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310화 (309/375)

310화. 위 장군의 후회

장춘궁 안, 화 귀비는 등안의 보고를 듣고 깜짝 놀랐다.

“뭐라. 태후마마께서 연회는 크게 열지 않아도 되지만, 국사를 뵈었으면 하신다고?”

등안이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예,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화 귀비는 탁자를 쾅 내리치며 분노했다.

“그 늙은이, 일부러 본궁을 괴롭히는군! 국사가 어떤 사람인데. 황상마저도 마음대로 궁에 부르지 못하는 분이라고! 이런 요구를 하다니, 분명 본궁을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속셈이야!”

“그럼 마마께선 어찌하실―”

화 귀비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모셔야지. 국사께서 오지 않으신다면, 여러 번을 거듭해서라도 모셔와야지! 절대 황상께서 실망하시게 하진 않을 게다!”

화 귀비는 머리를 쥐어짜내 국사를 모실 방법을 떠올려야만 했다.

수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백성이든 황궁이든 떠들썩했고, 서강 변경의 전투는 나날이 격렬해져만 갔다.

* * *

모래바람이 하늘을 뒤덮고 전기(戰旗)가 해를 가렸다. 격렬한 전투에 많은 사람이 쓰러져 땅을 피로 물들였지만, 뜨거운 태양에 피는 금방 말라버려 피비린내와 검붉은 자국만을 남겼다.

위무행은 맞은편의 장수가 휘두르는 창을 힘껏 맞받아치다가 어깨에 화살을 맞고 말았다.

“장군!”

옆에 있던 친위가 크게 놀랐다.

“후퇴한다!”

양쪽의 전기가 빠르게 흩어지며 대량군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서강군 중 하나가 쫓아가려 하자, 주장이 그를 막았다.

“쫓아가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대량군은 도망가지 못할 게다. 물이 없으면 여기서 목말라 죽을 테지!”

“하하하, 역시 장군이십니다. 대량군을 함정에 빠트리시다니, 저들이 여길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자, 술이나 마시러 가지. 대량의 주장이 죽으면 낯선 곳에 갇힌 대량군의 처지야 안 봐도 뻔하지!”

서강군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위무행은 친위의 호위를 받으며 장병들과 함께 후퇴하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장군, 뭔가 이상합니다. 같은 곳을 두 바퀴째 돌고 있습니다!”

위무행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곳엔 끝없는 사막이 펼쳐져 있었고 뜨거운 햇살이 모래언덕을 비춰 남북을 구별할 수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어깨에 꽂힌 화살을 빼냈다.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자 위무행이 비틀거렸다.

“장군!”

“괜찮다. 어서 면포를 가져와 지혈하거라!”

상처를 막은 위무행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묻어나왔다.

“계속 전진한다. 여긴 온도가 너무 높아, 어서 후퇴하지 못하면 탈수로 위험해질 수 있다!”

반나절 후, 여전히 같은 곳을 맴돌고 있는 장병들은 절망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보았을 때, 태양은 여전히 높게 떠 있었다. 더운 바람이 불어오자 몸에서 피비린내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서강에 온 후 대량군이 늘 겪어왔던 상황이었다.

위무행은 입술이 바짝 마른 채 땀에 흠뻑 젖은 장병들을 둘러보다가 순간 짜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내가 너무 급했군. 속전속결로 해결하고 싶었거늘, 서강군이 잔머리를 써서 우릴 이상한 곳으로 유인하다니. 설마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니겠지. 황상께도, 대량의 백성들에게도 면목이 없구나!’

위무행은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관자놀이에 혈흔이 남으며 눈앞이 점점 캄캄해졌다.

그때, 뒤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위무행이 어깨를 감싼 채 고개를 돌렸다.

어깨에선 벌써 썩은 내가 풍겨오고 있었다.

“사병 하나가 더위를 먹어 기절했습니다!”

“어딘가!”

위무행이 말을 타고 달려가자, 얼굴이 샛노랗게 질린 사병 하나가 다른 사병의 품에 쓰러져 두 눈을 꾹 감고 있었다.

위무행은 문득 출발 전, 정철의 말을 떠올렸다.

‘위 장군, 날씨가 나날이 더워지고 있습니다. 우리 대량의 장병들은 이런 무더운 환경에서 전투하는 데 익숙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여정 중 장병이 더위를 먹게 되면 재빨리 주위 사람들을 흩어지게 하고 환자에게 그늘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소금물을 먹이십시오.’

“소금물은, 소금물이 남아 있나?”

위무행이 외쳤다.

장병들이 멍하니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데, 부장이 말했다.

“장군, 오랫동안 걸어오느라 수낭 안은 진작에 텅 비어버렸습니다.”

위무행이 자신의 수낭을 만졌다.

부장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었다.

“장군, 안 됩니다. 장군께선 부상을 입으셨고, 저희가 언제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물조차 남기지 않으시면 큰일 납니다!”

위무행이 수낭을 풀어 옆에 있던 친위에게 건넸다.

“어서 저 병사에게 먹여라! 장군으로서 너흴 여기로 데려왔으니, 반드시 함께 돌아가겠다. 절대 죽어가게 둘 수 없다!”

친위는 수낭을 건네받고 이를 악물더니 병사에게 걸어갔다.

수낭 안의 물은 겨우 바닥을 채운 정도였다. 친위는 조심스럽게 병사에게 남은 물을 먹였다. 하지만 잠시 지켜봐도 병사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 채 안색만 점점 나빠졌다.

친위가 고개를 돌려 위무행을 쳐다봤다.

“장군, 여전히 기절한 상태입니다. 가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위무행은 내리쬐는 태양에 왠지 어지러워져 눈을 질끈 감았다.

부장이 친위에게 눈짓했다.

“병사를 데리고 가거라.”

“잠깐!”

위무행이 눈을 번쩍 뜨고 부장을 빤히 쳐다봤다.

“류(刘) 부장, 정 참의가 막 군영에 도착했던 날, 더위를 먹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말했는데, 기억하는가?”

부장이 기억을 돌이켜봤다.

“통풍에 주의하고 소금물이나 녹두탕을 먹으라 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것 말고 더 있다! 행군 도중 소금물과 녹두탕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위무행은 슬슬 짜증이 났다.

당시 그는 정철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로 여겨 그의 말을 그리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머리를 쥐어 짜내는 것이었다.

“장군, 기억났습니다. 만약 소금물이나 녹두탕이 없고 물을 마셔도 호전되지 않으면, 배에 뜸을 들이라 했습니다!”

“뜸을 들이라고? 그럼 얼른 시도해 보거라!”

위무행이 재촉했다.

류 부장이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장군, 저……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무슨 뜻이냐?”

장군이 엄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류 부장이 쓴 표정으로 대답했다.

“장군,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겁니까? 정 참의가 말한 ‘뜸’은, 길가의 황토를 환자의 배꼽 주변에 두르고 배꼽을 향해 소변을 누는 겁니다…….”

주변 장병들이 놀란 표정으로 위무행을 쳐다봤다.

위무행 또한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어서 누군가 시도해 보거라. 성공하든 못 하든 돌아가면 본장(本將)이 포상을 내리마!”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위무행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도 없는 것이냐? 한 번이라도 시도하면 은 열 냥을 내리겠다!”

장병들은 서로를 쳐다보았고, 마침내 한 병사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장군, 시도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날씨가 더워 땀을 이렇게나 많이 흘렸는데 소변이 나올 리 없지 않습니까!”

다른 장병들이 분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소변은 물론이거니와, 입안이 말라 입을 열기도 힘들 지경입니다!”

위무행의 입술이 움찔거리더니 결국 맞받아치지 못했다.

‘장군인 내가 바지를 벗어야 하나? 아니, 체면보다 동포의 목숨이 훨씬 중요하지!’

위무행이 말에서 내리려 하는데, 어떤 병사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장군, 제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무행이 안도한 듯 외쳤다.

“그래, 얼른 해 보거라!”

장병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자, 위무행이 눈을 부라렸다.

“모두 쳐다보지 말고!”

그 병사가 류 부장이 말한 대로 하자, 기절했던 병사의 의식이 정말 돌아왔다.

장병들 모두가 환호하는데, 위무행이 고함쳤다.

“힘을 아끼거라. 이어서 전진한다!”

“장군, 이렇게 계속 전진해선 안 됩니다. 물을 보충하지 않으면 모두 위험해질 겁니다.”

류 부장이 갑자기 제 머리를 팍 쳤다.

“장군, 기억났습니다. 정 참의가 이곳에 있는 어떤 덩굴 식물의 줄기에 수분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 줄기로 수분을 보충해야겠습니다!”

“어떤 덩굴 말이냐?”

류 부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들 비슷해 보이는걸요.”

위무행이 손을 휘두르며 지시했다.

“조를 나누어 하나씩 시도해 보거라!”

약 반 시진 후, 한 병사가 크게 외쳤다.

“찾았습니다, 찾았어요!”

그는 검을 들어 덩굴을 잘라내고 곧바로 줄기에 입을 대 빨아들였다.

류 부장이 외쳤다.

“잠깐, 즙 색깔이 조금 이상한데. 아, 생각났다! 정 참의가 하얀색 즙엔 대부분 독이 있다고 했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 병사는 바닥에 쓰러져 배를 감싸 안고 이리저리 뒹굴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는 사지를 경련하더니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고, 마침내 어떤 자가 입을 열었다.

“장군, 더 찾습니까?”

“찾는다. 즙이 유난히 많은 덩굴을 찾으면 반드시 확인한 후 마시도록!”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듯이, 잠시 후 장병들이 찾아낸 덩굴은 일고여덟 가지나 되었다.

류 부장이 하나씩 분별하며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장군, 소인은 정말 무능합니다. 당시 고작 문신일 뿐인 정 참의가 전쟁에 대해 잘 알 리 없다고 업신여겨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위무행이 하늘을 쳐다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박학다식한 자를 귀히 여기지 않고, 심지어 함께 어울리기 싫어 군량을 옮기는 일로 내쫓아버렸지. 하늘이 내게 한 번만 기회를 준다면 반드시 정 참의의 허벅지를 끌어안고 이리 외칠 것이다.’

- 정 참의, 나와 함께 가지. 앞으로 평생 그대와 떨어지지 않을 걸세!

위무행이 말에서 내려 덩굴을 든 장병들에게 다가갔다.

“장군?”

친위가 깜짝 놀라 그를 쫓아갔다.

위무행이 친위를 뿌리치며 말했다.

“본장이 직접 확인해 보겠다. 어차피 수분을 보충하지 못하면, 모두 죽은 목숨일 테니!”

류 부장이 깜짝 놀라 그중 한 줄기를 붙잡고 외쳤다.

“장군,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정 참의가 마실 수 있는 즙이 이런 색깔이었다고 말한 게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그러고는 위무행이 대답하기도 전에 곧바로 줄기에 입을 대고 빨아들였다.

“류 부장!”

위무행이 크게 외쳤다.

류 부장은 즙을 다 빨아 먹은 줄기를 바닥에 휙 던지더니 전혀 두렵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시원하군!”

장병들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갑자기 그 순간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져 숨이 막혀왔다.

그렇게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까, 류 부장이 눈을 꿈뻑이며 말했다.

“괜찮은데?”

위무행이 감격한 표정으로 류 부장을 쳐다보며 욕을 퍼부었다.

“염라대왕께서 네 녀석의 목숨은 필요 없으신가 보구나!”

“흐윽, 아무 일 없다니!”

류 부장은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했다가, 모든 장병들이 저를 쳐다보자 급히 허리를 꼿꼿이 펴고 가볍게 기침했다.

“큼큼, 역시 내 기억이 옳았군. 자, 똑똑히 보거라. 이렇게 생긴 줄기를 찾아 마시면 된다!”

위무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류 부장의 말대로 얼른 줄기를 찾아라. 수분을 보충한 후 해가 지기 전에 나가는 길을 찾는다!”

“예!”

장병들은 힘차게 대답한 후 뿔뿔이 흩어졌다.

장병들은 즙을 마실 수 있는 줄기를 샅샅이 찾았고, 어느 정도 수분을 보충하자 다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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