

“아가씨, 왜 이렇게 다치셨어요!”

환안이 정미의 몸 곳곳에 피어난 복사꽃 같은 자국을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정미는 뺨을 붉히며 짜증냈다.

“또 쓸데없는 말을 했다간, 오늘 밥을 주지 않을 거야!”

환안은 입을 막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화미가 환안을 슬쩍 밀쳤다.

“됐어. 너는 마마가 드실 걸 준비하러 가. 여긴 내가 맡을 테니.”

환안이 나가자, 화미는 소매 속에서 작은 도자기함을 꺼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태자 전하께서 소인께 주신 겁니다. 마마께 약을 발라드리라 하셨어요.”

정미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화미는 이를 악물고 정미의 속곳을 벗기려 손을 뻗었다.

정미가 놀란 표정으로 화미의 손을 꽉 붙잡자, 화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태자 전하께서, 마마께서 약을 바르지 않으시면 걷…… 걷지도 못할 거라 하셨어요…….”

정미는 창피한 마음에 숨을 깊게 들이켰다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포자기하며 말했다.

“그럼 빨리 발라. 시간이 많지 않으니.”

이후 환안과 화미의 부축을 받아 나가자, 약의 효과로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걸을 때는 여전히 은은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황제, 황후와 태후에게 인사를 올린 뒤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 왔다.

정철은 후회스럽고 속상한 마음이 들어 황제, 황후, 그리고 태후와 함께 식사를 할 땐 계속 몰래 정미의 손을 잡아주었다.

“너희 둘의 정다운 모습을 보니, 애가의 마음이 놓이는구나.”

태후는 기쁜 얼굴로 두 사람에게서 눈을 떼질 못했다.

“미야, 앞으로 태자를 네게 맡기마. 잘 부탁한다.”

“걱정마세요, 황조모님. 태자 전하를 잘 모시겠습니다.”

정미는 겉으론 공손한 표정이었지만, 몰래 손을 빼내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 어젯밤 저를 잔뜩 괴롭힌 물건을 붙잡았다.

정철은 순간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살짝 몸을 비틀어 벗어나려 했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발버둥 치기엔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몰라도 미미의 이런 대담한 행동이 궁인들에게 알려진다면 수없이 많은 소문에 휩싸이게 되겠지.’

결국, 정철은 오히려 정미 쪽으로 몸을 더 붙여 몸으로 정미의 행동을 가려주었다.

정미는 눈을 내리깔고 뿌듯한 듯 웃었다.

‘역시, 오라버니는 늘 날 돕는다니까. 나를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만들었으니, 그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주지!’

“경아.”

늘 공손하고 영민한 손자가 태후의 부름에 반응이 없자, 태후는 다시 한번 태자를 불렀다.

“경아?”

정철이 정신을 차리고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구나?”

정철이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아침에 정원에서 창을 연습했는데, 찬바람을 쐬어서 그런가봅니다.”

“그럼 태자비와 일찍 돌아가 쉬거라. 내일 모레는 사당에 참배하러 가야 하니 몸관리를 잘 해야 한다.”

“예.”

정철이 일어나 태후와 황제, 황후에게 인사를 올린 뒤, 고개를 돌려 정미에게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태자비, 함께 궁으로 돌아가지.”

정미는 순간 움찔하며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고, 바로 고분고분해졌다.

* * *

사흘째 되는 날 친정을 방문하는 평범한 혼례와는 달리, 태자 부부는 대혼 후 엿새에 위국공부를 방문했다.

마침 날씨도 맑았고 위국공부의 대문은 활짝 열려있었으며, 노위국공 등 집안 어른들은 직접 돌계단 위에서 태자 부부를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태자의 신분을 표시하는 마차가 아침햇살을 맞으며 천천히 다가오자, 기다리던 사람들은 떠들썩해졌다,

마차가 멈추고 내시 두 명이 한 걸음 다가가더니, 한 사람은 웅크려 앉아 발판이 되었고, 한 사람은 문발을 걷어 태자의 하차를 도왔다.

마차에서 먼저 내린 정철은 손을 뻗어 정미를 부축하여 내려주었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맞잡고 대문으로 걸어갔다.

어떤 여종이 작게 귓속말했다.

“봐봐, 태자 전하의 풍채도 빛이 나고, 태자비마마의 용모는 경국지색이나 다름없네.”

다른 여종이 웃었다.

“태자 전하와 태자비마마께선 자주 국공부에 오셨던 분들이신데, 이제야 그걸 알아챘다고?”

“지금은 좀 다른걸.”

먼저 말했던 여종이 입을 삐죽이자, 관리인 하녀가 작게 경고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거라. 귀인들께서 오고 계시지 않느냐.”

정미와 정철이 가까이 다가오자, 노위국공과 다른 사람들이 절을 올렸다.

“태자 전하, 태자비마마를 뵙습니다!”

정철이 급히 노위국공을 일으키며 웃었다.

“외조부님, 그러지 마세요. 제게 오늘 같은 날이 온 것도 모두 외조부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노위국공이 고개를 들어, 제가 직접 가르쳐온 청년을 쳐다봤다.

“그래, 그래. 우선 들어가서 대화를 나누지요.”

국공부의 문이 천천히 닫혔고, 이른 아침부터 이 모습을 구경하러 온 백성들도 각자 흩어졌다.

한 씨가 정미를 따로 데리고 가 안부를 물었다.

“적응은 잘했니?”

“네, 편하게 지내고 있어요.”

‘매일 아침 온몸이 쑤신 것 빼곤.’

정미는 속으로 한 마디 덧붙이며 조용히 귀가 달아올랐다.

한 씨는 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치 고결한 모란꽃이 햇살과 이슬을 머금다가 첫 꽃봉오리를 피운 듯, 예전보다 눈부신 모습을 보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점심 연회가 시작되자, 정미가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예상대로 한지는 보이지 않았으나, 화서의 불참은 뜻밖이라 의아해하며 물었다.

“화서는요? 아직 마을로 갈 때가 아닐 텐데요?”

순간 정적이 흐르더니, 단 노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화서는 몸이 약하지 않으냐. 날씨가 쌀쌀해서 방에서 쉬게 했단다.”

식사를 마친 뒤, 정철이 슬쩍 정미에게 말했다.

“화서 얘기를 할 때 어르신들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어.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어머니께 여쭤봐.”

정미는 고개를 끄덕인 뒤, 기회를 틈타 한 씨에게 물었다.

“어머니, 화서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

한 씨는 멈칫하더니 얼버무리며 말했다.

“화서가 잘 지내다가 갑자기…….”

정미가 정색하며 말했다.

“어머니, 제게 숨길수록 더 불안해져요. 궁으로 돌아간 뒤 계속 걱정할 거라고요. 그러니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한 씨가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네 외조모께서 네게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단다. 기쁜 나날에, 이런 일을 알면 기분이 좋지 않으니……. 화서는…… 네 대혼날 밤 갑자기 위독해졌다. 요 며칠 동안 네 사형인 북명진인께서 와주셨는데도 여전히 호전되지 않는구나―”

정미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떡 일어나더니 뒷걸음질 치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 없어요. 분명 계속 배원부의 부수를 복용하게 했는데……. 화서를 보러 가볼게요!”

정미는 곧장 화서의 거처로 달려갔다.

화서는 어려서부터 허약하고 자주 아팠기에, 위국공부에서 가장 고즈넉한 곳에 머무르곤 했다. 작고 조용한 거처엔 다른 곳엔 가득한 경사스러운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미는 저도 모르게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갔고,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침상 위에 누워있는 화서가 눈에 들어오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화서―”

겨우 열다섯 살 된 소년에게는 풋풋한 느낌이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그 연약한 모습은 전혀 열다섯 살 같아 보이지 않았다.

화서가 천천히 눈을 뜨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가볍게 끔뻑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왔어?”

“바보야, 오늘은 내가 친정을 방문하는 날이잖아. 오라버니가 외조모님과 다른 어르신들의 표정이 이상한 걸 알아채지 않았다면, 네가 아픈 줄도 몰랐을 거라고!”

정미의 눈가가 시큰해졌다.

“아, 그렇지. 혼례를 치렀지. 벌써 친정에 오는 날이구나.”

화서가 다정한 눈빛으로 정미를 쳐다봤다. 늘 정미와 실랑이하던 화서에게는 이제 그럴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 보였다.

정미는 마음이 더욱 아파 왔다.

“움직이지 마. 내가 한번 살펴볼게. 왜 갑자기 위독해졌지?”

화서가 눈을 피하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보지 마. 네가 대혼을 치르기 전 내게 제조해준 배원부 말인데, 내가 실수로 엎어버렸어. 그래서 네가 바쁜 게 끝나면 다시 말해보려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

“그럼 그때 바로 말했어야지! 말했잖아. 부수는 반드시 제때 복용해야 한다고.”

정미가 발을 동동 굴렀다.

‘아혜가 경고했었어. 배원부는 복용하기 시작하면 중간에 중단해선 안 된다고.’

화서가 입을 꾹 다물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신혼이었잖아. 좋은 날을 망치고 싶지 않았어.”

정미가 입술을 움찔거리더니, 더 이상 탓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겠어. 우선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생각해보고.”

화서가 힘없이 웃었다.

“괜찮아. 나도 내 몸 상태가 어떤지 직감으로 느껴지거든.”

그러고는 정미를 빤히 쳐다보며 차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정미, 미안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화서가 손을 뻗어 침상 머리맡을 가리켰다.

“가장 아래 서랍 안에 홍목으로 만든 함이 있어. 그것 좀 꺼내줄래?”

정미는 서랍을 열어 안에서 손바닥만 한 함을 꺼냈다.

“열어봐.”

정미가 함을 열어보자, 붉은 비단 위에 놓인 청록색 팔찌가 보였다.

꽤 신기하게 생긴 팔찌였다. 머리와 꼬리가 이어진 푸른 뱀 모양이었고, 뱀의 눈은 쌀알만 한 산호구슬이 박혀있어, 슬쩍 보면 소름이 돋을 것만 같은 모양이었다.

화서가 힘겹게 팔찌를 꺼내 웃으며 말했다.

“외조모님께서 말씀해주셨는데, 이건 어머니께서 내게 남겨주신 물건이니 잘 보관하라고 하셨어. 그래서 난 늘 미래의 내 아내에게 이걸 선물할 생각이었고. 근데 그럴 수 없을 것 같네. 정미, 그러니까 그냥 네게 줄게.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보관만 해줘도 좋아. 난 그동안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이루지 못하며 살아왔잖아. 그러니 팔찌를 주는 일만큼은 이루고 싶어.”

“화서, 그런 말 하지 마. 걱정마, 내가 반드시 널 치료해줄 테니까. 분명 네 미래의 아내에게 이 팔찌를 선물할 수 있을 거야.”

화서가 애원했다.

“정미, 네가 받아줘. 응?”

그러고는 애써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네가 내 병을 치료해주면, 그때 다시 내게 돌려줘도 되니까.”

“그럼 내가 우선 보관하고 있을게.”

기대 가득한 소년의 눈빛에 정미는 잠시 망설이더니 팔찌를 손목에 끼고 슬쩍 들어 보이며 웃었다.

“내가 보기엔 이건 그렇게 못생긴 팔찌도 아냐.”

화서는 한참 동안 정미의 뽀얀 손목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철 형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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