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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257화 (257/375)

257화. 배사(拜師)

북명진인이 새 사매를 데리고 떠난 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놀라 멍했다.

부인들은 아쉬워하며 흩어졌고 정가 셋째 아가씨가 국사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식은 날개 돋친 듯 순식간에 수도에 퍼지게 되었다.

* * *

장 재상가.

황 씨가 초점 잃은 눈빛으로 시어머니를 뵈러 가자, 장 부인은 큰일이 난 줄 알고 급히 물었다.

“위국공부에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느냐?”

황 씨는 애교가 많고 발랄한 작은며느리였다. 장 부인은 그녀의 난임을 가엾이 여겨 평소 황 씨와 사이좋게 지냈고 말투도 자연스레 편해진 상태였다.

“그러니까 내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 그렇게 말을 안 듣더니. 넋이 나간 채 돌아왔구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네 혼이 나간 줄 알겠다!”

“어머님, 정말 혼이 나갔어요.”

황 씨가 장 부인의 옷깃을 잡고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장 부인은 조금 다급해졌다.

황 씨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말했다.

“어머님, 오늘 현청관의 북명진인이 찾아오셨는데 배사례를 치르기 위해 정가 셋째 아가씨를 마중 나온 거 아니겠어요?”

장 부인이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느냐? 설마 북명진인께서 정가 셋째 아가씨를 제자로 삼은 것이냐? 그럴 리가. 진인께선 이미 일흔이나 되었고 제자가 얼마나 많은지도 알 수 없거늘, 이제 막 급계한 어린 아가씨를 제자로 삼는다고?”

“어머님, 이제 정가 셋째 아가씨를 어린 아가씨라 부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 아가씨를 제자로 삼은 분은 북명진인이 아니라 진인의 스승, 국사 대인이십니다!”

장 부인이 비틀거리자 황 씨가 깜짝 놀랐다.

“어머님, 왜 그러세요?”

장 부인이 이마를 짚었다.

“잠깐, 조금 어지럽구나!”

* * *

지금 이런 상황에서 수도 훈귀 백관의 관저중, 어지러운 사람이 어찌 장 부인 한 사람뿐이겠는가.

회인백부에서는 여종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큰일 났습니다. 노부인께서 쓰러지셨어요!”

한바탕 난리가 지나간 후, 맹 노부인은 그제야 천천히 깨어나 새파란 안색의 둘째 아들에게 물었다.

“셋째 계집이 국사의 제자가 되었다는 게 정말이냐?”

둘째 나리가 이를 갈며 대답했다.

“예, 오늘 오시(*午时: 옛날,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사이를 말함)에 현청관에서 배사례를 치른다고 합니다. 사가의 노부인마저도 참관하러 가신다더군요.”

맹 노부인은 아직도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찌 이런 운이 있단 말이냐. 설마…… 설마 자신에게 쓰인 오명을 씻기 위해 아무렇게나 지어낸 것 아니냐?”

현임 국사는 이미 40년 동안이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이 소식은 확실히 믿기 힘들었다.

“어찌 아무렇게나 지어낸 것이겠습니까. 북명진인께서 직접 위국공부에 마중을 나오셨다는데요. 그 못된 계집, 분명 진작에 사부를 모셨을 텐데 여태까지 우리 집안에 꽁꽁 숨겼을 겁니다. 어머님, 아들이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동료들의 눈빛이 어떠했는지 아십니까!”

‘그래, 나보다 더 불운한 사람이 있을까? 모질게 마음먹고 그 재수 없는 딸을 집에서 내쫓아 더 이상 집에 화를 부르지 않게 했더니,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국사의 제자로 탈바꿈해 북명진인과 평등한 지위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게 내 뒤통수를 치는 게 아니라면 뭐란 말이야?’

둘째 나리는 화가 나 이를 갈았다.

맹 노부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분부했다.

“둘째야, 앞으로 ‘못된 계집’ 같은 말은 절대 하지 말거라. 셋째 계집이 한 씨를 따라가긴 했지만, 혈통은 여기 있지 않느냐. 네가 좋은 태도로 대하면 그 아이가 아비인 너를 내치겠느냐?”

둘째 나리는 전에 정미를 찾아 한 씨의 혼수에 대해 상의했던 일을 떠올렸다. 꽤 고분고분했던 정미의 모습이 떠오르자 마음이 점점 차분해졌다.

“둘째야, 의복을 갈아입고 현청관으로 가 참관하거라.”

“그건―”

둘째 나리가 망설였다.

‘그건 너무 체면이 구기는데.’

맹 노부인은 냉정한 표정이었다.

“그게 뭐라고. 넌 셋째 계집의 아버지이고 이건 절대 불변한 사실이지. 그 아이가 명망이 드높아질수록 아비인 널 무시할 수 없을 게다.”

맹 노부인이 웃었다.

“네가 가면 사람들이 셋째 계집의 아비가 누군지도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둘째 나리는 맹 노부인의 마지막 말에 흔들렸다.

맹 노부인이 탄식했다.

“동 이낭을 정처로 올린 게 아쉽구나. 올리지 않았다면 한 씨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동 이낭은 정처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조심스럽고 고분고분할 시기였다. 둘째 나리는 이혼할 때 한 씨의 냉담함을 떠올렸다.

“한 씨는 고집스러운 성정이니 한 번 정한 일은 다신 되돌리지 않을 겁니다.”

맹 노부인이 되받았다.

“그건 동 이낭이 있을 때 얘기고. 동 이낭을 쫓아내고 한 씨만 곁에 두면 기꺼이 너와 함께 하려 하지 않겠느냐. 됐다, 우선 얼른 준비하거라. 늦어선 안 된다.”

* * *

문밖, 정동은 입을 막고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다가 곧바로 연교거로 달려가 문을 닫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동 이낭이 소리를 듣고 급히 찾아와 정동을 품에 안았다.

“동아, 왜 우니?”

“어머니, 제가―”

정동이 ‘어머니’라 부르자 동 이낭은 몹시 마음이 편안했다.

‘마침내 딸에게 당당하게 어머니라 불릴 수 있는 날이 왔구나.’

“동아, 이제 너도 당당한 적녀 아니니. 그렇게 울지 말거라. 다른 사람이 비웃을 수 있단다.”

정동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동 이낭을 한 번 쳐다보았다. 어느새 눈물은 쏙 들어가고 차가운 웃음만 나왔다.

‘적녀가 뭐라고. 또 정처는 뭐라고? 결국 조모님과 아버지 눈엔 가치가 있냐 없느냐로 나뉘는걸.’

“왜 그러니?”

동 이낭이 정동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동은 조용히 동 이낭의 품에 파묻혔다.

‘무서워. 무서워서 온몸이 차갑게 식는 느낌이지만 차마 말할 수도 없어. 아버지께 어머니의 유일한 가치는 그저 순종적인 것뿐이겠지. 만약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무서운 모습을 알게 되고 유순한 모습마저 지어내지 못하게 되어 아버지가 싫어하게 된다면? 한 부인은 이혼이라도 가능했지만 우리 어머니는 죽는 길밖에 없을 거야.’

* * *

국사의 출현이 일은 잔물결은 정미에게 아무런 혼란도 주지 못했다.

정미는 그저 백발에 젊은 얼굴의 사내에게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자가 스승님을 뵙습니다.”

청령진인이 웃으며 정미를 일으켜 세웠다.

“무릎은 배사례 때 꿇거라.”

현청관엔 문천(問天)이라는 교단이 있는데 동지와 하지 이렇게 이틀만 열렸고, 북명진인은 그날 등단하여 설교를 했다. 그리고 정미의 배사례도 그곳 문천에서 거행되었다.

현청관의 예스럽고 은은한 종소리가 울리자, 도사들은 모두 깜짝 놀라 문천 교단으로 향하며 작게 수군거렸다.

“교단의 종이 왜 울렸지요? 설마 관에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종이 고르지 않게 울렸으니, 제자들을 모아 배사례를 참관하라는 뜻일 겁니다.”

말하던 도사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문천 교단에서 배사례를 거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설마 진인께서 제자를 받으신 걸까요?”

모든 도사가 교단에 도착하자 교단 위에 부들방석과 향촉 등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 배사를 할 때 쓰는 물건들이었다. 현청관의 장로들도 모두 자리에 있었고 객석 한쪽엔 세속의 사람처럼 보이는 얼굴이 있었다.

길시(吉時)가 다 되자, 옅은 남색의 도복을 입은 백발 사내가 천천히 교단 위로 올라가고 앞쪽에 서 있던 북명진인이 장로들과 함께 절을 올렸다.

“제자가 스승님을 뵙습니다.”

도사들은 모두 멍해졌고 한참 후에야 정신이 들어 분분히 절을 올렸다.

정미는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걸음 씩 교단에 올랐다.

법의를 입고 도관을 쓴 채 천지 삼신께 절을 올린 정미는 무릎을 꿇고 차를 올린 뒤, 스승 청령진인이 하사하는 이름을 공손하게 들었다.

정미는 이제 ‘현미(玄微)’라는 도호를 가지게 되었다. 미묘하고 영통(靈通)하다는 뜻이었다.

“예성(禮成)―”

우렁차고 긴 창(唱)에 따라 문천 교단 옆의 종이 다시 울렸다. 긴 여운의 종소리에 봄날에 찾아온 새들이 깜짝 놀라 날아갔다.

정미가 천천히 일어나 청령진인의 아랫자리에 앉았다.

교단 아래, 무수한 도사들이 엎드려 절하며 일제히 외쳤다.

“사조(師祖), 사숙을 뵙습니다―”

늘 주눅 들지 않던 정미조차도 무수한 도인, 특히 일부는 조부뻘이기 까지 한 도인들이 정중하게 자신을 참배하자 저도 모르게 종아리를 떨었다. 다행히 얼굴엔 조금의 겁도 드러나지 않았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답례했다.

이제 현청관의 모든 도사들은 자신에게 놀랍도록 높은 서열의 어린 사숙이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많은 도사들은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수염을 바라보다가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수행을 하기 싫어졌는데, 어떡하지?’

“현미, 스승을 따라오거라.”

정미는 고개를 돌려 객석의 사람들을 한 번 쳐다보다가 정철의 차분하고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자 절로 웃었다. 그러고는 그제야 청령진인을 따라 떠나갔다.

북명진인이 객석으로 걸어가 노위국공에게 말했다.

“노우, 배사례가 끝났으니 관에 남아 식사를 드시오.”

현청관의 소식(*素食: 채식 위주의 소박한 음식)은 명성이 자자했고 몇 안 되는 날만 관에 향불을 피우러 온 손님들에게 접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배사례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그 유명한 식단에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어질어질한 마음으로 도동을 따라 객실로 가 휴식을 취했다.

향명(*香茗: 어린 싹으로 만든 고급 차) 한 잔이 배속에 들어오자 단 노부인은 그제야 정신이 들어 물었다.

“미는 어디 갔지?”

노위국공이 말했다.

“아마 국사께서 따로 전할 말씀이 있었나 보오.”

단 노부인은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많은 도장이 정미에게 엎드려 절하는 모습을 보니 아직까지도 가슴이 떨립니다.”

단 노부인의 말에 분위기가 풀렸고 모두가 참지 못하고 웃었다.

사 노부인도 빙긋 웃었다.

“큰언니, 미가 언니보다 더 강한 것 같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절하는데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데.”

위국공부의 넷째 부인 조 씨가 웃으며 말했다.

“이모님의 말이 맞습니다. 이 길이 정미의 운명이었나 봅니다.”

“나도 그런 것 같더구나.”

사 노부인이 잠시 망설이더니 물었다.

“정미가 도사가 되었으니, 이제 시집은 못 가게 되는 건가?”

이 말에 방 안이 조용해졌다.

위국공부의 손자 세대 중 유일하게 배사례에 참관하러 온 한지가 불편한 듯 정철을 쳐다봤다.

정철의 담담한 표정엔 조금의 단서도 드러나지 않았다.

단 노부인이 긴가민가한 듯 말했다.

“미는 아마 재가거사(*在家居士: 출가하지 않고 속세에서 수행하는 신자)가 아닐까. 그렇게 어린 아가씨에게 속세와 욕망을 줄이고 관에 갇혀 지내게 할 리는 없으니.”

사람들은 단 노부인의 말에 확신하지 못했다.

현청관의 도사는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술과 육식을 금하며 혼인을 하지 않는 청수(淸修) 도사와 나머지 하나는 집에서 수행하며 혼인도 금하지 않는 화거(火居) 도사가 있었다.

배사례 때 정미의 의상과 꾸민 모습을 보면 당연히 후자에 속해야 했지만, 정미의 사부는 청령진인이었기에 상식적인 이치를 따를 거라 확신할 순 없었다.

이때, 정철이 입을 열었다.

“현청관의 도사(道史)를 읽은 적 있습니다. 화거 도사는 서열이 높든 낮든 환인을 금하진 않습니다. 단―”

정철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단, 나중에 미미가 청령진인의 법통을 계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요.”

‘청령진인의 법통을 계승하다니 그, 그건 바로 다음 국사가 된다는 말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걱정할 게 없겠군. 어린 아가씨가 어찌 법통을 계승하고 국사가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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