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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322화 (321/375)

322화. 별구경

어서재 입구에 서 있던 주홍희는 태후를 보자마자 급히 인사를 올렸다.

태후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황상께 애가가 왔다고 전하거라.”

주홍희가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다시 나왔다.

“태후마마, 황상께서 들라 하십니다.”

태후는 교 유모에게 문밖에서 기다리라고 눈짓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창경제는 아무 말 없이 긴 의자에 드러누워 있다가, 태후가 들어오자 그제야 조용히 일어났다.

“황상, 어찌 된 일입니까?”

태후가 깜짝 놀라 빠르게 다가갔다.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예?”

창경제는 순간 멈칫하더니, 한참 뒤에야 문득 떠오른 듯 물었다.

“정철 말입니까?”

“그래요. 오늘 그 아이를 불러오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창경제가 이마를 팍 쳤다.

“아, 잊었습니다!”

태후는 기가 찼다.

창경제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모후, 장고(長沽)에 지진이 일어났다는군요.”

태후는 깜짝 놀랐다.

사람들은 천재지변에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진, 우박 등 불길한 징조가 일어나면 중요한 권력을 쥔 대신들이 스스로 사직을 신청했고, 황제는 이 모든 걸 제 탓으로 돌리고 사죄하며 민심을 진정시켜야 했다.

“언제 일어났습니까. 사상자는 얼마나 있고요?”

창경제가 고개를 저었다.

“어젯밤이라 합니다. 800리 떨어진 곳에서 급히 수도까지 소식을 보내왔더군요. 사상자는 아직 통계되지 않았습니다.”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한참 뒤, 태후가 말했다.

“황상, 걱정 마세요. 우선 그들을 구조할 병사와 물자를 보내고, 나머지는 그 이후에 생각합시다.”

창경제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올해 짐에게 어찌 이런 불운이 닥치는 걸까요?”

이는 창경제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장고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수도에 퍼진 지 이틀째 되었을 때, 어떤 소문이 돌게 되었다.

올해 전쟁과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황태자가 황실의 혈통이 아니기 때문이고, 대량의 황권이 위태해져 하늘이 누차 경고를 주는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소문은 민심이 흉흉할 때 더욱 빨리 퍼지는 법이었다. 태자는 이 일을 알고 화가 나 용이 조각된 기둥에 주먹을 내리쳤다.

“태자 전하―”

손 양제가 깜짝 놀라 외쳤다.

“꺼져!”

태자는 한때 총애했던 손 양제를 쫓아내고 궁지에 몰린 것처럼 방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태자는 고민을 나눌 사람이 필요했다. 원래는 외가가 가장 믿음직했지만, 그 소문이 퍼진 뒤론 목은백부와 절대 가까이 지낼 수 없었다.

창문을 열고 달을 쳐다보자,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초승달이 마치 낫처럼 보여 더욱 오싹했다.

“모비―”

태자가 중얼거렸다. 그날의 선택에 후회하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점점 쓸쓸해졌다.

“모비, 왜 태후의 연회를 준비하신 겁니까? 그 연회가 아니었다면, 태후도 중독되지 않았을 거고, 부황께서도 예전 일을 들추지 않으셨을 거고, 모비께서도 죽지 않았을 테지요. 그럼 저 혼자 남아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위기에 맞서지도 않았을 테고요.”

태자는 말할수록 화가 나 창틀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모비, 돌아오십시오. 돌아와 명확히 말씀해 주십시오! 그 비밀은 모비와 외숙부, 외숙모님만 알고 있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외조모님조차도 모른다지 않았습니까? 그럼 지금 도는 소문은 무어란 말입니까? 말씀하십시오. 알려달란 말입니다!”

태자가 낮게 울부짖었다. 그때 갑자기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와 태자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누구냐?”

태자는 사방을 둘러봤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 한숨 소리는, 분명 모비의―’

태자는 차마 더 이상 상상할 수조차 없어 크게 외쳤다.

“여봐라, 여봐라!”

내시들이 급히 달려 들어오자, 그제야 그 오싹한 느낌이 사라졌다.

태자는 숨을 헐떡이다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고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 * *

“뭐라, 태자가 아프다고?”

창경제는 이 소식을 듣고 화가 나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다.

‘이 쓸모없는 놈. 이래서야 소문을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놈이 내 아들이라니!’

창경제는 순간 흠칫했다.

‘어찌 이런 생각을. 태자가 내 아들이 아니면 누구 아들이란 말인가?’

“태자는 좀 어떤가?”

창경제가 주홍희에게 물었다.

“태의의 말로는 무언가에 깜짝 놀란 탓이라 했습니다. 지금은 의식을 되찾으셨습니다.”

“놀라다니? 다 큰 사내가 그 정도로 놀랄 일이 뭐 있다고! 주홍희, 태자를 불러오게!”

반 시진 뒤, 태자가 바삐 찾아왔다.

창경제는 태자의 안색을 살피며 담담히 물었다.

“태자, 좀 어떻느냐?”

태자는 속으로 벌벌 떨며 대답했다.

“부황께 걱정을 안겨드리다니, 아들의 불효입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창경제의 입꼬리가 떨렸다.

‘걱정이 아니라 화가 난 거다. 화가 난 거라고!’

“아무 일 없다면 내일부터 조정에 나오거라.”

태자는 순간 멍해졌다.

‘작년 상하연에서 망신을 당한 뒤, 부황은 내게서 조정을 볼 자격을 박탈하셨다. 근데 지금 상황에 다시 조정에 나오라니……. 부황께선 늘 나를 믿고 계신다는 뜻인가?’

태자는 몹시 기뻐 목소리마저 잠기고 말았다.

“부황―”

창경제는 정색했다. 점점 갈수록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넌 일국의 황태자다. 아주 작은 일 때문에 네 분수를 잃어선 안 된단 말이다. 어찌 터무니없는 소문에 흔들릴 수 있느냐? 만약 소문이 짐에 관한 것이었다면, 짐이 황위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

“부황의 말씀이 맞습니다. 역시 아들은 아직 부황의 지혜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태자는 은근슬쩍 창경제에게 아첨했지만, 기분은 몹시 복잡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소문에 부황과도 같은 태도를 취해야 마땅하지. 하지만, 이번 소문은 사실이란 말이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그래도 다행히 부황께선 의심하지 않으시는군.’

“됐다,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아침에 창피한 꼴로 나타나선 아니 될 것이다!”

창경제는 손을 내저어 태자를 내보낸 뒤, 창가의 낮은 평상 위에 앉아 사색에 잠겼다.

‘화 귀비가 죽은 뒤 갑자기 이 소문이 돌았지. 태자를 노린 소문이 분명하고. 나도 조금의 의심도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화 귀비가 회임했을 때의 진료부를 몰래 조사해 봐도 아무 문제 없었어. 소문만으로 태자를 폐위시킬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창경제는 작게 한숨 쉬었다가 머나먼 서쪽에 있는 정철이 떠오르자 더욱 마음이 복잡해졌다.

전에는 지진 때문에 조정에서 정철 얘기를 할 겨를이 없었기에, 이후 서쪽으로 사람을 보냈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반드시 그 아이를 몰래 수도로 불러와야만 했다.

밤이 점점 깊어졌으나, 창경제는 조금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 * *

이 무더운 여름밤, 정미 또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내게 답신을 보내오지 않아.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정미는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가 걷다가 저도 모르게 관성대에 다다랐다. 높은 관성대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들여다본 정미는 그가 청령진인임을 알아채자 곧바로 위로 올라갔다.

발소리가 들리자, 청령진인이 뒤돌아섰다.

청령진인의 은빛 머리카락은 폭포처럼 늘어져 있었고, 넓은 백색 도포와 함께 바람에 휘날리자 왠지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미는 발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청령진인이 옅게 웃었다.

“올라오지 않고 뭐 하느냐.”

정미가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올라가 배시시 웃었다.

“사부님, 신선인 줄 알았습니다.”

청령진인은 꽤 기분이 좋았다.

이 많고 많은 제자 중에 현미가 가장 칭찬에 솔직하여 들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사부님, 어찌 이곳에 계십니까?”

정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엔 무수히 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별을 보고 있었다.”

도가(道家)의 학문은 광대했고, 부술은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별을 보고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것이야말로 청령진인의 가장 뛰어난 분야였다.

정미가 하늘을 가득 메운 별을 보며 물었다.

“성상(星象)에 특이한 점이라도 있나요?”

청령진인은 뒷짐을 진 채 하늘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그래, 아주 특이하구나. 내일 무슨 일이 나더라도 현미는 놀라지 말거라. 모두 다 지나갈 일이니.”

“알겠습니다.”

“그럼 어서 들어가 일찍 쉬거라.”

청령진인은 계속 집중해서 별을 보기 위해 정미를 보내려 했으나, 정미가 뻔뻔하게 말했다.

“사부님, 최근 불안하여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별점에 능통하시니, 한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무슨 점을 보고 싶으냐?”

“머나먼 전쟁터에 있는 오라버니가 무사한지 알고 싶습니다.”

청령진인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다가 눈썹을 낮게 드리우고 손가락을 꼽더니 입을 열었다.

“네 오라버니는 특별한 운명을 가져, 이번 전쟁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다.”

정미의 눈이 커졌다.

“오라버니의 운명이 특별하다고요?”

‘황상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핑계인 줄 알았더니, 사실이었던 거야?’

청령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사람과 판이한 명을 타고났지. 됐다, 이제 돌아가거라. 나는 별을 더 봐야겠으니.”

정미는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여 관성대를 떠났다.

한참 걸어가던 정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청령진인은 여전히 관성대 위에 높이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청령진인의 중얼거림은 아쉽게도 잘 들리지 않았다.

“천하의 마음이 한데 모이고 태자성(太子星)이 변화를 보이니, 세상이 뒤바뀌겠구나.”

* * *

다음 날, 날씨는 아주 맑았다.

태자는 일찍이 몸단장을 마친 뒤 마음을 가다듬은 상태로 조정에 나타났다.

대신들은 모두 깜짝 놀랐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각기 달랐다.

회인백부 둘째 나리인 정수문은 그들 중 가장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한 씨와 이혼한 이후로, 그는 점점 성총(聖寵)을 잃게 되었고,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곤 했다. 만약 태자에게까지 무슨 일이 생기게 된다면, 정수문의 앞길은 죄다 막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황제 폐하 납시오―”

태감의 외침과 함께 창경제가 중신들 앞에 나타났고, 곧 회의가 시작되었다.

“북방과 서방의 전투 상황은 어떤가?”

창경제의 물음에 병부상서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북방의 상황은 순조롭사옵니다. 한 장군이 북제왕의 어린 아들을 생포하였는데, 수도로 호송할지 북제의 제안에 따라 말 오백 마리와 바꿀지 여쭤보았습니다.”

“말과 바꾼다!”

창경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며 생각했다.

‘드디어 조금이나마 좋은 소식이 들려오는군. 한씨 가문의 군대는 역시 유명한 이유가 있어. 허나, 왕자 하나에 고작 말 오백 마리라니? 북제왕은 참으로 쩨쩨하군!’

“한 장군에게 말 천 마리와 교환하겠다 전하라.”

“예.”

“서쪽은 어떠한가?”

창경제는 속으로 긴장했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었다.

병부상서의 표정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폐하, 서쪽의 상황이 위급합니다!”

“음?”

“서쪽 보고에 따르면, 서강에서 갑자기 무공이 상당한 맹장이 나타나 우리 군의 대장 셋을 사살했고, 위 장군마저도 부상을 입었다 하옵니다. 그 맹장이 이끄는 부대는 수가 적지만, 한 사람이 열 명의 몫을 하고, 기습에 능해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서정군이 얼마 전 점령한 백엽성(百葉城)도 다시 서강에 빼앗겼사옵니다.”

“그리 심각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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