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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312화 (311/375)

312화. 정철의 불안

위무행은 모래바람이 불어도 여전히 준수한 정철의 얼굴을 보며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정 참의, 정말 내게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정철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위무행은 급히 제 얼굴을 툭툭 쳤다.

“정 참의, 보게. 내 외모도 썩 괜찮은 편 아닌가? 큼큼, 화려한 외모는 아니지만, 단정하고 멋스럽지―”

‘아니, 여동생이 안 먹힐 것 같으니까 장군 자신을 영업하는 건가?’

정철은 결국 참지 못하고 위무행의 말을 끊었다.

“위 장군, 저는 사내에게 흥미가 없습니다.”

위무행은 잠시 멈칫하더니,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무안해하며 말했다.

“정 참의, 무슨 말을 하는 겐가. 내 말은, 내 외모도 나쁘지 않으니 내 여동생도 마찬가지일 거란 뜻이네. 정말 고려치 않을 텐가?”

정철이 사방을 둘러보다가 멋쩍게 웃었다.

“장군, 바람이 많이 붑니다. 곧 또 모래 폭풍이 닥쳐올 테지요. 어서 군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쯤이면 양고기 요리가 다 되었겠군요.”

양고기 소리에 종일 굶은 위무행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여동생은 까맣게 잊은 채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래, 가자꾸나. 가서 양고기나 먹자고!”

정철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품속에 있는 손수건이 떠오르자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 * *

밤이 되자, 세수를 한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정철이 지붕 위로 올라가 옥척(*屋脊: 지붕마루)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남쪽의 여름밤 하늘은 광활했고, 수도의 밤보다 훨씬 맑아 별이 더욱 선명하게 반짝였다.

고요한 남쪽의 밤은 아주 아름다웠다.

정철은 고개를 숙여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의 진홍색 피는 이미 홍매처럼 옅어진 채였다.

그리고 통통한 잠자리 한 쌍이 달빛 아래 그 홍매 향기를 맡는 듯 수 놓여 있었다.

정철은 손수건을 꽉 쥔 채 두 손을 머리 뒤에 받치고 누워 하늘을 쳐다봤다.

‘그때의 부상이 또 말썽인가?’

정철은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규칙적인 생활에 건강한 몸을 가진 내가 이미 치료된 내상으로 다시 각혈할 리 없는데.’

정철은 가슴을 손에 얹고 숨을 깊게 들이쉬어 봤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정철은 당황스럽고 불안했다.

부상과 피는 두렵지 않지만, 몸에 문제가 생겨 미미와 함께 늙어갈 수 없는 게 두려웠다.

정철은 한참 멍하니 밤하늘을 쳐다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함께 할 수 있는 순간이 가까워질수록, 이 꿈이 깨질까 두려워하는구나. 쓸데없는 생각 말고 내일 군의관을 찾아가 봐야겠다.’

밤이 깊어질수록 사방은 고요해 막사 안의 병사들이 코 고는 소리가 군영 특유의 야상곡을 연주했다.

별빛이 점점 흐려지자, 정철은 지붕에서 뛰어내려 짙은 밤빛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날, 새하얀 머리의 군의관이 한참 동안 정철의 맥을 짚더니 손을 내려놓고 말했다.

“딱히 어떤 병증이 느껴지진 않습니다. 진맥 상으론 평범한 사내들보다 훨씬 건강하십니다.”

“음,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왕(王) 군의관님.”

정철은 괜찮다는 군의관의 말에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의심했다.

‘큰 병은 없다지만, 어제 기침에 피가 묻어나온 건 사실이다. 이 정도로 경력이 많은 군의관이 아무 문제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정 참의, 정확히 어디가 불편하신 겁니까?”

왕 군의관이 다정하게 물었다.

어제 정철이 열여 명을 데리고 위 장군 일행을 무사히 데려온 일은 이미 군영 전체에 퍼졌던 바였다. 때문에 위 장군을 오랫동안 따라온 군의관으로서, 이 젊은 참의에게 자연스레 존경심을 느꼈다.

정철은 잠시 망설이더니, 병은 숨기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일 년 전 내상을 입었는데, 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또 갑자기 각혈을 했습니다. 아직 내상이 남아있는 건가 해서 왕 군의관님을 찾아온 겁니다.”

“그렇군요.”

왕 군의관이 손을 뻗어 다시 정철의 맥을 짚더니, 한참 뒤 손을 거두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군요. 아무런 문제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정철이 웃었다.

“제가 너무 걱정이 많은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각혈이라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왕 군의관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정 참의, 우리 군영의 의원들은 주로 외상에 정통하니, 현지 의관에서 유명한 의원을 찾아가 보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전세가 조금 누그러지면 의원을 찾아가 보지요. 감사합니다, 왕 군의관.”

정철이 일어나 왕 군의관을 입구까지 배웅했다.

왕 군의관은 약상자를 등에 이고 밖으로 나가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건강한 몸인데, 어찌 각혈을 한단 말인가? 진맥 상으로도, 혈색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큼큼, 저렇게 좋은 몸이면 아내를 여러 명 두고도 남겠는걸…….”

귀가 밝은 정철에겐 군의관의 말이 똑똑히 들렸고 귀를 새빨갛게 붉힌 채 갑자기 기침하기 시작했다.

왕 군의관이 기침 소리를 듣고 멈칫하더니 한숨을 쉬며 중얼댔다.

“정말 무슨 문제가 있나 보군. 에휴, 내 의술이 부족한 탓이구나.”

정철은 이제 기침조차 할 수 없었다.

정철이 각혈로 군의관을 불렀다는 일은 위무행의 귀에 빠르게 들어갔다.

위무행은 급히 현지 명의를 부른 뒤 서둘러 정철을 찾아갔다.

“정 참의―”

위무행이 문발을 걷고 들어갔다가, 상반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정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멍해졌다.

“옷을 갈아입는 겐가? 오늘은 전투에 나가지도 않는데?”

정철이 급히 외투를 걸치고 어두운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몸을 좀 닦으려 했습니다.”

‘들어오기 전에 인사도 건네지 않다니, 상의만 벗어서 다행이지!’

정철의 불쾌함을 눈치챈 위무행은 어색하게 웃었다.

“정 참의, 정말 장원랑 출신답군. 명문가의 공자들은 역시 꼼꼼해. 땀이 조금 났다고 몸을 닦다니. 행군이나 전투를 나가면 어쩌려 그러나. 전쟁터에서 몸에 피가 튀면 곧바로 닦을 셈인가?”

정철은 조용히 숨을 들이켜 위무행을 걷어 차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냈다.

“그 둘은 다르지요. 우리 진영에 있을 땐 최대한 편하게 있는 게 좋으니까요.”

이는 위무행이 타인의 막사에 들어오기 전 인사도 하지 않은 걸 비꼬는 말이었지만, 위무행은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

“역시, 명문가의 공자들은 좀 다르군.”

정철은 위무행의 뻔뻔함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보다 관직이 낮았기에 그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명문가 공자가 아닙니다. 가문이 없는 사람이지요.”

위무행이 잠시 당황하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대부분 출정을 나가 있다 보니, 수도의 일은 잘 알지 못하네. 정 참의가 그리 말하니 겨우 떠오르는군.”

그러고는 정철의 어깨를 토닥였다.

“괴로워 말게. 영웅은 출신을 가르지 않으니. 날 보게. 일개 민간인일 뿐인데 지금은 꽤 멋있는 자리에 있지 않나.”

사실 위무행의 출신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그는 원래 산적 두목이었다가, 조정에서 여러 번 출병하여 산적을 토벌하려 해도 성과가 보이지 않자, 차라리 귀순 권고를 내려 하사관으로 만든 것이다.

위무행은 용감하고 무예가 뛰어난 자였다. 병사를 거느릴 때엔 거칠면서도 세심한 면이 있어 목숨을 걸고 그를 따르는 자들이 점점 많아졌고, 빠르게 출세하여 겨우 서른 남짓한 나이에 관직 2품인 한 군단의 주장이 되었다.

때문에 위무행은 사람들에게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정철은 마침내 그나마 마음에 드는 말을 듣고 웃으며 대답했다.

“장군의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위무행이 잠시 멈칫하더니 크게 웃었다.

“껄껄, 역시 정 참의는 책만 아는 고리타분한 자들과는 다르군.”

그러나 기분이 좋아지자, 또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 방금 보니 몸이 꽤 다부지던데, 무술을 배웠나?”

정철의 입가에 띤 웃음기가 순식간에 굳었고 이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런 것까지 다 보셨군요. 저와 한 번 겨뤄보시겠습니까?”

‘더 이상 용납할 수 없군. 대련 핑계로 이놈을 실컷 때려주지 않으면 상반신을 보인 분을 가라앉힐 수 없겠어!’

“좋지!”

위무행의 눈이 순간 반짝였으나, 다시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안 되지. 왕 씨의 말을 들었네. 정 참의에게 오랜 병이 있다더군.”

“아니―”

위무행이 말을 끊었다.

“나와 대련하고 싶은 정 참의의 마음은 잘 알고 있네. 우리에게 시간은 많으니,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정철이 실망한 듯하자, 위무행은 왠지 마음에 걸려 제안했다.

“그럼 차라리 내 둘째 아들과 겨뤄볼 텐가?”

‘둘째 아들?’

정철의 머릿속에 제 가슴께도 되지 않는 어린 병사가 스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스승님께서 이놈의 진짜 모습을 알고 일부러 나를 보내신 거로군?’

잠시 후, 위무행이 불러온 명의도 정철의 병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뭐가 명의라는 게냐, 엉터리로군! 정 참의, 걱정 말게. 다른 도시에서 또 불러올 테니.”

위무행의 다정함에 고마움을 느낀 정철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벌써 두 분이나 제 몸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건강하다고 하시니, 각혈은 아마 그저 순간 혈기가 역행한 탓일 겁니다.”

늘 전장에 나가 있는 위무행에게 피를 보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정철의 말과 의원 둘의 진단에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이후 두 사람은 손발을 맞춰 협동하여 적군을 물리쳤고, 얼마 뒤 수도에 승전보가 전해졌다.

* * *

승전보를 전해 들은 창경제는 크게 기뻐하다가 마침 태자가 문안 인사를 올리러 오자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꾸짖었다.

“태자, 보거라. 위무행은 겨우 서른 남짓한 나이에 벌써 공훈을 얼마나 세웠는지. 게다가 정철은 너와 또래임에도 문무를 겸비한 훌륭한 인재지. 허나 너는 태자로서 매일 안뜰의 일에만 매달려있으니 창피하지도 않으냐?”

태자는 몹시 화가 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는데, 아직도 그 얘길 하시다니! 조력이 될 태자비와 혼인하고 싶다는 게 그리도 잘못된 일인가? 더 화나는 건, 혼인도 실패하고 망신까지 당했다는 것이다!’

창경제의 잔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정철은 짐이 본 젊은이 중 가장 뛰어난 인재다. 그런 인물이 널 보좌하는 건 네게도 큰 복이야. 태자, 짐은 네가 둘도 없이 뛰어난 인물이 되길 바라는 게 아니다. 최소한 덕행은 있어야지. 그래야 그런 훌륭한 신하들이 기꺼이 너를 위해 일하지 않겠느냐.”

태자는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내 복이라니? 위무행과 정철이 없으면 내가 황제에 오르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창경제의 잔소리는 태자에게 원한만을 심어주었고, 태자는 동궁에 돌아오자마자 정동에게로 향했다.

정동은 황손 용훤과 한창 놀아주고 있었다.

용훤은 곧 두 살이 다 되어가, 안고 있기엔 꽤 무거웠다. 정동은 용훤을 융단이 깔린 바닥 위에 두고 방울을 흔들며 걸음마를 유도했다.

“유야, 이리 와 보렴. 이쪽으로 오면 이모가 이 방울을 주마.”

용훤이 자리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몇 걸음 걷더니, 곧바로 넘어졌다. 대자로 넘어진 채 바닥에서 허둥대는 모습이 아주 웃기고 귀여워 보였다.

태자는 입구에서 이 장면을 보고는 더욱 화가 나 눈살을 찌푸렸다.

‘이 멍청한 아들은 수시로 내 기분을 상하게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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