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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337화 (336/375)

337화. 친자 확인

침상 위에 조용히 누워있던 정철의 속눈썹이 갑자기 움찔거렸다.

태후가 놀라 멈칫했을 때, 정철이 천천히 눈을 떴다.

“아가, 일어났느냐?”

“누구―”

정철이 급히 눈을 돌려 창경제를 쳐다보더니 애써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소신, 황제 폐하와…… 태후를 뵙습니다.”

“가만히 있거라!”

태후가 정철을 눌렀다.

“아직 몸이 허약하니, 그런 예는 갖추지 않아도 된다.”

정철이 창경제를 바라보자, 창경제가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후의 말씀이 맞다.”

“허나 황상과 태후께서 동시에 소신을 보러 와주시다니, 도무지 황공하여―”

이런 상황에 이르자, 태후는 더 이상 질질 끌고 싶지 않아 정철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가, 네 친부모가 누군지 아느냐? 황상과 황후란다!”

“예……?”

정철이 창경제를 빤히 쳐다보다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뭔가 착오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소신은 강가에서 양부모에게 발견되어 길러졌는데, 어찌―”

“그래, 22년 전 황후의 아들이 간비(奸妃)에 의해 관저궁에서 납치당해 강가에 버려졌단다.”

태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정철을 바라봤다.

“아가, 이제 애가를 조모님이라 불러야겠구나.”

정철이 눈을 내리깔았다.

“소신이 어찌 감히요. 그저 우연일지도 모르는 일입―”

창경제가 정철의 말을 끊었다.

“국사께서 네 부상을 치료할 때, 짐과 황후의 정혈을 사용하셨다. 넌 짐과 황후의 아들이 틀림없어. 그저 태묘 앞에서 친자 확인을 거쳐 세상에 알리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정철이 창경제를 조용히 쳐다봤다.

창경제는 어색한 듯 헛기침했다.

“아직도 믿지 않는 것이냐?”

‘이상한데, 적황자의 신분이 끌리지 않는 건가? 보통 사람이라면 울고 불며 당장 부황이라 불러야 정상 아닌가?’

정철이 정색했다.

“확실히 믿기 어렵긴 합니다. 감히 적황자에게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기다니요.”

“쿨럭쿨럭.”

창경제가 갑자기 기침을 해댔다.

태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말 한번 잘했다. 일국의 황제가 간비에게 속아 넘어가 적황자를 잃어버리다니. 창피하기도 하지! 정말, 내 손자는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구나.’

창경제가 도움을 구하는 눈빛으로 태후를 쳐다봤다.

태후는 본체만체하며 가볍게 헛기침하고 물었다.

“철아, 몸은 좀 어떠하더냐?”

“태후마마의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태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됐다. 푹 쉬고 있거라. 이틀 뒤에 다시 보러 오마.”

태후는 밖으로 나가다가 입구에서 다시 뒤돌아봤다.

“황상, 애가와 함께 나갑시다.”

창경제는 어두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태후와 헤어질 때까지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태후는 통쾌한 기분으로 자녕궁으로 돌아갔다.

* * *

이틀 뒤, 태후가 태의를 불러 정철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정철이 이미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회복했다는 걸 전해 듣고는 내시에게 정철을 불러오라 명했다.

정철은 내시를 따라 궁을 걷다가, 자녕궁 입구에 다다르자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어 잠시 멈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결국 올 게 왔구나. 내 어머니를 직접 볼 수 있게 되었어.’

“태후마마를 뵙습니다.”

“어서 애가에게 가까이 와보려무나.”

태후가 정철을 잡아당기며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빙긋 웃었다.

“혈색이 많이 좋아졌구나. 자, 애가와 함께 식사를 들자꾸나. 죽과 간단한 반찬이니 위에 부담이 가지 않을 게다.”

정철은 서두르지 않고 태후와 함께 식사와 차를 들며 간간이 물어오는 질문에 성실히 대답했다.

태후는 기뻐하며 손을 씻은 뒤 정철을 빤히 쳐다봤다.

“철아, 애가가 네게 보여줄 사람이 있다.”

* * *

풍 황후는 창가의 낮은 평상 위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눈 부신 햇살이 창문 너머로 비춰 들어와 황후의 얼굴은 조금 투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옆에 있던 궁녀가 황후에게 천천히 부채질을 해주어 황후의 늘어진 머리카락이 조금씩 흩날렸다.

아주 평화롭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정철은 차마 그 평온함을 깨트릴 수 없어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

“진진, 고모가 누굴 데려왔는지 보려무나.”

황후가 뒤돌아보더니, 태후 옆에 서 있는 정철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살펴보다가 기뻐하며 말했다.

“셋째 오라버니, 어쩐 일이세요?”

태후의 입꼬리가 굳었다.

‘철이를 머나먼 연주에 있는 셋째로 착각하고 있구나.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생각해보니 철이가 셋째의 젊은 시절을 많이 닮았어.’

“진진, 셋째 오라버니가 아니라 네 아이지 않느냐.”

태후가 한숨을 쉬었다.

“아이요?”

황후가 눈알을 굴렸다.

태후는 눈가가 시려왔다.

“늘 빼앗긴 아이를 찾지 않았느냐? 그 아이가 아직 살아있었다. 바로 네 눈앞에 있지 않으냐!”

태후가 말하며 정철을 살짝 밀었다.

황후는 고개를 갸웃대며 정철을 살펴보다가 배시시 웃었다.

“고모님, 놀리지 마세요. 저와 태자 오라버니는 아직 혼인하지도 않았는걸요. 어떻게 아이가 있을 수 있겠어요. 게다가 이 청년은 태자 오라버니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걸요―”

정철은 무릎을 꿇고 떨리는 목소리로 황후를 불렀다.

“어머니―”

황후가 흠칫하더니 태후를 쳐다봤다.

정철은 이마를 바닥에 쿵쿵 쳤다.

‘이분이 내 어머니셨구나. 냉궁에서 홀로 나를 낳았다가, 나를 빼앗겨 이십 년 넘게 넋을 잃고 계신 분이.’

정철의 원망과 망설임은 황후를 보자마자 눈 녹듯 사라졌다.

“어머니, 이 불효자가 어머니를 고생시켰습니다.”

정철이 고개를 들어 황후를 쳐다봤다.

황후는 온몸이 딱딱하게 굳은 채 정철을 쳐다봤다.

한참 뒤, 황후가 천천히 손을 뻗어 정철의 눈가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내 아이라고? 왜, 왜 이렇게 컸지?”

황후가 멍한 눈빛으로 두 손을 뻗어 손짓했다.

“빼앗길 때만 해도 겨우 이 정도 크기였는데. 젖이 나오지 않아 미음을 달여 먹였지. 그 어린아이가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정철이 손을 뻗어 황후의 가냘픈 손을 붙잡았다.

“어머니, 벌써 20년도 더 지났으니 아들이 이리 자랐지요. 보세요, 제가 어머니와 얼마나 닮았는지.”

황후가 천천히 정철의 이목구비를 쓰다듬으며 중얼댔다.

“나를 닮긴 했어. 내 눈이 셋째 오라버니보다 더 예쁘거든…….”

이때, 황후가 멈칫하더니 갑자기 통곡하기 시작했다.

“내 아들이 아직 살아있었어. 아직 살아있었다고!”

아픈 기억이 떠오르자, 광증이 또다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야. 내 아들은 이렇게나 작았다고. 분명 나를 놀리는 거지! 다 나가! 나가!”

황후가 아무렇게나 손을 휘저었다. 정철의 이마에 손톱이 스쳤고, 곧 그곳에 피가 맺혔다.

태후가 깜짝 놀라 급히 말렸다.

“진진!”

정철은 꿈쩍 않고 황후의 광증을 받아냈다. 그는 그저 살포시 그녀의 다리를 안으며 끊임없이 ‘어머니’라 불렀다.

그러자 황후는 예전처럼 궁녀들이 몇 명이나 달라붙어 약을 먹일 필요도 없이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태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궁녀에게 명했다.

“어서 황후의 몸을 닦아주고, 쉬게 해드리거라.”

태후의 거처로 돌아온 뒤, 태후는 정철의 이마에 남은 혈흔을 보고 가슴 아파했다.

“철아, 힘들었지.”

정철이 가볍게 웃었다.

“저는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황후와 태후마마께서…….”

“철아, 아직도 애가를 조모님이라 부르지 않을 셈이냐?”

태후가 나무라듯 정철을 흘끗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나도 안다. 네가 그간 얼마나 고생하며 자랐을지. 네 아비에게 설움이 있는 것도 당연하지. 하지만 황태자의 신분을 피할 순 없다. 황태자의 신분으로 황가와 거리를 두어봤자 네게도 좋을 게 없고. 그간 고생한 네 어미를 봐서라도 정신 차리고 네 몫을 지켜내야 한다!”

정철이 멈칫하더니 엄숙하게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 * *

며칠 뒤, 제사에 적합한 맑은 날씨의 길일이었다.

마침 관료들의 휴일이었지만, 내각의 학사(學士)들과 육부의 상서 등 중신들은 날이 밝기도 전에 궁으로 불려왔다.

대신들은 어리둥절한 채 궁으로 들어왔고, 황궁에 불려온 사람이 신하뿐만 아니라 황가의 친척까지 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장 재상, 오늘 황상께서 어쩐 일로 저희를 부르셨는지 아시오?”

장 재상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오.”

조정의 중대한 일은 모두 중신들과 먼저 1차 상의를 마치기 마련이었기에, 이번 일은 조금의 갈피도 잡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주홍희가 안으로 들어왔다.

중신들이 그를 둘러싸고 이러쿵저러쿵 질문해댔으나, 주홍희는 아무 말 없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다들 태묘로 이동해주십시오.”

‘태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불안한 마음을 안고 주홍희를 따라 태묘로 향했다. 태묘에 도착하자, 예복을 입은 종정시경이 엄숙한 표정으로 태묘 앞의 옥계단 위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날이 점점 밝아왔고, 햇살이 태묘 앞에 높이 솟은 제왕석을 비추자, 내시의 외침에 따라 창경제가 천천히 걸어왔다.

“황제 폐하를 납시오―”

모두가 절을 올렸다.

창경제가 손을 들었다.

“다들 일어나시오. 오늘 짐이 그대들을 불러 모은 건, 중요한 일을 선포하기 위함이오. 22년 전, 황후가 관저궁에서 적황자를 출산했으나 간악한 자에 의해 적황자를 빼앗기게 되었소…….”

엄숙하고 경건한 태묘에 황제의 위엄이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옥계단 밑에 있던 사람들은 곧바로 수군대기 시작했다.

창경제가 헛기침을 하자, 즉시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다행히도 조사 끝에 당시 잃어버린 적황자를 마침내 찾아내었소!”

창경제가 재차 충격적인 소식을 알리자, 사람들은 또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창경제는 무표정한 채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다가 소란이 잦아들 때쯤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적황자는 바로 정철이오!”

창경제가 주홍희를 쳐다보자, 주홍희는 크게 외쳤다.

“정철은 앞으로 나오시오―”

사람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금테로 수놓아진 현포(玄袍)를 입은 청년이 한 걸음씩 걸어와 옥계단 아래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창경제가 손짓했다.

“황자, 올라오거라.”

이 말에 대신들은 그제야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황실의 혈통에 그리 쉽게 올리셔선 안 됩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창경제가 중신들을 훑어보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국사께서 이미 증명해주셨소.”

‘국사?’

중신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점점 목소리를 줄여갔다.

“그대들도 알고 있듯이, 정철은 이번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고 전투 중 중상을 당했으나, 국사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소. 국사께서는 약인으로 짐과 황후의 정혈이 필요하다 하셨지.

이 일만으로 정철은 의심의 여지도 없는 적황자가 분명하나, 그대들의 말대로 황실의 혈통은 그리 쉽게 올릴 수 없다. 정철이 명실상부한 적황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짐은 오늘 태묘에서 종정시경에게 친자 확인을 받을 생각이오.”

창경제가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봤다.

“그대들이 이번 일의 증인이 되어주시오.”

“망극하옵니다.”

중신들은 각자의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은 지 아주 오래되었으나, 그럼에도 오늘 이 자리에 불려온 노위국공은 꿈을 꾸는 듯한 기분에 조용히 식은땀을 닦았다.

‘내 딸이 십여 년간 키운 양사자가, 황상의 아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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