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287화 (287/375)

287화. 자수 신발

중매인은 유명한 관매(*官媒: 관의 소속으로 중매하는 사람)였고 낯짝이 두껍고 말솜씨가 능숙하여 시들한 관계도 되살릴 정도였다. 그녀는 단 노부인의 조금 어두운 표정을 보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중매인은 겁낼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목은백의 부탁으로 혼담을 꺼내러 온 것이었다. 목은백이 어떤 집안이던가? 귀비마마의 친가였다. 위국공부가 아무리 문턱이 높다 해도 부계와 연을 끊은 사촌 아가씨에게 혼담을 꺼내는데, 저를 쫓아낼 리 있겠는가?

“노부인, 보십시오. 화 공자는 훌륭한 인재이고 목은백부의 독자(獨子)입니다. 차기 목은백이 될 후계자이지요. 아가씨께서 절대 손해 보지 않을 겁니다.”

단 노부인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

“노신(老身)이 듣기로는 목은백에게 아들이 없어 둘째 집안의 화 공자가 두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던데.”

중매인이 급히 웃으며 말했다.

“어찌 그런 걸 걱정하십니까. 제가 화 공자의 혼담을 나누러 온 것도 목은백 부인께서 부탁하신 일입니다. 아가씨께서 화 공자와 혼인하시면 큰집 며느리이자, 예비 목은백 부인이 되시는 겁니다.”

단 노부인이 찻잔을 들었다.

“노신의 외손녀는 서툴고 둔하여 그런 복잡한 관계는 관리하지 못한다. 이만 돌아가게나.”

‘목은백 부인? 위국공 부인이라 해도 안 되지! 내 외손녀가 그런 고생을 하게 둘 순 없어!’

중매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노부인, 그러지 마시고 이걸 좀 보세요.”

중매인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무언가를 둘러싼 비단을 보물 다루는 것마냥 조심스럽게 풀었다.

단 노부인과 한 씨는 저도 모르게 그것을 빤히 쳐다봤다.

비단이 풀어지자, 안에 정교한 자수 신발이 보였다.

“이건―”

단 노부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중매인이 입을 오므리며 웃더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노부인, 이건 사촌 아가씨의 자수 신발입니다.”

단 노부인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내 외손녀의 신발을 어찌 그대가 가지고 있는가?”

중매인이 웃었다.

“이 신발은 목은백 부인께서 제게 전달해주신 겁니다.”

그러고는 사람들의 안색을 살피더니 이어서 말했다.

“사실 목은백 부인께서 제게 혼담을 부탁하신 것도 이 신발이 맺어준 인연이지요.”

단 노부인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똑바로 말하거라. 그리 모호하게 말하면 오해를 사지 않는가!”

“오해가 아닙니다. 이 신발은 사촌 아가씨께서 화 공자와 만남을 가지셨을 때, 아가씨께서 공자께 드린 겁니다. 노부인, 두 젊은이들이 이렇게 사이가 좋은데, 아이들을 아끼는 어른으로서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매인이 몰래 입을 삐죽이며 생각했다.

‘아가씨가 되어선 이리도 부주의한데 여인 쪽에서 더 이상 발뺌할 수 있겠어? 됐다. 어쨌든 이 일을 입 밖으로 꺼냈으니, 이 귀부인들이 어떻게 나오나 보자고! 혹시 모르지. 내게 뇌물을 이만큼 쥐여주며 아가씨의 수치를 숨겨 달라 할지도.’

“헛소리!”

단 노부인이 대답하기도 전에 한 씨가 벌떡 일어나 분노했다.

“이 노인네가 헛소리를 하는군. 내 딸이 어찌 화 공자와 몰래 만남을 가졌단 말이냐! 정말 황당하구나!”

‘화량은 나도 만나본 적 있지.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게 보기만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 나중에 분명 광명정대하게 아내를 둘이나 들이겠지.’

한 씨는 스스로를 돌이켜봤다.

‘정수문도 동 이낭 하나만 첩으로 들였을 뿐인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우울했던가. 절대 굽히지 않는 정미의 성정에 다른 여인과 한 사내를 공유하다니, 몇 년 안에 화병으로 죽을 거다.’

“아이고, 진정하세요. 고작 중매인인 제가 어찌 이런 일로 부인을 속이겠습니까. 이 신발은 분명 사촌 아가씨의 신발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목은백부에서 어찌 감히 이런 일을 지어내겠습니까?”

한 씨가 말문이 막혀 단 노부인을 쳐다보자, 중매인이 급히 다가와 말했다.

“노부인, 이렇게 된 이상 깊게 고려해보시지요. 화 공자와 사촌 아가씨는 나이도 딱 맞고 집안도 잘 맞는데, 두 사람이 혼인하게 되면 그야말로 경사 아니겠습니까?”

단 노부인이 양신에게 명령했다.

“가서 사촌 아가씨를 모셔오거라!”

“예.”

양신이 물러났다.

중매인이 입을 삐죽이며 웃었다.

“아이고, 역시 노부인께서 사촌 아가씨를 아끼시는군요.”

혼인은 부모의 명과 중매인의 말이 가장 중요했다. 두 사람에게 사정(私情)이 생긴 상황에서, 단 노부인이 굳이 외손녀를 불러 확인하려는 일은 중매인으로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 * *

양신이 급히 형무원으로 가 중매인이 찾아온 상황에 대해 정미에게 설명했다.

정미는 어제 한쪽을 맨발로 걸은 탓에 오늘 아침부터 발이 차가워서 따뜻한 토항 위에서 생강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양신의 말을 듣고 표정을 구겼다.

“그 중매인이 그렇게 말했다고?”

양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인이 빠짐없이 다 아가씨께 전달해드린 겁니다.”

정미가 백자 그릇을 탁자에 내려놓더니 환안이 건넨 외투를 받고 침착하게 말했다.

“가자.”

양신이 앞장서며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런 일과 맞닥트렸는데도 다급하지 않다니, 정말 신기하네.’

“노부인, 사촌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양신이 입구에서 외쳤다.

곧 꽃무늬가 수놓아진 면 문발이 걷히고 남색 피풍을 걸친 늘씬한 소녀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정미가 피풍을 벗어 옆에 있던 시종에게 건네주자 널찍한 청색 도포가 드러났다.

소녀는 담담한 표정에 차가운 분위기로 어른들에게 인사를 올린 뒤, 위엄있는 눈빛으로 중매인을 한 번 훑어봤다.

중매인은 왠지 소름이 돋아 저도 모르게 허리를 더 꼿꼿이 펴고 앉으며 속으로 투덜댔다.

‘설마 이 아가씨가 그 사촌 아가씨인가? 왜 단 노부인보다 더 불편하게 느껴지지?’

정미는 넓은 소매를 휙 뿌리치더니 단 노부인의 아랫자리에 차분히 앉았다.

“외조모님, 혼담을 꺼내러 왔다는 분이 바로 이 사람인가요?”

단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 노부인은 외손녀가 화가의 공자와 사적인 만남을 가졌을 거라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속임수에 넘어가게 되면 손해 보는 쪽은 외손녀였다.

정미는 차분한 표정으로 중매인을 쳐다보며 물었다.

“증거는?”

중매인은 어디서 이 긴장감이 전해져오는지 알 수 없는 채로 급히 자수 신발을 정미 앞에 건넸다.

“이 물건을 알아보시겠지요?”

“신발이지요.”

정미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중매인을 비웃었다.

“목은백부에서 이런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윗사람을 농락하고 권세를 함부로 부리는 것을 비유한 말) 같은 짓을 하셨단 말입니까? 어디서 아무 신발이나 들고 와서는 제게 뒤집어씌우다니. 차라리 공주 전하의 신발이라 하지요? 그럼 화 공자께서 부마 나리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정미의 과격한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정미가 천천히 일어나 치맛자락을 들고 걸상 위에 발을 올렸다.

“잘 보세요.”

백매가 수놓인 초록색 신발을 신은 소녀의 발은 성인 손바닥보다 작으며 아기자기했고, 중매인의 손에 들린 자수 신발은 크고 둔해 보였다.

중매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난처해졌다.

정미는 발을 다시 내리고 단 노부인에게 인사를 올렸다.

“외조모님, 더 이상 용건이 없다면 먼저 가보겠습니다.”

방 안엔 정적이 흘렀다.

정미는 입구까지 걸어가 고개를 돌렸다.

“앞으로 세심히 알아보셔야겠습니다. 목은백부에서 이런 장난을 치다니 중매인으로서의 명예에 큰 금이 가는 일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제 외조모님께선 인자하시니, 이렇게 갈취하러 온 사람이라 할지언정 함부로 몰매를 맞진 않으실 겁니다. 걱정 마세요.”

중매인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새하얘졌다가를 반복하다가 이내 신발을 품에 쑤셔 넣고 급히 작별 인사를 올렸다.

중매인이 어두운 낯빛으로 떠나자, 단 노부인이 한 씨를 꾸짖었다.

“어미가 되어서는 딸의 신발 크기도 모르다니. 정미를 불러오지 않았다면 우리 정미가 오명을 쓸 뻔하지 않았느냐?”

한 씨가 수치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 잘못이 맞습니다.”

단 노부인은 차마 더 꾸짖지 못하고 손을 내저어 한 씨를 내보냈다.

* * *

중매인은 목은백부로 가 비단에 싸인 자수 신발을 다시 바쳤다.

“부인, 이 중매는 제가 맡을 수 없겠습니다.”

목은백 부인이 비단을 흘끗 쳐다봤다.

“그게 무슨 뜻인가? 설마 위국공부에서 승낙하지 않은 겐가?”

중매인이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방금 위국공부에서 급히 나오느라 이마에 식은땀이 잔뜩 맺혀있었다.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평민 백성 중엔 사기 혼인이 있다고 들었지만, 귀한 대부호 집안에서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건 처음이구나. 앞으로 목은백부는 멀리해야겠어.’

“부인, 정말 어찌나 창피하던지요. 하마터면 매를 맞고 쫓겨날 뻔했습니다.”

목은백 부인의 안색이 차가워졌다.

“위국공부에서 그리 강경하게 나왔단 말이냐? 신발을 보여주지 않았느냐?”

중매인은 속으로 목은백 부인을 경멸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손수건을 꺼낸 후 눈가를 꾹꾹 눌러댔다.

“부인, 말도 마십시오. 이 신발이 어찌 그 사촌 아가씨의 신발이란 말입니까. 제가 오늘 그 아가씨의 발을 직접 보았는데, 발 크기가 어찌나 작던지! 이 신발 한 짝에 두 발이 다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전 그 자리에서 망신을 당했고요.”

중매인이 신발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인, 위국공부 아가씨가 정말 마음에 드신 거라면 다른 중매인을 찾아보시지요. 저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습니다.”

중매인의 말에 목은백 부인의 안색이 몹시 어두워졌다. 그녀는 여종에게 돈 봉투를 준비하라 분부한 뒤 중매인을 보낸 후에는 둘째 부인을 불러왔다.

잠시 후, 둘째 부인이 들어왔다.

“큰형님, 찾으셨습니까?”

목은백 부인이 비단 보따리를 밀어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동서가 량이를 아끼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을 속이는 일까지 그 아이의 뜻에 따라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뜻입니까?”

둘째 부인은 깜짝 놀랐다.

목은백 부인이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정가 셋째 아가씨는 위국공부의 사촌 아가씨이자, 국사의 제자이지요. 이 혼사가 이루어지면 귀비마마께서도 만족하실 겁니다. 하지만 동서, 량이가 이 신발을 셋째 아가씨로부터 얻은 것이니 두 사람은 이미 사통했다 하면 안 되지요. 오늘 이른 아침에 중매인을 보냈더니, 중매인이 매를 맞고 쫓겨날 뻔했답니다.”

“하, 하지만 이 신발은 정가 셋째 아가씨의 신발이 확실합니다.”

목은백 부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중매인이 그 아가씨의 발을 직접 보았는데, 이 신발보다 훨씬 작았다고 하더군요. 동서, 이따 량이와 이야기를 잘 나눠보세요. 앞으로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될 아이인데 이런 경솔한 습관이 생겨선 안 되지요.”

둘째 부인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지만 차마 목은백 부인과 맞설 수 없어 그대로 다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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