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348화 (347/375)

348화. 유왕을 찾다

정수문은 거처로 돌아오자마자 동 이낭의 유약한 모습을 보게 되니, 순간 몹시 거슬려져 손을 뻗어 그녀를 밀치고 꾸짖었다.

“다 너와 네 딸이 재수 없게 수시로 울어댄 탓에 이런 불운이 닥친 게다!”

동 이낭은 벽을 짚고 입술을 떨었다. 차마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어서 어머니를 모시러 가지 않고!”

정수문이 고함을 질렀다.

회인백부의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하인들의 수는 급격히 줄게 되었고, 많은 일들은 주인들이 직접 처리해야 했다.

동 이낭은 입술을 꾹 깨문 채 ‘예’하고 대답하고는 조용히 염송당으로 향했다.

* * *

수도의 피바람은 위국공부에까지 닿진 않았다.

집안사람들은 태자와 정미의 혼사로 바빴으며, 하인들의 걸음걸이에서조차 기쁜 기색이 드러났다.

그러나 한지는 이 떠들썩함과 철저히 소외된 느낌을 받았다.

적막한 가을밤, 한지는 정자에 홀로 앉아 차가운 술을 몇 모금 들이키고는 서과원으로 향했다.

반반이 기뻐하며 맞이했다.

“세자, 오셨군요.”

“요즘 몸은 어떻더냐?”

한지가 반반의 볼록한 배를 쳐다보며 묻자, 반반이 배를 어루만지며 수줍어했다.

“세자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기가 발을 차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

한지가 반반의 배에 손을 얹었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잡담을 나누었다. 잠시 후 반반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드러나자, 한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잘 쉬고 있거라.”

“세자―”

반반이 머뭇거렸다.

“음?”

“소첩은 지금 나리를 모실 수 없으니, 농금을 찾아가시지요.”

한지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건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네 몸이나 잘 보살피거라.”

서과원에서 나온 한지는 한숨을 쉬고 본채가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정요를 찾아가지 않은 지 한참 되었지만, 한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여자는 평범한 여인과 달랐다.

넋이 나갈 것만 같은 느낌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고, 마치 중독이라도 된 듯 날이 가면 갈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한지에게는 그 여인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한지는 그런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매일 밤 서재의 딱딱한 평상 위에 누워있는 시간은 일각이 삼추처럼 느껴졌다.

술기운 때문인지, 한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본채로 향했다.

본채로 들어가자마자, 한지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시종들이 왜 벌써 쉬러 갔지?’

입구에 다다르자, 한지는 무의식적으로 살금살금 걷게 되었다.

동차간엔 장명등이 켜져 있었지만, 당직 중인 시종은 보이지 않았다.

한지는 점점 불길한 예감이 들어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안방에서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한지의 귀에는 천둥처럼 크게 들려와 순간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소리를 듣고 있었을까, 한지는 정신을 차리고 촛대를 든 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성인 남녀라면 모두 알 듯한 소리와 더불어 질척거리는 소리마저 들려왔다.

“나와 한지 중, 누가 더 만족스럽지?”

사내의 잠기고 갈라진 목소리는 이미 원래의 음색을 잃은 상태였기에, 한지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챌 수 없었다. 분노만이 불길처럼 불타올랐다.

“당연히…… 세자는 다친 적이 있으니 아무래도……. 응, 응…….”

여인은 중요한 순간에 이른 듯 갑자기 더 가쁘게 신음하기 시작했다.

한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 뒤, 정요 위에 엎드려있는 사내를 향해 촛대를 힘껏 내리쳤다.

한지가 갑작스럽게 나타나자, 정요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비명을 질렀다.

정요 위에 엎드린 유왕은 정요가 절정에 이른 것이라 오해하고는 오히려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 촛대가 유왕의 머리를 세게 내리친 것이다.

유왕은 윽 하는 소리와 함께 정요 위로 쓰러졌다.

한지는 술기운에 울화가 치밀어 올라, 이미 피로 얼룩진 촛대를 다시 정요를 향해 휘둘렀다.

정요는 저를 깔아버린 유왕을 얼른 밀친 뒤 급히 몸을 돌려 피했고, 촛대는 침상에 맞았다.

“세자―”

정요는 허둥지둥 옷을 주워 걸치며 침상 구석으로 뒷걸음질 쳤다.

한지가 시뻘게진 눈으로 말했다.

“이 천한 것, 내가 정말 눈이 멀었었구나!”

한지가 다시 촛대를 휘두르자, 정요는 옆으로 피하며 베개 밑에 숨겨둔 교도(*가위의 옛말)를 꺼내 한지를 찔렀다.

한지는 아랫배에 통증을 느꼈고, 손에 들었던 촛대를 놓쳤다. 촛대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네, 네가 감히…….”

아랫배를 감싼 한지의 손이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정요는 교도를 꽉 쥔 채 한지를 빤히 쳐다보며 침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더니, 곧바로 밖으로 도망쳤다.

“꺄악―”

문밖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서쪽에 있는 작은 방으로 쫓겨났던 시종이 기척을 듣고 촛불을 들고 오던 중, 흐트러진 차림새에 피범벅이 된 교도를 든 정요를 보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른 것이다.

정요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시종을 향해 교도를 휘둘렀다.

시종은 곧장 뒤돌아서 도망치며 크게 소리 질렀다.

“어서 다들 나와 보세요! 큰며느님이 사람을 죽이려 합니다―”

여인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가을밤의 정적을 깨트리자 곳곳에 등불이 켜졌고, 사람들은 세자의 거처로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몇몇 시종들이 동쪽 안방으로 물밀듯 들어왔다가, 방 안의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혼비백산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큰일 났다, 세자께서 큰며느님께 살해당하셨어!”

“잠깐, 저기 다른 사내도 있잖아!”

“어, 어서 주인님들께 알려야 해!”

시종들은 급히 한지를 지혈하며 유왕의 허리끈으로 상처를 싸맸고, 몇 명은 집안 어른들에게 보고를 올리러 갔다.

일주향 후, 주인들은 모두 한지의 거처로 모였다.

“세자에게 무슨 일이 났단 말이냐?”

몸이 허약한 도 씨는 일찍 잠들었기에, 세자의 거처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음에도 다른 사람과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다.

관리인 파자가 긴장하며 대답했다.

“부인, 큰며느님께서 세자의 아랫배를 찔렀습니다―”

“세상에, 그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도 씨가 시종을 붙잡으며 비틀거렸다.

“우선 진정하고 자초지종을 들어보거라!”

단 노부인은 겁에 질린 표정의 하인들을 쳐다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누가 가장 먼저 세자를 발견했느냐. 자세한 상황을 말해 보거라!”

한 여종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소인이 가장 먼저 발견했습니다. 서쪽 작은 방에 있다가, 갑자기 여기서 큰 소리가 들려 나와 봤는데, 큰며느님이 교도를 들고 달려 나오시더니 저를 보자마자 죽이려 하셨습니다. 저를 죽여 입막음을 하려 하셨는지, 계속 소인을 쫓아왔는데 다행히 소인이 크게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불러내어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럼 그 애는 어디 갔는가?”

하인들은 서로를 쳐다만 보자, 단 노부인은 대로했다.

“이 쓸모없는 것들. 이 많은 사람들 중 아무도 그 애를 주의하지 않았단 말이냐?”

관리인 파자가 머뭇거리며 설명했다.

“노부인, 방금은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세자의 상처를 지혈하고, 주인님들께 보고를 올리러 가고, 의원도 모셔야 하고, 또……, 또 큰며느님의 간부(間夫)를 묶어놨습니다!”

“뭐라?”

단 노부인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특히 도 씨는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똑바로 말하거라. 간부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도 씨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엄하게 물었다.

“소인들이 동쪽 작은 방에 가둬놨습니다.”

“어서 데려오지 않고!”

도 씨는 한계치에 다다른 듯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기절한 사내가 하인들의 손에 끌려 나왔다.

“얼굴을 드러내어라.”

단 노부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명령했다. 소매 속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한 파자가 다가가 사내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넘겼다.

사내의 얼굴에 있는 핏자국 때문인지, 이목구비가 또렷이 보이지 않았다.

줄곧 조용히 지켜만 보던 노위국공이 벌떡 일어나며 엄하게 말했다.

“노부인과 국공 부인 외에, 모두 나가거라. 그리고 집안의 호위들을 불러 모아라. 날이 밝기 전에 맹 씨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방 안이 순식간에 텅 비자, 단 노부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노위국공을 쳐다봤다.

“나리?”

노위국공은 어두운 표정을 한 채, 기절한 사내 곁으로 다가가 몸을 숙여 그의 콧김을 확인했다.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하고는 발을 동동 굴리며 말했다.

“이자는 유왕이오!”

이에 도 씨는 신음을 내며 쓰러졌다.

단 노부인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가까스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유왕이 어찌 한지의 거처에 있단 말입니까?”

노위국공이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유왕을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여봐라, 이자를 서쪽 방으로 데려가 의원을 불러 치료해주거라. 반드시 잘 지켜봐야 한다.”

사람들이 유왕을 데리고 나가자, 노위국공은 그제야 단 노부인에게 말했다.

“유왕이 요 며칠간 계속 여기 숨어있었던 모양이오. 아마도―”

노위국공이 한지가 있는 방을 한 번 쳐다보더니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맹 씨와 유왕은 예전부터 밀접한 관계였던 것 같소. 그래서 유왕이 여기 숨어들었던 것이고.”

“그 애는 도대체……!”

단 노부인은 화가 나 이를 갈았고, 기절한 도 씨를 보자 갑자기 몰려오는 피로를 느꼈다.

노위국공이 단 노부인을 달래며 말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화내봤자 득 될 것 없소. 부인은 유왕을 잘 보고 계시오. 의원에게 한지를 잘 봐 달라 명하고. 최대한 빨리 맹 씨를 찾아야 궁으로 가 이 일을 보고할 수 있소.”

단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나리. 집안일은 제게 맡기시면 됩니다.”

그렇게 밤은 더 깊어져 갔지만, 위국공부는 여전히 등불이 훤했다.

“아버지,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부모가 갑자기 세자의 거처로 향하자, 한평은 계속 입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바였다. 그는 두 사람이 나오자마자 나서서는 물었다.

“어서 돌아가거라. 네가 몰라도 되는 일이다.”

“아버지, 저도 이미 혼례까지 치른 성인입니다.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니,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려야 마땅하지요.”

조 씨가 간결하게 말했다.

“네 큰형님에게 일이 생겼다. 네 큰형수가 간부와 침상에서 뒹구는 걸 한지가 발견했고, 네 큰형수가 교도로 한지를 찌른 뒤 달아나 지금 여기저기서 그 애를 찾고 있단다! 평아, 어서 네 거처로 돌아가거라. 네 아내도 이제 홑몸이 아니니, 이런 때에 곁에 있어주지 않으면 무서워할 게다.”

한평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뭔가 떠오른 듯 다급히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만약 큰형수님이 목숨까지 내던질 생각으로 달아났다면, 형무원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찌 형무원으로 간단 말이냐?”

“큰형수님은 늘 정미를 미워했으니까요.”

한평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곧장 형무원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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