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대흉 징조
창경제는 가슴이 철렁하여 다급히 물었다.
“그럼 정철은, 아니, 염감군(閆監軍)과 정 참의 등은 어찌 되었는가?”
병부상서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폐하, 염감군 등의 문신들은 진영의 후방에 있으니, 당연히 안전하지요.”
창경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철 그 녀석이 문신이라 다행이군. 목숨에 지장이 없다면 되었다.’
그때, 병부상서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전보에 의하면 정 참의도 경상을 입었다 하옵니다.”
창경제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그자는 후방에 있다 하지 않았나. 어찌 부상을 입었단 말인가?”
창경제가 정철에게 관심을 보이자, 태자는 화가 나 몰래 이를 갈았다.
‘역시 부황께선 정철 그놈을 특별히 여기시는군. 심지어 아들인 나보다도 더! 오월루 그 쓸모없는 자식은 뭐 하고 있는 건지. 밀서를 보낸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저 경상에 그치다니!’
“폐하, 전보에 따르면 서강의 맹장이 우리 군의 대장들을 연달아 셋이나 사살한 후 기고만장해있었는데, 정 참의가 출마하여 적군을 격퇴시켰고 그때의 전투에서 경상을 입은 듯하옵니다. 위 장군과 염감군이 연명하여 정 참의에게 공로에 대한 상을 내리고자 하고 있습니다.”
“공로는 무슨!”
창경제가 눈을 부라리며 분노했다.
“애송이 참의 주제에, 상관들에게 얌전히 획책이나 할 것이지 전투에 나가다니. 업무 태만이로군! 이 상서, 짐의 명을 전해 정 참의를 수도로 돌려보내라. 짐이 그를 추문 해야겠다!”
이 상서는 입을 뻐끔거리다가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내가 잘못 들었나, 공로를 세운 신하에게 업무 태만이라니?’
다른 사람들도 의아한 표정이었던지라, 이 상서는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조용히 피식 웃었다.
‘황상께서 아침 약을 빼먹으신 건가?’
“이 상서?”
창경제가 정색하며 그를 불렀다.
“예, 폐하.”
“짐의 말을 새겨들었는가?”
“예, 폐하. 허나 현재 서방의 병력 중 정 참의만이 서강의 맹장과 맞설 수 있습니다. 신은 정 참의를 수도로 불러오면, 서정군의 손해가 막심할까 우려되옵니다.”
이 상서가 난처한 듯 대답했다.
“상관없다. 사람마다 해야 할 몫이 있으니, 각자 제자리에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어서 정 참의를 수도로 돌려보내라!”
창경제는 강경한 표정이었다.
‘내 적황자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아무리 백성을 자식처럼 여긴다 해도 친자식보다 중요할 리 있겠는가?’
이 상서는 눈을 부라리고 싶었다.
‘황상은 뛰어난 현군은 아니지만, 늘 도리에 맞게 행동해오셨다. 그런데 지금 이 아둔한 모습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큼큼.”
뭔가 이상한 기색을 눈치챈 창경제가 두어 번 정도 기침하고 설명했다.
“정 참의는 장원이자, 장차 대량의 기둥이 될 신하이지. 전쟁터에서 목숨이라도 잃으면 대량에 큰 손실이 된다. 조정에 무장이 이리도 많은데, 장원랑이 적진에 돌격하다니? 자네들은 부끄럽지도 않은가?”
‘위무행은 평소엔 위풍당당하더니, 겨우 이 정도뿐이었군. 내 아들을 출전시키다니.’
창경제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 표정을 굳혔고, 이에 이 상서는 급히 명을 받들었다.
창경제는 그제야 기분이 조금 풀려 다시 물었다.
“장고의 지진은 어찌 수습해야 마땅하겠는가?”
이는 이미 여러 번 토론해온 주제였기에, 중신들은 각자의 의견을 꺼냈다.
창경제가 태자를 흘끗 쳐다봤다.
“태자는 어찌 생각하느냐?”
태자가 앞으로 나와 낭랑하게 대답했다.
“부황, 장고의 지진으로 분명 대량의 사상자가 나왔을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마침 성하(*盛夏: 한여름)라, 최대한 빨리 방역 약재를 장고에 보내어 재난민을 안정시키고 역병을 방지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음.”
태자가 그럴듯한 답을 내놓자, 창경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태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어서 말했다.
“예로부터 지진은 불길한 징조였지요. 그리고 장고는 수도와도 가까우니, 민심이 혼란스러울 겁니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등의 방법을 통해 민심을 진정시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창경제는 뜻밖의 대답에 칭찬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의 말이 맞다. 신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중신들 모두가 태자의 말에 동의했다.
“진(陳) 감정(監正), 최대한 빨리 길일을 정해 제천 의식을 치를 수 있도록 하게.”
창경제가 태자를 쳐다봤다.
“태자, 이번 제천 의식은 네가 책임지거라.”
태자는 기뻐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부황이 내게 제천 의식을 맡기다니.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공명정대한 후계자이고, 바깥에 떠도는 소문은 헛소문이라 알리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태자는 감격한 나머지 소매 속의 손이 벌벌 떨릴 지경이었다.
중신들은 창경제 말의 의미를 깨달아 태자를 더욱 공경하게 되었고, 조정에서 나올 때엔 그를 둘러싸고 인사를 건네는 신하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 상태였다.
태자는 이전의 오만한 태도는 거두고 대신들과 겸손하게 인사말을 나누었고, 그러한 겸손하면서도 자중한 태도에서는 황태자의 품위가 느껴졌다.
사람들은 고작 소문만으로는 황태자의 지위를 흔들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중신들이 전 밖으로 나왔을 때,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졌다. 다들 동시에 하늘을 쳐다봤다.
환하게 빛나던 태양에 붉은빛이 어렴풋이 보이더니, 갑자기 점점 어둠에 침식되어 태양이 그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중신들은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때 흠천감(欽天監)인 진 감정이 아연실색하며 바닥에 쓰러져 통곡했다.
“일식이다, 일식이야!”
진 감정의 외침 후, 어두운 붉은색의 태양은 어둠에 완전히 삼켜져 사방은 새까맣게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 어둠은 야밤의 것과는 다르게 한 점의 빛도 느껴지지 않는 칠흑 같은 짙은 어두움이었다.
평소 침착하고 담담한 대신들도 이 상황에 모두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진 감정처럼 통곡하거나, 이리저리 달아나며 소리를 질러대는 탓에 밖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어떤 사람들이 외쳤다.
“화, 황제 폐하를 엄호하라!”
사람들은 이리저리 달려나가다가 넘어지고 서로에게 짓밟혔다. 어둠이 깔린 지금, 조정이 열리는 대전은 인간 지옥의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태자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홍칠 기둥을 꽉 끌어안고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벌벌 떨었다. 누군가 허둥지둥 달려가다가 그의 발을 밟기도 했지만, 태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일식이라니. 이건 망국의 징조인데! 아직 나는 그저 황태자일 뿐이니, 이런 대흉의 징조가 일어나면 우선 황제와 중신들이 책임을 지겠지. 하지만 지금 수도에 나에 관한 소문이 가득하고, 부황께서 방금 막 내게 하늘에 올릴 제천 의식을 맡으라 명하셨거늘! 하늘이시여, 저를 죽일 셈이십니까?’
태자는 하늘을 바라봤지만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답답함이 물밀 듯 밀려와 소리를 지르고만 싶었다.
하지만 태자는 그 분노를 어둠 속에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차가운 기둥에 기대 마음을 가다듬다가 머릿속에 갑자기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설마 모비가 대량을 속였고, 나는 가짜 황태자이기 때문에 하늘이 이리 연이어 경고를 내리시는 건가? 아니, 아니야!’
태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어 이 생각을 떨쳐내려 했다.
‘나조차도 이런 생각을 하면, 다른 사람은? 부황은 어떠할까? 절대 안 되지!’
태자는 주먹으로 기둥을 내리쳤다. 주먹에 느껴지는 고통도 마음속의 분노를 넘어설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일식은 모든 사람에게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고, 하늘은 마침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밝아진다, 밝아지고 있어!”
대신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통곡했다.
다시 해가 비추자, 엉망진창인 현장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중신들은 서로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창경제는 엄중한 표정으로 조용히 금란전에 앉아있었다.
“황제 폐하.”
중신들이 일제히 엎드려 절하자 창경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일어나게.”
중신들이 몸을 일으킨 이후로도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장 재상이 마침내 벌떡 일어섰다. 그 사이에 몇 살은 더 늙은 듯한 모습이었다.
“폐하, 최근 재난이 끊이질 않습니다. 지진, 일식이 연이어 일어나니, 이는 천지의 경고가 틀림없습니다. 신은 문무백관의 지도자로서 명군을 보좌하지도, 백관들의 귀감이 되지도 못했으니, 이는 명백한 죄입니다. 이에 사직을 청해 천벌을 받겠나이다.”
장 재상이 다시 바닥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서른 살에 진사에 합격해 관직에 올라, 수십 년 동안 성실히 일해 온 자였다. 큰 공로를 세우진 못했더라도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은 없었다.
‘헌데 내가 내각의 재상을 맡은 기간에 이런 대흉의 징조가 일어나다니. 내가 천지의 경고를 짊어지지 않으면, 황상께서 짊어져야 할 것 아닌가? 이게 내 운명이겠지. 이런 일을 등에 지고 퇴관하는 것이…….’
창경제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는 장 재상과 문무백관들의 표정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뒤이어 다른 중신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사직을 청하기 시작했다.
한참 뒤, 창경제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말했다.
“모두 일어나게. 이 일은 그대들이 아니라, 한 사람의 죄이니…….”
“폐하!”
중신들은 깜짝 놀랐으나, 창경제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짐의 덕이 부족하여 하늘의 노여움을 사고, 만민의 평화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하늘과 만민들이 짐에게 책임을 묻고 있으니, 짐은 뼈저리게 자책하여 정전에서 물러나 소복을 입고 재계하며 하늘께 제천 의식을 올리겠다.”
창경제의 말에 백관들은 곧바로 무릎을 꿇고 일제히 소리쳤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 소신들이 무능한 탓입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창경제가 피곤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그만하게. 짐의 마음은 확고하니. 흠천감에게 길일을 정하라 명하고, 태상시(太常寺)는 제천 의식을 준비하라. 짐은…….”
창경제가 태자를 한 번 쳐다봤다.
“짐은 태자와 함께 제천 의식을 올리겠다. 앞으로 조세를 멈추고, 농업에 힘쓰며, 억울하게 누명을 쓴 자를 조사하여 천노를 가라앉힐 것이다.”
“명 받들겠나이다. 황제 폐하 만세, 만만세!”
신하들은 조정에서 물러나며 태자를 흘끗 쳐다봤다. 태자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대전이 텅 비게 되자, 태자가 금란전 위에 앉아있는 창경제에게 무릎을 꿇었다.
“부황―”
창경제가 손을 내저었다.
“태자, 일어나거라. 군말 말고 돌아가 제천 의식을 준비하거라.”
“예.”
태자는 눈을 질끈 감고 조용히 물러났다.
창경제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자녕궁으로 향했다.
* * *
일식 탓에 자녕궁의 내시와 궁녀들 모두 겁에 질린 상태였으나, 창경제를 보자마자 일제히 예를 갖췄다.
태후는 그 소리를 듣고 나와 창경제와 마주 보았다.
창경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모후, 놀라진 않으셨습니까?”
태후는 고개를 저었고, 창경제와 안으로 들어가 앉은 후에야 탄식하며 말했다.
“일식은 예전에도 겪어본 적 있습니다.”
“모후?”
태후가 웃었다.
“황상은 당시 아직 어렸으니, 기억나지 않을 법도 하지요. 그날 일식으로 군신들이 측근의 간신을 모두 몰아내게 되었습니다. 진비(陳妃)가 바로 그때 선황에 의해 사형에 처했지요.”
창경제는 진비에 대해선 아무런 기억이 없었지만, 이름은 왠지 귀에 익었다.
진비는 당시 후궁의 실세였다. 그녀는 심지어 회임한 비빈들도 공공연히 처리했고, 선황은 이를 본체만체했다. 진비의 부형은 더욱 서슴지 않고 횡포한 짓을 저질렀으며 백성과 관원들의 의분을 샀다.
진비가 죽은 뒤 진씨 가문은 뿌리째 멸문했고, 황조는 마침내 안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