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336화 (335/375)

336화. 자객

“국사의 말씀은, 제 피를 추출해 남안왕의 피와 비교하여 분석한 뒤, 무슨 문제인지 검사하시겠단 의미입니까?”

정철이 청령진인의 설명을 들은 뒤 묻자, 청령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자네와 남안왕의 상황은 둘 다 아주 이상해. 독인 듯 아닌 듯하고, 병인 듯 아닌 듯하지. 검사를 반드시 해봐야겠어.”

정철은 눈을 내리깔고 한참 침묵하다 물었다.

“어떤 가능성이 가장 큽니까?”

청령진인이 망설이며 말했다.

“추측하는 바는 있지만 확신할 순 없네. 아마 어떤 주술에 걸린 것 같은데…….”

“주술이요?”

정철이 깜짝 놀랐다.

“남안왕과 만남이 꽤 잦지는 않았나?”

정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빈도는 두 사람의 증상이 선천적인 것인지, 아니면 동시에 누군가의 주술에 걸린 것인지 밝혀보려고 하네.”

“그럼…… 제 몸엔 어떤 영향이 있는 겁니까?”

“그건 더 알아내 봐야 하네.”

정철이 공수하며 말했다.

“이 일은 미미에게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청령진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유히 떠나갔다.

정철은 침상 위에 홀로 앉아 청령진인의 말을 곱씹었다.

‘주술? 내가 각혈을 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까?’

발소리가 들리자, 정철이 정신을 차렸다.

“누구냐?”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 대인, 약 드실 시간입니다.”

“들어오거라.”

문이 열리고, 사동이 쟁반을 들고 들어오며 한 손으로 문을 닫았다. 쟁반 위에는 청화자기로 된 그릇이 있었다. 정철이 하루에 세 번 먹어야 하는 약이었다.

사동이 다가와 쟁반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그릇을 정철 앞으로 바쳤다.

“정 대인, 드십시오.”

정철이 사동을 흘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며칠 동안 약을 가져오던 사동은 다른 자였는데.”

“아, 그 아이는 오늘 몸이 좋지 않아 쉬고 있습니다. 정 대인께 옮기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요.”

정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릇을 건네받았다.

그런데 이때, 사동이 손을 휙 뒤집더니 비수를 들고 정철을 향해 찔렀다.

정철은 이미 예상한 듯 몸을 옆으로 비키며 사동을 발로 걷어찼다. 하지만 부상을 입은 정철은 그리 큰 힘을 내지 못했고, 사동은 그저 비틀거리기만 했다. 사동이 다시 비수를 들고 정철을 향해 휘둘렀다.

자객은 지척에 있었기에, 정철은 피하고 싶어도 피할 곳이 없었다. 두 손을 뻗어 비수를 쥐어 막아볼 뿐이었다. 그러자 손틈 사이로 피가 뚝뚝 흘러나왔다.

“누가 보냈지?”

사동이 험한 표정으로 외쳤다.

“나는 명탁 왕자의 복수를 하러 왔다. 죽어라!”

“서강인인가?”

정철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사동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비수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이불을 붉게 적셨다.

정철은 힘에 부쳐 순간 손에 힘을 느슨히 풀자 비수가 곧바로 정철의 어깨를 찔렀다.

사동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정철은 그 틈을 타 온 힘을 쥐어짜내 사동의 목을 내리쳤다.

사동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더니, 곧 바닥에 나뒹굴었다.

정철은 그제야 크게 외쳤다.

“여봐라―”

마침 조 원사가 내시를 데리고 정철을 찾아오던 참이었기에, 두 사람은 복도에서 정철의 목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라 미친 듯이 달려 태의서의 호위들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방 안의 상황을 본 조 원사는 깜짝 놀라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질렀다.

“자객이다!”

자객은 눈앞이 캄캄하고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조 원사의 목소리를 듣고 움찔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조 원사는 탁자 위에 놓인 화병으로 자객을 내리쳐버렸다.

자객은 비틀거리더니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조 원사는 지나치게 놀란 나머지, 이미 반밖에 남지 않은 화병을 들고 계속해서 자객을 내리쳤다.

정철이 침상을 짚고 힘겹게 말했다.

“숨은 붙여놔야 합니다…….”

몰려든 호위들이 급히 조 원사를 떼어내었고, 그중 하나가 자객을 살펴보더니 보고했다.

“이미 독을 먹고 자살했습니다.”

호위가 쓰러진 자객을 뒤집어보자, 이미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입가에 검붉은 피를 흘리는 자객의 모습이 보였다.

정철이 눈살을 찌푸리며 조 원사를 쳐다봤다.

“조 대인, 이 일을 형부(刑部)에 보고해주십―”

말을 마치기도 전에, 조 원사가 달려들어 정철을 붙잡고 허둥지둥댔다.

“정 대인, 어딜 다치셨습니까? 괜찮으십니까?”

‘하늘이시여, 도대체 제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 사람이 잘못되면 태의서 사람들 모두의 머리가 날아갈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상처를 건드리자, 정철이 숨을 들이켜며 이를 악물었다.

“손과 어깨를 다쳤을 뿐입니다!”

다급히 상처를 싸맨 뒤, 조 원사를 따라온 내시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정 대인, 저는 태후마마의 명을 받고 온 내시입니다.”

“태후마마의 깊은 배려에 감사드리네.”

정철이 피곤한 듯 웃었다.

내시는 눈치 빠르게 크고 작은 보양식들을 내려놓은 뒤, 간단한 말만 남기고 얼른 떠나갔다.

* * *

자녕궁 안.

“뭐라, 자객이 정철을 암살하려 했다고?”

태후는 놀랍고도 화가 나 당장 명령을 내렸다.

“황상을 모셔오거라!”

창경제도 마침 이 소식을 듣고는 금린위에게 형부와 함께 조사하라 명을 내린 뒤, 급히 자녕궁으로 향했다.

“모후―”

태후의 얼굴엔 먹구름이 가득 끼어있었다.

“황상께서도 전달받으셨나 보군요.”

“예.”

창경제는 부끄러운 표정이었다.

태후가 고개를 저었다.

“황상, 20여 년 전 화 귀비가 적황자를 해친 일은 당시 황상께서 상황을 모르셨으니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이번 일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애가 무사해서 다행이지 만약 큰일이라도 났다면―”

“짐이 경솔했습니다. 정철을 즉시 궁으로 데려오라 명했습니다.”

태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아니지요. 멀쩡한 성인 사내를 어찌 명분 없이 궁으로 데려올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럼 우선 전전(前殿)에 잠시 머물게 한 후, 태묘에서 친자 확인을 거친 뒤 다시 옮기는 걸로 하겠습니다.”

“일을 오래 끌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지요.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미 흠천감에게 날을 정하라 일러두었습니다.”

창경제는 왠지 두려워졌다.

‘며칠 동안 고민해보았다. 정철이 정말 적황자의 신분을 얻게 되면, 황태자로 즉위시켜야만 이후에도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테지. 이걸로 아들에게 진 빚을 갚는 셈 쳐야겠군. 허나 또다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더 이상 갚을 길이 없겠어.’

창경제는 결심한 바였다.

‘친자 확인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어사와 관원들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정철을 황태자로 즉위시키리라.’

* * *

정철이 태의서에서 암살 위험에 처하고, 황성에 잠시 머물게 된 일은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날 수도는 이 일 외의 사건으로도 아주 소란스러웠다.

수도 곳곳에서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고, 하루 만에 열 건이 넘는 유혈 사태가 일어나 오성병마사와 형부는 하늘이 뒤집힐 만큼 바빴다. 관차(官差)들이 범인을 잡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사이, 관아는 오히려 한가했다.

수도 분위기가 흉흉한 가운데, 형부의 감옥에서 큰불이 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일로 인해 서쪽에서 수도까지 호송해온 반역 의심 인물, 오월루가 화재에 휩쓸려 죽게 되었다.

오월루가 죽자, 반역에 대한 단서도 끊기게 되고 말았다. 형부상서는 벌벌 떨며 이 일을 창경제에게 보고했고, 창경제는 욕을 퍼부은 뒤 책임지고 이 일을 조사하라 명했다.

수도 분위기는 단 하루 만에 무거운 먹구름이 깔린 듯 어두워졌다.

* * *

정미는 다음 날에야 정철이 암살당할 뻔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 이런 일을 어찌 제게 숨기실 수 있어요!”

“국사께서 넌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단 말이다…….”

정미가 발걸음을 뗐다.

“오라버니에게 가봐야겠어요!”

“잠깐!”

한 씨가 정미를 붙잡고 나무랐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다 큰 줄 알았더니 네 둘째 오라버니 일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지금 태의서로 간다고 해도 철이를 만날 수 없어. 당일에 바로 황성으로 들어가 잠시 머물게 되었으니.”

정미는 깜짝 놀라 입을 벙끗거리다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어째서 황성으로 들어간 거예요?”

한 씨가 입을 오므리며 웃었다.

“네 오라버니가 큰 공을 세웠으니, 황상께서 특별 대우하시는 거겠지.”

정미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냐, 뭔가 달라! 그간 공을 세운 신하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황제가 이 정도로 관심을 기울인 적은 없었다고.’

정미는 불안한 듯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멈칫했다.

‘설마 오라버니의 출신과 관련된 걸까? 사부님이 오라버니의 친부모를 이미 찾았다고 하셨잖아.’

이 생각이 떠오르자, 정미는 더욱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부님께서 오라버니와 남안왕의 증상이 조금 비슷하다고 했는데, 설마……. 아닌데, 남안왕은 겨우 서른이 넘은 나이잖아. 오라버니의 친부일 리가?’

한 씨는 정미가 고개를 저으며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을 보고는 손을 들어 정미를 탁 쳤다.

“무슨 일이니?”

정미가 정신을 차렸다.

“아니에요. 궁에 들어가려고요.”

“안 된다. 어제 수도에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어. 지금 궁에 가면 윗사람들이 반기지 않을 게다.”

정미는 한 씨의 말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궁으로 서신을 보냈으나, 한 씨의 예상대로 태후는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다른 날에 궁을 찾아오라는 답을 보내왔다.

정미는 정철이 더욱 걱정되기 시작했다.

* * *

정철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손바닥과 어깨를 다쳤을 뿐이었지만, 하필이면 그 비수에도 독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자객의 신분은 벌써 밝혀졌다. 태의서에서 잡일을 하던 사동이었지만, 조모가 서강인이었다. 그가 암살을 실행한 뒤, 그의 일가족 시체가 채소밭에서 발견되었다.

다행인 점은, 독극물은 모두 금지 약품으로 태의서에서만 엄격히 관리하고 있었기에, 비수에 묻어있던 독은 그리 위험한 독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모후, 어쩐 일이십니까?”

창경제가 정철의 거처에 들어오자마자, 태후도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습니까?”

“예. 마침 태의서에 있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정철이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즉시 태의에게 알려 상처의 독을 곧바로 빼낼 수 있었지요. 지금은 그저 기력이 허할 뿐 그리 큰일은 아니라 하였습니다.”

태후가 한숨을 쉬었다.

“정말 다사다난한 아이로군요.”

황제와 태후가 정철이 있는 침실로 들어갔다.

태후는 침상 앞으로 가 정철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얼굴에 띤 웃음기가 점점 짙어졌다.

창경제가 뿌듯한 듯 물었다.

“모후, 어떻습니까?”

태후가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진진의 아이로군요. 인물이 훤합니다.”

창경제의 말문이 막혔다.

‘정철은 내 아들이기도 한데? 역시 친모가 아니다 이거지!’

창경제는 분노가 담긴 눈빛으로 태후를 흘끗 쳐다봤다.

태후는 창경제의 눈치를 볼 새도 없이 정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고, 눈가가 점점 붉어지더니 중얼거렸다.

“이 이목구비 좀 보세요. 진진을 쏙 빼닮았습니다.”

창경제는 기가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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