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금갱옥반(金羹玉飯)
잠시 후, 청록색 그릇에 담긴 장수면이 상에 올라왔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며 맛있는 냄새가 났다.
늘 화 귀비에게 아첨하던 자들이 외쳤다.
“장수면 냄새가 몹시 좋군요!”
태후가 살짝 맛보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냄새뿐만 아니라 맛도 좋군. 애가가 먹어본 면 요리 중 가장 맛있어. 황상도 따뜻할 때 드시지요.”
창경제는 얼른 한입 맛보더니, 드디어 조금 체면이 돌아와 뿌듯한 듯 입을 열었다.
“다들 드시오.”
사람들 모두가 장수면을 극찬했고, 화 귀비는 입을 오므리며 웃었다.
“오늘은 태후마마의 생신이니, 장수면이 가장 중요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수도에서 가장 훌륭한 면 가게의 주방장을 궁으로 불러왔지요.”
“그런 거였군.”
창경제는 화 귀비가 몹시 기특했지만, 태자의 일로 속이 답답해 별말은 하지 않았다.
화 귀비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태자가 연회를 완전히 망칠 뻔했으니, 이 정도 결과도 다행인 셈이지. 칭찬은 바랄 수도 없겠구나.’
화 귀비가 마음을 가다듬고 있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잔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전 안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태후, 태후마마, 무슨 일이십니까?”
태후는 한 손으로 상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 복부를 쥐며 구토하기 시작했다.
“모후!”
창경제가 벌떡 일어났다.
태후는 가까스로 창경제를 한 번 쳐다보고는 쓰러져버렸다.
창경제는 빠르게 다가가 궁녀에게서 태후를 건네받았는데, 태후는 얼굴이 노랗게 질린 채 온몸을 경련하고 있었다.
“태의!”
창경제가 크게 외쳤다. 태후를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연회는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그때 청령진인이 다가왔다.
“황상, 빈도가 한번 보겠습니다.”
“그, 그, 그래. 국사, 어서 봐주시오.”
창경제가 옆으로 비키자 청령진인이 다가왔고, 뒤따르던 정미는 태후의 안색을 살피다가 깜짝 놀랐다.
‘태후마마……, 무언가에 중독되신 것 같은데?’
마침 청령진인이 손가락으로 빠르게 부적을 그리더니 태후의 가슴에 날렸다.
“국사, 어찌 된 일이오?”
청령진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중독되셨습니다.”
사람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만약 어의였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태후가 중독되었다는 말을 함부로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청령진인은 국사의 신분으로서 전혀 숨길 필요가 없었다.
“황상, 빈도가 방금 사용한 해독부는 그저 체내의 독이 퍼지는 속도를 잠시 제어할 뿐입니다. 해독은 어떤 독에 중독되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 그럼 국사께선 얼른 태후를 치료해주시오.”
창경제는 주변을 훑어보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외쳤다.
“여봐라, 여기 있는 자들을 모두 편전으로 모시고 가거라. 이곳은 젓가락 하나도 건드려선 안 된다. 감히 현장을 훼손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겠다!”
* * *
시끌벅적하던 청량전은 순식간에 텅 비었고, 상 위의 잔과 접시만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벽 모퉁이에 쌓인 얼음은 녹아내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얼음을 채우지 않았다.
편전 안 분위기는 아주 무거웠고, 결국 누군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태후마마께서 어찌 갑자기 중독되신 거지?”
“그러게, 황상께서 우리보고 여기 남으라 하신 건, 우리 중에 독을 넣은 사람이 있을 거라 의심하시는 거 아냐?”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화 귀비를 흘끗 쳐다봤다.
화 귀비는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나까지 편전에 가둬둘 줄이야!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황상. 지금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정말 황당하군. 오늘 연회는 내가 준비한 자리이거늘, 미친 게 아니라면 어찌 태후에게 독을 먹인단 말인가!’
‘……잠깐!’
화 귀비는 문득 깨달았다.
‘누가 독을 넣었든 간에 내가 연 연회에서 일어난 일이니, 나도 책임을 피할 수 없겠구나!’
화 귀비는 이를 꽉 깨물며 생각했다.
‘독을 넣은 자를 알아내면, 내 반드시 갈기갈기 찢어버리리라! 정말 눈치도 없지. 그 노인네를 죽이고 싶다면 다른 때를 고르란 말이야!’
화 귀비 주변의 분위기가 어두워지자, 사람들은 각기 다른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남안왕이 담담하게 말했다.
“다들 진정하시오. 황상께선 현명하고 지혜로운 분이시니, 우리가 저지르지 않을 일로 벌하지 않으실 거요.”
남안왕의 말에 사람들은 그제야 마음이 놓여 ‘예’하고 대답했다.
* * *
내실 안, 창경제가 조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국사, 도대체 무슨 독이오?”
청령진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부의는 해독도 할 수 있고, 독성이 불러오는 증상을 완화 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을 판별하는 건 어렵습니다. 무슨 독인지는 태의들이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창경제가 시선을 돌려 태의들을 바라보며 어두운 목소리로 물었다.
“뭔가 알아냈는가?”
십여 명의 태의들은 땀범벅이 된 채 힘겹게 대답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아직 알아내지 못하였사옵니다. 그저 태후마마께서 드신 독이 아주 희귀하다는 것만 알아냈습니다.”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창경제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건―”
태의들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그중 하나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태후마마의 상태를 계속 지켜보다가 다른 단서를 찾으면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홍희, 가서 대전의 태의에게도 물어보고 오라.”
“예.”
창경제는 태의들을 차갑게 훑어보고는 바깥방으로 가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주홍희가 급히 달려왔다.
“황상, 알아냈습니다. 태후마마의 상에 있던 금갱옥반(金羹玉飯)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금갱옥반?”
창경제는 깜짝 놀랐다.
‘장수면에 문제가 있을 줄 알았는데, 금갱옥반일 줄이야.’
금갱옥반은 황조기와 파래를 죽처럼 만든 음식으로, 아주 부드럽고 맛있는 요리였다.
창경제는 그가 황자였던 시절, 태후가 황조기를 즐겨 먹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떠올랐다.
황제의 머릿속에 과거가 그림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도 이런 더운 날씨였다. 겨우 아홉 살쯤 된 창경제가 축국을 하고 땀에 흠뻑 젖은 채 전에 들어오자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 시절의 창경제는 양모인 태후를 아직 어려워했지만, 참지 못하고 물었다.
“모후, 이게 무슨 냄새입니까?”
젊은 태후는 다섯 살 된 조카딸 진진을 안고 따뜻하게 웃으며 알려주었다.
“모후가 주방에 금갱옥반을 만들라 명했단다. 지금 황조기가 통통하고 맛있을 철이거든.”
태후는 진진을 내려놓고 황제의 땀을 직접 닦아주었다.
그날의 식사는 아주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태후의 온화한 웃음과 그와 음식을 다투며 먹느라 바빴던 황후 진진, 그리고 진진의 귀여운 만두 머리까지…… 모두 그의 가슴속에 새겨져 있었다.
창경제가 정신을 차리고 주홍희에게 물었다.
“태후의 상에 있던 금갱옥반에만 문제가 있었던 겐가?”
“예. 태의가 다른 상에 있던 금갱옥반을 고양이에게 주었는데, 다른 그릇을 먹었을 땐 멀쩡했지만, 태후마마의 상에 있던 금갱옥반을 몇 입 먹더니 바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창경제가 대로했다.
“모든 태의들에게 곧바로 협진하라 명해라. 어떤 독인지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태의들은 한데 모여 열심히 의논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모르는 독을 그렇게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게 아니거늘, 하지만 태후마마께도 시간이 별로 없어. 이러다가 우리 모두 머리가 날아가게 생겼네!”
“그럼 어찌하면 좋은가?”
나이가 지긋한 태의가 갑자기 손뼉을 쳤다.
“아, 그렇지! 작년에 사직한 이 태의가 독 판별에 능통하지 않나? 이 태의를 불러와 보자고 황상께 아뢰어야겠네!”
“그건―”
몇몇 태의들이 망설였다.
‘그렇게 되면, 황상께서 우리를 무능하다 여기게 되는 것 아닌가?’
늙은 태의가 입을 삐죽였다.
“망설일 시간 없네. 내 나이쯤 되면 자네들도 알게 될 터.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네. 태후마마의 목숨을 잃느니, 차라리 황상께 욕을 얻어먹는 게 낫지!”
태의들이 결심을 내렸다.
“좋소, 그렇게 하지!”
창경제는 모든 태의들이 속수무책이라 사직한 태의를 불러와야 한다는 말에 역시 대로했다.
“다들 무능하구나! 주홍희, 금린위에게 이 태의를 불러오라 명하라!”
주홍희가 명을 받들고 밖으로 나간 잠시 후, 어떤 내시가 달려와 헐떡이며 말했다.
“황상, 태, 태후마마께서…… 찾으십니다…….”
창경제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얼굴이 환하던 태후가 숨이 곧 끊어질 것처럼 침상 위에 누워있었다.
여느 노부인과 다름없는 모습에 창경제의 마음이 쓰라려 왔다.
창경제는 늘 양모인 태후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황후의 일로 두 사람 사이에 응어리가 생겼고 이후 점점 멀어졌지만, 태후가 베푼 은혜는 절대 잊을 수 없었다.
“모후―”
창경제가 반쯤 주저앉아 태후의 손을 잡았다.
태후가 일어나려 발버둥 쳤다.
“황상, 애가를 부축해주세요. 앉아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창경제는 급히 태후를 부축해 금색 자수가 놓인 붉은 베개에 기대게 했다.
태후가 천천히 웃었다.
“황상, 애가에게 가망이 없는 거지요?”
“그럴 리가요. 독에 능통하다는 이 태의를 불러오라 명했습니다. 이 태의는 교외에서 요양하고 있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국사도 계시지 않습니까. 국사께서 독이 퍼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태후가 고개를 저었다.
“병은 치료해도 죽음은 막을 수 없습니다. 애가의 몸 상태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지요. 황상, 애가를 자녕궁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창경제는 눈가가 촉촉해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자녕궁은 여전히 평화로웠고, 창경제는 태후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태후의 눈빛은 점점 흐트러졌고 의식 또한 흐려졌다. 태후는 창경제의 손을 잡고 중얼거렸다.
“진진, 진진이냐? 손이 왜 이리도 거칠어진 게냐? 냉궁에서 얼마나 고생한 게야?”
창경제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진진아―”
태후는 끝에 다다른 듯 계속해서 황후를 불러댔다.
창경제는 착잡한 듯 눈을 질끈 감더니 입을 열었다.
“황후를 자녕궁으로 모셔오거라.”
창경제는 아주 심란했다.
황후가 유폐된 후, 그는 한 번도 황후와 만나지 않았다.
아니, 황후가 미쳤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몰래 관저전에 찾아간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더욱 황후를 만나고 싶지 않아졌다.
젊은 시절의 그는 분노 때문이라 여겼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속에 담긴 후회와 미안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의 충동을 후회하는 것인가? 확실한 증거를 찾고 계속 조사한다면, 황후의 결백함을 알아낼 수 있을까? 아니면 황후의 죄명이 더욱 확실해져 조금의 후회도 남지 않게 될까?’
창경제는 스스로가 미웠다.
남들은 황후가 잘못을 저질러 자신의 미움을 받아 관저궁에 유폐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미움보다는 차마 황후를 보기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이런 상황에서 황후와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황상, 황후마마께서 오셨습니다.”
주홍희가 창경제의 귓가에 다가와 작게 말했다.
창경제가 속눈썹을 떨며 천천히 눈을 뜨자, 풍 황후가 보였다.
정미의 치료 덕분에, 풍 황후는 거의 종일 평범한 사람처럼 조용히 지냈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
풍 황후는 머리를 높게 틀어 올려 매끈한 이마를 드러냈고, 앵두 같은 입술과 오뚝한 코는 여전히 귀티를 풍기고 있었다. 특히 정신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져서인지, 원래도 아름다웠던 눈은 유난히 맑게 빛나고 있었다.
창경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순간 울컥했다.
‘황후가 이런 모습일 줄이야. 머리를 풀어헤친 미친 여인을 보게 될 줄 알았는데. 황후의 병이 다 나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